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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방명록 -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노시내 지음 / 마티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오래 전 스위스를 여행하고 온 친구가 아주 강하게 스위스 여행을 추천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에 홀딱 반한 것이다. 그 후에도 유럽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스위스를 추천한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회사의 팀장이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스위스 여행을 다녀왔다. 꽃할배의 첫 여행지 중 한 곳도 스위스였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방송에서 마테호른과 파라마운트 영화사를 연결해서 설명하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이미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다. 이렇게 나에게 스위스는 몇 가지 풍경과 치즈, 시계 등으로 대변되는 제품으로 알려줘 있었다. 최소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의 남편은 이탈리아 출신 스위스인이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스위스 개발 당시에 이주노동자로 스위스에 왔다. 이것은 알불라 철도 이야기에 잠시 나온다. 이 철도 개발은 스위스를 발전시키는데 일조했다. 기차를 타고 터널을 지난 후 보게 되는 풍경을 묘사한 글에서 나의 상상력이 꿈틀거렸다. 반면에 꽃할배에서 본 마테호른의 풍경은 약간 심심했다. 카메라 앵글 속 풍경이 실제 풍경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탓일까? 솔직히 이 책에서 보여주는 풍경은 책의 중심이 되지 않다 보니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가끔 스위스 여행 블로그 포스팅에 나오는 것에 비하면 너무 약하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가 아닌 사람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니체에서 바그너까지 모두 22장에서 적지 않은 스위스 방문 혹은 생활자를 다룬다. 재미난 것은 니체가 바그너를 숭배하다가 그의 변화에 실망한 후 극렬하게 비판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순서를 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22장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거장들이 수없이 나온다. 이것을 단순히 방문객으로만 다루지 않고 그들의 작품이나 정치 활동 등을 같이 연결해서 설명해준다. 같은 지역에 있었다고 해도 시대가 다르거나 만난 적이 없다거나 같이 만났다고 해도 각자가 너무 거장이라 각각 한 장을 할애한 듯하다. 단순히 스위스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책이라면 이런 식으로 편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위스가 영구중립국이란 것과 징병제란 사실만 알고 있었지 여성참정권이 1971년에야 허용되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지금이야 국민소득이 높지만 한때는 이민이나 인력을 파견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유명한 스위스 근위병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스위스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은 과거는 나치와 연결되고, 현재는 은행과 이어진다. 나치가 유럽을 제패하던 그때 가혹한 국경 정책은 수많은 유대인이 죽음의 수용소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 당시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질시와 비난 속에서 힘들게 살았다. 다른 책에서도 봤지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인정하는데 그들은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물론 한국처럼 아직도 인정하지 않거나 일본처럼 부인하는 나라도 있다.

 

