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하나님이 일상사에 관여하셔서 감기를 고치고 주차장에 빈자리를 준비해 주시면서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의 재앙은 미리 막지 않고 방치하셨다면 그건 윤리적으로 모순이다.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 참사로 미루어보건대 하나님은 세계적인 대사건들의 진행 과정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또는 절대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계신다)고 추정하는 게 타당하다."
 이런 극단적인 겨론에까지는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게 사실이다. (p123)

 예수님의 기도를 조사하면서 기도에 관한 핵심적인 의문 하나가 풀렸다. "기도가 정말 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하는 문제다. 마음속으로 살금살금 회의가 기어들고, '기도라는 게 혹시 거룩한 형식을 빌어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늘어놓는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때마다, 예수님조차 기도해야 할 필요를 강력히 느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이 누구신가?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만드시고 온 우주를 움직이시는 분의 독생자가 아닌가? 기도가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에 대해 주님은 한 점 의심이 없었다. 사람들을 돌보는 데 투자하는 것과 똑같은 양의 시간을 기도에 쏟아부으셨다.
     외과의사로 일하는 한 친구는 기도에 관해서 조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신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기도에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세 가지 전제에서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셋 다 인정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명제들이 아니야.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이지." 옳은 말이다. 나로서는 믿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이 기도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기도의 중요성을 폄하한다면 결국 예수님이 착각하셨다고 결론짓는 셈이다. (pp133-4)

 베드로가 실족하는 과정을 보면 욥의 기사가 희마하게 겹치며 떠오른다. 하나님은 욥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도록 허락해달라는 사탄의 청을 들어주셨다. 적극적으로 뜯어말리는 대신 시험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자는 난해한 결정을 내리신 것이다. 욥처럼 시몬도(누구나 마찬가지다) 시험을 이겨내든 실족하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여기에 한 가지 요소를 덧붙이셨다. 베드로를 위해 뜨겁게 기도해주셨던 것이다. 욥과 유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인류가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사탄이 악한 일을 도모할 때, 잔혹한 군주가 선량한 백성들을 압제할 때, 배신자가 독생자를 원수에게 넘겨줄 때 어째서 하나님은 '두 손 놓고 앉아만' 계시는가 하는 문제다. (pp141-2)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저버리는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나는 얼른 예수님의 약속에 매달린다. 베드로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나를 위해서 기도하신다는 약속 말이다. 주님은 시험 자체를 없애달라든지 결코 실족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신다. 비록 시험을 당하고 실패를 거듭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하날나라의 유일한 일꾼이 되고 주님을 좀 더 닮아가길 간청하실 따름이다. (p152)

 욥의 거친 언사에 비하면 두 거장이 주님과 벌였던 논쟁은 유순한 편에 속한다. 욥의 세 친구들은 상투적이고 거룩한 표현을 써가며 이야기했다. 대표기도 시간에 자주 듣는 부류의 젊잖은 말투를 사용했다. 다들 하나님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불운한 친구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갖은 애를 다 썼으며,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합리화했다. 반면에 욥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잔인한 하나님의 희생자가 되길 통렬하게 거부했다. 깊은 상처에서 나오는 생각을 조금도 가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토해냈다. 기도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마땅찮게 쳐다보는 친구들에게 했던 말처럼,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욥21:15)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욥기 끝부분을 읽어보면 참으로 역설적인 반전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자신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욥의 접근 방식을 단호하게 두둔하시면서 친구들의 번드르르한 말치레를 신랄하게 나무라셨다. (pp164-5)

 예언서 연구에 정통한 유대교 신학자 헤셸은 예언자들의 반항적인 기도들을 이렇게 평가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고통스러운 길을 '사랑의 선물'로 합리화하며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를 버리는 게 올바른 기도 방식이다. 고대 예언자들은 주님의 가혹한 심판에 대해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대신 '뜻을 바꿔주소서'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설령 상대가 주님이라 할지라도 결코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p166)

 한번은 집회에 참석했다가 호스피스 사역을 하는 목회자의 간증을 들었다. 어느 날 정서적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상담을 요청했다. 암세포가 이미 온몸으로 번진 상태였는데, 전날 밤에 고래고래 소리치며 하나님께 욕설을 퍼부었다며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져버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당신을 저주하고 욕한 인간을 용서하실 리가 있겠는가?
 목사가 환자에게 물었다. "사랑의 반대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미움이겠죠." 환자가 대답했다.
 대단히 지혜로운 목사가 대답했다. "아니요.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입니다. 형제님은 하나님께 무관심하지 않았어요. 도리어 어떤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밤새도록 정직하게 말씀드렸던 겁니다. 어젯밤에 한 일을 기독교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바로 '기도'입니다 형제님은 밤을 꼬박 새워가며 기도를 드린 겁니다." (p174)

