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의 역사 - 마음과 심장의 문화사
올레 회스타 지음, 안기순 옮김 / 도솔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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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생각한 것보다 쉽게 읽히지 않았다. 하트라는 말이 심장과 마음이란 두 의미로 풀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철학적 문화적 사유들이 담겨있다. 한 시대나 한 지역에 제한되었다면 더 쉬웠을지 모르지만 유럽과 중동과 아즈텍 문화까지 포괄하고, 각 종교 속에서 하트에 대한 의미를 탐구한다. 어쩌면 너무 쉽게 생각한 내가 가장 큰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하트(heart). 그냥 보통 심장이나 마음으로 번역 가능하다. 사랑의 징표로 현재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냥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신나고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심장이라고 하면서 각 지역과 시대마다 심장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것이었다면 약간 힘들지 모르지만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어렵게 느껴진 것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철학 서적을 너무 오랫동안 멀리 했다는 것도 이유고, 마음속으로 심장에 대해 해부학적 지식을 담고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기계론적으로 보면 단순히 엔진과 같은 것인데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하게 설명해야 하는 반감이 작용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내가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철학적 문화적으로 풀어낸 하트에 대한 것이다. 얼마 전 읽은 과학 교양서적에서 심장에 대한 해부학 지식과 뇌에 대한 약간의 이해를 얻었기에 과거에 심장에 대해 생각한 것들이 약간은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문화사나 철학사와 엮어 생각하면 심오한 내용이 된다. 이집트인이 미이라를 만들면서 뇌를 없애면서 심장은 남겨 놓은 것이나 아즈텍 문화에서 인신공양을 하며 심장을 바치는 것이나 그리스 시대를 지나 유럽 그리스도교에서 심장과 관련된 신학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슬람 종교와 어떻게 다른지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하면서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그리스와 그리스도교에서 나타나는 심장과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엔 그냥 쉽게 지나간 것들인데 이 책에선 가장 많은 분량과 심도 있는 연구가 이어진다. 호메로스의 두 저작에 대한 분석을 심장과 연관하여 풀어낸 해석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책들을 보게 만들었다. 인간이 영혼을 만든 목적을 스스로 지배하고 자신 안에서 사납게 날뛰는 힘을 통제하고 절제하여 생각을 한데 모아 마음의 평정을 찾지 위해서(53쪽)란 대목에선 깜짝 놀랐다. 그 후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그리스 철학을 받아 논리를 강화하고 발전시켰는지 보았다. 서구의 개인주의가 그리스도교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존재하기 어렵다는 대목에서 예로 나온 천안문 사태의 한 장면은 많은 점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서구 문화의 핵심 관념으로 개인적이고 사적인 죄의 개념을 지적하고 자책의 문화라고 한 대목에선 천주교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시대가 지나고 여러 철학자들의 글들에서 심장과 마음, 이성과 영혼 등에 대한 이해를 좀더 깊게 하게 되고 사랑과 낭만주의 글에서 하트가 종교적 그늘을 벗어나 인간의 육체로 돌아온 장면에서 약간 더 편하게 읽게 되었다. 성 담론 글에서 억압보다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불안 조장 선전 등의 성도덕을 아는 것보다 에이즈 감염에 대해 아는 것이 교육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한 대목에선 질병을 판매하는 요즘의 상업주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어 현재의 밸렌타인데이에서 심장 상징이 소비주의 시대의 상품들과 똑같이 소비된다고 지적한 대목에선 괜히 씁쓸한 마음이 생긴다.

 

어렵게 느껴지고 힘들게 느껴지던 글들이 약간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은 역시 마지막에 가서다. 현대의학에서 심장을 대체 가능한 하나의 근육처럼 생각하고, 생각이 이루어지는 곳을 두뇌에 두고 있지만 우리가 아직도 마음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 두고 있는 것은 심장 때문이다. 비록 해부학 지식에 의해 밝혀진 사실일지라도 심장은 증후이고 상징이며 그 이상이고, 이것은 단순히 심장만의 것이 아닌 ‘심장과 머리, 이성과 감성 사이의 숭고한 상호작용’(418쪽)이란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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