스위스가 관광대국이 된 데는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알프스를 알린 것도 처음에는 영국인이었다는 사실이나 빈약한 자원으로 인해 만들어진 음식이 풍듀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그런데 이 퐁듀가 스위스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첫 번째 음식이 되었다.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관광과 연계해서 홍보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스위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폐병환자들이 머물던 다보스가 예전에는 영화 촬영도 거부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필요에 의해 그 사실을 알리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최근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재빠른 정책 변화에 놀란다. 그들의 놀라운 스토리텔링 관광 영업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중립국이란 이유 때문인지 스위스를 거쳐간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당연히 레닌이다. 여성참정권 이야기는 스위스를 새로운 면모를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존엄사로 부르기도 하는 조력자살이다. 안락사에 숨겨진 의미를 알게 된 것도 의미있었지만 이런 조력자살을 법적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여성참정권을 그렇게 늦게까지 허용하지 않은 나라가 맞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이 나라는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엇박자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2013년에 논란이 되었던 사적사용 토렌트 법적 인정 같이 놀라운 판결도 나온다.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언어의 유사성 때문인지 독일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스위스 국적은 물론 더 많다. 여행 가이드 책이 아니다 보니 여행지에 대한 설명보다 그 지역과 관련된 인물들이 더 중심에 놓여 있다. 인물이 중심에 놓이다보니 당연히 그들의 작품이나 정치 활동 등이 같이 곁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한 참고자료 목록을 보니 각장 마다 몇 권씩 있다. 번역본이 없는 것이 더 많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왜 예상보다 훨씬 시간이 걸려 읽게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통상적인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좀더 여유를 가지고 있거나 어떤 목적을 가진 여행자라면 도움이 될 책이다. 아니면 나처럼 스위스와 그곳을 다녀간 방문객들의 이야기와 삶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 딱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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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불면의 밤을 넘어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원경 옮김 / 박하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언제나 책을 받아서 펼치면 작가의 이력을 먼저 본다. 낯선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에 읽었던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를 쓴 작가다. 책을 읽기 전 예전에 쓴 서평을 찾아볼까 하다가 그냥 읽었다. 읽으면서 약간 잊기는 했지만 책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우디 앨런의 뉴욕과 커트 보네거트의 블랙유머가 한데 모였다’란 평이었다. 모두 읽은 지금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전에 다른 소설의 서평을 찾아봤다. 상당히 힘들게 읽었던 기록이 있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도 그렇다. 문장이 어려워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어렵다는 의미다. 서평을 쓰려고 마음먹고 오랫동안 주저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첫 문장은 ‘입은 기묘한 곳이다’이다. 주인공의 직업은 치과의사이고 이름은 폴 오로르크다. 그에게 입은 아주 중요한 곳이다. 그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곳인 동시에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 광팬이다. 전 경기를 비디오로 녹화할 정도다. 86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게 되어 기뻐했지만 이 우승으로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면서 예전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잘 이해되지 않는 마음이다. 그는 치과의사로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치료보다 예방에 신경을 쓴다. 환자들이 치실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순간 뜨끔했다. 나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하고.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의 병원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자 뛰어난 치위생사 콘보이 부인이 있다. 서무를 보고 한때 사귀었던 아름다운 유대인 코니와 배우를 꿈꾸는 직원이 한 명 더 있다. 병원은 잘 되어 돈을 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불면으로 가득하다. 이 불면의 시작은 그의 아버지가 자살한 후에 생겼다. 잠을 자지 못하는 그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성과 감성이 충돌한다. 홀로 자기를 두려워하는 소년이 엄마에게 계속 말하는 것과 힘들지만 이것을 받아주는 엄마의 모습 때문이다. 그가 몇 시간을 그냥 조용히 잔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소설 속 한 장면에서 이것이 나오는데 새벽에 깬 후에 다시 잠들지 않고 녹화해두었던 레드삭스 경기를 본다.

 

그는 종교와 신에 대해 아주 냉소적이다. 그는 메일에도 보스턴 레드삭스 관련 글을 올리는 게시판에도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병원은 홈페이지도 없다. 오죽했으면 콘보이 부인이 책을 주문해서 병원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의사에게 조언했겠는가. 이런 조용한 삶에 큰 돌이 하나 날아와서 파문을 일으킨다. 바로 병원 홈페이지다. 그가 만들지 않았고, 자신의 이력에 대한 설명도 엉망이다. 당연히 만든 곳에 메일을 보내지만 답이 없다. 그리고 그의 본명을 사용한 트위터 계정이 생긴다. 이렇게 하나씩 온라인 공간에 그가 아닌 그의 이름을 이용한 누군가가 활동을 한다. 미스터리소설이라면 의식이 분리되어 다른 사람처럼 활동하는 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지만 최소한 여기서는 아니다.

 

그의 이름으로 올려진 글들은 함축적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글도 있다. 이것을 발견하고 알려주는 사람은 한때 연인이었던 코니다. 그인 척하는 하는 누군가가 올린 이야기는 구약을 뒤집은 내용이 있다. 아말렉인과 관련된 이야기다. 나중에 나오지만 유대인의 율법에도 이 아말렉인이 나온다고 한다. 그들을 반드시 물리쳐야 할 존재다. 그리고 울름이란 단어가 나온다. 처음 이 단어가 나왔을 때는 그냥 지나쳤다. 이 글을 쓰면서 뒤적이다가 환자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유대인과 유대교와 아말렉과 울름은 나를 혼돈 속으로 밀어넣었다.

