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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스 필립 K. 딕 걸작선 6
필립 K. 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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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 걸작선 여섯 번째 작품이다. 출간된 목록과 출간될 목록을 둘러보면 읽은 책이 몇 권 보인다. 읽지 않았지만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도 있다. 왠지 모르게 걸작선이란 이름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호기를 부른다. 이 출판사 출간작으로 다 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모두 읽고 싶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발리스>의 난해함이다. 이 소설 쉽지 않다. 삼부작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출간될 소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 소설은 힘겹게 읽었다. 물론 충분히 집중해서 읽지 않고 여유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역자 후기에 어슐러 르 귄의 평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약간의 위안도 받는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자기를 분열시킨 호스러버 팻이란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SF소설을 생각하고 읽게 되면 사실 큰 낭패를 본다. 이것은 내 경험담에서 나온 평가다. 물론 역자 후기에 나온 말에 따르면 필립 K. 딕 매니아 중 일부는 이 시리즈를 작가의 최고로 꼽기도 한다. 이에 대한 반론은 역시 르 귄을 참조하면 된다. 현재까지 개인적인 평은 르 귄에 더 가깝다. 뭐 더 가깝다는 평가보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발리스가 무얼까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생겼다. 그런데 책 중간에야 겨우 나온다. 그것은 거대 활성 생체 지능 시스템(Vast Active Living Intelligence System)의 약자다. 이 단어만 가지고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인공위성이란 단어까지 등장하는데 단순한 인공위성이 아니다. 이 단어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좀더 깊숙하게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신화학, 신학, 철학, 정신분석학, 음모 이론 등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만약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개인적으로 전혀 느끼지 못한 재미를 누릴지도 모르겠다.

호스러버 팻이 신학과 철학 속으로 들어가게 된 배경에는 1974년 2월에 분홍색 광선을 눈에 맞으면서부터다. 이 광선을 통해 그는 막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사랑하는 아들의 난치병 원인을 직관적으로 안다. 엄청난 정보는 그를 완전히 변화시킨다. 이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중반 이후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앞보다 쉽게 읽었지만 그래도 역시 속도감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그가 쓴 주해서에 오게 되면 더 심해진다. 성서에서 말하는 하느님과 조물주를 초월한 또 다른 존재를 등장시키거나 도덕경의 경구가 인용되고 혼용되면서 하나의 흐름과 개념을 잡는데 실패했다. 물론 몇몇 부분에서 짧지만 깊은 사색에 빠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일 뿐이다.

짧게 내가 이해한 이 책의 한 흐름을 이야기하면 기독교의 구세주에 대한 변주다. 기존 신학을 파괴하는 듯하지만 그 그릇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단지 다르게 해석할 뿐이다. 또 시간에 대한 개념은 공간과 함께 기존의 인식을 떠올려준다. “두 가지 시공간 연속체에 살고 있었다”(201쪽)는 표현과 합쳐졌다는 뒤이은 말은 쿰란의 경서 발견과 연결되면서 ‘깨달음’의 새로운 버전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의 작품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부족해 연관성을 충분히 깨닫지는 못하지만 진짜와 가짜, 기억과 실재의 차이 등을 다룬 소설들로 인식이 이어져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인식의 바탕에는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와 단편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제국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와 ‘흑철감옥’은 이 소설 앞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진정한 시간이 C.E. 1974년에 다시 시작되었고, 그 사이 기간이 완벽한 위조 개작품이었다는 주장은 위에서 말한 것과 연관성을 가진다. DNA의 이중나선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것과 제국의 바이러스로의 인식 등은 또 다른 사유로 이어가기 충분한 소재다. 좋게 보면 다양한 해석과 결말이 가능한 작품이지만 나쁘게 보면 혼란스러운 구성과 전개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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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말해 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 - 양극화.분쟁.종교.민족.환경.질병
박종성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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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도발적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언론이 진실보다 목적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편집하는 현실에서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방송사의 파업은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불편한 장면이기도 하다. 공중파의 뉴스보다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통해 간헐적으로 나오는 정보에 더 많은 신뢰를 보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반대에 선 사람들은 이것들이 진실을 왜곡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이것은 맞을지 모른다. 왜냐고? 바로 그들이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언론이 말하는 것은 모두 진실로 알고 있었다. 광고로 만든 제품 소개를 보면서 이런 멋진 제품이 있다니 하고 감탄했고, 기업을 칭찬하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보여주는 몇 개의 문장을 보고 분노하고 놀라고 욕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전체를 읽으면서 이런 시절이 부끄러워졌다. 편집과 짜깁기를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이익을 그대로 대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이 매체들에서 하는 말에 무조건 반발하고 의심하고 무시하는 편견이 생기기도 했다. 진실보다 감정이 먼저 앞서는 순간들이었다.

