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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ㅣ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열심히 읽었다. 재미있다. 역시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속도감과 마지막에 주는 여운이 잘 어우러져 있다. 철저한 오락소설이란 광고처럼 사람을 빨아들인다. 비틀즈의 노래와 JFK 암살을 모태로 만든 이 소설이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정치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것을 무시하고 그냥 이야기에 집중해도 충분히 재미있다.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3부와 마지막 5부다. 사건 20년 뒤를 다룬 3부와 사건 석 달 뒤를 다룬 5부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에 수많은 암시와 복선이 깔려 있고 뒤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몇 번이나 3부를 뒤적이며 깔아놓은 복선을 확인하였다. 이 소설이 주는 재미 중 하나다.
다양하고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살아있다. 약간 과장된 점이 있기도 하지만 각각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내고 있다. 정말 이틀 동안 죽기 살기로 도망 다닌 주인공 아오야기 마사하루나 그를 돕는 대학 동창들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다. 특히 모리타는 스타워즈의 오비완처럼 죽어서도 영향을 끼치는데 환영일지라도 중요한 순간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의 옛 연인이었던 히구치는 그에 대한 의문과 의심을 독자들로 하여금 지우게 만든다. 사소한 습관과 행동이 음모를 가볍게 깨트리는 장면은 소소하지만 중요하고 유쾌하다.
이 소설에서 강한 인상을 주는 악당이 한 명 있다. 연쇄살인범 미우라다. 분명 그는 사회악이다. 하지만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처럼 그가 총리 암살 용의자를 돕는데 놀라운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 악당을 멋지게 활용하지만 그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살인에 대해 감정이 없는 그를 보면 무섭지만 이 소설 속 활약에선 왠지 모르게 조금은 호감이 생긴다. 그렇다고 그의 악행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의 적인 그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에 조금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다.
멋진 등장인물이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면 잘 짜인 구성과 복선은 재미를 준다. 그 특유의 문장과 세계관은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날 수 없다. 비록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지만 그 속에 담긴 비판과 패러디는 그가 얼마나 멋진 이야기꾼인가 알려준다. 하나씩 복선을 깨닫고, 장치해 놓은 구성을 파악하면서 느끼는 재미는 대단하다. 어떤 때는 노골적이지만 조금씩 숨겨둔 장면에서는 보물찾기를 하는 느낌이다.
음모론을 기반으로 쓴 소설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가 펼쳐 보여주는 일본의 가상공간은 변화하는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특히 용의자로 발표되기 전부터 그를 뒤쫓는 경찰의 모습과 기회가 되면 사살하려는 장면들은 현재 한국의 촛불집회와 연계되면서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가장 믿어야 하는 경찰이 방패와 곤봉으로 무방위로 누워있거나 서 있는 시민을 때리는 현실에서 그의 상상이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장면들은 물론 다른 소설들에서 수없이 다루어진 소재이기는 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권력에 휘둘리는 공권력을 보고 있기에 색다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을 모두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읽은 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읽기 전엔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니 2008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이다. 최근 재미있게 읽고 있는 문학상이다. 한동안 이 상에 대한 신뢰는 지속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수상보다 한 인간을 음모 속에 밀어놓고, 죽을 때까지 몰아가는 현실과 그 속에서 발버둥치는 주인공과 그를 돕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더 강렬한 인상과 재미를 준다. 그리고 언론과 매스컴을 우리는 얼마나 믿어야 하는가 하는 원초적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