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스 필립 K. 딕 걸작선 6
필립 K. 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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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 걸작선 여섯 번째 작품이다. 출간된 목록과 출간될 목록을 둘러보면 읽은 책이 몇 권 보인다. 읽지 않았지만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도 있다. 왠지 모르게 걸작선이란 이름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호기를 부른다. 이 출판사 출간작으로 다 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모두 읽고 싶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발리스>의 난해함이다. 이 소설 쉽지 않다. 삼부작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출간될 소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 소설은 힘겹게 읽었다. 물론 충분히 집중해서 읽지 않고 여유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역자 후기에 어슐러 르 귄의 평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약간의 위안도 받는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자기를 분열시킨 호스러버 팻이란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SF소설을 생각하고 읽게 되면 사실 큰 낭패를 본다. 이것은 내 경험담에서 나온 평가다. 물론 역자 후기에 나온 말에 따르면 필립 K. 딕 매니아 중 일부는 이 시리즈를 작가의 최고로 꼽기도 한다. 이에 대한 반론은 역시 르 귄을 참조하면 된다. 현재까지 개인적인 평은 르 귄에 더 가깝다. 뭐 더 가깝다는 평가보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발리스가 무얼까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생겼다. 그런데 책 중간에야 겨우 나온다. 그것은 거대 활성 생체 지능 시스템(Vast Active Living Intelligence System)의 약자다. 이 단어만 가지고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인공위성이란 단어까지 등장하는데 단순한 인공위성이 아니다. 이 단어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좀더 깊숙하게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신화학, 신학, 철학, 정신분석학, 음모 이론 등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만약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개인적으로 전혀 느끼지 못한 재미를 누릴지도 모르겠다.

호스러버 팻이 신학과 철학 속으로 들어가게 된 배경에는 1974년 2월에 분홍색 광선을 눈에 맞으면서부터다. 이 광선을 통해 그는 막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사랑하는 아들의 난치병 원인을 직관적으로 안다. 엄청난 정보는 그를 완전히 변화시킨다. 이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중반 이후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앞보다 쉽게 읽었지만 그래도 역시 속도감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그가 쓴 주해서에 오게 되면 더 심해진다. 성서에서 말하는 하느님과 조물주를 초월한 또 다른 존재를 등장시키거나 도덕경의 경구가 인용되고 혼용되면서 하나의 흐름과 개념을 잡는데 실패했다. 물론 몇몇 부분에서 짧지만 깊은 사색에 빠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일 뿐이다.

짧게 내가 이해한 이 책의 한 흐름을 이야기하면 기독교의 구세주에 대한 변주다. 기존 신학을 파괴하는 듯하지만 그 그릇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단지 다르게 해석할 뿐이다. 또 시간에 대한 개념은 공간과 함께 기존의 인식을 떠올려준다. “두 가지 시공간 연속체에 살고 있었다”(201쪽)는 표현과 합쳐졌다는 뒤이은 말은 쿰란의 경서 발견과 연결되면서 ‘깨달음’의 새로운 버전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의 작품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부족해 연관성을 충분히 깨닫지는 못하지만 진짜와 가짜, 기억과 실재의 차이 등을 다룬 소설들로 인식이 이어져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인식의 바탕에는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와 단편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제국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와 ‘흑철감옥’은 이 소설 앞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진정한 시간이 C.E. 1974년에 다시 시작되었고, 그 사이 기간이 완벽한 위조 개작품이었다는 주장은 위에서 말한 것과 연관성을 가진다. DNA의 이중나선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것과 제국의 바이러스로의 인식 등은 또 다른 사유로 이어가기 충분한 소재다. 좋게 보면 다양한 해석과 결말이 가능한 작품이지만 나쁘게 보면 혼란스러운 구성과 전개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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