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저희 집으로 가입시더
윤문원 지음 / 밝은세상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글을 읽다 눈시울을 붉히는 경우가 요즘 많다. 이전보다 그런 책들을 많이 읽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감성의 폭이 좀더 넓어진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한때 가족이란 그냥 존재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받은 수많은 혜택과 주지 못한 몇 가지로 인해 참 미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런 때 가족에 대한 글에서 감정을 짜내는 문장이나 상황을 만나면 눈시울 붉히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풀어내는 수많은 사연들을 읽다 느낀 첫 번째 인상은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낯익은 상황들이 많은데 처음 생각한 것은 저자의 가족에 대한 여러 생각이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약간은 잔잔하고, 현실적이고, 아쉬움이 담긴 시선들을 기대한 것이다. 헌데 이 속엔 그런 다양하고 일상적인 시선이 아닌 일종의 사례집처럼 느껴진다. 한 사람의 성공이나 아픔을 가족을 중심으로 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눈에 물기가 찰 수밖에 없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니 가족 간의 반목과 사랑과 믿음이 들어있다. 한 집안이나 저자의 주변 인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시대나 성공담을 담은 이야기 등의 종류에서 만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당연히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되고, 이야기 사이에 직접적 간접적 연관성은 없다. 다만 가족이란 소재를 둘러싼 다양한 사례와 경험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시울을 붉히는 많은 장면을 만나지만 가슴 깊은 곳에 파고드는 감동은 없다.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님이나 몸이 불편한 딸을 위해 늘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부모님이나 실직으로 가장의 능력을 상실한 남편이나 아버지를 구하려고 불구덩이에 뛰어든 아들이나 자신이 죽으면 남게 될 동생 때문에 자살을 포기한 형 등이 이 속엔 있다. 놀랍고 대단하고 부럽고 존경스럽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아마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재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글들이 역시 어딘가에서 본 듯한 실화를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라 감동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저자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엮어내었다면 감동의 깊이는 더 깊어졌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 속에서도 저자의 경험이 묻어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나의 경험 일부와 만나면서 진한 울림을 주었다. 가볍게 아버지와 한 잔을 하고 좋아하시는 모습이나 함께 간 목욕탕이나 사소한 것들이 주는 조그마한 행복들을 저자가 얼마나 그리워하는가 보면서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의 행복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비록 내가 아쉬움을 느꼈다하여도 각각의 이야기에 담긴 사연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들의 모습이란 점에서 많은 점을 되돌아보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살가게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자신의 아이가 웃는다는 손님들의 말에 화를 내다니 이상한 사람들 아닌가! 자기 가문 사람들은 결코 웃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른 이유를 대지만 분명 웃고 있다. 그런 자신의 아이에 대한 부모들의 반응은 맙소사! 다. 보통의 가정이라면 좋아서 같이 웃고 즐거워할 텐데 이 집안은 괴상하다. 이 이상한 가족들이 운영하는 자살가게와 부모를 놀라게 한 아이 알랑의 기발한 생각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집에서 판매하는 것은 기발한 자살 도구들이다. 목매고 죽기위한 밧줄이나 독이 든 사과나 할복용 칼이나 잘 떨어지기 위한 콘크리트 덩어리 등이다. 손님에게 하는 인사는 “명복을 빕니다”이다.  “다음에 또 찾아주세요” 같은 말은 해서는 안된다. 당연하다. 자살가게 아닌가! 이런 가족에게 돌연변이 같은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이유도 기발하다. 병으로 죽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구멍 난 콘돔을 사용하다 태어난 것이다. 이런 우발적 탄생과 더불어 더 희한한 것은 그가 지닌 낙천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즐거움이다. 그의 이런 행동은 가게의 영업 방침과도 맞지 않고 그 시대의 암울한 현실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즐겁다.

