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오류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토머스 키다 지음, 박윤정 옮김 / 열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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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목적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살짝 놀랐다. 내용의 핵심이 회의적인 사색가가 되는 법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회의주의자를 무언가를 믿기 전에 엄격히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을 열어 두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증거다. 믿기 전에 증거를 찾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 대부분은 이런 과정이 귀찮고 번거롭고 짜증나는 일일 뿐이다.

 

책에서 주장하는 여섯 가지의 오류는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한다. 운과 우연의 일치를 간과하는 것, 실재하지 않은 것을 보는 것, 상관없는 것에서 연관성 찾기,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하는 것,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찾기, 단순화 전략을 맹신하는 것 등이다. 이 여섯 가지 사례를 읽다 보면 고개를 쉼 없이 끄덕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과거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이 수없이 나오면서 참 멍청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사례들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계자료보다 이야기에 더 쉽게 넘어가고 경험에 의한 것이라면 더 믿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나 자신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경험했다고 하면 일단 점수를 더 주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건 등을 살 때 요즘 개개인의 평가에 신경을 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 자신의 필요나 취향과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이 그 물건에 대해 평가한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만약 이전에 이 물건에 대해 좋은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평가들에 대해 냉소를 가끔 날리기도 한다. 반성해야 될 점이다.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말 중에서 시선이 가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생각이라도 함부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분명한 증거가 있다기보다 무언가를 믿고 싶어서 믿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란다. 책 처음에 나오는 이 문장에 가슴이 콕 찔리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의 경험담이나 소문 등을 듣고 확인을 거치기보다 그냥 믿고 마는 것이다. 그 내용이 자극적이거나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의 소문이라면 더욱 믿고 싶어진다. 또 하나는 분석의 틀 자체가 잘못되었는데도 그 틀을 고집하고 분석을 더 잘하게 배워야 한다고 고집하는 장면이다. 재미난 점은 분석의 의한 성공은 그 틀을 사용한 덕분이고 실패는 다른 원인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은 우리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다. 물론 분명히 한계는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한계에 집중하고, 어떤 사람은 그 효용성에 시선을 둔다. 자신의 목적이나 이익을 위해 사실은 왜곡되고 진실은 사라진다. 그 실체를 정확히 알게 하는 것보다 공포나 흥밋거리를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을 부추기는 것이 더 이익이 되고, 잘못은 관대한 기억의 부정확 때문에 쉽게 잊혀진다. 또 하나의 예로 나온 기억의 부정확과 왜곡 때문에 성추행으로 감옥에 간 아버지 이야기는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을 모두 읽은 지금 머릿속은 복잡하다. 내가 잘못한 것들이 스쳐지나가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몇 번 글을 쓰고 다시 지우고 한다. 지나가는 생각들이 더 부채질한다. 책을 뒤적이며 읽을 당시 느꼈던 그 기분을 되살려보려고 한다. 너무 회의적인 지식이 담겨있다 보니 살짝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이나 사람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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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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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작가다. 최근에 본 작가 중 오락성만 따지면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간결한 문장과 빠른 장면 전환으로 시선을 잡아끌고, 잘 짜인 구성은 기대를 하게 만들며 충분한 재미를 누리게 한다. 어쩌다 그의 최신작부터 역순으로 읽고 있지만 두 권만으로 그에 대한 나의 신뢰는 충분히 깊어졌다. 아마 최대 히트작이자 세 번째 소설이자 세 번째로 읽는 소설인 ‘구해줘’로 이 즐거움이 이어질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한다. 후회하는 순간이 언제였는지? 과거로 돌아가면 어느 때로 가고 싶은지? 이 질문을 받으면 생각에 잠긴다. 후회한 순간은 워낙 많아 다 말할 수 없고, 돌아가고 싶은 과거는 딱 꼬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그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 엘리엇은 바라는 바가 있다. 30년 전 자신의 연인이었던 다시 한 번 더 보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서는 시작된다.

