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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김호연의 소설을 읽는다.
밀리언셀러 <불편한 편의점>은 아직 읽지 않았다.
스릴러 요소가 강한 그의 초기작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불편한 편의점>을 읽지 않고 지나간 것도 나의 편견이 살짝 작용했다.
이번 소설을 선택한 것은 비디오가게와 돈키호테란 단어 때문이다.
어릴 때 나의 주말과 용돈을 집어삼킨 비디오가게의 추억이 떠올랐다.
영화 잡지에 나온 영화를 빌리기 위해 여기저기 비디오 가게를 돌아다녔던 기억도 난다.
그때 열광했던 중국 무협 드라마 시리즈는 또 어떤가.
작가는 이런 추억과 감성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진솔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자신의 기획 프로그램에서 잘린 덕분이다.
백수처럼 보내다 우연히 만난 돈 아저씨의 아들 한빈.
건물 지하에 그대로 보전된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의 소품들.
과거의 추억을 바탕으로 사라진 돈 아저씨를 찾는 유튜브 채널 ‘돈키호테 비디오’를 연다.
과거 자신이 본 영화와 책을 소개하고, 한빈과 돈 아저씨를 찾는 채널이다.
이 지하실에는 돈 아저씨가 필사한 <돈키호테> 필사본이 있다.
그 시절 비디오와 책을 소개하면서 돈 아저씨의 흔적을 쫓는다.
돈 아저씨를 찾는 과정 속에 추리소설의 형식을 집어넣었다.
돈 아저씨를 찾는 과정이 경찰의 수사 과정과 닮아 있다.
돈 아저씨의 과거는 단순한 동네 비디오 가게 주인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영상을 올리겠다는 솔의 의지는 그대로 유지된다.
돈 아저씨가 과거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되면서 그 관련 인물을 인터뷰한다.
초기 대치동 학원가의 스타 영어 강사.
대필이 당연한 듯 판을 치던 출판계의 편집자.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어 영화사와 협상을 한 시나리오 작가.
동네 비디오 가게를 하면서 아이들과 라만차 클럽 아미고를 운영한 돈키호테.
아저씨의 과거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일들은 그 시대의 뒤틀린 현실이다.
이 현실에 돈 아저씨는 돈키호테처럼 돌진한다.
현실의 벽은 그의 돌진으로 무너질 정도로 약하지 않다.
하지만 이 돌진은 사람과 인연을 만들고, 이 인연은 방송으로 이어진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고, 추억이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꽃을 피운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간 돈 아저씨.
그가 걸어간 길은 다른 사람에게 존경스러울지 모르지만 이혼한 아내와 아들에게는 아니다.
아들 한빈이 과거 인물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한탄과 울분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 찐산초였던 진솔, 돈 아저씨의 아들인 한빈.
이 둘이 돈 아저씨를 찾는 그 과정은 사람들의 향수와 호기심을 불러오기 충분하다.
조용한 입소문으로 점점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수익도 난다.
이 과정에 과거 라만차 클럽 아미고 멤버들과 연락이 된다.
이 만남은 현실에서 우리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것과 닮아 있다.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있는 그대로 모습이 담겨 있어 더 좋다.
현실의 시간 속에 사람이 변하지 않기는 힘들다.
점점 쌓여가는 돈 아저씨의 사람들을 통해 찐산초의 기억과 다른 부분이 나온다.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이 현실의 변화다.
앞부분이 추억속으로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면 후반부는 현실 속에서 부대끼는 사람들 이야기이 재밌다.
돈 아저씨를 찾으면 끝날 것이란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은 뒷 이야기들.
그 속에 드러나는 현실의 삶과 고민들, 그리고 예상외의 로맨스.
하지만 이 로맨스는 가볍게 처리되고 새로운 돈키호테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필력이 좋은 작가가 초심을 잃지 않고 잔잔히 풀어내는 이야기들.
이 글 어딘가에 담겨 있을 작가의 분신은 누굴까 하는 호기심.
읽는 내내 추억속으로 여행을 떠났고, 항상 미루어두었던 <돈키호테>에 대한 열정이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