 하나님 체험은 미리 계획하거나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설파했던 랍비가 있었다. "은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거의 우연에 가까운 시간이다."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는 게 그저 우발적인 일이라면, 꾸준히 영적인 훈련을 거듭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랍비가 대꾸했다. "우발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지." (p186)

 한 일본 그리스도인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을 처음 여행할 당시, 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기도가 너무 직선적이어서 마치 햄버거 가게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쇠고기 햄버거로 주시고요, 고기는 다 익혀주세요. 피클하고 상추는 많이 넣어주시고요. 케첩도 하나 더 주셔야 해요. 아셨죠?" 거기에 대면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은 외국 식당에 들어가 앉기는 했지만 메뉴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쪽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손짓발짓에 사전까지 동원해서 기껏 '주방장 추천 메뉴'를 시킬 뿐이라는 설명이다. 기도에 임하는 동양인의 자세에는 긴장감과 모험심뿐만 아니라 더 큰 신뢰가 필요하다는 게 그 일본인의 판단이었다. 기도하는 쪽에서는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결정권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도로 뭔가를 요청하는 방식에 대해 동양과 서양의 그리스도인은 서로에게서 배울 게 많다. (pp187-8)

기도의 단계(pp186-9) - (상승 발달 개념이 아닌 단계)
첫째는 어린아이처럼 필요한 것을 요청하는 단계다.
두 번째는 일종의 묵상 단계다.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동행하는 단계라고 부른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는 기도의 세 번째 단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CS 루이스는 말한다. "피조물에게 위임하실 수 있는 일이라면 전혀 손대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직접 하신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완벽하게 해내실 수 있는 일을 자녀들이 천천히, 그것도 서투르게 처리하도록 맡기신다. 소흘히 다루거나 실패할 공산이 높지만 그것도 받아들이셨다. 인간으로서는 죽었다 깨나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말하자면 유한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전지전능한 성품과 동거할 수 있게 되었다. 순간 순간 '거룩한 포기'가 개입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루이스는 또 다른 글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에게 철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위임하셨다. 피조물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스스로 행하지 않으신다. 개인적으로는 주님이 베푸는 데 익숙한 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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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론자에게 기도란 그저 허상이요 시간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만큼 소중한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인 나로서는 당연히 후자 쪽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기도에 대해 그토록 확신이 없는 것일까? 영국의 목회자 마틴 로이스 존스는 기도를 둘러싼 혼란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일 중에, 또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는 부분 가운데 이른바 기도만큼 그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허다한 문제를 일으키는 일도 없다." (p20)

 전문가가 아니라 순례자의 마음가짐으로 이 책을 썼다. 다른 이들이 의문스러워하는 점들이라면 나 역시 궁금하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가? 주님이 나 같은 존재에게 마음을 쓰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도 응답에 일관성이 없고 변덕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암에 걸렸을 때 주변에 중보해주는 친구가 많으면 기도를 받지 못하는 환자보다 빨리 나을까? 하나님이 때로는 가까이, 때로는 멀리 떨어져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도는 하나님 마음을 바꾸는가, 아니면 나를 변화시키는가?
 나 역시 이 책을 쓰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기도라는 주제와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다. 죄책감과 열등감 때문이었다. 기도 일지를 쓰지도 않고, 영적인 지도자를 만나러 다니지도 않으며, 정기적으로 기도 모임에 나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기도 이야기를 하자면 스스로 의심의 안경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고백해야 했다. 응답받은 기도에 기뻐하기보다 응답받지 못한 기도에 더 집착하는 게 내 실상이다. 간단히 말해서 기도에 관한 책을 쓸 만한 자질이라곤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진심으로 알고 싶어한다는 것'뿐이다. (pp20-1)

 물방울이 강물을 이루는 여정을 보며, 기도에 대해 오랫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여태까지는 하류에서 시작해서 개인적인 관심사를 상류에 계신 하나님께로 올려보내려고 했었다. 주님이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는 것처럼 자신의 상황을 알려드리기에 급급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도록 몰아붙이려는 듯 강청하며 매달렸다. 그럴 게 아니다. 상류에서 시작해 물길을 탔어야 했다. (pp33-4)

