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이 할머니 뭐야!’ 이것이 처음 느낀 감정이라면 ‘이 할머니 대단하다!’가 책을 덮고 난 후의 느낌이다. 엄청난 유괴 사건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경찰과 두뇌싸움을 하는 사람이 바로 인질로 잡혀간 야나가와 여사이기 때문이다. 처음 조그마한 유괴로 약간의 돈을 받으려고 한 것을 100억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올려 전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사건으로 만든 것도 역시 여사다.

 

사실 여기저기의 추리소설 리스트에서 이 작품을 보았었다. 당연히 호기심과 관심은 높아졌지만 일본어를 거의 모르는 내가 읽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번역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이라는 영화의 개봉에 맞추어 출간된 것이다. 영화의 감독도 배우도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원작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았다. 일본의 수많은 걸작 추리소설 중 1위를 하였다는 대단한 기록에 상이나 베스트 목록에 약한 내가 어찌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겠나? 그 기대는 이전에 본 대단히 화려한 수상에 비해 취향이나 시대 탓으로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 소설은 역시 명성에 걸맞았다.  

 

유괴를 다룬 영화 등에서 이미 유괴범이 납치된 사람에게 설득 당하거나 반대로 유괴범에게 설득되어 가족이나 경찰 등을 괴롭히는 것을 본 적이 많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몸값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금액인 경우는 없었다. 100억 엔. 그것도 현재가 아닌 1970년대 말이다. 유괴범들이 이 돈의 가치를 생각하는 부분을 보면서 우리가 흔히 서울에서 부산까지 만원 지폐를 깐다고 하는데 여기서 다루어지는 돈은 만원이 아닌 만 엔이다. 거의 10만원 수표다. 100억 엔이면 몇 장인가? 나같이 머리 나쁜 인간은 계산하기도 힘들다. 엄청난 금액인 것은 분명하다.

 

유괴 사건을 다루지만 대립하는 두 조직은 유괴범과 경찰이 아닌 인질과 경찰이다. 유괴범이 인질에 의해 휘둘리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 모습은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다. 처음 유괴범들이 대상을 선택할 때 보여준 것을 보면 어쩌면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이도 여자도 아가씨도 유괴하지 않지만 부자집 할머니라면 가능하고 최악의 범죄를 벗어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인질인 여사가 엄청난 금액을 말하면서 상황은 변한다. 그리고 그 금액을 만들기 위해 보여주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행동들은 매스컴이라는 통로와 엄청난 금액으로 인해 예상외로 매끄럽게 진행된다. 여기서 다른 작가들이라면 매스컴의 속성을 날카롭게 꼬집으면서 지나가겠지만 작가는 그런 유혹을 넘기고 긴장감과 유쾌한 상황으로 이어간다.

 

이 엄청난 유괴사건을 보면서 대단하게 느끼는 것은 역시 여사다. 그녀의 납치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현 경찰들의 수사망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자신을 찾는데 온갖 정성을 다하는 경찰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도 역시 여사다. 이 여사의 인간적인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데 이 매력 때문에 유괴범과 인질인 여사는 평온하게 살면서 경찰 등을 따돌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납치사건에 가장 어려운 점은 언제나 몸값 전달과 수령이다. 과연 그들은 무사히 돈을 받을까? 또 여기서 여사는 어떤 지략을 짜낼까?  

 

인간적 매력에 한없이 빠져들지만 마지막에 나온 이유 중 하나가 개인적으로 약간 걸려 최고의 점수를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재미나 진행이나 구성 등은 만족스럽다. 책을 덮고 글을 쓰는 지금도 4만 헥타르를 산림이나 100억 엔이라는 금액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하겠다. 또 그녀가 100억 엔의 몸값만큼 사회봉사 등으로 사용했다는 대목에선 많은 것을 시사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피가 튀고, 엄청난 살인 트릭은 없지만 인간적 매력과 유괴에 대처하는 경찰들의 모습 등이 긴장감과 포만감을 준다. 일독을 권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9-2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권순분여사납치사건,을 봤어요. 대유괴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만들었다는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는 비슷하게 간 것 같네요. 이 책도 무지하게 재미있어 보여요. 어제 본 영화, 진짜 재미있게 봤거든요. 나문희 여사!! 그리고 다른 인물들도 모두..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
김영현 지음 / 작가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내가 읽은 수많은 한국작가들 중 한 명이지만 크게 주목한 작가는 사실 아니다. 20대에 열광하였던 이문열, 이청준, 박완서, 김원일 등의 스타 작가에 비하면 단지 이름을 아는 정도이다. 아마 그를 알게 된 것도 한때 즐겨 읽던 이상 문학상 덕분이 아닌가 한다. 그런 작가의 소설도 아닌 산문집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제목에 나오는 나쓰메 소세키 때문일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 때문이라고 하면 내가 이 일본 작가에 대해 잘 알고 엄청난 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의 소설도 읽은 것은 한두 편 정도에 불과하다. 대표작인 ‘도련님’이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같은 소설은 읽지도 않은 것을 생각하면 약간은 의외이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 전에 본 일본 드라마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영혼이 몸에 들어온 주부 이야기를 재미있게 보았고, 일본 문학에서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기에 정보를 좀 얻어 볼까 하는 마음에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것은 단 한 편이고, 나머지는 작가의 삶과 문학과 철학과 지인들에 대한 것들로 가득했다. 에세이 등을 좋아하지 않고, 이런 종류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지만 이 산문집은 김영현이라는 작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이전에 표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그의 문학 세계와 작품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산문집을 신변잡기 정도로 알고 멀리했던 나에게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다른 작가들의 산문집에도 눈길을 주게 만들었다.

