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독서클럽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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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에 읽은 추리소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아카쿠치바 전설’의 소설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되었다. 전작도 긴 세월을 다루었는데 이번에도 백년이란 시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섯 이야기다. 각각 독립되어 있지만 성마리아나 학원의 독서클럽 부원이 기록원이고, 그들이 이 사건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충분히 매력적인 구성과 진행이다. 어여쁜 소녀들과 그녀들의 숨겨진 욕망을 곳곳에 드러내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한 편 한 편이 재미있다. 첫 이야기가 펼쳐지는 1969년은 일본에서 과격한 학생운동이 일어나던 시기다. 저자는 살짝 말하지만 밖의 사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학원 내 풍경과 분위기 묘사에 주력한다. 이것은 책 마지막까지 변함이 없다. 한정된 공간과 여자들만 모여 있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권력과 욕망과 사랑이 끝까지 이어진다. 아니 잠시 두 번째 이야기에서 성마리아나 학원 설립자의 프랑스 생활이 나온다. 이것만 예외적인 상황이고 나머지는 이것과 더불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묻혀있던 암흑의 과거사와 함께 드러난다. 유쾌하면서 변덕스러운 여학생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학원소설의 장점이 무엇인가? 밝음, 청춘, 기발함, 열정 등이 아니던가! 10대 여학생들이 자신들만의 성곽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던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짜 왕자다. 그의 성별은 여자다. 하지만 여자만 있는 곳이니 우상으로써의 남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가짜 왕자를 축제 때면 선출한다. 대부분 이 왕자는 연극부의 아름다운 소녀들이 선택된다. 긴 세월 속에 어떻게 한 단체가 독주할 수 있겠는가? 이 변수들과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백년이란 세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만 뽑아놓은 것이니 재미난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소녀를 위한”이 아닌 “청년을 위한”이란 제목이 생긴 것 같다.

 

책을 읽다 놀라는 장면 중 하나는 독서클럽의 학생들이 원서를 읽고 있는 장면이다. 영어도 있지만 불어를 읽는 모습이나 현대 영어가 아닌 고문으로 된 책을 읽는 모습에서 그들의 수준에 놀란다. 그리고 왕자를 만들어내는 첫 이야기는 과거라는 시간 속에 펼쳐진 현대의 이미지 전략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모습과 장면을 연출하여 그를 추종하는 무리를 만드는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눈시울을 붉힌다는 여고생들이 이 멋진 대상에게 환호성을 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약간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 의심도 해보지만 열광적인 팬들이 매체에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

 

‘아카쿠치바 전설’을 정신없이 읽었다. 푹 빠져 있었다. 이 소설에도 약간은 그런 기대를 하였지만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다섯 이야기 때문인지 그때처럼 빠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재미있다. 각 이야기마다 나오는 매력적인 주인공들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이 암흑사를 기록하는 클럽 부원의 코드네임도 재미있다. 지우개 탄환이니 양성구유 시궁쥐라느니 소도구 말 목 등으로 이야기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백년이란 긴 세월 속에서 기록된 암흑의 독서클럽지엔 얼마나 많은 재미나고 즐거운 이야기가 실려 있을까? 몇 개 더 추려서 실어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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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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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읽었다. 재미있다. 역시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속도감과 마지막에 주는 여운이 잘 어우러져 있다. 철저한 오락소설이란 광고처럼 사람을 빨아들인다. 비틀즈의 노래와 JFK 암살을 모태로 만든 이 소설이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정치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것을 무시하고 그냥 이야기에 집중해도 충분히 재미있다.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3부와 마지막 5부다. 사건 20년 뒤를 다룬 3부와 사건 석 달 뒤를 다룬 5부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에 수많은 암시와 복선이 깔려 있고 뒤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몇 번이나 3부를 뒤적이며 깔아놓은 복선을 확인하였다. 이 소설이 주는 재미 중 하나다.

