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 조선 천재 1000명이 죽음으로 내몰린 사건의 재구성
신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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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동화와 함께 가장 즐겨보았던 것이 위인전이고, 학창시절엔 두꺼운 역사전집들을 한 권씩 읽기도 했다. 물론 세로쓰기에 너무 많은 양과 연대기에 질려 중간쯤에서 그만두었지만 그래도 누구나처럼 한때 사학과에 들어가고 싶었던 사람이다. 어쩌면 그 당시 나에겐 역사란 옛날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사건들을 다룬 다양한 시각을 만나고, 내가 배운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닌 고도의 정치와 목적이 결합된 것임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학창시절 암기과목을 무지 싫어했다. 당시 국사는 암기 과목이었다. 수많은 이름과 연대를 기억해야 하는 일은 나 같이 게으른 사람에겐 고역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연도와 사건들을 연결하여 기억하지 못한다. 임진왜란이 몇 년도에 일어난 사건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대의 순서를 잊는다거나 역사의 흐름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너무 자주 듣다 읽다 외운 몇 개는 지금도 무의식중에 튀어나와 괜히 우쭐함을 느끼게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제목만으로 사실 어떤 사건을 다룬 것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책 소개를 보고, 내용을 읽다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축옥사보다 정여립 역모사건으로 더 잘 기억하는데 학창시절 수업시간에서 배운 것이 머릿속에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임꺽정이나 홍경래의 난보다 더 작은 규모의 것으로 기억되어 있는데 이런 제목으로 다루어진 것에 처음엔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건을 둘러싼 의혹이나 연루자를 생각하면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조선 천재 1000명이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충분히 그 의혹에 동감한다. 전라도를 역사 속에서 고립시킨 사건임에 반해서 그 실체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당쟁으로만 보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이고, 정감록을 이용한 혁명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두 가지가 결합된 것으로 인식하기에도 약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내려지는 것은 아마 충분한 자료가 없는 것도 이유이겠지만 사건 자체의 성격에도 많은 의문을 내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여립의 자살이나 역모를 위한 민중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 등이다. 왜구의 침입을 막을 정도의 무력을 가진 대동계를 거느리고 있던 정여립이 그렇게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자살한 것이나 그 이후 본격적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붕당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의혹을 강하게 한다. 역사가 승자의 편에서 기록된다는 것이 이젠 정설처럼 말해지는 현실이나 이덕일 씨가 한중록마저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과장되고 가공되었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제대로 그 사실들을 후세에 전했을지 의문이다. 이점은 다양하게 그 의견을 말한 동서 양당의 인물들의 기록에서 엇갈린 대목으로 확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롭다. 하지만 전개하는 방식에서 약간 집중력이 떨어진다. 나의 오독인지 모르지만 인물의 평에서 중심이 흔들리는 듯한 몇 곳도 보이고, 전체적인 진행에서 쉽게 사건의 윤곽을 잡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 엄청난 사건에 비추어 다시 재구성한 모습이 약간 엉성하고, 송익필 등의 서인들이 펼친 공작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나 해석이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부분에선 개인적 취향을 탓을 수도 있다.

 

최근에 나오는 역사교과서를 본 적이 없다. 가끔 읽어봐야지 하지만 역시 손이 가질 않는다. 이전에 배운 역사 수업에서 암기식 주입식이었기에 논쟁이 되는 부분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영어 수업시간이나 점수를 줄이고 역사시간을 더 늘이고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역사시간이 너무 지루한 것처럼 느껴졌다. 좋아한 과목이지만 서점에 출판된 이런 서적에서 얻는 지식과 시각을 전혀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선생과 학생이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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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얼굴의 아이> 서평단 알림
우울한 얼굴의 아이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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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쉬운 책은 아니다. 마지막 장편 3부작의 2부인데 1부인 ‘체인지링’을 먼저 읽은 덕분인지 지난번보다 조금은 쉽게 읽었다. 1부를 읽은 것이 일 년 이상 지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생각보다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기토라는 이름보다 이타미 주조 역인 고로의 이름에 더 익숙한 것은 나도 놀라운 대목이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당시 상당히 힘겹게 읽은 것이 여기서 이런 도움을 줄 것으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체인지링’이 모리스 센닥의 그림을 소재로 많은 이야기를 끌고 갔던 것으로 안다. 이번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다. 세계적인 명작으로 말해지는 작품이지만 아직 읽지 않은 소설이다. 몇몇 인물과 이야기의 단편들은 너무 유명해서 책을 읽지 않아도 알고 있지만 역시 여기저기서 조합한 지식과 제대로 읽은 것은 차이가 난다. 덕분에 소설 속에 나오는 수많은 돈키호테 속 이야기와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조금 힘겨운 점도 있었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데 결정적인 장애는 아니다. 단지 이해의 폭이 조금 줄어든다는 정도다.