 

닥터 오로르크인 척하는 존재는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얼마나 잘 압니까? 하고. 이 질문은 나중에 그의 가족 족보와 연결된다. 수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 그 이력은 그조차 잘 몰랐던 것이다. 아버지의 자살 때문인지 그는 누군가의 가족이 되고 싶어 한다. 첫 번째 실패는 그가 무신론자라는 이유였고, 최근의 코니는 아이를 갖는 것 때문이다. 그는 아이 갖기를 두려워한다. 이것도 아버지의 자살 탓이다. 아이가 생기면 자살을 고민할 수 없다는 현실적이고 부성애 가득한 판단 때문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세상과 직접 부딪히면서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은 없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 보면 인터넷에 자신인 척하는 누군가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내용일 것 같지만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메일로 교신을 하고, 누군가가 찾아오지만 이것이 자아 찾기나 영적 문답을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로르크가 보여주는 독설과 비판이 블랙유머의 재미를 주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기만 할 것이다. 뒤에 그를 사칭한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지만 이를 둘러싼 해석이 갈라지는 것을 보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분명한 결론을 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닌가? 재미있는 부분과 생각할 거리가 많다. 하지만 이것을 전부 하나로 꿸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그래서 어렵다. 물론 미 프로야구에 대한 부분은 쉽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올해 그 팀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떤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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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 평전 - 진보적 민족주의자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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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까지도 몽양 여운형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가끔은 공산주의자 박헌영과 이미지가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는 몽양에게 덧씌우져 있던 공산주의자 이미지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여러 번 말하지만 기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등의 이미지는 그를 두려워한 세력들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이 환상이 자신들의 이익과 맞아떨어질 때 그것은 현실로 뒤바뀐다. 해방 후 혼란 정국에서 그나 김구가 뛰어난 정치 감각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 결과로 하나로 암살이라는 불행한 비극을 겪은 것은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이기도 하다.

 

저자는 시대순으로 몽양의 흔적을 따라 간다. 그의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긴 여정을 다루는데 새로운 부분에 눈길이 가지만 전체적으로 강한 충격을 주기에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새롭게 몽양을 인식하고 해방 전후사를 공부하는 입장에 큰 도움을 주겠지만 왜 그 시대에 최고의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조금 내용이 부족해 보인다. 아마 이것은 나의 문제가 더 클 수도 있다. 아직도 만들어진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를 인식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박정희가 그러했듯이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조금씩 더하게 되면 완전히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혈농어수(血濃於水).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것은 한국적민족주의, 한국적민주주의, 한국적사회주의가 결합한 진보적 민족주의자인 그를 표현하기 위한 단어다. 여기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그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러시아에 가서 레닌 등을 만났고,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조국해방을 염원하면서 활동했었다. 이것이 그를 해방 후 공산주의자로 몰고, 폄하하고, 미군정과 멀어지게 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저자는 이렇게 하게 된 이유를 그 시대와 상황을 같이 곁들여 설명하는데 왠지 모르게 이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변명처럼 다가온다. 한 권의 평전에서 이 부분을 깊게 다루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더 풍성한 자료와 더불어 몽양의 삶을 재해석하는 일이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의 착각인지 아니면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해방 전후에 집중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몽양이 국내에서만 활약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해외에서 활동한 것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낯설었다. 임시정부의 수립을 둘러싼 비화는 그 시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임시정부 수립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룬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이것이 해방 전후 국내의 정치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쳤을 것 같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파편적으로 혹은 암기식으로 기억하는 상해임시정부의 인물들을 더 잘 알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몽양이 해외 망명 12년 차였던 1929년 영국조계에서 체포되어 조선으로 넘어온다. 3년 간 옥고를 치룬다. 요즘에는 3년형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지만 몽양이 외국에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를 그렇게 힘들게 잡아들여야 했는지 하는 부분에서 그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그가 손문이나 레닌 등과 만나고, 도쿄에서 아나키스트들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는 사실 등은 아직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야욕을 내보이지 않은 일본에게는 손톱 밑의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체포가 오히려 국내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그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고, 이것이 해방 후 여론 조사의 결과로 나왔다.