 

1955년생인 그가 겪어야 했던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자신의 소설 속에 담아내었다고 하는데 그 소설들에 대한 정확한 기억이 없는 관계로 이 산문집을 읽는 내내 아쉬움을 느꼈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 문학에서 자주 다루어진 주제이지만 과격하고 노동문학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무지한 탓으로 김영현이라는 작가를 깊이 인식하지는 못했다. 그가 겪은 고문이나 감옥에서의 체험 등은 한때 관심을 가졌었고, 몇몇은 그 잔혹함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있지만 역시 좋아하는 작가의 목록엔 그의 이름이 올라있지 못했다. 단지 있었지와 읽었지 정도였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2부인 ‘사람들’이 가장 흥미로웠다. 아마도 작가가 본 작가나 인물에 대한 평과 사유가 나의 취향과 맞는 듯하다. 관심을 가진 분야와 인물에 대한 것이기 더욱 재미있었고, 몇몇 잘 몰랐던 사실들도 즐거웠다. 보통 작품을 선택할 경우 유명 작가라면 그냥 선택하거나 책 소개에 의지하지만 잘 알고 있지 않은 작가의 경우 이력을 많이 참조한다. 하지만 이번 산문집으로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졌고, 이전과 분명히 다른 시선으로 그를 보게 되었다. 언제나 처럼 새롭게 인식한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빠른 시간 안에 그의 소설을 다시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림에 대한 해석에 놀라곤 한다. 하나의 그림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의 해석이 엇갈리는 경우 더욱 혼란스럽다. 이 소설을 보면서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본 해석과 다른 풀이에 또 나의 마음과 머리는 미로 속을 헤매게 된다. 과연 누가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역시 숨겨진 상징이나 비밀이 담겨있지 않는 이상은 나의 기분과 감상에 맡겨야 할 듯하다. 하지만 이것도 유행어처럼 그때그때 다르니 참으로 부족함을 느낀다.

 