 

1부에서 말한 이야기와 전설이 여기서도 거듭해서 나오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연작임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이런 부분들이 전편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문장(지난번보다 한결 쉬웠지만)과 암축적인 대화 등은 속도를 내는데 장애가 된다. 어느 순간 빠져들었다가 암초에 부딪혀 숨을 돌이키면 다시 몰입하기가 힘들다. 또 주인공 고기토의 감정을 이해하고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다. 정보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지만 일본적인 색채와 서양이 만나는 접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체인지링’에서 아이에 집착한 것으로 아는데 여기서도 변함없다. 비록 작가의 고향에 전해지는 동자전설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다시 1부에서 다루어진 것들을 더 깊이 다루고, 작가의 문학세계에 대한 깊고 심도 있는 분석이 동시에 진행된다. 그 대화와 인용들을 보다보면 작가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고 관심도 높아지지만 역시 어딘가에 부딪혀 미로 속으로 빠져든다. 여기서 나로 하여금 오에 겐자부로의 다른 소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한다. 이전에 읽었지만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부분과 어렵게 생각하여 포기한 것들에 대한 다시읽기를 생각한다. 비록 아직 작가의 작품에 대한 윤곽과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지만 이렇게 연작을 읽고 있다 보니 어느 정도 희미한 윤곽과 특징이 보이는 듯하다.

 

기묘한 동거와 기묘한 생활과 새롭게 와 닿는 전설의 의미에 덧붙여 작가에 대한 격동하는 감정들은 기존 소설로 생각한 틀들을 모두 부셔버린다. 일상에서 벌어지고 이어지는 삶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대화와 연구와 토론은 이 소설의 백미지만 역시 깊게 빠져들면서 진도가 빨라지게 만들지는 못한다. 동자에 대한 이해를 위해 마지막을 장을 몇 번 읽고 생각에 빠지지만 머릿속에 명확한 실체를 잡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앞에 읽은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3부작 중 2부이니 1부를 보지 않은 사람은 나보다 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3부를 모두 읽고 난 후에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와 특징이 좀더 명확하게 윤곽을 드러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고기토라는 이름을 보면서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말한 라틴어 고기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책 마지막에서 이 문장을 드러내면서 이름에 담긴 나의 추측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 알라딘 서평단 도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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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에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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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할머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람은 주인공이자 필립 말로를 흉내 내는 자칭 탐정인 슌페이가 아니라 비서와의 멋진 로맨스를 꿈꾸는 주인공을 멋진 사진 한 장으로 속인 할머니 아야다. 이런 할머니를 처음 접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 생활에서 부딪히면 좋아라! 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소설 속에서는 나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소설은 하드보일드하지 않다. 오히려 유머소설에 가깝다. 읽는 동안 일본 만화에서 많이 본 상황과 장면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특히 할머니 아야의 경우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다.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좌충우돌하면서 상황을 이끌어가는 독특한 성격이다. 가끔 다른 곳에서도 만나지만 역시 즐겁다. 44년생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서기인지 아니면 최근의 천황 연호인지 구분을 못하게 하는 작전은 일본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젊은 여자의 애교 넘치는 목소리와 나이스 바디를 가진 사진 한 장은 실물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하다. 뒤로 가면서 밝혀지는 사실들은 다른 느낌을 환기시켜주지만 멋진 등장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누구에게나 한 권의 책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물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완전히 빠져들지는 않았고 지금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분명히 있다. 탐정 슌페이에겐 그것이 레이먼드 챈들러다. 학교에서 왕따에 심부름꾼이었던 그를 전혀 다른 인물로 바꾼 한 권의 책이자 행동과 삶의 지침서다. 곳곳에 드러나는 행동과 대사는 무게 중심을 잡아주기보다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아 전혀 그 느낌을 살려내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말로를 꿈꾸며 탐정사무실을 열었지만 그의 일은 80%가 애완동물 찾기이고, 나머지는 불륜 현장을 조사하는 것이다. 전혀 하드보일드하지 않은 일들로 가득하다. 이런 그에게 모처럼 시체를 마주하는 일이 생기지만 책에서 만난 수천 건의 현장도 소용이 없다. 속에 있는 위액 전부를 토해내는 상황에 처하고 두 발은 떨리고 목소리는 메아리친다. 여기서부터 미스터리가 진행되는데 역시나 혹시가 맞아 떨어졌다. 이 상황에서도 만나는 코믹한 행동들과 인물들은 불균형한 제목처럼 불안하고 뒤뚱거린다.