 

소설 속 시대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마 미래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현실이라고 생각해도 무관하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현대 사회는 자살에 대한 충동에 휩싸여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자살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라는 말이 된다는 단순한 역설이 존재하지만 그것도 또한 사실이다. 살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죽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 소설 속 시대의 상황을 풀어내는 장면을 보면 그들이 자살 충동에 휩싸이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과장되게 표현되었고, 그런 장면들이 자살 도구를 판매하는 사람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영화에 대해 말하며 팀 버튼 감독을 많이 말하는데 잘 어울린다 생각한다. 역자가 프랑스 영화 ‘델리카트슨’이 생각난다고 했는데 그 영화의 이미지가 소설 속 장면 몇 개와 겹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기발하고 황량하면서 유쾌한 웃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넘어가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기발한 상상력이 발휘되며 블랙유머는 콕! 가슴을 찌른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의미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책을 덮고 난 후 가장 의문스러운 장면이다. 가장 역설적이며 앞에 일어난 모든 것을 뒤집는 듯한데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모르겠다.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그 해답이 보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줄어드는 남자 밀리언셀러 클럽 76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전설이다’를 영화로 보고 나오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 아냐? 하고 의문을 가졌는데 만들고 있다고 한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본 경우 대부분 불만스러운데 ‘줄어드는 남자’도 그런 흐름을 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기억하기론 딱 두 편이다. 이번 소설과 ‘나는 전설이다’. 단편은 잘 기억 못하니 넘어가고 비교적 장편에 가까운 이 두 편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혼자라는 점이다. 홀로 남은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데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왜 그는 자살을 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이었다. 희망이라는 자그마한 실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라는 원초적 공포에 굴복당한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홀로 있다는 것과 완전히 다른 존재들 속에 혼자 있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의문을 계속 생각하게 하면서 그들의 기구하고 괴상한 삶에 조금씩 빠져든다.

 

하루에 0.36센티미터씩 줄어드는 남자. 첫 만남은 안개와 괴물거미에게 쫓기는 장면부터다. 사전에 정보가 없었다면 기이한 판타지 세계에서 괴물들을 만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헌데 그 공간이란 곳이 지하실이다. 그가 자주 들락날락 한 그 장소다. 하지만 그의 크기는 2센티미터가 되지 않는다. 하루가 지나면 또 0.36센티미터 줄어들 것이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 처한 그를 다루는데 일상의 공간이 모험의 장소가 되고, 우리가 평범하게 생각한 것이 너무나도 거대해지는 장면에선 순간 정확한 거리와 공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다. 또 스콧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를 날카롭게 나열해 보여준다. 읽으면서 상상한 장면이나 상황들도 재현하여준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보다, 딸아이보다 작아지는 그의 모습은 다른 은유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권위가 줄어드는 남자나 힘의 상실 등으로. 하지만 그것은 너무 나간 듯하고 그녀들보다 작아지면서 생기는 짜증과 불안과 공포를 표출하면서 개인의 문제가 어떻게 가족의 문제로 확대되는지 보여준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들로 인해 짜증을 내고, 일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존은 위협을 받고,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구경거리가 되는 현실에 대해 잘 그려내었다. 하지만 이런 재미보다 더 자극적인 것은 그와 거미와의 대결과 지하실에서 펼치는 모험이다. 평소라면 가볍게 손으로 발로 눌러 죽일 존재가 그보다 커지면서 거대한 위협이 되는 장면은 상황의 논리로 해석이 가능하고, 그의 공포를 가장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천으로 감싼 망치에 맞는 듯한 느낌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일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하는 현실은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선 그가 예상한 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알게 하면서 다시 한 번 더 ‘나는 전설이다’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게 된다.