소설을 펼치고 몇 장을 읽지 않아 머릿속을 파고 들어온 것은 한 편의 영화다. ‘아마데우스’. 한참도 전에 본 영화가 떠오른 것은 한 천재를 두려워하고 그리워한 능력 있는 음악가의 대결과 질투가 이 소설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장수를 거듭하면서 강해졌고, 뒤로 가면서 새롭게 나오는 이야기에 의해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였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이지만 과연 충분히 납득할만한 근거가 있는지 하는 부분에서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그림에 대한 나의 안목은 정말 약하다. 특히 유명한 화가의 그림일 경우 전문가들이 평하는 것에 흔들리고, 그들의 높은 안목과 감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그런 점을 느끼는데 그것은 작가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을 풀어내고 해석하고 주석을 단 부분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두 천재 화가의 그림에서 빠져있는 것은 제작연도다. 이것이 사실 나에게는 혼란을 주지만 작가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좋은 소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그림의 순서를 정하고 그 그림을 해석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소설로도 읽을 수 있는데 가장 큰 미스터리는 상상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와 과연 그 주장을 읽는 독자들이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나 하는 점이다. 나의 완고한 선입견 때문인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작가의 그림 색조와 빈번하게 등장하고 중심이 되는 인물에게서 유추한 생각들이 너무 파격적이고 비약이 심한 듯하여 감탄을 자아내기보다 심하다! 는 느낌을 먼저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 중 일부는 한국드라마에서 너무 자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소설은 두 축으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앞에서 말한 단원과 혜원의 천재적 재능과 대결 구도이고, 다른 하나는 10년 벌어진 살인사건을 둘러싼 비밀이다. 10년 전 살인사건이 단순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정조와 연결된 것으로 밝혀지고, 그 여파로 일어난 일들이 소설을 재미를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지 않아 전작에서 느낀 재미가 조금 줄어들었다. 전작의 미스터리에 너무 기대한 탓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쏙 드는 책은 아니다. 구성과 전개가 나의 생각과 완전히 다른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윤복의 형인 영복의 비중과 중요성이 뒤로 가면서 허지부지 되었고, 갑자기 파국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존재 또한 작위성을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결과 질투와 애증이 교차하는 구성이 나의 화가에 대한 선호도 때문인지 납득하기 쉽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결정타를 날린 것은 미인도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 때문이다. 과연 그렇게까지 충격적인 방향 설정이 필요했나와 작가의 화가에 대한 선호도가 너무 많이 개입된 부분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가장 백미는 두 천재 화가의 대결이나 숨겨진 출생의 비밀이나 살인사건을 둘러싼 의문 등이 아닌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그림들과 그 그림을 풀어내는 작가의 상상력과 해석이다. 총 24점의 컬러 도판이 두 작가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작가가 풀어낸 해석은 그 시대와 그 느낌을 새롭게 만드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한다. 하지만 ‘미인도’에 대한 비밀만큼은 납득할 수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느님 끌기
제임스 모로 지음, 김보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그분의 주검이 왜 문제가 되지? 읽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 울린 의문이다. 만약 3000미터가 넘는 사람 형상의 주검이 있다면 엄청난 논쟁과 수많은 음모론이 대두하겠지만 그가 하느님일지라도 나에겐 영향이 없다. 왜냐고? 나를 비롯한 세상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다가 부딪친 수많은 의문과 문제가 바로 이 소설이 기독교적 바탕에서, 세계에서 이루어진 소설이란 것이다. 태어나면서 주변에서 본 것과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신에 대한 외경심과 두려움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교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제외하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서 느끼는 의문도 많다. 하느님의 주검을 목격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들이다. 신부와 수녀가 옷을 벗고 춤을 추는 장면이나 선원들이 약탈과 살인과 음란한 행동 들이 단지 자신들을 지켜보는 신이 없다는 것으로 나타내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부가 칸트의 정언명제를 외치며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지만 그들은 결국 자신의 피 속에 담긴 욕망에 굴복한다. 다만 그 자기 파괴적이고 황폐한 시간이 지난 후 배고픔이라는 간단한 육체적 욕망에 굴복하여 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한 순간 광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추악한 행동들 끝에 나타난 나약하고 배고픈 인간들이 보여주는 상황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창조주로 생각하는 존재가 죽었고, 천사들도 죽은 상황에서 그들이 느낀 자유가 단순히 파괴적이고 가슴 깊숙이 숨겨진 욕망을 표출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사람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기독교적 가르침의 기반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니 이 상황을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다. 다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상징적인 두 세계가 사라짐으로써 사후에 대한 근심이 사라진 것만으로 이런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성이란 그럼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작가가 살고 있는 세계가 나와 다르니 그가 느끼는 감정도 다를 것이다. 기발한 발상과 전개는 흥미롭고, 이야기 속에 담긴 수많은 풍자와 비틀기도 재미있다. 페미니스트 캐시가 분석해 내는 영화 ‘십계’에 대한 해석도 새롭게 다가왔다. 서부계몽연맹이나 제2차 세계대전 재연협회가 보여주는 황당한 상황과 진행들은 약간은 무거울 수 있는 상황들을 코믹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파국은 황당하고, 이성보다 감정에 매몰된 것 이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느님을 주검을 둘러싼 바티칸과 무신론자들의 대결을 보다보면 그들이 동일한 속성을 가진 단체임을 알게 된다.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바티칸과 하느님의 주검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는 감성에서 사실보다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됨을 보게 되는 것이다. 종교의 가장 중요한 점을 놓친 바티칸이나 사실에 충실해야 하는 사람들이 감정과 자기 이익에 휘둘려 펼쳐 보이는 행동들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반영이 아닌가 한다.