 

이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이나 웃음을 자아내는 능력은 대단하다. 비록 범인이 쉽게 파악되고, 본 듯한 장면들과 상황이 느껴지지만 작가 나름의 매력이 살아있다. 아마 일본 만화나 애니의 영향을 벗어난 작품을 만나기가 요즘은 더욱 힘들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쌍방에 영향을 주는 요즘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닌가? 다음 권도 출간된다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그것은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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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더리스 브루클린 밀리언셀러 클럽 72
조나단 레덤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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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한글로 듣고 생각한 것은 murderless였다. 하지만 원제목을 보니 motherless다. 주의 깊게 원제를 보지 않았고, 밀클에서 다루는 하드보일드 소설이라는 선입견에 눈이 가려진 모양이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 이 제목을 어떻게 풀어내야할지 잘 모르겠다.

 

하드보일드 소설도 많이 읽는 편이지만 가끔 나의 취향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그 유명한 레이먼드 챈들러도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맞지 않나 생각하지만 조지 펠레카노스의 소설을 재미있어 하는 것을 보면 또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다만 문장이나 구성을 넘어 다루는 소재와 주제에 따라 몰입도와 선호도가 조금 변하는 모양이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사실 ‘파이트클럽’을 지루하고 난해하게 읽었고, ‘LA 컨피덴셜’을 영화로만 본 나로서는 이 두 작품의 흡입력과 리얼리티라는 광고 문구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만약 두 작품이 바뀌었다면 어떨지 모르지만 최소한 나에겐 동의하기 힘든 광고다. 하지만 ‘LA 컨피덴셜’을 쓴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큰 재미를 보았기에 어느 정도 기대를 하였다.

 

투렛 증후군을 가진 탐정이 나오는 이야기라 하지만 탐정이라기보다 흥신소의 조사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처음엔 라이어넬이 형사로 잠복근무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의 사장이자 형님인 프랭크가 죽고, 그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대목에 가서 그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를 포함한 네 명의 고졸 중퇴자들의 성장과 현재를 짧게 요약한 그 부분을 읽고 난 후 주인공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하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시 이 장을 살펴보니 제목이 엄마 없는 브루클린이다.

 

사실 투렛 증후군이니 틱이니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알고 나니 소설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그의 이상한 행동을 사이코니 괴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지만 아마 나 자신도 길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보통 사람들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 이 증후군의 여파로 만들어지는 단어들의 홍수는 번역자도 고생이었겠지만 읽는 나도 고생이었다. 원문을 모르는 상태에서 괴상한 단어의 조합과 의미 없는 듯한 단어는 묘하게 사람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그리고 투렛 증후군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는 그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소설을 펼치고 읽다 뒷 표지를 잠시 보았을 때 복수의 노래라는 단어에서 신나고 액션이 가득한 장면들을 연상했다. 이 특이한 증상을 가진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범인을 찾아서 신나게 해치울 것인가? 하고 그 장면들을 나름대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상상이었다. 어쩌면 미키 스필레인식이나 아니면 조지 펠레카노스 정도의 복수극을 상상한 것 자체가 잘못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 속에서 은근히 그런 통쾌한 복수극을 좋아하는 취향이 있음을 느낀다.