 

평생 가장 사랑했던 여인 일리나. 미래에서 과거를 본다면 분명 바로 잡을 기회가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바란 것은 그녀를 맘껏 쳐다보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 만난 그와 대화에서 그녀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큰 변화를 예고한다.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생각하자. 과거의 변화는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죽음을 보고 견디기보다 그녀의 살아있는 이별을 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여기서 작용하는 힘은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변하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쉽게 모든 것이 풀린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어나는 돌발 상황과 그에 대처하는 두 엘리엇의 모습과 사랑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나로 하여금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한 번만 더. 이 단어는 우리가 쉼 없이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회가 주어져도 우린 다시 한 번 더를 외친다. 그 소중한 기회를 올바르게 제대로 이용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기회가 더 크고 비상식적일 경우 더욱 그렇다. 그래서 신비한 알약이 열 알인 모양이다. 한 번의 기회로 모든 것을 바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것은 다른 소설에도 자주 나오는데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인 듯하다. 어쩌면 이런 상황이 소설에 더 재미를 주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어디에 분류하여야 할까? 시간여행이란 소재는 SF소설에, 그 속에 담긴 사랑은 연애소설로, 풀어나가는 방식을 보면 미스터리소설로도 가능하다. 이렇게 복잡한 장르가 뒤섞여 있는 속에 작가는 자신의 특징과 매력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이전에 읽은 ‘사랑하기 때문에’에서도 이미 경험하였지만 이런 구성과 전개는 영상적이고 단숨에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약간 유사한 점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것이 너무 고착화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읽게 되지 않을까 한다.

 

단 두 권으로 이 작가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 하지만 프랑스 작가지만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현재보다 과거에 더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찾아본다. 미국이 주 무대인 것은 다른 책도 마찬가지인 듯하고, 과거에 대한 것은 다른 책을 더 본 후 평가해야겠다. 허나 현재와 미래의 변화를 과거에서 찾는 작업을 보면서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미 결정된 과거를 다루며 즐거움을 준다. 이 점은 뒤에 나오는 연도별 사건, 사고나 스티븐 킹에 대한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 세상에 킹이 5년쯤 지나면 잊혀질 작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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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관용과 카리스마의 지도자
아드리안 골즈워디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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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을 자주 읽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전집으로 나온 위인전을 열심히 읽은 기억은 있지만 그 후 특별히 찾아 읽은 기억은 없다. 물론 몇 권의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나에게 비교적 비주류의 세계다. 하지만 잘 읽지 않는 평전이나 자서전을 한두 권씩 사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언젠가 읽겠지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한다.

 

사실 카이사르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일부다. ‘브루투스 너 마저! ’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와 같은 너무나도 유명한 대사와 함께 세기의 미인으로 인식되어 있는 클레오파트라 정도가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로마 공화정 시대 마지막을 장식한 독재관으로 여러 사람으로부터 추앙을 받거나 독재자로 미움을 받는 그를 보면서 그의 실체가 늘 궁금하였다. 물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니 다른 소설 등으로 그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좀처럼 시대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없었다. 근데 이 책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닌 그 당시 로마를 중심으로 한 유럽과 아프리카 세계를 보여주면서 왜? 카이사르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한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보여주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장점으로 꼽은 시대 묘사를 보면 단순히 카이사르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마리우스, 술라 등의 전대 인물과 동시대의 폼페이우스나 키케로나 카토 등의 다양한 위인들을 같이 다루면서 현장감을 살려낸 것이다. 저자가 목표로 한 이 카이사르의 일생을 고찰하고 그것을 기원전 1세기 로마 사회를 배경으로 투영시키는 것이라 한 것이라는 점만 보아도 명백하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현재의 관점에서 그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관점도 같이 말하면서 평가를 입체화시켰다. 현대 평가 기준으로 본다면 결코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할 점들도 많지만 그 당시 최고의 대중주의 정치가였던 그가 로마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한 정치와 승리를 구가했다는 점을 머릿속에 계속 두고 읽어야 한다.

 