 

다양하고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살아있다. 약간 과장된 점이 있기도 하지만 각각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내고 있다. 정말 이틀 동안 죽기 살기로 도망 다닌 주인공 아오야기 마사하루나 그를 돕는 대학 동창들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다. 특히 모리타는 스타워즈의 오비완처럼 죽어서도 영향을 끼치는데 환영일지라도 중요한 순간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의 옛 연인이었던 히구치는 그에 대한 의문과 의심을 독자들로 하여금 지우게 만든다. 사소한 습관과 행동이 음모를 가볍게 깨트리는 장면은 소소하지만 중요하고 유쾌하다.

 

이 소설에서 강한 인상을 주는 악당이 한 명 있다. 연쇄살인범 미우라다. 분명 그는 사회악이다. 하지만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처럼 그가 총리 암살 용의자를 돕는데 놀라운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 악당을 멋지게 활용하지만 그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살인에 대해 감정이 없는 그를 보면 무섭지만 이 소설 속 활약에선 왠지 모르게 조금은 호감이 생긴다. 그렇다고 그의 악행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의 적인 그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에 조금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다.

 

멋진 등장인물이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면 잘 짜인 구성과 복선은 재미를 준다. 그 특유의 문장과 세계관은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날 수 없다. 비록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지만 그 속에 담긴 비판과 패러디는 그가 얼마나 멋진 이야기꾼인가 알려준다. 하나씩 복선을 깨닫고, 장치해 놓은 구성을 파악하면서 느끼는 재미는 대단하다. 어떤 때는 노골적이지만 조금씩 숨겨둔 장면에서는 보물찾기를 하는 느낌이다.

 

음모론을 기반으로 쓴 소설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가 펼쳐 보여주는 일본의 가상공간은 변화하는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특히 용의자로 발표되기 전부터 그를 뒤쫓는 경찰의 모습과 기회가 되면 사살하려는 장면들은 현재 한국의 촛불집회와 연계되면서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가장 믿어야 하는 경찰이 방패와 곤봉으로 무방위로 누워있거나 서 있는 시민을 때리는 현실에서 그의 상상이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장면들은 물론 다른 소설들에서 수없이 다루어진 소재이기는 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권력에 휘둘리는 공권력을 보고 있기에 색다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모두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읽은 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읽기 전엔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니 2008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다. 최근 재미있게 읽고 있는 문학상이다. 한동안 이 상에 대한 신뢰는 지속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수상보다 한 인간을 음모 속에 밀어놓고, 죽을 때까지 몰아가는 현실과 그 속에서 발버둥치는 주인공과 그를 돕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더 강렬한 인상과 재미를 준다. 그리고 언론과 매스컴을 우리는 얼마나 믿어야 하는가 하는 원초적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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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가서 빼먹지 말아야할 52가지
손봉기 지음 / 꿈의날개(성하)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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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꼭 봐야 하는 것이 52가지나 되는가와 52가지 정도 밖에 볼 것이 없는가 라는 생각이다. 이 말 장난 같은 표현에 내가 유럽에 대해 가지는 환상과 동경 등의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있다. 몇 곳은 정말 예전부터 보고 싶은 곳이고, 몇 곳은 보지 않았지만 그냥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 여행지에 가서 보면 그 감동이 쉽게 사그라지는 순간이 많았다. 물론 그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나의 감성에도 문제가 있는 경우도 무시할 수 없다.

 

아직 유럽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아니 해외여행 자체를 많이 다녀보지 못했다. 국내 여행도 어느 순간 주춤하고 있다. 그냥 무작정 떠나고 했던 그 시기가 지나면서 이리저리 제기만 한다. 그러다 갑자기 마음속으로 불어오는 여행의 열기는 사람을 들뜨게 만들고, 손은 검색엔진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괜히 갈 곳을 찾아서 여행예산을 뽑아보고, 이 정도면 갈 수 있겠네 하고 상상에 잠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게 한다. 이럴 때 한 권의 여행서적은 여행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면서 대리만족을 준다. 그러다 떠나면 이 책은 여행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주변 지인들이 유럽을 많이 다녀온다. 특히 여직원들은 여름휴가를 이용해 잘 다녀온다. 갔다 와서 한결같이 좋았다고 말한다. 부럽다. 그러면서 가슴 한 곳에서 반발감이 생긴다.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지 하고 괜히 투정을 부린다. 경험하지 못한 자의 조그마한 질투다. 그러다 여행에서 겪은 불편한 점이 나오면 옳다구나! 외친다. 약삽하다. 놀부 심보다.

