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보는 소녀 Numbers 1
레이첼 워드 지음, 장선하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판타지 로맨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읽은 소설도 취향과 맞지 않았다. 그럼 왜 이 책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서점에 갔을 때 살짝 펼쳐 읽은 부분이 기존의 것과 조금 달라서였다. 적지 않은 분량에 사람의 눈을 보면 죽는 날을 보게 되는 그녀의 능력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지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또 이 작품이 NUMBERS 시리즈 첫 권이란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시리즈 첫 권에 약한 나의 성격이 작용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소녀 젬이 가진 능력을 제외하면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젬은 사람을 눈을 보면 숫자가 보인다. 여덟 자리다. 일월년으로 이어지는 이 숫자는 그 사람이 죽는 날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모를 때 그녀는 이 숫자를 말하고 다녔다. 아직 그녀의 엄마가 살아 있을 때였다. 이 숫자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잔인하게도 그녀의 엄마가 죽었을 때다. 겨우 일곱 살의 젬은 혼자 남겨졌다. 그 후 그녀는 여러 집을 돌아다니면서 성장했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열다섯이다. 한참 친구들과 웃고 울고 하면서 즐길 때지만 사람의 눈을 보게 되면 보이는 숫자 때문에 그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다. 불확실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그녀의 시선을 늘 땅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친구 한 명도 없다.

외톨이로 살아가는 그녀가 늘 가는 은신처에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같은 반이고 별명이 스파이더다. 이 우연한 만남이 하나의 로맨스를 만들 것이라고는 처음에 생각하지 못했다. 젬의 반응이 너무나도 시큰둥했기 때문이다. 뭐 로맨스는 그렇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리고 그녀는 그의 숫자를 본다. 불과 몇 주 남지 않았다. 이 둘이 어울리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의 눈을 마주치기 싫어하는 젬과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절망하여 막 나가는 스파이더의 만남은 스파이더의 의지가 더 강하게 작용했다. 이 둘을 강하게 이어주는 것은 젬의 능력에서 비롯했지만.

젬이 그녀의 능력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 생긴다. 지나가는 노숙자의 숫자를 본다. 죽는 날이 오늘이다. 따라간다. 그런데 그녀 앞에서 차에 치여 죽었다. 두렵다. 무섭다. 스파이더에게 이것은 특별한 사건일지 모르지만 젬에게는 무시무시한 예언이자 능력의 확인이다. 여기에 스파이더의 할머니가 그녀에게서 특별한 기를 본다. 그녀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하지만 진짜 그녀를 공포에 잠기게 만드는 일이 곧 일어난다. 스파이더와 런던 아이를 타러 갔을 때다. 긴 줄을 선 사람들에서 같은 숫자를 본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것이란 의미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녀는 스파이더를 억지로 끌고 달아난다. 바로 곧바로 런던 아이가 폭발한다.

이 폭발은 이 두 아이를 용의자로 몰고 간다. 줄을 섰을 때 눈에 띄는 스파이더의 외모와 과격한 행동과 급한 도망이 의심을 산 것이다. 스파이더는 195센티에 마른 흑인이다. 테러리스트의 행동이 분명한데 경찰은 이 둘을 공개수배한다. 결국 이 둘은 스파이더가 훔친 선생의 차를 타고 달아난다. 여기에 그는 깡패의 돈까지 홈쳤다. 로드무비의 멋진 장면이 펼쳐질 것 같지만 현실이 바로 펼쳐진다. 그녀의 능력이 또 다른 능력자와 만나 거대한 판타지로 변할 것 같은데 전혀 그런 낌새가 없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미숙한 두 소년 소녀의 위태롭고 지저분하고 배고픈 탈출만 가득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의 사랑이 피어나는 것도 바로 이 순간부터다.

남의 죽음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본다면, 또 그것이 곧 얼마 후 닥칠 것이라면. 바로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을 이 소설은 다룬다. 판타지의 능력을 빌려서 삶의 의미와 성장을 풀어내고 있다. 작가는 젬을 통해 하루의 의미, 사랑의 의미, 남은 시간보다 현재에 더 많은 의미를 더 부여한다. 판타지 로맨스라고 하지만 성장소설에 더 가깝다. 시리즈의 첫 권이라 다음부터 어떤 변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장면은 너무 뻔한 장면이지만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오기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