 

몽양의 친일을 부각하여 자신들을 물타기 하려는 세력이 있다. 바로 친일파들이다. 적극적으로 친일을 하면서 호의호식하고 해방 후에 그 세력과 권력과 경제력을 움켜진 그들은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 몽양을 공격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들이 사용하는 비열한 공작인데 대중들은 쉽게 이 이미지를 자신들이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볼 때 가장 분노했다. 욕했다. 그리고 그를 두려워한 세력이 만들어낸 암살. 또 암살. 최근에 개봉한 영화 <암살>과는 완전히 다른 의도가 있는 암살이다. 역사의 물길이 바로 흘러갈 수 있는 그 시절에 다시 거꾸로 흘러간다. 한국 현대사에서 몇 번이나 있었던 일들이다.

 

바른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려주던 그 시절을 회상하면 역사의 무의미한 가정을 몇 번이나 하게 된다. 미군정이 건준과 합작했다면 친일파가 청산되었을 텐데, 반민특위의 활동이 제대로만 되었으면 우리의 역사가 바로 섰을 텐데. 몽양과 김구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이승만의 세력이 그렇게까지 기승을 부리지 못했을 텐데. 이런 불가능한 가정을 하는 것은 바로 지금 현재의 역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광복 70주년 기념행사장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 어려웠던 시절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들의 재산과 청춘과 생명을 바친 분들이나 그 후손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몽양에 대해 조금 더 알았다. 그리고 더 공부해야 할 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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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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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 네스뵈를 처음으로 만난 작품은 <헤드헌터>였다. 그를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은 해리 홀레 시리즈다. 이 책들이 모두 비채에서 나왔는데 처음 이 작가의 작품이 나왔을 때만 해도 재미있게 잘 쓴다 정도였다. 해리 홀레 시리즈 중 가장 먼저 번역 출간된 <스노우맨>을 보았을 때도 엄청나게 큰 기대까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이어서 나온 시리즈를 보면서 그에게 완전히 빠졌다. 순서가 뒤죽박죽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스탠드얼론 작품이 한 권 더 출간되었다. 바로 이 작품이다. 액션과 반전이 뒤섞여 작가의 능력이 잘 발휘되어 있다. 멋진 작품이다.

 

아들. 그는 아버지를 존경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살한 아버지와 유언장을 발견한 뒤 열여섯이란 어린 나이에 마약 중독자가 된다. 존경했던 아버지가 부패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은 그를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미성년을 벗어난 후에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뒤집어쓴다. 감옥에 갇힌다. 이 감옥에서도 그는 다른 사람의 죄를 뒤집어쓴다. 그 대가는 헤로인이다. 작가가 소년이라고 부르는 이 아들의 이름은 소니다. 그는 감옥 속에서 고해신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죄수들은 그에게 죄를 털어놓고 그의 기도를 통해 안식을 얻는다. 감옥 속의 성자와 같다. 삶의 의지를 잃은 소년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다. 하나의 고백을 듣기 전까지는.

 

자신의 삶을 파괴한 소년에게 한 죄수가 고백한다. 그의 아버지는 부패 경찰이 아니었다고. 경찰 내부에 존재하는 첩자를 잡으려고 했다고. 그 첩자에게 역습을 당해 아내와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유서를 가짜로 쓰고 자살했다고. 이 고백은 마약이 주는 평온 속에서 살아가던 소년을 뒤흔든다. 그를 감싸고 있던 세계가 깨어진다. 소년은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처절한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단순히 약물 중독에서 벗어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탈옥을 해야만 복수를 할 수 있다. 의지와 치밀한 준비는 사람들의 허점을 파고들어 그를 감옥에서 나가게 한다. 이때만 해도 소년이 오슬로를 어떻게 뒤흔들지 예상도 못했다.