 시카고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중에, 젊은 여성이 손을 들고 일어나서 질문을 했다. 꼬박꼬박 수업에 참석하면서도 입 한 번 뻥끗하지 않던 수줍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함께 공부하던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귀를 쫑긋 세웠다.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놀라웠기 때문이다. "늘 진심으로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마지못해 앉아 있기도 했어요. 무슨 의식에 참석하는 것처럼요. 주문을 외듯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기도도 들으실까요? 이건 아니다 싶은데도 계속 그러고 있어야 할까요?"
 한동안 침묵이 흐르도록 내버려둔 다음에 말했습니다. "보세요. 방 안이 조용해졌지요? 자매님이 얼마나 정직한 사람인지 이미 다들 알고 있습니다. 연약함을 드러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매님은 여기 있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교묘한 말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장사꾼과는 전혀 다른 진지함 같은 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뜻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기도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될 거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이의 진심을 원하십니다." (pp66-7)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8)는 말씀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기도가 부질없는 짓이란 얘기가 아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주님이 돌봐주신다는 걸 확인하려고 안달복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는 진즉부터 자녀들을 돌보고 계시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깊이 관여하신다. 기도는 하나님께 새로운 정보를 드리는 의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상황을 새카맣게 모르고 계신다는 듯 요구 사항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주님은 제게 이것이 필요하다는 걸 아십니다"라고 고백하는 편이 타당하다. 기도에 관한 의문점들에 대해 팀 스태포드가 찾아낸 일종의 해답도 그와 비슷하다.

 기도에서 가장 인격적인 부분을 이해하는 열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르고 계신 사실을 가르쳐드리려고 기도하는 게 아니다. 잊고 계신 걸 상기시켜 드리려는 것도 아니다. 자녀들이 구하는 일들을 하나님은 벌써부터 보살펴오셨다. 자녀들이 더불어 문제를 해결하자고 찾아오길 오랫동안 기다리렸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 어려움을 끼치는 인물이나 곤란한 상황들을 주님과 나란히 서서 바라보게 된다. 문제나 사람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찬양을 드릴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가장 절친하고 오래된 벗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 지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하나님과 대화하라. 사랑 안에서 교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pp99-100)

 전에는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8)고 하신 예수님 말씀 때문에 늘 헷갈리곤 했다. 그렇다면 뭐 하러 기도를 한단 말인가? 친구로서 친밀감을 나누고 싶어하시는 마음을 알고 나서 이 의문이 풀렸다. 서로를 깊이 알면 알수록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정보의 양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의사를 처음 만날 때는 병력을 시시콜콜 알려주는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반면에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주치의라면 당장 어디가 아픈지만 이야기하면 그만이다. 교우관계도 그렇다. 흉허물 없이 지내는 가까운 친구끼리는 낯빛만 봐도 서로의 상태를 꿰고 있는 까닭에 거추장스러운 절차를 생략한 채 곧바로 '영혼의 문제'를 꺼낼 수 있는 것이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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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뮬러 평생 기도 수칙 6가지(p22-8)기도원리1(p45)
1. 예수님을 의지하라
2.죄를 버려라
3. 믿어라
4. 인내로 기도하라
5.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라
6. 할 수 있는 한, 새벽에 기도하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기도하려는 6가지 자세(pp26-7)
1. 자신의 뜻을 포기하라
2. 느낌을 신뢰하지 말라
3. 성령과 말씀을 바라보라
4. 환경을 고려하라
5. 하나님의 뜻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라
6. 결정했을 때에 마음이 평온한지 점검하라

그리스도인 사업가를 위한 권면 (p69)
1. 배우자와 매일 사업상의 어려움을 놓고 기도하라
2. 기도응답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믿어라
3. 영업이익의 확대를 위해 일체의 부정직한 행위와 간교한 수법을 버려라
4. 수입이 많든 적든, 일주일 단위로 이윤 가운데 일정 금액을 주님의 사업을 위해 떼어 놓으라

기도원리2 (p85)
1. 절망의 순간을 기도의 기회로 승화시켜라
2. 영혼 사랑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
3. 진정한 하나님의 일은 돈이 모자라서 못하는 법이 없다
4. 당신이 반드시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는 5가지 조건
1) 당신이 구원받기 위해 주 예수를 믿는다면(행16:31)
2) 당신이 정직히 행한다면(시84:11)
3) 당신이 마음에 죄악을 푸미 않는다면(시66:18)
4) 당신이 참고 기다린다면(시37:7)
5) 당신이 하나님을 빋는다면(히11:6)

믿음을 강화하는 4가지 방법(p131)
1.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읽고 묵상한다
2. 올바른 심령과 선한 양심을 유지한다
3. 신앙이 연단받을 때에 주눅 들거나 겁내지 않는다

4. 시련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온전히 맡기라

기도원리3 (p139)
1. 사소한 문제, 시급한 문제라도 주저말고 기도하라
2. 시련의 때는 인내의 기도가 열매를 맺는 때이다
3. 사람의 약속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4.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4가지 방도

기도원리4 (p161)
1. 향방 없이 기도하지 말고 구체적인 목표를 놓고 기도하라
2. 목표가 분명한 기도를 한 다음에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행동하라
3. 강청하는 기도는 기필코 응답된다
4. 난관은 작정기도로 돌파하라

신약과 구약을 규칙적으로 교체해서 읽어야 하는 이유(p179)
1. 구약과 신약의 연관관계를 뚜렷이 알 수 있기 때문에
2. 다양한 영적 자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3. 말씀을 정연하게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4. 교리적 오류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5.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가 성경 전체를 통해 르르고 있기 때문에

