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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조국
로버트 해리스 지음, 김홍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으론 두 번째로 읽는다. 먼저 읽은 ‘폼페이’에서 이미 그의 솜씨를 보았기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전에 몇 권 대체역사소설을 읽은 적이 있기에 혹시 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긴 하였지만 모두 읽은 지금 아닌 듯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이 소설이 국내 첫 번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번역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책이 재미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폼페이’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긴 시간을 다루지는 않는다. 불과 일주일이다. 새벽에 한 시체가 발견되고 그 사건과 그를 둘러싼 비밀이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퍼즐처럼 여기저기 다른 단서를 남겨 놓고, 유럽을 지배하는 독일의 경찰로써는 이단자 같은 마르크의 활약을 보다보면 긴장감과 작가가 새롭게 창조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독일이 2차 대전의 승리자가 되고, 그 악명 높은 인종 정책이 유지되고, 히틀러의 권력은 신과 같은 위치에 존재하는 그 사회를 멋지게 창조한 것이다. 왜 멋지냐고? 사실을 기반으로 거짓을 쌓아 만든 그 세계가 진실 그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완벽한 경찰국가와 법을 초월하는 권력을 가진 게슈타포나 광신자처럼 권력자에게 도취된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르크의 아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불과 얼마 전 우리나라나 북한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기에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작가의 후기에서 말하듯이 작가가 보여준 베를린의 모습은 작가의 순수 창작이 아닌 알베르트 스피어가 건설하려고 한 모양이다. 근데 이 거대한 도시의 조형물에 대한 관광에서 안내자가 뱉어내는 단어에서 자주 보이는 것은 다른 유명한 건물들의 몇 배니 최고(最高)니 최대니 하는 단어인데 우리가 신문에서 매일 접하는 단어임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이런 현실에 대한 풍자와 냉소가 가득한데 현실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한 시기를 비틀어 새롭게 만들어낸 역사임을 생각하면 더욱 재미난 부분이다. 또 그 시대에 존재하는 많은 인명들이 실존하는 인물들임을 생각하면 작가의 기발함이 돋보인다.
사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르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단서를 찾고, 좇고, 실망하고, 다시 찾아내는 반복 속에서 이 연속 살인에 숨겨진 비밀이 무엇인가 궁금해진다. 살인자를 처음부터 보여주기에 왜? 라는 사실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나치가 유럽을 제패하였다면 결코 알려지지 않았을 사실이기 때문이다.
많은 분량이다 보니 단숨에 읽기는 약간 힘들다. 하지만 한 번 손에 들고 앉으면 쉽게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빠져들게 되면 한두 시간은 그냥 흘러간다. 치밀하고 세심하게 계산된 세계와 인물들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두뇌싸움은 이 소설의 가장 재미난 부분이다. 제목에서 당신들의 조국이라고 했는데 왠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떠오르게 한다. 단순히 조국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바꾼 의도는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나라가 숨긴 비밀과 부패를 보면서 그가 느낀 감정이 아닐까 한다. 또 마지막 장면에선 다른 사람들이 많이 말했듯이 존 르 카레의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가 연상되었다. 아픔과 여운이 남고, 진실에 대한 희망이 남기에 더욱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폼페이’보다 이 소설이 더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