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섬니악 시티 - 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
빌 헤이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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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올리버 색스, 게이. 이 셋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올리버 색스가 동성애자란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마이클 잭슨이 누군지 몰랐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뇌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그가 1980년대 이후 미국 팝의 아이콘이었던 그를 몰랐다는 것을 정말 그의 직업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첨단 기계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나의 일반적인 인식이 엇나갔다. 이렇게 나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바로 올리버 색스의 이야기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뉴욕의 풍경과 사람들이었다.

 

빌의 나이는 50대다. 불면의 밤을 보내던 그의 곁에서 연인이 심장마비로 죽었다. 평소처럼 불면 상태였다면 빠른 응급처치가 가능했겠지만 그날은 약으로 잠이 든 상태였다. 연인을 잃은 슬픔은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 책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 상실과 이것을 잊거나 이겨내려는 몇 가지 노력을 다룬다. 하지만 이 상실감은 시간이 지나고, 올리브 색스와 연인이 되었을 때조차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이 상실감을 책 속에서 계속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삶은 언제나 계속 되고, 새로운 인연은 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뉴욕에 온 그가 처음으로 흥미로워했던 것은 지하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미국 영화 속 지하철 풍경과 다른 모습에 놀랐다. 저자 자신도 그렇게 말한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지하철 이동들이 떠올랐다. 그가 다른 것인지, 아니면 내가 다른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판대 알리 이야기나 택시 기사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그의 이야기 범위가 넓어진다. 책 곳곳에 실린 사진들은 그가 만나고 그 대상들에게 동의를 구한 후 찍었다. 출소 첫날이란 제목이 달린 사진을 보면서 어떻게 만났고, 그 사연은 어떻게 들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이야기들의 자세한 후기나 결말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관찰자로 기록자로 남을 뿐이다. 이것이 여운으로 남아 머릿속에 가끔 맴돌기도 한다.

 

동성애자의 기록이다 보니 사랑의 표현들이 나올 때 약간의 거부감을 느낀다. 아직 나의 이성과 감성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불결하다는 느낌보다 어색하고, 나의 이미지가 투영되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리화나를 피우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마약으로 분류된 이 식물의 논쟁이 떠올랐다. 올리버 색스가 암으로 고생할 때 이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불법 마약 남용 죄책감이 마리화나 합법화로 사라졌다는 대목은 암 등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한국의 환자들을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다시 한 번 더 논의 대상이 되어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뉴욕의 이미지가 나도 모르는 사이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에 의해 뒤틀리고 왜곡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느낀다. 이 도시의 야경을 사랑하고, 자동차와 신호등의 붉은 물결을 보려는 노력 등은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책을 읽으며 도시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느꼈고, 다른 시각에서 뉴욕을 볼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올리버 색스가 빌을 만나기 전까지 오랫동안 성교를 하지 않았다고 했을 때 이 세계적인 뇌신경학자가 얼마나 동성애 혐오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의 실명보다 O라는 단어로 표시된 것이 단순히 간단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그의 성 정체성을 밝혔다는 대목에서 그 용기와 행동에 박수를 보냈다.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이 최근에 번역되었지만 아직 읽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연인이었던 빌의 기록은 다른 시각 속에서 그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옥스퍼드 사전을 찾는 모습이나 고전음악에 심취했다거나 포도주를 마시는 장면 등은 그의 문화적 취향이 잘 드러난다. 샴페인을 처음 따는 장면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이런 기록들은 O의 권유로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란 그의 고백에 동의하게 만든다. 실제 이 책의 꽤 많은 분량이 그의 일기다. 어떤 때는 한 줄이고, 어느 날은 몇 쪽에 달한다. 이런 기록들은 저자의 사랑과 인생과 일과 관심 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기율표 사진을 보면서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다시 느꼈고, 올리버 색스의 책에 다시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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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들의 성지 도쿄 & 오사카 - 아키하바라에서 덴덴타운까지 본격 해부
방상호 지음, 김익환 그림 / 다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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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덕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한때는 덕후 비슷한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덕후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잡다한 관심사가 이런 깊이를 거부했다. 하나만 파고들기에는 욕심이 너무 과했다. 이것저것 보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들로 인해 안타깝게도 덕후가 되지 못했다. 최근 십 년 동안 책에만 빠져 있는데도 그 분야가 잡다하다. 그 이전에는 영화에 미쳐 얼마나 많은 영화를 모으고, 보고, 읽고 했던가. 이 책을 선택한 것도 이 잡다함과 덕후에 대한 동경(?)이 섞여 있다.

