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이 할머니 뭐야!’ 이것이 처음 느낀 감정이라면 ‘이 할머니 대단하다!’가 책을 덮고 난 후의 느낌이다. 엄청난 유괴 사건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경찰과 두뇌싸움을 하는 사람이 바로 인질로 잡혀간 야나가와 여사이기 때문이다. 처음 조그마한 유괴로 약간의 돈을 받으려고 한 것을 100억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올려 전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사건으로 만든 것도 역시 여사다.

 

사실 여기저기의 추리소설 리스트에서 이 작품을 보았었다. 당연히 호기심과 관심은 높아졌지만 일본어를 거의 모르는 내가 읽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번역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이라는 영화의 개봉에 맞추어 출간된 것이다. 영화의 감독도 배우도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원작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았다. 일본의 수많은 걸작 추리소설 중 1위를 하였다는 대단한 기록에 상이나 베스트 목록에 약한 내가 어찌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겠나? 그 기대는 이전에 본 대단히 화려한 수상에 비해 취향이나 시대 탓으로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 소설은 역시 명성에 걸맞았다.  

 

유괴를 다룬 영화 등에서 이미 유괴범이 납치된 사람에게 설득 당하거나 반대로 유괴범에게 설득되어 가족이나 경찰 등을 괴롭히는 것을 본 적이 많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몸값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금액인 경우는 없었다. 100억 엔. 그것도 현재가 아닌 1970년대 말이다. 유괴범들이 이 돈의 가치를 생각하는 부분을 보면서 우리가 흔히 서울에서 부산까지 만원 지폐를 깐다고 하는데 여기서 다루어지는 돈은 만원이 아닌 만 엔이다. 거의 10만원 수표다. 100억 엔이면 몇 장인가? 나같이 머리 나쁜 인간은 계산하기도 힘들다. 엄청난 금액인 것은 분명하다.

 

유괴 사건을 다루지만 대립하는 두 조직은 유괴범과 경찰이 아닌 인질과 경찰이다. 유괴범이 인질에 의해 휘둘리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 모습은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다. 처음 유괴범들이 대상을 선택할 때 보여준 것을 보면 어쩌면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이도 여자도 아가씨도 유괴하지 않지만 부자집 할머니라면 가능하고 최악의 범죄를 벗어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인질인 여사가 엄청난 금액을 말하면서 상황은 변한다. 그리고 그 금액을 만들기 위해 보여주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행동들은 매스컴이라는 통로와 엄청난 금액으로 인해 예상외로 매끄럽게 진행된다. 여기서 다른 작가들이라면 매스컴의 속성을 날카롭게 꼬집으면서 지나가겠지만 작가는 그런 유혹을 넘기고 긴장감과 유쾌한 상황으로 이어간다.

 

이 엄청난 유괴사건을 보면서 대단하게 느끼는 것은 역시 여사다. 그녀의 납치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현 경찰들의 수사망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자신을 찾는데 온갖 정성을 다하는 경찰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도 역시 여사다. 이 여사의 인간적인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데 이 매력 때문에 유괴범과 인질인 여사는 평온하게 살면서 경찰 등을 따돌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납치사건에 가장 어려운 점은 언제나 몸값 전달과 수령이다. 과연 그들은 무사히 돈을 받을까? 또 여기서 여사는 어떤 지략을 짜낼까?  

 

인간적 매력에 한없이 빠져들지만 마지막에 나온 이유 중 하나가 개인적으로 약간 걸려 최고의 점수를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재미나 진행이나 구성 등은 만족스럽다. 책을 덮고 글을 쓰는 지금도 4만 헥타르를 산림이나 100억 엔이라는 금액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하겠다. 또 그녀가 100억 엔의 몸값만큼 사회봉사 등으로 사용했다는 대목에선 많은 것을 시사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피가 튀고, 엄청난 살인 트릭은 없지만 인간적 매력과 유괴에 대처하는 경찰들의 모습 등이 긴장감과 포만감을 준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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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2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권순분여사납치사건,을 봤어요. 대유괴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만들었다는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는 비슷하게 간 것 같네요. 이 책도 무지하게 재미있어 보여요. 어제 본 영화, 진짜 재미있게 봤거든요. 나문희 여사!! 그리고 다른 인물들도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