 

10개국 50곳과 두 가지 여행 팁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가 8곳이고,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이 7곳이다. 영국이 7곳이나 된다는 점에서 조금 놀랍다. 개인 취향과 부합하지 나라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최근에 유럽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였던 그리스가 빠져 아쉽다. 서양 문화의 발상지라고 불리는 그 나라는 로마와 더불어 유럽 일순위에 올려놓은 나라다. 괜한 동경인지 모르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나 그리스 철학자들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여행서가 좋은 점은 솔직하다는 것이다. 약간 과장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설명은 간다면 꼭 참조해야지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아마 나의 삶에서 몇 년 안에 오랜 시간을 들여서 유럽여행을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만약 가게 된다면 이 책의 몇 곳은 정말 다녀오고 싶다. 그리고 저자가 말한 식당은 먹는 것 좋아하는 나의 성격에 미루어보아 반드시 둘러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마 전 여행에서도 식당을 찾기 위해 공을 얼마나 들였던가! 박물관과 미술관과 식당과 멋진 풍경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나를 끌어당기는 여행의 매력이다. 유럽 10개국 50곳 죽기 전에는 한 번씩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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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 어느 경제학자의 미 대륙 탐방기
마이클 D. 예이츠 지음, 추선영 옮김 / 이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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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여행서가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여행담과 경제 논평을 결합하려고 시도한 특별한 여행서다. 일반적 여행서가 그곳의 풍경이나 관광지나 유래 등에 집중하는 반면에 여기선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인종과 노동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보여준다. 가끔 미국인의 이런 글을 만나면 반갑기보다 낯설게 느껴지는데 나 자신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미국의 모습이 얼마나 왜곡되고 부풀려 있는지 알고 놀라게 된다.

 

며칠이나 몇 개월을 한 곳이나 몇 곳을 둘러보고 쓴 글이 아니다. 5년 동안 미국을 돌아다니며 경험한 것들과 자신의 사상을 결합하여 만들어낸 책이다. 미국 여행서란 점에서 미국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여행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저자는 미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숨겨져 있는 자본과 경제논리에 의해 부풀려진 것이고, 그 속에 실제 일하는 노동자들이 최저 생계비로 고생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럼 이 책은 덮어야 한다.

 

좌파 경제학자가 미국을 돌아다니면서 본 것은 분명히 일반 여행 작가들과 다르다. 바로 여기서 재미와 더딘 진도가 나온다. 미국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도 되겠지만 지금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메리카 드림으로 포장된 미국의 어두운 점이 드러나면서 과거 나의 여행을 생각하게 만든다. 피상적인 풍경과 잘 못사는 나라의 국민에 대한 은근한 무시로 가득했던 그 여행들 말이다. 부끄럽다.

 

책 속 문장에서 많은 점을 배우고 느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외국 태생 노동자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중산층 주민들이 이런 변화의 일차적인 요인인 경제 체제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외국 태생 노동자를 상대로 분노를 표출한다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점점 외국 노동자가 늘어나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보면 놀랍도록 비슷하다. 그 원인보다 밖으로 드러난 현상에 집착하면서 악순환이 되풀이되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언론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이 현상 보도에 집중하면서 교묘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고 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9.11 이후 놀라운 활약으로 영웅으로 일컬어지던 뉴욕 소방관들 많은 수가 호흡기 질환으로 시달리고, 그 후 많은 소방관이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이다. 헌데 이들을 위한 어떤 특별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엄청난 쓰레기를 치우다 신체적 정신적 질환을 앓게 된 다른 노동자들도 기록되어 있지만 그들을 위한 보상이나 예방에 쓴 돈은 거의 없으니 노동자를 단순한 상품으로 표현한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웅으로 치켜세우기만 했지 실질적으로 조치를 취한 것은 없다.