 

소년은 감옥에 있으면서 많은 고해를 들었다. 그를 희생양으로 삼은 살인 사건도 있다.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안 후 그는 복수를 꿈꾼다. 그가 감옥에 갇힌 십 수 년은 세상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왠지 짠하다. 소년은 가짜 신분증으로 휴대폰을 개통하고, 마약중독자를 위한 센터에 들어가서 쉴 곳을 만든다. 그리고 이곳에서 마리타를 만난다. 이제 하나의 거점이 만들어졌고, 첫 번째 복수를 위해 떠난다. 부유하고 평온한 가정집에서 한 여인을 쏜다. 집을 뒤져 현찰과 보석을 들고 나온다. 왜 그녀를 죽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떤 죄를 지었기에 하고. 이 의문을 풀어주는 것은 소년이 아니다. 시몬 경정과 카리 형사다.

 

시몬은 도박중독자였다. 한 여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내인 엘세를 만난 후 중독에서 벗어난다. 그는 소니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가 소년이 살인한 첫 현장에서 보여준 짧지만 강렬한 활약은 전문가의 향기가 풀풀 날린다. 모두가 강도의 소행이라고 할 때 그는 정밀하게 현장을 보고 추리하고 증거를 쫓는다. 그의 결론은 다르다. 이것을 카리가 하나씩 배운다. 두 번째 살인 현장을 봤을 때도 그는 다른 형사와 다른 시각에서 현장을 본다. 이것은 그가 탁월한 형사란 점도 있지만 이전에 탄도학을 전문으로 하는 형사였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약 전담 형사를 한 후 경력을 쌓기 위해 살인 사건 전담으로 온 카리의 도움이 가세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부패는 한 곳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쌍둥이라 불리는 어둠 속 배후는 오슬로의 정치, 경제, 관료 조직 곳곳에 자신의 세력을 심어 놓았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악당들은 그의 수하들이다. 그는 인신매매, 마약 판매, 무기 중개, 살인 의뢰 등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모든 일을 한다. 오슬로를 어둠 속에서 지배한다. 그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사실 중반 이후다. 소년이 저지르는 연쇄 살인이 가리키는 방향이 분명해진 뒤에 나타난다. 그 앞에 그의 수하들이 한 명씩 소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 많이,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충분히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소니,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빠진 마르타, 소니의 탈옥과 살인 현장을 둘러 본 후 소니를 찾으려는 시몬, 형사를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단계로 생각하는 카리, 동네 양아치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소니를 몰래 훔쳐보는 소년 마르쿠스. 이들이 등장하여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대단한 몰입으로 단숨에 끝까지 달려가게 만든다. 살인자를 처단하면서 더 큰 악에 다가가는 소니의 모습은 통쾌하지만 사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습에는 답답함을 느낀다. 우리의 현실과 너무 닮았기 때문일까? 이제는 상투적인 말이 된 ‘역시 요 네스뵈다’를 반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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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관의 대국민 보고서
고상만 지음 / 돌베개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준하란 이름만 알고 있었다. 학창시절 가끔 읽은 역사서에 그 이름이 나왔지만 그렇게 비중이 높지 않았다. 그러다 이 이름을 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나는 꼼수다>에서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다루었을 때였다. 출퇴근길에 들었는데 박정희 독재자 시절의 한 단면을 잘 알 수 있었다. 한때 박정희는 영웅으로 인식되었다. 그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후 국장을 치르던 그때 외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이 이미지는 한동안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이것이 사라진 것은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의 악행이 하나씩 드러나면서였다.