 

지난 번 소설에서 분량을 착각하여 약간 황당했지만 이번에 목차를 잘 읽었다. 또 이번 단편은 지난 번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도 많다. ‘시험’과 ‘몽타주’와 ‘버튼, 버튼’이다. ‘시험’이 흥미로웠던 것은 인구문제와 식량문제에서 노인문제로 이어졌다면 현재의 우리 또한 인구감소와 노년층 증가로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과 그 극단적 제도가 안타까움과 아픔을 주었다. ‘몽타주’는 영화의 장면들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삶과 연결되면서 이런 편집으로 짧게 나타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버튼, 버튼’이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문장 때문이다. 잘 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 주는 재미가 있고, ‘홀리데이 맨’은 그 정체가 궁금하고, ‘배달’은 그 남자의 직업이 정확히 무엇인지와 나의 인생이 다른 사람의 조작에 의해 어떤 파국으로 갈 수 있는지가 재미있었다. ‘예약손님’에선 숨겨진 의도와 동업이, ‘결투’는 이전에 본 영화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지며 한 편의 단편소설이 어떻게 영화로 바뀌는가에 대한 것으로 발전했다. 마지막 ‘파리지옥’에서 벌어지는 행동을 보며 한여름 무더위에 겨우 잠든 시간, 한 마리의 모기에 의해 벌어지는 혈투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경험자는 알 것이다. 그 순간 모기를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이고 흥분하고 눈을 붉히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인(惡人). 단어만 놓고 보면 악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첫 감정은 도대체 악인은 누군가? 하는 의문이다. 결과로만 본다면 살인자가 악인이겠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가는 악인이란 제목으로 결과만이 아닌 그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읽기 전에 먼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사회적 분석까지 덧붙여 멋지게 그려낸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가 연상되었다. 책 소개 글에서 이런 분위기를 풍겼고, 어쩌면 엄청나게 압도적인 느낌을 받은 소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유’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그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그러면서 마주한 것은 각 장의 제목들이었다. 희망과 과거와 현재의 느낌을 담은 그 제목들을 보면서 조금씩 빠져들었다.

 

처음엔 사실 이전에 본 작가의 다른 책처럼 건조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남을 속이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약간 황량한 기분이 들었다. 피해자 요시노와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는 진솔함보다 가짜로 가득한 느낌을 주었다. 이어지는 유이치의 이야기에선 불안함이 느껴지고 긴장감이 전해졌다. 그리고 새롭게 나온 미쓰요의 일상에선 지지부진한 삶의 한 단면이 극대화된다. 이런 사람들의 만남이 거짓과 위선에서 진실한 감정으로 이어지면서 소설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미스터리소설에서 연애소설로. 그 감정의 전환이 비록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지만 속도감과 몰입도를 높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뉴스로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소식들은 대부분 결과뿐이다. 왜? 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왜? 가 궁금하고 풀어지는 것도 진실한 왜? 가 아닌 보여주기 위한 왜? 인 것이다. 여기서도 매스컴의 속성은 잘 다루어진다. 왜? 에 대한 호기심은 그냥 단순히 흥미꺼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또 다른 흥미꺼리를 찾아서 그 주변 사람들로 눈길을 돌리고 상관없는 것들도 파헤치고 까발리면서 규모를 확장시킨다. 이런 시선들에서 좀더 깊이 들어가 사건 당사자들을 만나게 되면 덧칠되어진 허상이 지워지고 본래의 참모습이 보이게 된다.

 