눈에 확 들어오는 이야기도 하나 있다. 그것은 광우병에 걸린 소가 문제가 된 후 쇠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문장이다. 지금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광우병 관련 촛불 집회를 생각하면 그냥 읽고 지나가기 어렵다. 얼마 전에 읽은 옥수수 관련 책 내용과 비슷한 대목이 나오면서 옛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모태가 되는 미국 국립공원을 합리화한 최초의 논리가 기념물 논리였다는 사실이다. 이후 이 광활한 국유지가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돈벌이 시설로 바뀌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미국식 자본주의 숭배하고 좇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가 보여주는 미국 현실과 변화는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 예측이 밝지만은 않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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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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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에서 그리스 철학자를 제외하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이 후세에 끼친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하다. 중세까지 기독교에 영향을 끼친 철학자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는 이제 누구나 인용하는 문장이다. 근데 이 책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를 다루면서 그 이후와 구분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따지면 이 책 속에 나오는 철학자 중 한두 명은 그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하니 약간은 의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약간은 낯설게 느껴지는 철학자들이지만 조금만 차분하게 이름을 속으로 반복하면 어딘가에서 한두 번 이상은 이름을 들은 낯익은 철학자들이다.

 

왜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눌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가지게 되는 의문이다. 이 의문을 가슴에 품고 읽다 보면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이해의 폭이 좁은 것은 서양 철학사에 대한 지식의 부족 때문이다. 근데 철학자들과 그 내용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윤리와 삶에 대한 것보다 자연과 현상에 대해 더 많은 설명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풀어내는 과학사 같은 이야기 속에서 현대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감탄을 만나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의 많은 부분을 사유 속에서 인식한 그들의 탁월한 능력에 놀라게 된다. 이 놀라운 사유가 유럽의 긴 역사 속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더딘 것은 역사가 주는 놀라운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한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한 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오늘날의 우리처럼 많은 지식을 갖지는 못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선입견도 적었던 당시”(14쪽) 라는 문장은 이 책을 읽으면서 수없이 부딪히는 장면이다. 현대 과학에 대해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은 덜하겠지만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는 나에겐 아주 빈번하게 다가온다. 어떤 부분은 지식이 부족해서, 어떤 곳에선 잘못 알고 있는 사실 때문에, 어떤 사실에선 인식의 차이 때문에 부딪히고 생각하고 배우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학창 시절 배운 철학이 얼마나 부실한가이다. 암기식 교육에 대표적인 학설만 반복하면서 선입견을 두텁게 쌓은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 광고에서 고흐와 고갱을 경쟁자라는 단선적 지식의 표현에 놀랐던 것을 생각하면 총체적 부실과 허상에 의해 세워진 지식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세계 몇 대니 몇 위니 하는 분류로 문화와 예술을 평가하면서 주관적 미적 기준을 가로 막은 사실이 많지 않았던가! 철학 부재의 교육에서 비롯된 오독이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자주 반복되어 놀라게 되었다.

 

아마 과학사 초창기를 다룬 책이라고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은 내용이다. 현대 과학이 수학과 직관과 실험 등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그 당시 실험이 거의 전무하거나 할 수도 없었음을 생각하면 그들의 주장은 놀랍고 엄청나다. 물론 그들의 주장 모두가 현실에 완전히 맞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이 사유 속에서 만들어낸 문장의 의미는 약간 아전인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사유와 실험 등으로 증명되어 더욱 놀라게 만든다. 혹시 영화처럼 현대의 물리학자가 시간 여행으로 그리스 시대로 간 것은 아닐까 할 정도다.

 

저자가 이 철학자들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 중 최고의 것은 “세계 전쟁, 인종 차별, 집단 학살, 생태계의 대재앙 등은 앞서 서술한 대로 소크라테스 이전 사상이 왜곡되었기 때문에 초래한 결과들이다.”(209쪽)란 문장이다. 이 철학자들에 대한 숭배와 애정이 얼마나 대단하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저자가 취리히대학 자연과학 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과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주장하고 풀어내고 설명하고 인용한 내용들이 가볍게 무시할 것은 아니다. 비록 쉽지 않고, 어렵고, 균형감이 떨어지는 듯하지만 놀라운 사실과 현재를 돌아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서양 철학사를 소설로 표현한 ‘소피의 세계’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 잊고 있던 서양철학에 대한 지식을 더 쌓아야 이 책이 조금 더 이해되고 가슴으로 느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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