저자는 모두 여섯 꼭지를 다룬다. 양극화, 분쟁, 종교, 민족, 환경, 질병 등이다. 가장 먼저 다루는 양극화는 90년대에 환상을 심어주었던 세계화다. 이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을 때 정말 멋있었다. 수출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것이 미래의 정답처럼 보였다. 하지만 IMF 사태가 생기고 점점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놀랐다. 역시 그때는 피상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지닌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지만. 

저자는 우고 차베스의 정책을 무작정 찬성하지 않는다. 그가 어떻게 권력을 획득했고 유지하는 지 보여준다. 동시에 높은 인플레와 낮은 성장률도 같이 보여주면서 미래의 불안에 대한 염려도 잊지 않는다. 이것은 멕시코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드러난 이야기와 대조를 이룬다. 미국 영화 속에서 멕시코 불법 이민자가 단순히 나쁜 놈들이었다면 이 글 속에서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3월 15일 한미FTA 발효를 앞둔 현실에서 부자가 아닌 서민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한때 언론을 도배했던 소말리아 해적 이야기로 갔을 때는 한마디로 놀랐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씩 듣고 배우고 있지만 이 나라가 왜 그렇게 해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불편한 현실을 만났다. 부패한 권력과 강대국의 이익이 결합하고 돈이 걸렸을 때 한 국가의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삼호 주얼리호 선장에 대한 영웅담으로 도배하면서 소말리아 해적 뒤에 있는 어둠의 세력을 다룰 때 전혀 말해지지 않았던 사실이기에 더욱 그랬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소년병에 대한 것은 다른 책에서 읽은 것보다 수위가 조금 약한 부분이 있다.

