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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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만 놓고 보면 중편 소설에도 조금 못 미친다. 마음먹고 읽으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데 왠지 모르게 딴일을 하다보니 속도가 더뎠다. 읽으면서 귀족의 의무과 살인과 예상하지 못한 결말 때문에 놀랐다. 한 점쟁이의 예언에 휘둘려 잠을 자지 못하는 느빌 백작과 성을 팔기 전 마지막 가든파티를 멋지게 해내려는 느빌 백작의 모습은 인간의 다중성을 잘 보여준다. 그가 예언에 빠져 누굴 죽일까 고민하는 대목은 어떤 부분에서는 희극적이다. 특히 아내가 작은 말꼬투리를 잡으면서 죽여야한다고 할 때는 농담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성을 빠져나가 숲에서 머물던 아이 세리외즈를 데리고 온 것은 점쟁이다. 이 점쟁이가 느빌 백작에게 전화해서 딸이 가출했다고 말한다. 놀란 가슴을 안고 딸을 데리러 온 그에게 가든파티에 초대한 사람을 죽인다는 예언을 한다. 그냥 무시하면 될 말인데 예언에 사로잡힌다. 여기에 작가는 아가멤논의 사례를 들면서 그것이 운명임을 강조한다. 느빌 백작이 아이들 이름을 오레스트와 엘렉트르로 지은 것과 연관시킨다. 다만 셋째만 세리외즈란 다른 이름이다. 이 다름이 이 귀족 집안에서 생각과 행동과 외모의 다름으로 발전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아서 새빌 경의 범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읽지 않은 작품이라 이 둘을 연결할 수 없다. 아쉬운 부분이다. 노통브가 오스카 와이드의 열렬한 팬이란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운명과 예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명 지어진 것을 예언한다고 한다면 그 결정론적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선택은 이미 정해졌다. 이것을 엇나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셋째 딸의 이름을 다르게 지은 것도 이해가 된다. 세리외즈의 오빠와 언니가 너무나도 완벽해서 그 짝을 찾을 수 없다고 한 것과 대비된다. 이 다름이 그녀를 사춘기의 우울 속으로 깊이 밀어넣는다. 그녀가 고뇌하는 아빠에게 자기를 죽여달라고 한 것도, 밤에 밖으로 나간 것도 이 연장선에 있다.

 

처음에는 딸 세리외즈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은 느빌 백작이다. 그가 하는 고뇌와 불행했던 과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귀족과 완전히 다르다. 권리보다 의무가 먼저고, 검소한 생활은 기본이다. 이런 와중에 화려한 파티는 이어져야 한다. 허영이다. 대외적 이미지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쓴다. 파산으로 플뤼비에성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도 이 의무와 순수함과 허영심 때문이다. 그가 집을 떠나 대학에서 음식을 마구 먹는 장면을 보면서 이런 귀족이라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이가 영양실조로 죽었던 과거와 연결한다면 더욱. 동시에 한국 상류층을 떠올리며 너무 다른 모습이라 더 놀란다.

 

존속살인이란 고전적 비극을 다루지만 그 속에는 운명과 허영심이 담겨 있다. 존속살인이 나쁜 것이란 것을 누구나 알지만 고전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느빌 백작이 딸의 첫 번째 제안을 피해갈 수 있다고 느꼈을 때 행복감은 자신에게 닥친 운명은 피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뀐 제안이 왔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은 이성 대신 예언에 휘둘리는 불쌍한 한 남자일 뿐이다. 그러다 일어나는 반전은 어떻게 보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그 옛날 동화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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