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 둘쨉니다 - 육삼 이혜경 등단 10년 소설집
이혜경 지음 / 온하루출판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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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름의 작가와 구별하기 위해 육삼 이혜경이란 필명을 사용한다. 아마 63년생이라 이런 필명을 붙인 모양이다. 동명이인의 작가 작품은 읽은 적 있지만 이번 작가는 사실 처음이다. 솔직히 말해 동명이인이란 사실을 알고 주저했다. 하지만 한 작가의 십 년 동안 모은 작품집이라면 한 번 읽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목도 시선을 끌었다. 나와 상관없지만 둘째들이 얼마나 많은 아픔과 어려움을 토로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낯익은 작가들의 심사평은 여기에 신뢰를 덧붙여주기에 충분했다.

 

아홉 편의 단편은 모두 1인칭소설이다. 주인공의 연령도 성별도 처한 상황도 모두 다르다. 이 다름이 읽는 동안 낯선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1인칭이 주는 개인적 경험이 독자인 나에게는 낯섦으로 먼저 다가온 것이다. 이렇게 다가온 화자의 이야기는 그를 통해서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만난 주인공들은 나의 예상을 벗어난 전개로 이어졌다. 어느 부분에서는 비약인가 싶기도 하지만 차분히 다시 읽으면 앞에 단서가 지나가듯이 나온다. 그 단서를 알고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독자 각자의 몫이다.

 

삶은 각자의 환경에 따라 각각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없다. 아버지가 엄마를 죽였거나, 형이 죽거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거나,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거나, 병으로 하반신이 마비되거나, 딸의 기구한 사연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거나, 자식의 아픔을 다른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는 등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이런 사연들 속에서도 그들은 삶을 이어가고, 숨겨왔던 속내를 조용히 드러내면서 가슴 아픈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때 나의 경험이나 상황과 맞닿는 부분이 생기면 감정이입하고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때의 가슴 아픔이란 실제 경험과 상관없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의 관계다. 부모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식은 그 감정을 표현한대로 받아들인다. 자식을 낳고 나면 알게 된다는 말은 이 당시에는 아무 소용없다. 소중한 자식에게 한없이 엄했던 아비가 마지막에 내비친 감정은 아프지만 아쉽고 안타깝다. 엄마의 일탈이 싫어 달아난 딸이 자신의 딸에게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딸도 아픔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자 우리네 가족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의 삶을 돌아봐도 이들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몇 편을 읽으면서 단숨에 사라졌다. 한 가족의 비밀을 들어다보는 것은 결코 편안한 일이 아니다. 무너진 가족이거나 무너질 듯한 가족의 모습은 이런 긴장감이 그대로 유지된다.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는 그 긴장감이 더 고조된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때는 한 편의 스릴러를 읽는 것 같다.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이 서로 다른 결말로 이루어진 것도 눈길이 간다. 아직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그냥 떠날 수 있지만 삶이 어디 그런가. 일출과 새로운 희망과 관계들이 가슴 속으로 조용히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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