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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여행이다.
 때로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린다. 너무나 바쁘게 지내고, 눈앞의 관심사에 지나치게 몰두한다. 그래서 한 발 물러나 전체를 바라보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삶은 그저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일 뿐이다. 원하는 것을 전부 가졌지만 만족을 모르며 늘 공허한 사람들도 있다.
 삶이란 염주알처럼 한 줄에 꿰여 있는 서로 무관한 사건들로,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환경에 흔들려 급류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올가미에 걸려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자신은 어디에서 왔으며 왜 이곳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삶이 이렇게 되도록 계획하지 않으셨다. 그 분이 계획하신 우리 삶은 기쁨과 목적으로 가득하다. 가장 평범한 사건들도 그분이 세우신 계획의 일부이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우리를 인도하시며 미래의 소망을 주기 원하신다. 무엇보다도 우리 삶의 여정에서 우리와 함께하기 원하신다. (pp13-4)

 때로 사람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강요하느냐고 묻는다.
 "너무 편협하지 않나요?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믿지 않습니까? 종교는 다 똑같지 않나요?"
 나는 이들에게 세상의 종교들이 실제로 얼마나 다른지 설명한다. 이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어떤 종교는 유일신을 믿는다. 어떤 종교는 수많은 신을 믿는다. 어떤 종교는 신이 우리를 돌본다고 믿는다. 어떤 종교는 신이 인간에게 무관심하다고 주장한다. 어떤 종교는 죽음 이후의 삶을 믿는다. 어떤 종교는 믿지 않는다. 어떤 종교는 신이 시간을 초월하며 우주의 주권적 통치자라고 믿는다. 어떤 종교는 인간이 만든 우상이나 동물이나 별을 믿는다. 어떤 종교는 신이 인자하고 사랑스럽다고 믿는다. 어떤 종교는 신이 거칠고 심판하길 좋아한다고 본다. (pp24-5)

 내가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나에 관해 뭔가 알 수 있을 것이다.(당신은 최소한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나에 관해 훨씬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으려면 나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눠야 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분은 정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p27)

 우리가 정교한 동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교한 동물처럼 행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이 영혼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동물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우리를 특별한 인간이 되게 하며, 모든 인간의 생명에 존엄과 가치를 부여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8:5)" 인간의 생명이 결코 멸시를 받거나 학대를 받거나 무자비하게 파괴되어서는 안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어리든 많든 간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p38)

 하나님이 주신 일곱가지 선물
1. 우리 삶을 그리스도께 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선물은 새로운 관계이다. 그분은 이제 사랑이시며 하늘에 계신 당신의 아버지이며, 당신은 이제 그분의 자녀, 영적으로 그분의 가족으로 다시 태어난 자녀이다.
2. 두 번째 선물은 새로운 시민권이다.
3. 세 번째 선물은 새로운 가족, 하나님의 가족이다. 성경은 이러한 영적 가족을 '교회'라고 부른다.
4. 네 번째 선물은 새로운 목적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에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여 하심이니라"(엡2:10)
5. 다섯 번째 선물은 새로운 능력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목적을 주셨다. 하지만 새로운 능력이 없이는 결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6. 여섯 번째 선물은 새로운 운명이다. '회심'은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올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운명을 주신다. 영생은 선물이다. 많은 사람들이(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것을 오해한다. 이들은 아직도 자신이 선행을 통해 구원을 따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자신의 힘으로 천국에 갈 자격을 얻을 만큼 선할 수 없다.
7. 마지막 선물은 새로운 여정, 즉 그분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때까지 따라갈 전혀 새로운 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요구하시는 게 아니다. 그리스도인이기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pp72-81)

 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의심할까? 왜 우리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가?
 첫째, 여전히 죄를 짓고 있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거절하실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냉정을 잃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어떻게 여전히 그리스도인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면서 이런저런 짓들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가 죄를 지을 대라도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시145:8)고 말한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감정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된 겸손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편지했다. "교만한 사람만이 천국에 갈 만큼 선하다고 말할 거예요. 교만은 죄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천국에 갈지 안 갈지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겁니다."
 한 가지 면에서 그는 옳다. 교만은 죄이며, 교만한 그리스도인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누구이거나 얼마나 선한가 때문이 아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pp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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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그녀의 손이 가슴의 따뜻함을 가지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큰 풍랑이 일고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내 앞에 놓인 푸른 하늘은, 폭풍이 검은 구름을 쫓아내고 있는 지금처럼 아름답게 보인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당신은 왜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건가요?"
 그녀는 이 결정적인 순간은 좀더 지연시키려는 듯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왜냐구요?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어째서 태어났는지 물어보십시오. 꽃에게 왜 피었느냐고 물어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대답이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여기 있는, 당신이 좋아하는 이 책이 대신하여 말해 줄 것입니다.

