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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 픽션 (Pulp Fiction) + 포스터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너무 독특한 영화다
쿠엔틴 타란티노 이름에 걸맞는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 라는 영화도 정말 특이한데 이 영화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앞뒤에 시간의 흐름을 역행해 사건을 배치한 게 특이하다
역시 영화의 절정은 마지막 부분에 있는 것 같다
맨 마지막 장면을 찍기 위해 긴긴 시간 돌아온 듯 하다
2시간 반에 달하는 긴긴 시간이 지루하긴 했지만, 구조가 워낙 독특한 영화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우마 써먼이 나온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짧은 단발이 빨간 입술과 어울려 굉장히 관능적으로 보인다
존 트라볼타와 함께 추는 그 유명한 잠자리 춤을 보다니, 새로운 소득이다
존 트라볼타는 뚱뚱한 아저씨, 혹은 느끼한 중년 같아 솔직히 별로였고 우마 써먼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왜 보스는 빈센트에게 아내를 즐겁게 해 달라는 부탁을 했을까?
마치 "달콤한 인생" 에서 덫에 걸린 이병헌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영화들이 여러 개 겹친다
감독들이 여기저기에서 약간씩 차용을 하는 것 같다
시험에 빠진 빈센트, 그런데 얘기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 간다
보스의 아내 미아가 약물 과다로 코마에 빠진 것이다
아드레날린 주사기를 심장에 갖다 박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던데, 이게 무슨 효과인지 모르겠다
중독 백과 찾느라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코믹했다
응급실에서도 내과 의사들이 중독백과 보면서 치료하던데, 영화 속 깡패들도 집에다 그런 의학책을 상비해 놓는 거 보고 많이 웃었다
가운데 삽입된 부치 이야기는, 좀 뜻밖이었다
나는 부치가 보스의 명령을 어긴 후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전해 준 시계 찾으러 갔다가 죽임을 당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가면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는지, 뜻밖에도 감독은 부치를 죽이는 대신, 그를 노리던 빈센트를 죽여 버린다
부치가 집에 찾아 오면 죽이려고 대기하고 있던 빈센트는, 어이없게도 부치에게 먼저 발견되어 한 방에 가고 만다
이 놈은 억세게 운이 좋은 놈 같다
또 빈센트를 죽이고 도망쳐 나오다가, 보스 마르셀레스와 맞딱뜨린다
딱 죽는 타이밍인데 엉뚱한 놈들에게 붙잡혀 갑자기 한 패거리가 되버린다
그 놈들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에서 보스는 부치를 용서하고 멀리 떠나라고 보내준다
정말 운 하나는 끝내 주게 좋은 놈이다
부치의 아버지는 베트공에게 포로로 잡힌 후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시계를 뺏기지 않기 위해 항문 속에 넣고 5년을 버틴다
그가 죽게 되자, 전우에게 넘긴 후 아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친구는 그 시계를 자기 항문 속에 넣고 다시 2년을 버틴 후 미국에 귀환해 친구의 아들 부치에게 시계를 전해 준다
정말 엽기 그 자체다
이런 시계였으니 부치로서는 도저히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버지는, 아들이 목숨을 걸고 그 시계를 찾으러 가길 바랬을까?
부치가 운이 좋아 무사히 시계도 찾고 탈출도 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아마 총맞아 죽기 십상일 것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이 되면, 항문에 시계 숨기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버린다
그래서 평화의 시대가 좋다
인간성이 상실되는 시대, 폭력이 일상화된 시대,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 이를테면 샤워나 햄버거, 수면 같은 평범한 것들이 매우 사치스러운 것으로 변하는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게 너무나 감사하다
갑자기 북핵 걱정된다
사무엘 L 잭슨의 연기는 놀랍다
존 트라볼타는 그냥 곁가지인 것 같고 잭슨이야 말로 진짜 주인공 같다
사람을 죽이면서도 성경 구절을 읊는 살인자
그는 자신이 총알 세례 속에서 살아남은 까닭이 바로 신의 은총이라고 믿는다
살인자들도 기도를 한다더니, 정말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내려지나 보다
직업적으로 살인을 하는 킬러들은 인간에 대한 외경심이나 동정심 같은 게 없지 않을까?
보통 살인을 저지르면 꿈에 그 영혼이 나타나 괴롭힌다고 하던데 그런 것들도 다 자신의 양심에서 만들어낸 허상일 뿐인가 보다
어쨌든 잭슨은 총알 세례가 퍼붓는 곳에서 자기가 살아난 것을 신의 뜻이라 생각하고 손을 씻기로 결심한다
바로 그 날 음식점에서 초보 강도를 만났으나 개과천선 기념으로 살려 주고 돈도 줘서 보낸다
이 강도들은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이다
강도가 잭슨을 위협하자, 던진 말이 예술이다
"기죽이고 싶진 않지만, 나 이런 거 전문인 사람이야"
완전히 잘못 걸린 거다
평소 같았으면 가볍게 쏴 죽이고 끝냈을텐데, 개관천선 하기로 결심한 첫날이므로 그는 점잖게 훈계한 후 보낸다
아마도 그 강도 커플은 새 인생을 살 것 같다
같이 있었던 존 트라볼타, 즉 빈센트는 그 길로 나가 보스의 명령을 받고 부치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총맞아 죽는다
역시 신의 섭리를 우습게 본 댓가인가?
아마도 잭슨은 손을 씻고 건전하게 살아갈 것 같다
한 가지 의문은, 동료를 실수로 죽인 후 그 시체 처리에 골몰하던 장면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 죽인 후 유유히 현장을 떠나던데, 왜 갑자기 그 동료 시체 치우느라 애를 먹는지 모르겠다
경찰에게 발각되면 안 된다는 게 이유인데, 그렇게 따지면 영화 속에서 계속 죽였던 나머지 시체들은 어쩌란 말인지?
영화에서는 사람 죽이고 장소 뜨면 끝이지만, 실은 사후 처리가 더 문제인 것 같다
핏자국 지우고 시체 유기하고 차는 폐차시키느라 둘이 무지하게 고생한다
역시 현실은 영화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전체적으로 구조가 독특한 인상적인 영화였다
전형적이지 않아서 좋다
좀 길긴 했지만...
그리고 브루스 윌리스가 부치 역으로 나왔는데 긴가 민가 했더니 역시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