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의 비극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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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을 읽었다.

이 작가의 사회파 미스터리는 처음 읽는다.

이전에 재밌게 읽어 사놓고 묵혀 두고 있는 책들이 많다.

희미한 기억만으로 작가의 이야기를 떠올리기에는 너무 시간이 지났다.

소멸되어 가는 마을을 주제로 미스터리를 풀었다는 대목에 끌렸다.

한국도 현재 점점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 도시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새로운 인구의 유입이 필요하지만 쉽지 않다.

마을의 활력은 젊은 사람들이 힘차게 움직일 때 가능한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떠난 마을은 시간이 지나면서 유령 마을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미노이시도 그런 마을 중 하나다.


마을 사람들이 떠났다고 그 집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에서 기획한 I턴 프로젝트는 다른 곳 사람들을 이 마을에 정착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당연히 기존의 집주인들과 계약을 하고, 어느 정도 살 수 있게 수리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마을과 도심과의 거리다.

마을 안에서 경제가 돌아갈 정도가 되면 좋지만 겨우 열 집 정도로는 무리다.

자생적인 시설이 부족한 마을에서 사고가 생기면 그 일을 처리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구급차를 불러도 오는데 40분 이상이 걸리니 왕복 1시간 30분이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이 마을에서 살려고 하는 신청자들이 있다.

소설은 이런 사람들의 이주와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장들이 하나의 사건을 담고 있다.

깨닫지 못하면 단순한 사고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미노이시에 새로운 주거지를 삼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바가 있다.

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나름 열심히 살지만 생각하지 못한 이웃과 충돌이 생긴다.

이때 이들이 연락하는 부서는 이 미노이시를 살리기 위한 소생과다.

소생과는 과장과 두 명의 공무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설에서 공무원 만간지는 만원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이웃 사이에 벌어지는 민원은 쉽게 누군가의 편을 들기도 어렵다.

공무원이 지켜야 할 중립성과 빠른 민원 해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섯 편의 단편을 읽다 보면 조금 밋밋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일상 미스터리 느낌인데 공무원이란 직책이 조금 답답하게 다가온다.

각각의 사건들은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양보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 이사 올 때 그들이 바란 것이 우선이다 보니 작은 충돌이 생긴다.

이런 민원들에 항상 고생하는 인물은 바로 만간지다.

소생과 과장은 항상 칼 퇴근하고, 신입은 아직 서툴기만 하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프로젝트를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만간지에게는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공무원의 기본자세에 충실하다고 해야 한다.

덕분에 그의 몸과 마음은 이 마을 사람들의 이해 충돌로 힘들고 괴롭다.


하나의 사건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마을을 떠난다.

이 프로젝트의 놀라운 점 하나는 떠날 때도 이사 비용을 준다는 것이다.

이주한 이들은 모두 이 마을에 정착해서 살기를 바란다.

소생과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다.

이 민원을 해결하기 달려가는 인물은 만간지와 신입이다.

늘 칼 퇴근하는 과장이 가는 경우는 손을 꼽을 정도다.

실제 가는 경우에도 과장은 민원 사항에서 떨어져 있다.

하지만 첫 번째 사건에서 과장이 보여준 날카로운 모습은 눈길을 끈다.

그리고 실패가 예정된 프로젝트의 몰락 과정을 각각의 사건으로 하나씩 보여준다.

이 소설의 진짜 재미는 마지막 장에서 드러나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정치와 행정의 괴리, 예산 부족, 몰락하는 소도시 등은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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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 NEON SIGN 7
청예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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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사인 시리즈 7권이다.

개인적으로 아직 낯선 시리즈다.

이 시리즈보다 ‘청예’라는 작가가 더 낯익다.

앤솔로지와 장편으로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면 읽지 않았지만 낯익은 제목들도 보인다.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적은 편이라 경장편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읽었던 이전 소설과 달리 오컬트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이야기를 확장하지 않고 간결하게 집중해서 풀어내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인간이 두 팔을 가지고 태어난 이유가 두 방향의 신과 손잡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두 방향의 신은 수호신과 악신이다.

신을 빼면 인간이 가진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으로 대체 가능하다.

이 소설에서 소고기를 먹지 않고 소신을 숭배하는 우교가 나온다.

처음에는 이원의 엄마와 오빠가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힌두교를 생각했다.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소고기 육수나 사골이 들어간 것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원의 가족은 이 신념을 잘 지키고 있다.

이런 이원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같은 동아리 친구 경우가 죽은 이후다.


