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끌기
제임스 모로 지음, 김보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그분의 주검이 왜 문제가 되지? 읽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 울린 의문이다. 만약 3000미터가 넘는 사람 형상의 주검이 있다면 엄청난 논쟁과 수많은 음모론이 대두하겠지만 그가 하느님일지라도 나에겐 영향이 없다. 왜냐고? 나를 비롯한 세상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다가 부딪친 수많은 의문과 문제가 바로 이 소설이 기독교적 바탕에서, 세계에서 이루어진 소설이란 것이다. 태어나면서 주변에서 본 것과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신에 대한 외경심과 두려움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교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제외하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서 느끼는 의문도 많다. 하느님의 주검을 목격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들이다. 신부와 수녀가 옷을 벗고 춤을 추는 장면이나 선원들이 약탈과 살인과 음란한 행동 들이 단지 자신들을 지켜보는 신이 없다는 것으로 나타내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부가 칸트의 정언명제를 외치며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지만 그들은 결국 자신의 피 속에 담긴 욕망에 굴복한다. 다만 그 자기 파괴적이고 황폐한 시간이 지난 후 배고픔이라는 간단한 육체적 욕망에 굴복하여 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한 순간 광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추악한 행동들 끝에 나타난 나약하고 배고픈 인간들이 보여주는 상황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창조주로 생각하는 존재가 죽었고, 천사들도 죽은 상황에서 그들이 느낀 자유가 단순히 파괴적이고 가슴 깊숙이 숨겨진 욕망을 표출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사람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기독교적 가르침의 기반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니 이 상황을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다. 다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상징적인 두 세계가 사라짐으로써 사후에 대한 근심이 사라진 것만으로 이런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성이란 그럼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작가가 살고 있는 세계가 나와 다르니 그가 느끼는 감정도 다를 것이다. 기발한 발상과 전개는 흥미롭고, 이야기 속에 담긴 수많은 풍자와 비틀기도 재미있다. 페미니스트 캐시가 분석해 내는 영화 ‘십계’에 대한 해석도 새롭게 다가왔다. 서부계몽연맹이나 제2차 세계대전 재연협회가 보여주는 황당한 상황과 진행들은 약간은 무거울 수 있는 상황들을 코믹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파국은 황당하고, 이성보다 감정에 매몰된 것 이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느님을 주검을 둘러싼 바티칸과 무신론자들의 대결을 보다보면 그들이 동일한 속성을 가진 단체임을 알게 된다.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바티칸과 하느님의 주검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는 감성에서 사실보다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됨을 보게 되는 것이다. 종교의 가장 중요한 점을 놓친 바티칸이나 사실에 충실해야 하는 사람들이 감정과 자기 이익에 휘둘려 펼쳐 보이는 행동들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반영이 아닌가 한다.

 

작가의 종교적 성향을 잘 모르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글 속에 드러난 것만 본다면 무신론자가 아닌 것 같다. 서양의 팩션을 읽다보면 하나의 사실이 자신들이 이룩한 거대한 종교제국을 무너트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살인도 불사하는 것을 자주 보는데 이 소설 속에도 역시 그런 모습이 보인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그 뛰어난 발상과 유머와 풍자가 왠지 모르게 힘을 잃는 듯하다. 하지만 읽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소득도 많고 재미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처럼 보고자 하는 것만 보고, 믿고자 하는 것만 믿는다면 거짓된 정보에 의해 하느님을 공격하는 재연협회처럼 책 속에 담긴 또 다른 많은 이야기를 놓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할 것이 참 많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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