민족 문제로 넘어가면 티베트와 코소보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저자들이 티베트를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하는데 동의한다. 역사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할 때 분명히 쉽게 독립될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조금만 힘을 잃어도 가장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신장지구가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 조금 의외다. 그 유명한 인종 청소로 유명한 코소보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었는데 읽으면서 예전에 본 다큐가 잠깐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너무나도 끔찍하고 참혹했던 인종 청소 비극이다.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 것은 무국적자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동시에 문제를 동시에 나타내주었다. 단순히 감성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좀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해묵은 논쟁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이 논쟁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대립과 대결처럼 포장되었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이익집단이 도사리고 있다. 핵문제로 갔을 때 이스라엘은 핵 보유를 인정하면서 이란의 핵은 용납하지 않고 경제 봉쇄로 이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편견과 선입견을 통해 왜곡된 인상을 심어주려는 의도와 노력을 읽을 수 있다. 탈레반이 저지른 엄청난 학살과 억압을 보면서 과연 그것이 그곳만의 문제일까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도 별 다른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의 비약이 생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맬서스의 인구론은 말도 되지 않는 이론이었다. 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인구와 식량 등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볼 기회였다. 그리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균형 잡힌 글은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이 단순히 작가만의 억측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대체에너지 부분은 또 다른 환상을 우리에게 심어주는데 이 뒤에 과연 어떤 이익집단이 도사리고 있을까 경계하게 만든다. 신종질병의 장으로 가서 만나게 되는 광우병, 조류독감, 사스, 에이즈 등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게 한다. 조류독감 이야기 속에서 다룬 스페인독감이 한국에서도 많은 사망자를 내었다는 정보는 명칭이 지닌 선입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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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보는 소녀 Numbers 1
레이첼 워드 지음, 장선하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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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판타지 로맨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읽은 소설도 취향과 맞지 않았다. 그럼 왜 이 책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서점에 갔을 때 살짝 펼쳐 읽은 부분이 기존의 것과 조금 달라서였다. 적지 않은 분량에 사람의 눈을 보면 죽는 날을 보게 되는 그녀의 능력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지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또 이 작품이 NUMBERS 시리즈 첫 권이란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시리즈 첫 권에 약한 나의 성격이 작용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소녀 젬이 가진 능력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젬은 사람을 눈을 보면 숫자가 보인다. 여덟 자리다. 일월년으로 이어지는 이 숫자는 그 사람이 죽는 날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모를 때 그녀는 이 숫자를 말하고 다녔다. 아직 그녀의 엄마가 살아 있을 때였다. 이 숫자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잔인하게도 그녀의 엄마가 죽었을 때다. 겨우 일곱 살의 젬은 혼자 남겨졌다. 그 후 그녀는 여러 집을 돌아다니면서 성장했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열다섯이다. 한참 친구들과 웃고 울고 하면서 즐길 때지만 사람의 눈을 보게 되면 보이는 숫자 때문에 그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다. 불확실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그녀의 시선을 늘 땅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친구 한 명도 없다.

외톨이로 살아가는 그녀가 늘 가는 은신처에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같은 반이고 별명이 스파이더다. 이 우연한 만남이 하나의 로맨스를 만들 것이라고는 처음에 생각하지 못했다. 젬의 반응이 너무나도 시큰둥했기 때문이다. 뭐 로맨스는 그렇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리고 그녀는 그의 숫자를 본다. 불과 몇 주 남지 않았다. 이 둘이 어울리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의 눈을 마주치기 싫어하는 젬과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절망하여 막 나가는 스파이더의 만남은 스파이더의 의지가 더 강하게 작용했다. 이 둘을 강하게 이어주는 것은 젬의 능력에서 비롯했지만.

젬이 그녀의 능력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 생긴다. 지나가는 노숙자의 숫자를 본다. 죽는 날이 오늘이다. 따라간다. 그런데 그녀 앞에서 차에 치여 죽었다. 두렵다. 무섭다. 스파이더에게 이것은 특별한 사건일지 모르지만 젬에게는 무시무시한 예언이자 능력의 확인이다. 여기에 스파이더의 할머니가 그녀에게서 특별한 기를 본다. 그녀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하지만 진짜 그녀를 공포에 잠기게 만드는 일이 곧 일어난다. 스파이더와 런던 아이를 타러 갔을 때다. 긴 줄을 선 사람들에서 같은 숫자를 본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것이란 의미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녀는 스파이더를 억지로 끌고 달아난다. 바로 곧바로 런던 아이가 폭발한다.

이 폭발은 이 두 아이를 용의자로 몰고 간다. 줄을 섰을 때 눈에 띄는 스파이더의 외모와 과격한 행동과 급한 도망이 의심을 산 것이다. 스파이더는 195센티에 마른 흑인이다. 테러리스트의 행동이 분명한데 경찰은 이 둘을 공개수배한다. 결국 이 둘은 스파이더가 훔친 선생의 차를 타고 달아난다. 여기에 그는 깡패의 돈까지 홈쳤다. 로드무비의 멋진 장면이 펼쳐질 것 같지만 현실이 바로 펼쳐진다. 그녀의 능력이 또 다른 능력자와 만나 거대한 판타지로 변할 것 같은데 전혀 그런 낌새가 없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미숙한 두 소년 소녀의 위태롭고 지저분하고 배고픈 탈출만 가득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의 사랑이 피어나는 것도 바로 이 순간부터다.