이원은 약간의 허세 때문에 철학동아리에 가입했다.

이 동아리에서 철학을 재밌게 배우는데 잘생긴 경우가 그녀에게 고백을 한다.

그 고백이 있었던 밤 둘은 진짜 손만 잡고 모텔에서 밤을 보낸다.

아침에 헤어진 후 경우가 사고로 죽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불행한 사고라고 할 수 있지만 반복되면 아니다.

중반쯤에 또 다른 동아리원이 그녀에게 고백을 한 후 살해당한다.

그녀에게 고백한 남자 둘이 죽었다는 것은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문제다.

이 두 사건 사이에 새로운 신입 동아리원이 들어온다.

그 중 한 명이 설인데 왠지 모르게 이원의 관심을 끈다.


설도 이원처럼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함께 회식하던 밤 이원을 데리고 점집을 찾아간다.

이 점집에서 이원에게 수호신과 악신에 대해 말한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이야기가 의심을 가지면서 마음에 달아 붙는다.

이원은 설과 더 친해지고 싶지만 설은 그녀의 톡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 관심을 완전히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등장은 엄마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게 한다.

부산에 존재하는 십이지신을 모시던 열두 개의 종교 단체.

그 중에서 소를 모신 우교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 끼어 든 AI 우바리의 존재와 그의 대답, 더 복잡해진다.


본능적으로 악신을 몰아내고자 하는 이원.

하지만 더 꼬이는 상황과 설에 대해 들리는 의문들.

읽는 내내 서늘함보다 의문에 더 방점을 두게 된다.

뒤로 가면서 밝혀지는 몇 가지 사실은 앞의 의문에 대해 해소이자 또 다른 의문이다.

작가는 현재가 아닌 근미래의 이야기 속에 오컬트를 녹여내었다.

이원에게 일어나는 사건들, 갑자기 몸이 나빠진 오빠.

이 모든 사건의 해답은 과거에 있고, 그 답은 엄마와 설이 쥐고 있다.

마지막 장에 이르면 모든 것이 명확하게 풀리지 않고 열린 결말로 끝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이야기이지만 재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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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제빵소
윤자영 지음 / 북오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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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가 윤자영의 첫 힐링소설이다.

최근 장르소설가들의 힐링소설들이 많이 나온다.

힐링소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생긴 추세인 듯하다.

이 소설은 빵돌이인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부분이 많다.

단팥빵, 고로케 등은 지금도 기회가 되면 사서 먹는 빵들이다.

최근 빵들이 점점 비싸지고, 기본에 단맛을 더하는 것이 유행이다.

맛보다 보기 좋게 만든 빵들이 더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중늙은이의 감성에 맞지 않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니 그대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빵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지 잘 나온다.


제빵 신 안창석은 자신의 욕심과 제빵업계의 시기와 음모로 망한다.

가장 높이 날다 추락한 그는 주사를 부리다 손에 상처까지 입는다.

술에 찌든 그는 자신에게 제빵을 가르친 스승을 만나고 싶어 강화도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원칙주의자 스승 밑에서 7년 동안 제빵의 기본을 배운다.

치매에 걸렸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스승의 빵집에 머문다.

그리고 스승님을 돌보는 김포댁을 만난다.

스승님의 손녀는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

몰락한 제빵 신은 스승님과의 지내면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망가진 손은 이전처럼 빵을 만드는 것이 힘들 정도다.

과음과 숙취, 과거의 회상, 김포댁과 티격태격하는 일상이 이어진다.


다시는 빵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스승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받는다.

이것은 기술적인 것이 아닌 심리적인 가르침이다.

사람을 살리는 빵’을 만들라는 유훈이다.

다시 빵을 만드는데 좋은 재료를 구해 노력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스승님의 손녀 라라가 장례식에 나타나 그가 머물 곳도 바뀐다.

제빵 신이란 이름은 이제 수많은 언론 보도와 SNS 등으로 오염되었다.

빵집 주인인 라라는 창석의 존재가 의심스럽다.

화덕으로 만드는 전통적인 빵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하다.

라라의 머릿속에는 아직 인스타 등에 나오는 화려한 빵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제빵 신은 기본으로 돌아가서 시작하려고 한다.


사람을 살리는 빵이라고 하지만 그 빵을 먹는다고 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단팥빵과 고로케의 사연들은 그 빵의 추억과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자신이 실패라고 말하고 버린 빵을 몰래 가져가는 아이.

