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서양철학에서 그리스 철학자를 제외하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이 후세에 끼친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하다. 중세까지 기독교에 영향을 끼친 철학자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는 이제 누구나 인용하는 문장이다. 근데 이 책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를 다루면서 그 이후와 구분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따지면 이 책 속에 나오는 철학자 중 한두 명은 그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하니 약간은 의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약간은 낯설게 느껴지는 철학자들이지만 조금만 차분하게 이름을 속으로 반복하면 어딘가에서 한두 번 이상은 이름을 들은 낯익은 철학자들이다.

 

왜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눌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가지게 되는 의문이다. 이 의문을 가슴에 품고 읽다 보면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이해의 폭이 좁은 것은 서양 철학사에 대한 지식의 부족 때문이다. 근데 철학자들과 그 내용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윤리와 삶에 대한 것보다 자연과 현상에 대해 더 많은 설명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풀어내는 과학사 같은 이야기 속에서 현대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감탄을 만나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의 많은 부분을 사유 속에서 인식한 그들의 탁월한 능력에 놀라게 된다. 이 놀라운 사유가 유럽의 긴 역사 속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더딘 것은 역사가 주는 놀라운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한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가 한 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오늘날의 우리처럼 많은 지식을 갖지는 못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선입견도 적었던 당시”(14쪽) 라는 문장은 이 책을 읽으면서 수없이 부딪히는 장면이다. 현대 과학에 대해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은 덜하겠지만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는 나에겐 아주 빈번하게 다가온다. 어떤 부분은 지식이 부족해서, 어떤 곳에선 잘못 알고 있는 사실 때문에, 어떤 사실에선 인식의 차이 때문에 부딪히고 생각하고 배우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학창 시절 배운 철학이 얼마나 부실한가이다. 암기식 교육에 대표적인 학설만 반복하면서 선입견을 두텁게 쌓은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 광고에서 고흐와 고갱을 경쟁자라는 단선적 지식의 표현에 놀랐던 것을 생각하면 총체적 부실과 허상에 의해 세워진 지식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세계 몇 대니 몇 위니 하는 분류로 문화와 예술을 평가하면서 주관적 미적 기준을 가로 막은 사실이 많지 않았던가! 철학 부재의 교육에서 비롯된 오독이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자주 반복되어 놀라게 되었다.

 

아마 과학사 초창기를 다룬 책이라고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은 내용이다. 현대 과학이 수학과 직관과 실험 등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그 당시 실험이 거의 전무하거나 할 수도 없었음을 생각하면 그들의 주장은 놀랍고 엄청나다. 물론 그들의 주장 모두가 현실에 완전히 맞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이 사유 속에서 만들어낸 문장의 의미는 약간 아전인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사유와 실험 등으로 증명되어 더욱 놀라게 만든다. 혹시 영화처럼 현대의 물리학자가 시간 여행으로 그리스 시대로 간 것은 아닐까 할 정도다.

 

저자가 이 철학자들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 중 최고의 것은 “세계 전쟁, 인종 차별, 집단 학살, 생태계의 대재앙 등은 앞서 서술한 대로 소크라테스 이전 사상이 왜곡되었기 때문에 초래한 결과들이다.”(209쪽)란 문장이다. 이 철학자들에 대한 숭배와 애정이 얼마나 대단하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저자가 취리히대학 자연과학 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과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주장하고 풀어내고 설명하고 인용한 내용들이 가볍게 무시할 것은 아니다. 비록 쉽지 않고, 어렵고, 균형감이 떨어지는 듯하지만 놀라운 사실과 현재를 돌아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서양 철학사를 소설로 표현한 ‘소피의 세계’가 다시 읽고 싶어진다. 잊고 있던 서양철학에 대한 지식을 더 쌓아야 이 책이 조금 더 이해되고 가슴으로 느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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