 

작가의 종교적 성향을 잘 모르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글 속에 드러난 것만 본다면 무신론자가 아닌 것 같다. 서양의 팩션을 읽다보면 하나의 사실이 자신들이 이룩한 거대한 종교제국을 무너트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살인도 불사하는 것을 자주 보는데 이 소설 속에도 역시 그런 모습이 보인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그 뛰어난 발상과 유머와 풍자가 왠지 모르게 힘을 잃는 듯하다. 하지만 읽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소득도 많고 재미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처럼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믿고자 하는 것만 믿는다면 거짓된 정보에 의해 하느님을 공격하는 재연협회처럼 책 속에 담긴 또 다른 많은 이야기를 놓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할 것이 참 많은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와세다 1.5평 청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유쾌하다. 재미있다. 책에 대해 간단이 평을 한다면 이 말로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띠지에 나오는 제1회 사케노미 서점인 대상 수상작이라는 문구보다 간단하고 명확하게 이 소설을 표할 수 있는 단어가 없지 않나 한다. 근데 이 책이 소설인 것은 맞는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구성 등을 보면 소설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가끔 자신의 책을 이야기하는 부분으로 들어가면 기나긴 노노무라 탐험기 같기 때문이다.

 

이 책에 혹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혹한 것은 역시 미야베 미유키가 ‘환상의 괴수 무벤베를 쫓아서’라는 책에 해설을 쓴 것 때문이다. 그의 모험심을 높이 샀다니 다다미 3장 1.5평의 방에서 보낸 청춘도 높이 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생각이 있었다. 그 좁은 방에서 8년, 옆에 있는 2평방에서 3년을 보낸 노노무라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 비상식적이고 기이한 모습을 띄고 있다. 그래서 잡지나 방송국 등에서 취재를 하고 간 것인지도 모른다.

 

2층집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명 한 명이 특이하다. 화자인 다카노를 제외하고도 그와 같은 탐험부의 후배들이나 노노무라의 터줏대감들인 10년 고시생 겐조씨, 소리에 예민하고 너무나도 알뜰한 수전노 마쓰무라씨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을 조용히 품고 사시는 주인아줌마가 있다. 이 특이한 사람들과 11년을 살았으니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재미난 사건들을 재미나게 풀어내고 엮어내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대단히 성공적이다. 읽기에 부담 없고 술술 넘어간다. 읽다보면 이런 이상한 사람들이 있나 하기보다 웃고 즐거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에피소드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당혹스러운 장면도 공감하는 장면도 많이 나온다. 당혹스러운 것은 역시 다카노의 현실에 대한 무지다. 세상에 그 유명한 기무타쿠를 모르다니. 기무타쿠를 놓고 후배와 사람인지 그룹인지 논쟁을 하는 대목과 드림컴트루를 노래라고 태국사람에게 말해 웃음을 산 대목은 그가 얼마나 일반적 주류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는지 알게 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시간이 나면 외국으로 나가 몇 개월씩 집을 비우고, 집에서는 뒹굴거리고, TV조차 없는 생활을 하였으니까!

 

가장 공감 가는 것은 2평방으로 옮기고 난 후 벌어진 일들이다. 이전에 좁아 생각도 못한 물건을 사들이는 것이다. TV, 컴퓨터, CD플레이어 등등. 내가 집을 옮기고 난 후 괜히 넓어진 방을 보고 다읽지도 못할 책이나 다른 것들을 사들인 것과 같은 맥락이기에 그렇다. 사람들은 빈 공간의 여유를 즐기기에는 너무 그 여백이 불안한 모양이다. 덕분에 다시 좁아진 공간과 수많은 책 등으로 머리가 아파오기는 하지만.

 

앞에서 노노무라 탐험기라고 한 것은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주인아줌마와 그곳을 다녀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야기들 때문이다. 11년을 살았지만 몇 번이나 몇 개월씩 방을 비웠으니 어쩌면 그곳에 살던 시기도 하나의 모험이자 탐험이 아니었을까 한다. 틀에 박힌 삶이 싫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을 쫓아가기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그이기에 곳곳에 그런 분위기가 가득하다. 물론 이런 삶을 살아가는데 자신이 가장 중요하지만 노노무라에서 사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역시 주인아줌마다. 그가 몇 개월씩 방을 비워도 다른 탐험부 사람들이 와서 살아도 다시 그가 돌아올 수 있게 만들어 놓고,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충돌이 있어도 원만하게 그 사건을 처리하는 지혜를 가진 분도 역시 주인아줌마다. 11년 거주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방세를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나 정 가득한 행동이나 모두 주인아줌마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보통의 삶을 살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듯 글을 쓴 것 같지만 그가 그 사이에 낸 책들과 여러 외국 체험은 사실 굉장히 열정적으로 살았음을 보여준다. 모험과 도전 정신이 곳곳에 보이는데 가끔은 너무 무식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많다. 특히 신종마약도전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또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끝으로 옥의 티 하나. 책속에 자신의 책을 말하고 그 제목을 ‘환상의 괴수 무벤베를 찾아서’라고 하는데 작가에 대한 설명에서는 ‘쫓아서’로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