 가장 선한 것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랑 속에는 유용성이나 무용성, 이익이나 손해, 얻음이나 상실, 명예나 불명예, 칭찬이나 비난, 그밖에 그런 종류의 모든 것들을 고려해 넣어서는 안 된다. 가장 고귀하고, 가장 선한 것은 다만 그 고귀함과 선함 때문에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이에 따라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그 삶을 규제할 수 있다. 외면적이라고 함은, 모든 피조물에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있어 영원한 선은 다른 것보다 더 반짝인다. 그리하여 영원한 선이 가장 빛난고 반짝이고 활동하고 알려지고 또한 사랑받는 것은, 이것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용이 가장 적은 것은 가장 악한 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조물을 다루고 이와 사귐에 있어 이러한 구별을 알고 있으면 가장 선한 피조물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될 것이니, 그와 사귀고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pp149-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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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 2008-07-27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앞에 놓인 푸른 하늘은(이), 폭풍이 검은 구름을 쫓아내고 있는 지금처럼 아름답게 보인 적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왜냐구(고)요? == 괄호 안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용절 중 밑에서 세 번째 줄의 '가장 악한 선'은 혹시 '가장 악한 것'의 오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 자신도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들지 않았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지고의 권위를 갖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신의 소유물인 것이다. 문제를 이렇게 보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슨 행복이 되며 무슨 위안이 되는가?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들은 모든 것을 자기들 멋대로 하고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것, 눈앞에 보이는 일 외에는 일체 생각하지 않는 것, 계속적인 확인 혹은 계속적인 기도, 자신의 행동을 타인의 의지에 지속적으로 조회하는 따위를 번잡스럽게 여겨 생략하는 것 -- 이런 것을 훌륭한 행위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들도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독립이란 것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 --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상태이며 -- 잠시 동안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안전하게 우리를 끝까지 이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p289-90) 글 중의 인용문인데 사실 유무는 모릅니다.


무스타파 몬드는 책을 덮고 의자에 기댔다.
 "하늘과 땅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 중에서 이들 철학자들이 꿈도 꾸지 못한 한 가지가 있는데, 그건 이것이야." 그가 손을 내저었다.
 "바로 우리들, 즉 현대 세계야. '앞길이 창창한 젊은 시절에만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 신들로부터의 독립은 최후까지 인간을 안전하게 인도하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있었지? 그런데 우리는 지금 죽을 때까지 청춘과 번영을 잃지 않게 되었단 말일세. 그 결과가 무엇이냐고? 분명 우리는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된 걸세. '종교적 감정이 모든 손실을 보상해 줄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네만 우리에게 보상할 손실이란 것이 없는 형편인 걸. 종교적 감정은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았어. 젊음의 욕망이 쇠퇴하지 않는 마당에 왜 구태여 그것의 대용품을 찾아나서겠는가? 최후까지 옛날의 모든 바보스러운 유희를 즐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기분전환의 대용품을 찾아나서겠나? 우리의 심신이 계속적으로 활동의 기쁨을 누리는 마당에 왜 휴식할 필요가 있겠나? 소마가 있는데 위안이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사회의 질서가 있는데 불변부동의 그 무엇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럼 총통께선 신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아마 하나쯤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네."
 "그러면 왜......."
 무스타파 몬드는 말을 막았다.
 "그런데 신은 인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걸세. 근세 이전의 시대에는 이들 책에 묘사된 존재로서 그 자신을 드러냈던 것야. 지금은......."
 "지금은 어떤 형태로 나타납니까?" 야만인이 물었다.
 "글쎄...... 그것은 무(無)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p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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