기도원리5 (p185)
1. 인생 대사(입교, 입학, 취업, 결혼 등)을 앞두고 반드시 기도하라
2. 기도하면서 일하라
3. 기도와 말씀이 병행하는 삶을 살라
4. 깨끗한 돈을 만지면서 기도하라

금전문제에 대한 뮬러의 4가지 원칙 (p193)
1. 고정된 사례금은 받지 않는다
2.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필요를 아뢴다
3.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모든 것들을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님 나라 사업을 위해 사용한다
4. 아무것도 꾸지 않고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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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나의 주제 서술 방식이 편파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은 옳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 충분히 연구했기 때문에 확고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편견이 있느냐 없는냐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편견이 가장 유익한 편견인가 하는 점이다. (p22)

 사랑과 우정 같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돈으로 귀착된다. 우리가 돈이라는 단위로 계량하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평가하는 어느 물건과 다른 물건의 상대적인 가치이다. 각각의 물건에 대해서 각각 다른 화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화폐 가치가 사회적인 중요성을 계량화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p158)

CBS <60분>의 리포터인 존 스토셀은 몇 년 전에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몇 가지 기본적인 경제적 진실을 깨달았다. 특집 프로그램 첫 회에서 그는 "우리는 스스로를 두려움에 몰아넣어 죽일 작정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이 질문이 의미하는 바는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였다. 그의 중심적인 주장은 덜 위협적인 문제에 대해 지나친 걱정을 하고 우리가 가진 부의 일정 부분을 그 문제에 쓰게 되면, 더 급박한 다른 문제에 배당할 돈이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언론은 어떤 문제에 대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제공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책임을 떠안게 된다. 언론이 자신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문제들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는 행동은 글자 그대로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공공 정책을 초래할 수 있다. 이것은 경제학자들이 오래전부터 해온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경제학자들은 '희소성'과 '한계비용'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기 때문이다. (pp161-2)

 사람들이 일을 하되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크게 달라진다. 그거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당신 집 마당에 구덩이를 하나 파준 대가로 이웃에게 2달러를 주든 2,000달러를 주든, 당신이 보게 되는 것은 똑같은 구덩이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돈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 그리고 그 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과 용역을 효율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면 할수록 모든 사람이 손에 넣는 부의 양은 늘어난다. (p164)

 부자가 부를 모을 수 있는 것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부자가 제공하는 가치 있는 상품과 용역을 이용하고 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시스템이 잘 굴러가고 있고, 창조적인 소수의 혁신적인 아이디어 덕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p168)

 그러나 사람들은 상품과 용역의 교환에 '공정함'이라는 요소를 개입시키면 우리 사회의 부가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가리라는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평등에 치우치다 보면, 의도와는 달리 모두를 똑같이 비참하게 만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의 부를 극대화하려는 유인이 사라지고, 경제는 곤두박질친다. (p169)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특단의 조치'를 시행하라는 압박은 점점 심해질 것이다. 최근에 제안된 환경 정책들이 안고 있는 위험성은 편익을 뛰어넘고 있다. 정치인들이 '특단의 조치'를 하겠다고 하면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조치를 취하는 데 드는 비요은 얼마나 될까?" " 그 조치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지나치게 구속적이고 위험한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다. (pp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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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열살인가 열 한살 때였다. 나는 아버지께 우리가 학교에서 읽었던 시에 대해서 물었다. 시의 한 줄이 이렇게 되어 있었다.
 "얼굴에 아직 성적 욕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젊은이."
 나는 너무 수줍어서 선생님께 그것이 무슨 뜻인가를 묻지 못했다.
 ----
 그래서 집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아버지 옆에 앉아 나는 불현듯 물어 보았다.
 "아빠, 성적 욕망이란 게 뭐예요?"
 아버지는 언제나 질문에 답하실 때처럼 나를 바라보시더니 놀랍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내 머리 위 짐칸에 놓인 여행용 가방을 들더니 바닥에 내려놓았다.
 "코리야, 이 짐을 들고 기차에서 내리겠니?"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일어나서 그것을 집어들고 비틀거렸다. 그 가방 안에는 그날 아침에 산 시계들과 부속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너무 무거워요."
 내가 말했다.
 "그래."
 "그런 짐을 어린 딸에게 들고 가게 한다면 참 못된 아버지가 되겠지. 지식도 마찬가지란다. 코리야. 어떤 지식은 어린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거야. 네가 더 나이를 먹고 더 크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게 되지. 지금은 내가 들고 가도록 하고 너는 나만 의지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만족했다. 단순한 만족 이상의 평안을 얻었다. 그 대답은 그것과 다른 모든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되었다. (pp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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