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말해 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 - 양극화.분쟁.종교.민족.환경.질병
박종성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언론이 진실보다 목적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편집하는 현실에서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방송사의 파업은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불편한 장면이기도 하다. 공중파의 뉴스보다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통해 간헐적으로 나오는 정보에 더 많은 신뢰를 보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반대에 선 사람들은 이것들이 진실을 왜곡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이것은 맞을지 모른다. 왜냐고? 바로 그들이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언론이 말하는 것은 모두 진실로 알고 있었다. 광고로 만든 제품 소개를 보면서 이런 멋진 제품이 있다니 하고 감탄했고, 기업을 칭찬하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보여주는 몇 개의 문장을 보고 분노하고 놀라고 욕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전체를 읽으면서 이런 시절이 부끄러워졌다. 편집과 짜깁기를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이익을 그대로 대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이 매체들에서 하는 말에 무조건 반발하고 의심하고 무시하는 편견이 생기기도 했다. 진실보다 감정이 먼저 앞서는 순간들이었다.

저자는 모두 여섯 꼭지를 다룬다. 양극화, 분쟁, 종교, 민족, 환경, 질병 등이다. 가장 먼저 다루는 양극화는 90년대에 환상을 심어주었던 세계화다. 이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을 때 정말 멋있었다. 수출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것이 미래의 정답처럼 보였다. 하지만 IMF 사태가 생기고 점점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놀랐다. 역시 그때는 피상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지닌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지만. 

저자는 우고 차베스의 정책을 무작정 찬성하지 않는다. 그가 어떻게 권력을 획득했고 유지하는 지 보여준다. 동시에 높은 인플레와 낮은 성장률도 같이 보여주면서 미래의 불안에 대한 염려도 잊지 않는다. 이것은 멕시코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드러난 이야기와 대조를 이룬다. 미국 영화 속에서 멕시코 불법 이민자가 단순히 나쁜 놈들이었다면 이 글 속에서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3월 15일 한미FTA 발효를 앞둔 현실에서 부자가 아닌 서민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한때 언론을 도배했던 소말리아 해적 이야기로 갔을 때는 한마디로 놀랐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씩 듣고 배우고 있지만 이 나라가 왜 그렇게 해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때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불편한 현실을 만났다. 부패한 권력과 강대국의 이익이 결합하고 돈이 걸렸을 때 한 국가의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삼호 주얼리호 선장에 대한 영웅담으로 도배하면서 소말리아 해적 뒤에 있는 어둠의 세력을 다룰 때 전혀 말해지지 않았던 사실이기에 더욱 그랬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소년병에 대한 것은 다른 책에서 읽은 것보다 수위가 조금 약한 부분이 있다.

민족 문제로 넘어가면 티베트와 코소보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저자들이 티베트를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하는데 동의한다. 역사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할 때 분명히 쉽게 독립될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조금만 힘을 잃어도 가장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신장지구가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 조금 의외다. 그 유명한 인종 청소로 유명한 코소보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었는데 읽으면서 예전에 본 다큐가 잠깐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너무나도 끔찍하고 참혹했던 인종 청소 비극이다.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 것은 무국적자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동시에 문제를 동시에 나타내주었다. 단순히 감성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좀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해묵은 논쟁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이 논쟁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대립과 대결처럼 포장되었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이익집단이 도사리고 있다. 핵문제로 갔을 때 이스라엘은 핵 보유를 인정하면서 이란의 핵은 용납하지 않고 경제 봉쇄로 이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편견과 선입견을 통해 왜곡된 인상을 심어주려는 의도와 노력을 읽을 수 있다. 탈레반이 저지른 엄청난 학살과 억압을 보면서 과연 그것이 그곳만의 문제일까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도 별 다른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의 비약이 생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맬서스의 인구론은 말도 되지 않는 이론이었다. 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인구와 식량 등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볼 기회였다. 그리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균형 잡힌 글은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이 단순히 작가만의 억측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대체에너지 부분은 또 다른 환상을 우리에게 심어주는데 이 뒤에 과연 어떤 이익집단이 도사리고 있을까 경계하게 만든다. 신종질병의 장으로 가서 만나게 되는 광우병, 조류독감, 사스, 에이즈 등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게 한다. 조류독감 이야기 속에서 다룬 스페인독감이 한국에서도 많은 사망자를 내었다는 정보는 명칭이 지닌 선입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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