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과 기독교의 논쟁 우리시대의 신학총서 1
리처드 칼슨 지음, 우종학 옮김 / 살림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어쩌면 내 신앙 역사의 한 획을 그을지로 모르는, 너무나 중요한 책과의 만남이었다
너무 많은 부분을 옮겨 적어 거의 1/3은 베낀 것 같다
그 동안 내가 고민하던 문제를 나 외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나보다 지적으로 훨씬 더 현명한 사람들이 현명한 답을 이끌어 냈다는 사실이 정말 고맙다

 

신앙과 과학, 혹은 그리스도인과 진화론은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나는 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혹은 교회에서 가르치는대로 믿지 않고 의심하는 도마가 되야 하는지 괴로웠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는데, 나는 항상 성경 말씀과 그것을 해석하는 목사나 신부님의 강론에 의문을 품었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교회에서 과학을 빗대어 성경을 해석하는 일이 매우 불합리하다고 여겨졌다
특히 성경은 과학이다, 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강론이 정말 못마땅했다
왜 성경을 과학의 테두리 안에 가두는가?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폰드의 말에 따르면, 과학은 새로운 발견에 의해 계속 변하는 속성을 지닌다
그런데 그 변화무쌍한 과학에 하나님의 말씀을 끼워 맞춘다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이 어떻게 권위를 가질 수 있겠는가?
과거에도 우리는 성경을 근거로 천동설을 주장했고, 지금도 성경을 근거로 지동설을 지지한다
심지어 성경에 빅뱅 이론이 나와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먼 훗날 다시 지각변동이 일어나 지동설도, 빅뱅 이론도 모두 틀렸다는 게 입증된다면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과연 성경학자들은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성경은 과학이 아닐 뿐더러, 과학이라는 작은 테두리 안에 갖힐 수 없는 훨씬 더 권위있고 훨씬 더 포괄적인 경전이다
성경에서 과학을 찾는 사람이야 말로, 성경의 의미를 인간의 행위로 시키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전부 읽지는 않았지만, 내가 동의하는 입장은 진 폰드의 상호독립이다
이 책에서는 네 가지 입장이 나온다
첫째는 성경의 무오설을 믿는 과학자들이고, 두번째는 진 폰드처럼 성경과 과학이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에 겹치는 일이 없다는 상호독립 쪽이며, 세번째는 요즘 유행하는 지적 설계론이고, 마지막 네 번째는 성경과 과학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상보론이다
가장 문제시 되는 이론이 바로 지적 설계론이 아닌가 싶다
아직 그 부분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도킨스 등의 기존 진화론자들의 비판을 들어보면, 지적 설계론이야 말로 과학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고, 가장 교묘하게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는 이론이라고 들었다
기존의 성경 무오설과 다를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포장만 달리해서 마치 성경과 과학을 조화시키는 가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양쪽의 비판을 제대로 읽어 본 후 판단해야 할 것 같다

 

폰드는 상호독립론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를 자주 인용한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나 역시 몇 번 들어 본 적이 있는 얘기였는데, 재밌는 건 왜 도킨즈가 굴드를 비판했는지 실감났다는 점이다
굴드는 아마도 신앙과 과학을 별개의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종교적 갈등을 해결한 것 같다
그런데 도킨스는 아예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진화론자로서 굴드의 어정쩡한 태도를 비난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도킨스의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이기적인 유전자" 는 감탄하면서 재밌게 읽었는데, 그 다음에 읽은 도킨스의 에세이 모음집인 "악마의 사도들"은 정말 가슴이 떨려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왜냐면 도킨스는 그 책에서, 진화론을 믿는다면 신의 존재를 부정해야 한다고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이란 자연선택에 의해서 생물이 진화해 왔다고 믿는 이론이다
하나님에 의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인간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자연선택에 의해 생식에 유리한 방법으로 무의미하게 진화되어 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진화론과 신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성경 무오설을 주장하는 패더슨이나, 지적 설계자론자도 다른 모든 과학은 받아들여도 절대로 진화론만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니 진화론이 절대적인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내가, 어떻게 갈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호독립론이나 상호보완론은 이런 나의 갈등을 해소시켜 줬다
과학과 신앙은 서로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즉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부딪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신이 존재 유무에 대해, 폰드는 과학은 과학의 영역에서만 진리를 밝히면 된다는 입장이다
진화론을 소급하여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낸 도킨스에 대하여, 자기 영역을 넘어선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지적설계론자들은 폰드의 이런 주장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사실 폰드의 말처럼, 진화론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참신앙인인지 의심하는 비난을 많이 듣는다
마치 진화론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로 진짜 신앙이 가려진다는 식이다
폰드는 다윈 역시 기독교인이라고 믿지만, 지적설계론자는 다윈의 이론에 따르면 절대로 다윈은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옳은가?
하나님만이 심판하실 일이다
도킨스와 같은 과격한 진화론자들이나, 진화론을 아예 부정하는 지적설계자들은 둘 다 같은 논리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또 인정한다
all or nighting인 셈이다
그러니 상호독립이나 상호보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도 저도 아닌 회피론자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나 역시 아직 확실한 신념은 없다
다만 나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진화론과 신앙의 조화 문제로 고민하고 있고, 결국은 둘 다 옳은 진리임이 명백하게 밝혀지리라 믿고 있을 따름이다
적어도 나는 외롭지는 않다

 

제일 좋았던 문장은, 그리스도인의 주장이 절대로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 교리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것 밖에 없다고 믿는다
사실 기독교야 말로 얼마나 배타적이고 불관용적인 종교인가?
카톨릭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선언했지만,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은 여전히 예수로 인한 구원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을 것이다
더구나 한국 교회야 그 보수성은 더 이상 논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고 각자의 눈으로, 각자 속해있는 사회의 전통을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자기가 속한 시대와 전통의 눈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성공회 교리는 그래서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타 종교와의 공존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기독교 내에서만도 얼마나 많은 교리가 존재하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타 교파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고, 또 얼마나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는가?
그러고 보면 이단 논쟁이야 말로 가장 소모적이고 가장 쓸데없으며 가장 권위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누가 타인의 신앙을 이단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그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성경을 권위로 든다 해도 그 해석은 읽는 이의 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왜 간과하는가?
결국 성경 무오류설이라는 것도 논리적으로 안 맞는 게, 문자의 해석은 읽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일부 문장을 가지고, 미래를 예견했다는 식으로 설교하는 교회의 행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다니엘서나 요한 계시록 등이 섣부른 목사들에 의해 자주 인용되는데, 성경은 과학 교과서가 아님은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예언서도 아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성경 전체를 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폰드의 말대로 자기가 원하는 구절을 성경에서 찾기란 얼마나 쉬운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의 권위로써 성경을 인용하는 사람들은, 과연 자기가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있는지 재차 생각해야 하고 무엇보다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쉽고 재밌다
아마도 저자들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과학자들이고 대부분의 과학적 사실들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이 매우 합리적으로 들린다
성경과 과학은 서로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갈등점이 없다는 쪽으로 일단 내 입장을 정리했다
좀 더 많은 책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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