 

일본는 덕후의 총본산과도 같다. 매니아와 덕후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를 꼽으라면 당연히 일본이다. 일본의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볼 때 이 덕후들은 아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은 하나의 표준화된 듯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최근에는 분야에 따라 조금씩 바뀐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키덜트라는 단어도 덕후의 한 모습이다. 며칠 전 출근길에 건담 매장 앞에서 줄서 기다리던 남자들 전부가 성인이었다. 40대 이상도 적지 않았다. 우리의 키덜트 시장의 한 모습을 그때 보았다. 이들이라면 이 책이 일본 여행을 위한 멋진 가이드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몇 년 전 도쿄 오다이바의 실물 크기의 건담 모형을 보고 좋아했다. 개인적으로 건담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내가 본 몇 편의 건담 애니 때문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출퇴근길에 늘 건담 매장을 지나가면서 대충 보고 지나가던 나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취향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빠르게 변한 일본 매니아 시장의 모습도 확인했다. 2000년도 무렵까지 넘쳐나던 매장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직접 볼 수 있는 키덜트 문화의 위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라고 한다. 이 가이드북은 그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겨우 며칠 동안 머문 도쿄 여행 일정에 이 매장들을 둘러볼 생각을 못했다. 아니 몇 년 전에는 이 분야에 대한 관심도 정보도 부족했다. 아키하바라는 단순히 전자 매장으로 생각했고, 이케부쿠로는 드라마 때문에 웨스트게이트파크만 떠올랐다. 오다이바도 관광지 때문에 갔다가 겨우 건담을 찾았다. 아마 이 가이드북에서 유일한 답사였을 것이다. 물론 매장은 대충 봤다. 도쿄 타워는 그때 원피스와 결합하기 전이었다. 실제 본 타워는 올라가볼 생각을 못할 정도로 매력이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 도쿄 타워 이미지와 너무 달랐다고 해야 하나. 그때 원피스가 보였다면 생각이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덕후의 세계는 넓고 깊다. 그 모든 것을 섭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분야별로 나눠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저자가 발로 정말 많이 뛰어다녔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몇 가지 분야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분야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애니와 만화와 게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인기작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추억의 작품들이 나오는 것은 반갑다. 예전 일본 마니아 문화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차이가 있는데 시대의 변화가 보였다. 도쿄 나카노와 오사카의 덴덴타운 같은 곳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낯설다. 그리고 교토 국제 문화 박물관은 우리집 근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요즘 뜸하다고 하지만 만화에 대한 열정까지 식은 것은 아니니까.

 

기본적으로 덕후들의 가이드북으로 잘 짜여 있다. 실제 덕후들이라면 이보다 더 깊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분야가 다른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다. 덕후가 아니라면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쯤 일본 애니나 만화나 게임에 빠진 사람이라면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는 일본 여행에 이곳을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메이드 카페에 대한 환상이 일본 드라마를 보고 깨졌지만 수많은 만화책들과 피규어로 가득한 매장이라면 나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을 것 같다. 언제 혼자 일본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이 책이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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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진짜 인생은
오시마 마스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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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뻔한 전개와 결말이 아니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 너무 뻔한 전개와 결말로 힘이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완전히 나의 예상을 벗어났다. 물론 나의 예상이 나의 바람과 이전까지의 독서 경험이 합쳐진 것이지만. 그리고 세 명의 여인이자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와 삶에 대한 이야기는 ‘당신의 진짜 인생은’이란 질문과 맞물려 계속해서 나온다. 그 중심에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모리와키 홀 리가 있다.

 

‘비단 배’ 시리즈의 작가인 그녀는 이제 거의 절필 상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 글을 쓰지 않았다. 가끔 내놓는 수필의 경우도 그녀의 비서인 우시로 게이코가 쓴 것이다. 물론 이것은 대외적인 비밀이다. 이 비밀이 구니사키 마미가 홀리의 제자 겸 가정부로 오면서 드러난다. 비단 배의 후속편은 쓰지 못하지만 홀리가 살고 있는 집 안팎을 도맡아하는 그녀에게 소소한 일상을 적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다. 이 일도 그녀가 혼자 결정해서 한 것은 아니다. 홀리의 검사를 받아 내놓았다. 여기서 대필 작가와 문장에 진짜와 가짜가 어디 있냐는 문장론이 나온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소설가로 데뷔한 후 제대로 된 작품을 쓰지 못하는 마미가 홀로의 집으로 들어오면서 시작한다. 그녀를 처음 본 홀리는 비단 배의 고양이 처칠이라고 부른다. 졸지에 마미는 고양이가 된다. 자신이 우상으로 삼았던 작가의 제자가 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에게 이런 상황은 쉽게 적응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몰래 나간다. 이 사실은 안 홀리가 그녀를 데리고 오라고 편집자와 비서에게 말한다. 다시 돌아온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주 맛있는 고로케를 튀기는 일이다. 이 고로케는 마법을 부려 침체되어 있던 집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비단 배를 기다리는 많은 독자가 있지만 작가는 그 이야기의 꼬리를 잡지 못한다. 이제는 몸이 좋지 않아 글을 쓸 수도 없다. 왕성하게 집필할 당시 그녀가 번 돈으로 남편과 담당 편집자가 도박으로 상당한 돈을 탕진한다. 남편과 이혼을 하는데 돈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삶을 소모하던 남편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머릿속은 세속적인 감정만 들끓었다. 보통 사람의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에 일어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이 돈과 연결되어 있고, 이것이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런 사건의 중심에는 처칠의 마법 고로케가 있다.