남의 죽음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본다면, 또 그것이 곧 얼마 후 닥칠 것이라면. 바로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을 이 소설은 다룬다. 판타지의 능력을 빌려서 삶의 의미와 성장을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젬을 통해 하루의 의미, 사랑의 의미, 남은 시간보다 현재에 더 많은 의미를 더 부여한다. 판타지 로맨스라고 하지만 성장소설에 더 가깝다. 시리즈의 첫 권이라 다음부터 어떤 변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장면은 너무 뻔한 장면이지만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오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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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바 전설 살인사건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우치다 야스오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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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첫 권이다. 시리즈 처음이지만 아사미가 등장하는 것은 책 중반부터다. 작가의 해설을 읽으면 이 탐정의 탄생이 상당히 특이하다. 한 번 등장하고 사라질 뻔 했는데 독자들이 살린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 대표적인 캐릭터가 된다. 이력도 광고 제작사 사장으로 있다가 자비 출판한 후 첫 작품이 성공하면서 전업한 경우다. 34년생이 80년에 데뷔했으니 상당히 늦게 등단한 편이다. 하지만 출간된 편수만 보면 그 누구보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것 같다. 

고토바 법황. 소설 속에 설명이 나오지만 잘 모른다. 사실 이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고 해도 이 소설을 읽는데 전혀 지장 없다. 전설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고 단순한 배경으로만 이용되기 때문이다. 요코미조 세이시나 미쓰다 신조처럼 전설을 이용해 살인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 단지 살해당한 사람들을 이어주는 단서가 고토바 전설과 관련된 책일 뿐이다. 하지만 전설을 이야기 속에 풀어놓으면서 역사와 현재를 엮어내는 솜씨는 탁월하다. 그것보다 더 뛰어난 것은 현장의 갈등과 캐릭터지만.

특이하게 못생긴 한 여자가 기차역 구름다리 위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그녀는 고토바 법황의 유배 경로를 따라 여행 중이었던 미야코다. 이 사건 이전에 그녀는 한 헌책방에서 <게이비 지방의 풍토기 연구>라는 책을 8천 엔 주고 산다. 감촉이 먼저 다가왔고 다음으로 목차에서 고토바 법황 전설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이때만 해도 이 책이 어떤 의미인지, 그녀의 여행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전혀 모를 때다. 그러나 이 책은 사라졌고, 이 단서로 인해 어떤 연쇄적인 살인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그만 자랑을 한다면 범인을 너무 쉽게 찾았다. 읽으면서 이 사람이 범인이구나, 가 너무 쉽게 다가왔다. 작가가 의도한 것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경험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형사의 노력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물론 이 범인을 단숨에 찾은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살인이 있은 후 갑자기 머릿속에 그가 범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의 행동이 너무나도 정상적인 반응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아주 가끔 있는데 읽으면서 혹시 반전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형사 소설이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노가미 형사다. 미야코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8년 전 그녀가 당한 사고를 알게 되고 점점 더 깊게 넓게 사건을 조사한다. 그의 독단적인 행동이 또 다른 사건을 불러오는 요인 중 하나가 되지만 그것은 그가 그만큼 범인에게 더 다가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조사를 계속하는 도중에 그 당시 사고의 희생자의 둘째 오빠인 아사미가 등장한다. 아마추어 탐정의 등장이다. 그는 논리적이고 뛰어난 추리 실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을 제대로 정확하게 조사하는 것은 역시 경찰이다. 이 경찰 수사에 그가 발을 담굴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형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속도감과 몰입도가 좋은 소설이다. 개성 강한 형사를 등장시켜 경찰조직의 갈등을 만들면서 문제점을 밖으로 드러낸다. 일본 경찰소설을 읽을 때면 만나게 되는 캐리어 문제인데 이것을 한국에 적용하면 경찰대학 출신과 연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명문가 프리랜스 르포라이터를 탐정으로 출현시켜 실제 현장에서 두 역할이 어떤 충돌을 일으키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장면들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서로 다른 위치와 단점을 보완해주는 관계가 새로운 콤비의 가능성을 연 것이다. 이 시리즈 중 과연 이 두 사람이 언제 다시 만나는지 모르지만 만난다면 꼭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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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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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아리스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를 뒤죽박죽으로 읽고 있다. 한 출판사에서 시리즈 순서대로 출간한다면 그대로 읽겠지만 여러 출판사에서 순서에 상관없이 출간되고 있다. 학생 아리스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시공사에서 제대로 나오고 있다. 이 시리즈가 몇 권 나오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읽은 것도 겨우 두 권이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즐거움이 많이 남았다. 이것을 작가 아리스 시리즈로 옮긴다면 역시 뒤죽박죽 속에 많은 재미와 즐거움이 남았다는 의미다.