한 명의 특출한 독재자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는 것보다 논쟁과 당쟁이 있다 하여도 의회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역사의 긴 시간에서 보면 그 당시 로마 공화정은 이미 그 힘을 다한 듯 보인다.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는 기원전 1세기 로마 사회를 그려낸 것이다. 그 이전에 엄청난 권력을 가졌지만 결코 왕으로 발전하지 않은 인물들과 카이사르를 계속 비교한다. 그리고 부패하고 타락한 공화정 내부의 모습도 동시에 보여주면서 그의 뛰어난 업적과 사람들에게 자리한 공포와 기대를 동시에 그려낸다. 이 부분에서 비슷한 이름과 낯선 사람들로 약간 진도가 더디지만 역사의 전면에 카이사르가 나온 ‘갈리아 전쟁기’부터 신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정치에 대한 저자의 글 중에 “정치는 본질적으로 개인간의 투쟁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경쟁자였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갈채를 ‘받는’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받는’것이었다.”는 대목은 카이사르의 기본 정치관을 가장 잘 나타낸 표현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것은 현대 정치에서도 중요한 점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카이사르의 관용으로 불리는 행동과 금전에 대한 큰 씀씀이는 로마인들이 전쟁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행운을 불러오는 요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온몸으로 품어내는 카리스마와 멋진 연설과 미래에 대한 보장은 그의 연승을 이어주고, 위기에서 탈출하게 하는 강력한 요인이기도 하다. 가끔 그가 지불한 금액에 대한 글에서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로마 시민들이 그에게 더 열광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카이사르 애정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단순한 숭배자라면 그의 실수나 실패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에 대한 평가에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물론 그 냉정한 시선이 과연 중립적인가 하는 부분은 또 다른 논쟁이 되겠지만 최소한 과도하게 포장하지는 않았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수많은 이야기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논쟁이 되는 부분에선 중도적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음모자들이나 키케로 등이 주장한 카이사르가 평생토록 절대 권력을 꿈꾸었다는 대목에선 저자가 회의적인 시선을 보인다. 특히 음모자들이 신봉한 공화국이 원로원 엘리트들의 특권을 충실히 옹호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은 책 전반에 걸쳐 나오는 부패와 타락과 폭력 등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 시대의 윤리나 도덕 등이 비록 현재와 다르다 하지만 역사 속에 드러난 민중들의 마음이 그들과 다른 것을 보면 분명히 민심과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그가 암살됨으로써 왕정으로 가는 시간이 좀더 빨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기원전 1세기를 다루면서 긴 시간 동안 나에게 인물과 시대가 뒤섞여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브루투스를 카이사르의 친구처럼 기억하고 있던 것도 바로잡았고, 마리우스와 술라나 폼페이우스나 카토나 키케로 등의 인물에 대한 시대와 인물상을 어느 정도 재정립하게 되었다. 그밖에도 수많은 즐거움이 있는데 너무 많은 분량의 책이라 한꺼번에 기억하기에 벅차다. 하지만 이 한 권으로 카이사르 시대와 그 이전 세대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점은 엄청난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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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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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한국소설보다 외국소설을 더 많이 읽는다. 읽다보면 번역체의 어색함이나 낯선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풀어내는 재미라는 측면에서 낯선 곳의 풍경과 내면은 우리소설에서 쉽게 느끼지 못하는 재미를 주었다. 그래서 한때 즐겨있었고 지금도 가끔 즐겨있는 우리소설보다 외국소설에 더 손이 간다. 그러다 가끔 읽는 우리소설에서 예상하지 못한 보물을 발견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소설이 그렇다. 좋아하는 출판사지만 잘 알지 못하는 작가기에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재미있다.

 

이 소설을 보면서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소록소록 살아났다.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이란 영화에서 사투리가 얼마나 엄청난 문화유산인가와 소위 표준어 정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은 적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첫 감상은 우리글과 말을 맛깔스럽게 살려내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문장만 아름다웠다면 거기에 그쳤겠지만 이젠 거의 사라진 듯한 기생이란 존재를 현재에 살려내면서 흥미를 돋우었다.

 

군산의 부용각이란 기생집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풀어진다. 부엌어멈에서 시작하여 소리기생 오마담을 지나 춤기생 미스 민을 거쳐 기둥서방 김사장과 박기사까지 도착하면 부용각이란 공간이 단순한 기생집을 넘어 사람들의 삶이 깃든 곳임을 알게 된다. 타박네로 불리면서 맛난 음식을 만드는 그녀가 중심을 잡고, 기둥서방에게 계속해서 재산을 빼앗기는 명창 소리기생 오마담의 과거와 현재를 듣다보면 근대 기생들의 변천사가 절로 눈에 들어온다. 새롭게 기생이 된 미스 민의 사연과 혹시 그녀가 이 시대 마지막 기생일지도 모른다는 타박네의 생각은 아쉬움을 생기게 하고, 타박네가 죽은 후 부용각을 들어먹을 생각을 하는 기둥서방 김사장을 보면 세상살이의 무서움을 느낀다. 처음에 그냥 지나가는 인물 중 하나로 생각한 집사 박기사의 사랑을 읽다보면 그가 행복한 것인지 그녀가 행복한 것인지 경계가 어려워지지만 안타깝고 부러운 마음도 있다.