 

소설은 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1년의 시간이 지나간다. 이 흐름을 조용히 따라가면 그 앞에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명의 화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나이와 성격과 삶의 경험에 따라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이 차이가 이야기의 분위기를 극단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주의하지 않고 있다 보면 누가 화자인지 잠시 깜박한다. 문체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화자의 변경이라는 작은 변화가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다가올 때 새로운 가능성과 기대의 문을 연다. 나의 바람이 예상으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당신의 진짜 인생은’이란 물음에 특히 집착하는 인물은 우시로다. 특이한 이력과 대필 작가란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진짜 인생은 하나의 화두다. 반면에 마미는 이것에 그렇게 억매이지 않는다. 이 차이는 두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재미난 장면이 하나 있다. 한 집에서 세 명의 여인이 각자 숨어서 글을 써는 것이다. 한 면은 베스트셀러 작가고, 한 명은 대필 작가고, 다른 한 명은 데뷔 후 바로 슬럼프에 빠진 작가다. 이후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읽으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필 작가였던 우시로다. 그녀에게 새로운 삶이 열린 것이다. 이 변화가 오롯이 자신만의 역량으로 일군 것은 아니지만.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탓에 이전에 본 소설이나 드라마 속 작가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마감에 시달리는 그들의 모습이 특히. 홀리의 전성기를 말할 때 이 장면들이 떠오른 것은 당연하다. 고로케의 마법이 가장 멋지게 발휘되는 장면도 이 과거의 회상 부분이다. 이야기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몇 가지 장면들이 있는데 이것이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 어떤 기대와 바람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내 예상이 다 깨어진 것도 이 부분들 때문이다. 느슨한 듯하면서 면면이 이어지는 이 소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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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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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만 놓고 보면 중편 소설에도 조금 못 미친다. 마음먹고 읽으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데 왠지 모르게 딴일을 하다보니 속도가 더뎠다. 읽으면서 귀족의 의무과 살인과 예상하지 못한 결말 때문에 놀랐다. 한 점쟁이의 예언에 휘둘려 잠을 자지 못하는 느빌 백작과 성을 팔기 전 마지막 가든파티를 멋지게 해내려는 느빌 백작의 모습은 인간의 다중성을 잘 보여준다. 그가 예언에 빠져 누굴 죽일까 고민하는 대목은 어떤 부분에서는 희극적이다. 특히 아내가 작은 말꼬투리를 잡으면서 죽여야한다고 할 때는 농담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성을 빠져나가 숲에서 머물던 아이 세리외즈를 데리고 온 것은 점쟁이다. 이 점쟁이가 느빌 백작에게 전화해서 딸이 가출했다고 말한다. 놀란 가슴을 안고 딸을 데리러 온 그에게 가든파티에 초대한 사람을 죽인다는 예언을 한다. 그냥 무시하면 될 말인데 예언에 사로잡힌다. 여기에 작가는 아가멤논의 사례를 들면서 그것이 운명임을 강조한다. 느빌 백작이 아이들 이름을 오레스트와 엘렉트르로 지은 것과 연관시킨다. 다만 셋째만 세리외즈란 다른 이름이다. 이 다름이 이 귀족 집안에서 생각과 행동과 외모의 다름으로 발전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아서 새빌 경의 범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읽지 않은 작품이라 이 둘을 연결할 수 없다. 아쉬운 부분이다. 노통브가 오스카 와이드의 열렬한 팬이란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운명과 예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명 지어진 것을 예언한다고 한다면 그 결정론적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선택은 이미 정해졌다. 이것을 엇나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셋째 딸의 이름을 다르게 지은 것도 이해가 된다. 세리외즈의 오빠와 언니가 너무나도 완벽해서 그 짝을 찾을 수 없다고 한 것과 대비된다. 이 다름이 그녀를 사춘기의 우울 속으로 깊이 밀어넣는다. 그녀가 고뇌하는 아빠에게 자기를 죽여달라고 한 것도, 밤에 밖으로 나간 것도 이 연장선에 있다.