 

지금도 그의 이런 악행을 어쩔 수 없는 그 시대의 결단으로 이해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집안 어른들을 만난다. 답답하다. 못 먹고 살 때, 한 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던지 하려고 했던 우리의 부모 세대는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보다 대통령 덕분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방 후 친일 세력이 그대로 남아 정권과 경제를 휘어잡았던 것을 감안하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훌륭한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장준하다. <사상계>란 잡지 발행인으로 알고 있었던 그다. 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그 시대 감히 박정희에게 돌직구를 날리고 감옥도 참 많이 다녀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책은 <나꼼수>의 내용과 상당 부분 겹친다. 방송이 어떻게 보면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방송에서 해주지 못한 이야기를 많이 다룬다. 방송이란 한계 속에서 요약해서 들려줄 수밖에 없었던 것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도 같이 알려준다. 의문사진상위원회 조사관으로 이 죽음을 조사했던 고상만 조사관의 기록들이 국가기록원 2074년까지 자료 비공개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관계자들이 모두 죽고, 그 기억이 희미해진 후 공개하겠다는 의도다. 이 자료가 누군가에게 엄청난 위험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결정을 내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국가에서 외부인사를 뽑아서 조사한 자료임을 감안한다면.

 

장준하의 죽음은 분명한 타살이다. 무덤이 비로 무너진 후 이장하면서 발견한 두개골의 흔적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이 타살이라고 했을까.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 활동 당시 장준하의 시체를 통한 검안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정확한 조사를 방해할 세력이 두려워 시체 발굴을 하지 않았다. 거의 30년이 다 된 시간이 흘렀고,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조사관이 자료를 관계 기관에 요청했을 때 제대로 온 것이 없고, 자료가 없다는 회신이 온 것을 보면 말이다. 최근에 이 자료가 70년간 비공개 자료로 묶였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포천 약사봉에서 추락사했다는 날짜는 1975년 8월 17일이다. 그가 자발적으로 등산을 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위험한 길을 같이 내려오면서 추락하는 것을 봤다는 김용환의 증언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가장 큰 의문은 산에서 굴러떨어진 사람의 옷이나 같이 가지고 있던 용품들이 너무 깨끗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보면서 최근에 국정원이 보여준 허술한 작전들이 떠올랐다. 기록을 삭제하고 자살했다는 국정원 직원의 차가 다르다거나 호텔에 잠입해서 외국정부 정보를 빼려다가 잡힌 것 등이 먼저 생각난다. 이런 전통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하면 너무 나간 것일까? 뭐 그 덕분에 한 항일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장준하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면을 파고들게 되었다.

 

단순히 장준하 의문사만 다루지는 않는다. 저자가 경험했던 몇 가지 의문사도 같이 다루고 있다. 다른 방송에서 이미 본 것이지만 국방부와 국정원의 지독한 정보 폐쇄나 왜곡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일제 강점기 당시 서로 상반되는 행동을 보인 장준하와 박정희의 간략한 개인사를 앞에 넣었다. 이 작업은 장준하가 왜 이런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박근혜를 둘러싸고 있었던 최태민 목사와의 스캔들도 당시 비서실장의 기록을 통해 명확하게 말한다. 언론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것만으로 엄청난 뉴스가 되었을 텐데 그냥 넘어갔다.

 

“우리 사회는 껄끄러운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역사에 맡기자고 한다. 역사는 그런 문제들을 맡아주는 전당포가 아니다.”(13쪽)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한 말이다. 현재의 시간들이 바로 역사임을 부정하고, 이 문제를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세력이 늘 하는 변명이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유지하는 동안에는 이 문제를 무시하고 숨기고 왜곡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이 자료의 70년간 비공개 결정이다. 덕분에 이 책이 나와 진실의 일부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그 이유를 책 뒷부분에 적었다. 너무나도 분명한 타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장준하 의문사 외에도 우리 사회는 수많은 의문사들이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군부대로 가면 이 의문사는 더 많아진다. 너무나도 빤한 것도 그들은 숨기고 왜곡하고 모른 채 한다. 관료적으로 굳어진 조직이 얼마나 문제인지 잘 알려준다. 장준하 의문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느끼고, 너무나도 분명한 자료에 이제는 해결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았다. 답답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언제 이런 의문사들이 깨끗하고 정확하게 온 국민에게 알려질까? 아주 먼 훗날의 일처럼 다가온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자. 잊지 말자. 모든 것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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