다른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살인자의 내면과 삶을 파고들면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숨겨진 삶이 나타난다. 왜?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이유들은 분명 악당인 인물도 독자가 이해하게 만든다. 소설의 매력이다. 이 소설도 그렇다. 살인자 유이치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상황을 보여주면서 과연 그가 악인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사건을 따라가면 첫 번째 용의자 마스오의 행동이 없었다면이란 가정과 피해자 요시노의 삐뚤어진 삶의 방식과 자기 기만적 행동이 그런 결론으로 이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살인자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까지 오는 과정에서 벌어진 다양한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재미있고 잘 읽힌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악인이 누군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먼저 살인자를, 다음으로 마스오를 생각하게 되는데 특히 마스오의 행동들은 철부지 모습과 사람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음을 느끼게 하면서 나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하나의 살인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과 삶이 주는 재미는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인위적인 결말로 이어가면서 살짝 아쉬움을 준다. 하지만 유이치가 한 말 중 어머니와 자신이 모두 피해자가 되길 원했다고 한 대목은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열쇠가 아닌가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트의 역사 - 마음과 심장의 문화사
올레 회스타 지음, 안기순 옮김 / 도솔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렵다. 생각한 것보다 쉽게 읽히지 않았다. 하트라는 말이 심장과 마음이란 두 의미로 풀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철학적 문화적 사유들이 담겨있다. 한 시대나 한 지역에 제한되었다면 더 쉬웠을지 모르지만 유럽과 중동과 아즈텍 문화까지 포괄하고, 각 종교 속에서 하트에 대한 의미를 탐구한다. 어쩌면 너무 쉽게 생각한 내가 가장 큰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하트(heart). 그냥 보통 심장이나 마음으로 번역 가능하다. 사랑의 징표로 현재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냥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신나고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심장이라고 하면서 각 지역과 시대마다 심장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것이었다면 약간 힘들지 모르지만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어렵게 느껴진 것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철학 서적을 너무 오랫동안 멀리 했다는 것도 이유고, 마음속으로 심장에 대해 해부학적 지식을 담고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기계론적으로 보면 단순히 엔진과 같은 것인데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하게 설명해야 하는 반감이 작용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내가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철학적 문화적으로 풀어낸 하트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 읽은 과학 교양서적에서 심장에 대한 해부학 지식과 뇌에 대한 약간의 이해를 얻었기에 과거에 심장에 대해 생각한 것들이 약간은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문화사나 철학사와 엮어 생각하면 심오한 내용이 된다. 이집트인이 미이라를 만들면서 뇌를 없애면서 심장은 남겨 놓은 것이나 아즈텍 문화에서 인신공양을 하며 심장을 바치는 것이나 그리스 시대를 지나 유럽 그리스도교에서 심장과 관련된 신학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슬람 종교와 어떻게 다른지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하면서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그리스와 그리스도교에서 나타나는 심장과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엔 그냥 쉽게 지나간 것들인데 이 책에선 가장 많은 분량과 심도 있는 연구가 이어진다. 호메로스의 두 저작에 대한 분석을 심장과 연관하여 풀어낸 해석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책들을 보게 만들었다. 인간이 영혼을 만든 목적을 스스로 지배하고 자신 안에서 사납게 날뛰는 힘을 통제하고 절제하여 생각을 한데 모아 마음의 평정을 찾지 위해서(53쪽)란 대목에선 깜짝 놀랐다. 그 후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그리스 철학을 받아 논리를 강화하고 발전시켰는지 보았다. 서구의 개인주의가 그리스도교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존재하기 어렵다는 대목에서 예로 나온 천안문 사태의 한 장면은 많은 점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서구 문화의 핵심 관념으로 개인적이고 사적인 죄의 개념을 지적하고 자책의 문화라고 한 대목에선 천주교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시대가 지나고 여러 철학자들의 글들에서 심장과 마음, 이성과 영혼 등에 대한 이해를 좀더 깊게 하게 되고 사랑과 낭만주의 글에서 하트가 종교적 그늘을 벗어나 인간의 육체로 돌아온 장면에서 약간 더 편하게 읽게 되었다. 성 담론 글에서 억압보다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불안 조장 선전 등의 성도덕을 아는 것보다 에이즈 감염에 대해 아는 것이 교육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한 대목에선 질병을 판매하는 요즘의 상업주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어 현재의 밸렌타인데이에서 심장 상징이 소비주의 시대의 상품들과 똑같이 소비된다고 지적한 대목에선 괜히 씁쓸한 마음이 생긴다.

 

어렵게 느껴지고 힘들게 느껴지던 글들이 약간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은 역시 마지막에 가서다. 현대의학에서 심장을 대체 가능한 하나의 근육처럼 생각하고, 생각이 이루어지는 곳을 두뇌에 두고 있지만 우리가 아직도 마음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 두고 있는 것은 심장 때문이다. 비록 해부학 지식에 의해 밝혀진 사실일지라도 심장은 증후이고 상징이며 그 이상이고, 이것은 단순히 심장만의 것이 아닌 ‘심장과 머리, 이성과 감성 사이의 숭고한 상호작용’(418쪽)이란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