 

처음에는 딸 세리외즈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은 느빌 백작이다. 그가 하는 고뇌와 불행했던 과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귀족과 완전히 다르다. 권리보다 의무가 먼저고, 검소한 생활은 기본이다. 이런 와중에 화려한 파티는 이어져야 한다. 허영이다. 대외적 이미지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쓴다. 파산으로 플뤼비에성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도 이 의무와 순수함과 허영심 때문이다. 그가 집을 떠나 대학에서 음식을 마구 먹는 장면을 보면서 이런 귀족이라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이가 영양실조로 죽었던 과거와 연결한다면 더욱. 동시에 한국 상류층을 떠올리며 너무 다른 모습이라 더 놀란다.

 

존속살인이란 고전적 비극을 다루지만 그 속에는 운명과 허영심이 담겨 있다. 존속살인이 나쁜 것이란 것을 누구나 알지만 고전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느빌 백작이 딸의 첫 번째 제안을 피해갈 수 있다고 느꼈을 때 행복감은 자신에게 닥친 운명은 피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뀐 제안이 왔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은 이성 대신 예언에 휘둘리는 불쌍한 한 남자일 뿐이다. 그러다 일어나는 반전은 어떻게 보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그 옛날 동화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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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둘쨉니다 - 육삼 이혜경 등단 10년 소설집
이혜경 지음 / 온하루출판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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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름의 작가와 구별하기 위해 육삼 이혜경이란 필명을 사용한다. 아마 63년생이라 이런 필명을 붙인 모양이다. 동명이인의 작가 작품은 읽은 적 있지만 이번 작가는 사실 처음이다. 솔직히 말해 동명이인이란 사실을 알고 주저했다. 하지만 한 작가의 십 년 동안 모은 작품집이라면 한 번 읽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목도 시선을 끌었다. 나와 상관없지만 둘째들이 얼마나 많은 아픔과 어려움을 토로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낯익은 작가들의 심사평은 여기에 신뢰를 덧붙여주기에 충분했다.

 

아홉 편의 단편은 모두 1인칭소설이다. 주인공의 연령도 성별도 처한 상황도 모두 다르다. 이 다름이 읽는 동안 낯선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1인칭이 주는 개인적 경험이 독자인 나에게는 낯섦으로 먼저 다가온 것이다. 이렇게 다가온 화자의 이야기는 그를 통해서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만난 주인공들은 나의 예상을 벗어난 전개로 이어졌다. 어느 부분에서는 비약인가 싶기도 하지만 차분히 다시 읽으면 앞에 단서가 지나가듯이 나온다. 그 단서를 알고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독자 각자의 몫이다.

 

삶은 각자의 환경에 따라 각각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없다. 아버지가 엄마를 죽였거나, 형이 죽거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거나,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거나, 병으로 하반신이 마비되거나, 딸의 기구한 사연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거나, 자식의 아픔을 다른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는 등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이런 사연들 속에서도 그들은 삶을 이어가고, 숨겨왔던 속내를 조용히 드러내면서 가슴 아픈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때 나의 경험이나 상황과 맞닿는 부분이 생기면 감정이입하고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때의 가슴 아픔이란 실제 경험과 상관없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의 관계다. 부모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식은 그 감정을 표현한대로 받아들인다. 자식을 낳고 나면 알게 된다는 말은 이 당시에는 아무 소용없다. 소중한 자식에게 한없이 엄했던 아비가 마지막에 내비친 감정은 아프지만 아쉽고 안타깝다. 엄마의 일탈이 싫어 달아난 딸이 자신의 딸에게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딸도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자 우리네 가족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의 삶을 돌아봐도 이들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몇 편을 읽으면서 단숨에 사라졌다. 한 가족의 비밀을 들어다보는 것은 결코 편안한 일이 아니다. 무너진 가족이거나 무너질 듯한 가족의 모습은 이런 긴장감이 그대로 유지된다.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는 그 긴장감이 더 고조된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때는 한 편의 스릴러를 읽는 것 같다.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이 서로 다른 결말로 이루어진 것도 눈길이 간다. 아직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그냥 떠날 수 있지만 삶이 어디 그런가. 일출과 새로운 희망과 관계들이 가슴 속으로 조용히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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