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하나님이 일상사에 관여하셔서 감기를 고치고 주차장에 빈자리를 준비해 주시면서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의 재앙은 미리 막지 않고 방치하셨다면 그건 윤리적으로 모순이다.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 참사로 미루어보건대 하나님은 세계적인 대사건들의 진행 과정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또는 절대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계신다)고 추정하는 게 타당하다."
 이런 극단적인 겨론에까지는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게 사실이다. (p123)

 예수님의 기도를 조사하면서 기도에 관한 핵심적인 의문 하나가 풀렸다. "기도가 정말 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하는 문제다. 마음속으로 살금살금 회의가 기어들고, '기도라는 게 혹시 거룩한 형식을 빌어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늘어놓는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때마다, 예수님조차 기도해야 할 필요를 강력히 느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이 누구신가?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만드시고 온 우주를 움직이시는 분의 독생자가 아닌가? 기도가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에 대해 주님은 한 점 의심이 없었다. 사람들을 돌보는 데 투자하는 것과 똑같은 양의 시간을 기도에 쏟아부으셨다.
     외과의사로 일하는 한 친구는 기도에 관해서 조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신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기도에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세 가지 전제에서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셋 다 인정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명제들이 아니야.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이지." 옳은 말이다. 나로서는 믿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이 기도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기도의 중요성을 폄하한다면 결국 예수님이 착각하셨다고 결론짓는 셈이다. (pp133-4)

 베드로가 실족하는 과정을 보면 욥의 기사가 희마하게 겹치며 떠오른다. 하나님은 욥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도록 허락해달라는 사탄의 청을 들어주셨다. 적극적으로 뜯어말리는 대신 시험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자는 난해한 결정을 내리신 것이다. 욥처럼 시몬도(누구나 마찬가지다) 시험을 이겨내든 실족하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여기에 한 가지 요소를 덧붙이셨다. 베드로를 위해 뜨겁게 기도해주셨던 것이다. 욥과 유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인류가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사탄이 악한 일을 도모할 때, 잔혹한 군주가 선량한 백성들을 압제할 때, 배신자가 독생자를 원수에게 넘겨줄 때 어째서 하나님은 '두 손 놓고 앉아만' 계시는가 하는 문제다. (pp141-2)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저버리는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나는 얼른 예수님의 약속에 매달린다. 베드로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나를 위해서 기도하신다는 약속 말이다. 주님은 시험 자체를 없애달라든지 결코 실족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신다. 비록 시험을 당하고 실패를 거듭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하날나라의 유일한 일꾼이 되고 주님을 좀 더 닮아가길 간청하실 따름이다. (p152)

 욥의 거친 언사에 비하면 두 거장이 주님과 벌였던 논쟁은 유순한 편에 속한다. 욥의 세 친구들은 상투적이고 거룩한 표현을 써가며 이야기했다. 대표기도 시간에 자주 듣는 부류의 젊잖은 말투를 사용했다. 다들 하나님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불운한 친구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갖은 애를 다 썼으며,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합리화했다. 반면에 욥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잔인한 하나님의 희생자가 되길 통렬하게 거부했다. 깊은 상처에서 나오는 생각을 조금도 가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토해냈다. 기도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마땅찮게 쳐다보는 친구들에게 했던 말처럼,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욥21:15)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욥기 끝부분을 읽어보면 참으로 역설적인 반전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자신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욥의 접근 방식을 단호하게 두둔하시면서 친구들의 번드르르한 말치레를 신랄하게 나무라셨다. (pp164-5)

 예언서 연구에 정통한 유대교 신학자 헤셸은 예언자들의 반항적인 기도들을 이렇게 평가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고통스러운 길을 '사랑의 선물'로 합리화하며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를 버리는 게 올바른 기도 방식이다. 고대 예언자들은 주님의 가혹한 심판에 대해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대신 '뜻을 바꿔주소서'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설령 상대가 주님이라 할지라도 결코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p166)

 한번은 집회에 참석했다가 호스피스 사역을 하는 목회자의 간증을 들었다. 어느 날 정서적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상담을 요청했다. 암세포가 이미 온몸으로 번진 상태였는데, 전날 밤에 고래고래 소리치며 하나님께 욕설을 퍼부었다며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져버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당신을 저주하고 욕한 인간을 용서하실 리가 있겠는가?
 목사가 환자에게 물었다. "사랑의 반대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미움이겠죠." 환자가 대답했다.
 대단히 지혜로운 목사가 대답했다. "아니요.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입니다. 형제님은 하나님께 무관심하지 않았어요. 도리어 어떤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밤새도록 정직하게 말씀드렸던 겁니다. 어젯밤에 한 일을 기독교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바로 '기도'입니다 형제님은 밤을 꼬박 새워가며 기도를 드린 겁니다." (p174)

 하나님 체험은 미리 계획하거나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설파했던 랍비가 있었다. "은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거의 우연에 가까운 시간이다."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는 게 그저 우발적인 일이라면, 꾸준히 영적인 훈련을 거듭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랍비가 대꾸했다. "우발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지." (p186)

 한 일본 그리스도인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을 처음 여행할 당시, 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기도가 너무 직선적이어서 마치 햄버거 가게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쇠고기 햄버거로 주시고요, 고기는 다 익혀주세요. 피클하고 상추는 많이 넣어주시고요. 케첩도 하나 더 주셔야 해요. 아셨죠?" 거기에 대면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은 외국 식당에 들어가 앉기는 했지만 메뉴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쪽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손짓발짓에 사전까지 동원해서 기껏 '주방장 추천 메뉴'를 시킬 뿐이라는 설명이다. 기도에 임하는 동양인의 자세에는 긴장감과 모험심뿐만 아니라 더 큰 신뢰가 필요하다는 게 그 일본인의 판단이었다. 기도하는 쪽에서는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결정권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도로 뭔가를 요청하는 방식에 대해 동양과 서양의 그리스도인은 서로에게서 배울 게 많다. (pp187-8)

기도의 단계(pp186-9) - (상승 발달 개념이 아닌 단계)
첫째는 어린아이처럼 필요한 것을 요청하는 단계다.
두 번째는 일종의 묵상 단계다.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동행하는 단계라고 부른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는 기도의 세 번째 단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CS 루이스는 말한다. "피조물에게 위임하실 수 있는 일이라면 전혀 손대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직접 하신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완벽하게 해내실 수 있는 일을 자녀들이 천천히, 그것도 서투르게 처리하도록 맡기신다. 소흘히 다루거나 실패할 공산이 높지만 그것도 받아들이셨다. 인간으로서는 죽었다 깨나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말하자면 유한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전지전능한 성품과 동거할 수 있게 되었다. 순간 순간 '거룩한 포기'가 개입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루이스는 또 다른 글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에게 철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위임하셨다. 피조물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스스로 행하지 않으신다. 개인적으로는 주님이 베푸는 데 익숙한 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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