아이의 급식카드로 술을 사 마시는 아빠, 이를 알지만 묵인하는 편의점 직원.

불법적인 행동에 분노하는 창석, 사연을 말하는 김포댁.

이렇게 하나의 사연이 만들어지고, 멋지게 해결한다.

다음 이야기는 그의 빵을 먹고 감탄하는 손님의 이야기다.

창석은 그가 제빵사라는 알아채고, 가방에 든 물건이 의심스럽다.

혹시 하는 불안감은 그를 안절부절하게 한다.

그의 사연을 듣고 제빵 신이 알려준 고로케 만드는 방법.

그가 베푼 작은 도움의 손길은 사람을 살리는 빵이 된다.


이야기의 구성만 놓고 보면 특별한 것이 없다.

무너진 제빵사가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성을 채우는 내용이 결코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다.

좋은 제빵사가 되기 위해 그가 걸어온 시간과 노력이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좋지만 단가를 맞추기 힘들 때 라라의 이전 직업이 힘을 발휘한다.

고향을 떠난 이주 노동자 등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이 열심히 만든 빵은 또 어떤가.

여기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감초 캐릭터 김포댁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그녀가 풀어내는 입담과 행동, 동네 정보 수집 등은 중요한 요소다.

더불어 나 같은 빵돌이에게는 제빵 정보도 무시할 수 없는 재미다.

혹시 주변에 이런 빵집이 있다면 아주 자주 찾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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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
시가 아키라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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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변하고 있는 사기 대출 이야기를 다룬다.

이전 소설에서 고리의 사기 대출과 불법 추심을 다룬 것과 차이가 있다.

소비자 금융에 대한 법률 등에 의해 이전처럼 노골적인 추심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은 돈이 필요한 사람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 적은 돈에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사채업자 역시 줄지 않는다.

작가는 소비자금융기관에서 대출받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들에게 온라인 소액대출업자들은 순간의 위기를 넘기는데 필요한 업자다.

실제 이들이 빌려주는 돈은 그렇게 큰 돈이 아니다.

적은 돈이지만 어느 순간 그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연 이자가 100%가 넘어가는 고리의 사채다.

경찰에 신고하면 불법 이자로 상환의무가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그는 더 이상 어디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다.

1~2백만 정도의 금액이지만 어디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에게 이들은 빛과 같다.

고액의 이자율도 단순히 갚아야 하는 금액만 놓고 보면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왜 은행 등의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지 않지? 하고 물을 수 있다.

적정한 이자를 내고 그들도 대출을 받고 싶다.

하지만 작가는 실직과 싱글맘이란 설정 등으로 대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먼저 보여준다.

이 정도까지 왔다는 것은 주변 지인들에게도 돈을 빌릴 수 없다는 의미다.


3개월 월세 연체로 셋집에서 쫓겨날 절박한 사항에 처한 다카요.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다 병을 얻어 퇴사했다.

끊어진 수입은 더 급한 일들로 인해 월세 연체로 이어진다.

어디에도 돈을 빌릴 때가 없다. 직장이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20만엔이 되지 않는 돈, 이 돈은 한달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다.

불법으로 온라인에서 일하는 대출하는 사채업자에게 연락한다.

그들도 연체나 추심 불가의 상황은 피해야 한다.

증빙으로 신분증과 신분증을 든 셀카 사진을 요청한다.

승인이 떨이지고 돈은 바로 입금된다.

매월 이자는 입금하지만 원금까지 갚기에는 너무 수입이 적다.

대출은 더 늘어나고 이때 매춘에 대한 유혹이 들어온다.


소설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속는 사람과 속이는 사람 등이다.

작가는 이 설정을 아주 교묘하게 이용해 독자의 눈을 속인다.

멋진 서술 트릭인데 이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속는 사람 편에서 속이는 사람들의 수법이 조금씩 보인다.

속이는 사람들 편에서는 이들이 어떻게 고객에게 접근하는지 보여준다.

속는 사람이 속이는 사람이 되고, 속이는 사람이 속는 사람이 된다.

치열한 경쟁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럴 때 경험이 풍부한 사부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다.


돈이 있을 때는 큰 돈이 아니지만 없을 때는 1만엔도 큰 돈이다.

한 번 빌리면 점점 더 많은 돈을 빌리게 된다.

이 과정에 사채업자가 실수인 듯, 걱정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

싱글맘이나 학생이 대상일 때 이들은 매춘업소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한 번 빠진 대출의 굴레는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늪과 같다.