얼마 전 작가 아리스 시리즈의 최근작인 <주홍색 연구>를 읽었다. 이 두 작품의 완성도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이 더 마음에 든다. 전문가의 평을 보면 <주홍색 연구>가 더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은 다를 수 있다. 그 취향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바로 달리와 히무라가 책 중간에 살인과 문화를 엮어서 풀어낸 해설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본격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을 찾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그 답을 찾는 능력이 너무 부족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고, 가끔 불공정한 트릭이나 설정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독자와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작가가 몇 개월 혹은 몇 년에 걸쳐 쓴 소설을 독자가 몇 시간 읽고 완벽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불공한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허술한 구성과 전개로 쉽게 밝혀지는 트릭이나 범인이 등장하는 소설들이 적지 않다. 이런 소설들은 독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좀더 심리적이고 독창적이면서 모든 미스터리가 풀렸을 때 누구나 아! 하고 감탄할 트릭이나 구성을 만들어야 한다. 뭐 이것이 쉽다면 누구나 미스터리 거장이 될 것이다. 평단이나 독자들에 의해 그런 사람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바로 아리스가와 아리스다.

달리와 살인. 사실 이것만 놓고 보면 미술품과 관련된 살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달리를 좀더 파고들고 비틀어 풀어놓으면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 소설의 피해자인 도조 슈이치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그는 살바도르 달리의 신봉자이자 태어난 날이 같고 주얼리 브랜드의 사장이다. 신봉의 정도가 심해 달리처럼 콧수염을 관리하고 있다. 약간 의외라면 그의 별장에 달리의 진품이 한 작품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곳에 있는 특이한 물건은 현대판 고치로 불리는 프로트 캡슐이라는 명상 기계다. 그가 시체로 발견된 곳도 바로 그 속이다.

한 회사의 사장이 죽었으니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누가 원한을 가지고 있는가, 다. 성공한 사업가였던 것을 생각하면 적이 많을 것 같다. 거기에 한 여자를 두고 직원과 연적이 되기도 했다. 그가 죽으면 적지 않을 유산을 받을 배다른 동생도 있다.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가 시체로 발견되는 과정이나 상황이 이상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은 잘려 있고, 고치 속에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그의 겉옷도 보이지 않는다. 경찰의 수사로 집 안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그 흔적들이 모두 지워져 있다. 시체를 옮기고 혈흔을 지운 것은 또 왜일까? 이런 의문을 하나씩 내놓으면서 관계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주홍색 연구>에서 히무라의 과거가 나왔다면 이번에는 아리스의 과거가 밝혀진다. 순서대로라면 아리스가 먼저지만 읽은 순서가 뒤다. 이런 시리즈를 읽을 때 소소한 재미 중 하나는 바로 이런 등장인물들의 과거사가 하나씩 나오는 것이다. 이 과거가 단순히 재미를 위해, 이야기를 채우기 위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제목에 나오듯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고치가 무엇인지, 무슨 의미인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슈이치의 고치가 의미하는 바를 마지막 장에서 밝혀줄 때 이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이 자연스레 풀린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도. 이것은 또 살인과 문화를 엮은 해설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가볍게 시작해서 가볍게 끝냈지만 읽고 난 후 그 연관성이 하나씩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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