 

분량으로 따지면 240쪽도 되지 않지만 읽는 재미를 주기에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화려한 묘사도 있고, 자세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도 있지만 역시 우리글과 말이 주는 묘미가 가장 크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길게 풀어놓고 그려내는 문장이 어우러져 읽는 재미를 주는 것이다. 시대의 유물이 되어가는 기생들의 삶의 한 모습을 들여다보며 삶의 지혜 한쪽을 얻어가고, 시대의 변화 속에 변해가는 그들의 삶에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살짝 배여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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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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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고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을 공감하게 되었다. 내가 이미 지나온 시간들이지만 현재의 20대에 대해 단순히 피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더 심각하게 풀어내고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대와의 비교를 통해 나뿐만 아니라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세대 내 경쟁을 넘어 세대 간 경쟁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 불과 10년이다. 연공서열이 무너지고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현실에 이렇게 아프게 다가온 책도 드물다. 이전에 박노자의 책에서 한국에서 태어난 나보다 더 한국의 현실을 잘 알고 애정을 가진 그를 보며 놀랐듯이 이 책에서도 새로운 시각과 논쟁거리를 알게 되었다. 읽다보면 상당히 암울한 현실과 미래가 펼쳐지는데 그 속에서 저자가 풀어내는 몇 가지를 생각하며 가능성을 타진하는 나를 본다. 그리곤 높은 현실의 벽에 가로 막혀 근본으로부터의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쉽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더 깨닫는다.

 

이 글 이전에도 비정규직이 문제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은 것은 아니다. 우리와 비교되는 일본의 현실을 드라마나 책으로 접하면서 많은 유사성을 보게 되는데 90년대 이후 정치 경제 분야와 행정 분야에서 특히 많은 점을 생각하게 된다. 공무원들의 뛰어난 업적처럼 말해지는 많은 것들이 일본에서 이미 시행되었던 것이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학원에 시달리는 현실을 몇 년 전에 미리 본 것을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행정적 문화적 비슷함과 달리 경제적 형태에서는 미국식을 극단적으로 따르면서 엄청나게 문화와 충돌을 일으키고 괴리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일본식 성장모델을 가지고 오다 IMF를 통과하면서 벌어진 틈이 아닌가 짐작한다.

 

또 우리의 386세대에 대한 글에서 세대 간 문제를 들여오면서 현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은 섬뜩했다. 지금의 엄청난 과외열기와 더욱 단단해진 진입장벽을 보면서 그 주체가 386이란 점에 무서움을 느꼈다. 그들의 정치성향이 이 나라에 민주화를 가져왔지만 유럽의 68세대와 비교하여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하는 부분에선 90년대 후일담 이야기들과 맞물리며 자기만족에 빠져 있던 것은 아닌가 한다. 386세대 이전 4.19세대가 유신을 지나며 하나의 보수로 돌아간 것처럼 이들도 하나의 세력으로 학벌사회를 더욱 강화시키며 교육 엘리트주의를 강화하면서 자신들만의 성곽을 쌓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20대가 독립해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는 무척 힘들다. 높은 집값에서 낮은 임금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이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 30대라면 20대는 더 높은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자주 비교되는 일본의 상황에서 프리터들이 알바만으로 생계가 유지되는 반면 한국에선 힘든 것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단순 비교의 위험을 다시 알게 되었고, 압축성장의 부작용이 지금도 터져 나오는 현실에서 분배가 아닌 성장을 외치는 언론이나 권력집단들을 보면서 더욱 암울한 20대의 모습을 본다. 그래서 저자는 바리케이드와 짱돌이라는 80년대 용어를 들고 나왔는지 모른다. 바리케이드는 20대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짱돌은 마케팅과 브랜드의 노예로 전락한 그들이 하나의 협동체로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만 좋으면 편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세대 내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친일청산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큰 오점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한 해석은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가 독일부역자가 비시정권의 인물을 끊임없이 청산한 것과 비교하는 대목에서 서구적인 의미의 민족주의자가 없었다는 지적한 부분이다. 60대 이상 세대가 민족보다 ‘능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민족주의자가 아닌 반공주의자로 살았다는 대목에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독립군과 그 후손들은 멸종되었고, 소위 일제와의 대척점에서 활동한 순혈 민족주의자 혹은 행동하는 민족주의자를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멸종시킨 사람들이 지금의 60대 이상이란 대목과 지독하게 단결이 강했고 시장경쟁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 세대가 ‘공정한 경쟁’이나 ‘민족주의’대신 ‘고향사람’이란 말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었단 대목에선 현대 한국사 비극의 시발점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경제학을 전공하였지만 이젠 많은 부분 이론이나 경제사 분야에 대한 지식을 잊어버렸고 현재 새롭게 대두되는 부분에 대해 무지하다. 분석의 틀로 사용되는 수많은 경제학 용어들이 생소하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는데 지장은 없었다. 그만큼 쉽고 평이하게 쓰인 책이다. 물론 사람 따라 상당히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국 경제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에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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