대출자에 대한 걱정과 공감 등도 진심보다는 더 높은 수익을 위한 것이다.

밖에서 볼 때 어떻게 저런 말에, 방식에 속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고, 탐욕은 우리의 빈틈으로 파고든다.

잘 짠 구성과 현실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재미와 가독성을 높인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늘 그렇듯이 선입견의 무서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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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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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김호연의 소설을 읽는다.

밀리언셀러 <불편한 편의점>은 아직 읽지 않았다.

스릴러 요소가 강한 그의 초기작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불편한 편의점>을 읽지 않고 지나간 것도 나의 편견이 살짝 작용했다.

이번 소설을 선택한 것은 비디오가게와 돈키호테란 단어 때문이다.

어릴 때 나의 주말과 용돈을 집어삼킨 비디오가게의 추억이 떠올랐다.

영화 잡지에 나온 영화를 빌리기 위해 여기저기 비디오 가게를 돌아다녔던 기억도 난다.

그때 열광했던 중국 무협 드라마 시리즈는 또 어떤가.

작가는 이런 추억과 감성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진솔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자신의 기획 프로그램에서 잘린 덕분이다.

백수처럼 보내다 우연히 만난 돈 아저씨의 아들 한빈.

건물 지하에 그대로 보전된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의 소품들.

과거의 추억을 바탕으로 사라진 돈 아저씨를 찾는 유튜브 채널 ‘돈키호테 비디오’를 연다.

과거 자신이 본 영화와 책을 소개하고, 한빈과 돈 아저씨를 찾는 채널이다.

이 지하실에는 돈 아저씨가 필사한 <돈키호테> 필사본이 있다.

그 시절 비디오와 책을 소개하면서 돈 아저씨의 흔적을 쫓는다.

돈 아저씨를 찾는 과정 속에 추리소설의 형식을 집어넣었다.

돈 아저씨를 찾는 과정이 경찰의 수사 과정과 닮아 있다.

돈 아저씨의 과거는 단순한 동네 비디오 가게 주인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영상을 올리겠다는 솔의 의지는 그대로 유지된다.

돈 아저씨가 과거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되면서 그 관련 인물을 인터뷰한다.

초기 대치동 학원가의 스타 영어 강사.

대필이 당연한 듯 판을 치던 출판계의 편집자.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어 영화사와 협상을 한 시나리오 작가.

동네 비디오 가게를 하면서 아이들과 라만차 클럽 아미고를 운영한 돈키호테.

아저씨의 과거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일들은 그 시대의 뒤틀린 현실이다.

이 현실에 돈 아저씨는 돈키호테처럼 돌진한다.

현실의 벽은 그의 돌진으로 무너질 정도로 약하지 않다.

하지만 이 돌진은 사람과 인연을 만들고, 이 인연은 방송으로 이어진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고, 추억이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꽃을 피운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간 돈 아저씨.

그가 걸어간 길은 다른 사람에게 존경스러울지 모르지만 이혼한 아내와 아들에게는 아니다.

아들 한빈이 과거 인물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한탄과 울분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 찐산초였던 진솔, 돈 아저씨의 아들인 한빈.

이 둘이 돈 아저씨를 찾는 그 과정은 사람들의 향수와 호기심을 불러오기 충분하다.

조용한 입소문으로 점점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수익도 난다.

이 과정에 과거 라만차 클럽 아미고 멤버들과 연락이 된다.

이 만남은 현실에서 우리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것과 닮아 있다.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 모습이 담겨 있어 더 좋다.


현실의 시간 속에 사람이 변하지 않기는 힘들다.

점점 쌓여가는 돈 아저씨의 사람들을 통해 찐산초의 기억과 다른 부분이 나온다.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이 현실의 변화다.

앞부분이 추억속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면 후반부는 현실 속에서 부대끼는 사람들 이야기이 재밌다.

돈 아저씨를 찾으면 끝날 것이란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은 뒷 이야기들.

그 속에 드러나는 현실의 삶과 고민들, 그리고 예상외의 로맨스.

하지만 이 로맨스는 가볍게 처리되고 새로운 돈키호테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필력이 좋은 작가가 초심을 잃지 않고 잔잔히 풀어내는 이야기들.

이 글 어딘가에 담겨 있을 작가의 분신은 누굴까 하는 호기심.

읽는 내내 추억속으로 여행을 떠났고, 항상 미루어두었던 <돈키호테>에 대한 열정이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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