 

이 소설이 시리즈의 첫 권이라면 아마 다음 권은 더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 한다. 투렛 증후군으로 튀어나오는 단어들과 상상한 것과 다른 전개와 결말은 작가가 그려낸 현실에 압도되기엔 너무 강했다. 아니면 현실을 뛰어넘은 활극을 보고자 하는 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의 특징이 주인공으로 감정 이입되는 것을 쉽지 않게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게 된다면 또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고 즐길지 모르지만 지금 나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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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조국
로버트 해리스 지음, 김홍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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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해리스의 작품으론 두 번째로 읽는다. 먼저 읽은 ‘폼페이’에서 이미 그의 솜씨를 보았기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전에 몇 권 대체역사소설을 읽은 적이 있기에 혹시 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긴 하였지만 모두 읽은 지금 아닌 듯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이 소설이 국내 첫 번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번역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책이 재미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폼페이’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긴 시간을 다루지는 않는다. 불과 일주일이다. 새벽에 한 시체가 발견되고 그 사건과 그를 둘러싼 비밀이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퍼즐처럼 여기저기 다른 단서를 남겨 놓고, 유럽을 지배하는 독일의 경찰로써는 이단자 같은 마르크의 활약을 보다보면 긴장감과 작가가 새롭게 창조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독일이 2차 대전의 승리자가 되고, 그 악명 높은 인종 정책이 유지되고, 히틀러의 권력은 신과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 그 사회를 멋지게 창조한 것이다. 왜 멋지냐고? 사실을 기반으로 거짓을 쌓아 만든 그 세계가 진실 그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완벽한 경찰국가와 법을 초월하는 권력을 가진 게슈타포나 광신자처럼 권력자에게 도취된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르크의 아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불과 얼마 전 우리나라나 북한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기에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작가의 후기에서 말하듯이 작가가 보여준 베를린의 모습은 작가의 순수 창작이 아닌 알베르트 스피어가 건설하려고 한 모양이다. 근데 이 거대한 도시의 조형물에 대한 관광에서 안내자가 뱉어내는 단어에서 자주 보이는 것은 다른 유명한 건물들의 몇 배니 최고(最高)니 최대니 하는 단어인데 우리가 신문에서 매일 접하는 단어임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이런 현실에 대한 풍자와 냉소가 가득한데 현실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한 시기를 비틀어 새롭게 만들어낸 역사임을 생각하면 더욱 재미난 부분이다. 또 그 시대에 존재하는 많은 인명들이 실존하는 인물들임을 생각하면 작가의 기발함이 돋보인다.

 

사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르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단서를 찾고, 좇고, 실망하고, 다시 찾아내는 반복 속에서 이 연속 살인에 숨겨진 비밀이 무엇인가 궁금해진다. 살인자를 처음부터 보여주기에 왜? 라는 사실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나치가 유럽을 제패하였다면 결코 알려지지 않았을 사실이기 때문이다.

 

많은 분량이다 보니 단숨에 읽기는 약간 힘들다. 하지만 한 번 손에 들고 앉으면 쉽게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빠져들게 되면 한두 시간은 그냥 흘러간다. 치밀하고 세심하게 계산된 세계와 인물들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두뇌싸움은 이 소설의 가장 재미난 부분이다. 제목에서 당신들의 조국이라고 했는데 왠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떠오르게 한다. 단순히 조국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바꾼 의도는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나라가 숨긴 비밀과 부패를 보면서 그가 느낀 감정이 아닐까 한다. 또 마지막 장면에선 다른 사람들이 많이 말했듯이 존 르 카레의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가 연상되었다. 아픔과 여운이 남고, 진실에 대한 희망이 남기에 더욱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폼페이’보다 이 소설이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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