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들의 성지 도쿄 & 오사카 - 아키하바라에서 덴덴타운까지 본격 해부
방상호 지음, 김익환 그림 / 다봄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나 자신이 덕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한때는 덕후 비슷한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덕후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잡다한 관심사가 이런 깊이를 거부했다. 하나만 파고들기에는 욕심이 너무 과했다. 이것저것 보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들로 인해 안타깝게도 덕후가 되지 못했다. 최근 십 년 동안 책에만 빠져 있는데도 그 분야가 잡다하다. 그 이전에는 영화에 미쳐 얼마나 많은 영화를 모으고, 보고, 읽고 했던가. 이 책을 선택한 것도 이 잡다함과 덕후에 대한 동경(?)이 섞여 있다.

 

일본는 덕후의 총본산과도 같다. 매니아와 덕후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를 꼽으라면 당연히 일본이다. 일본의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볼 때 이 덕후들은 아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은 하나의 표준화된 듯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최근에는 분야에 따라 조금씩 바뀐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키덜트라는 단어도 덕후의 한 모습이다. 며칠 전 출근길에 건담 매장 앞에서 줄서 기다리던 남자들 전부가 성인이었다. 40대 이상도 적지 않았다. 우리의 키덜트 시장의 한 모습을 그때 보았다. 이들이라면 이 책이 일본 여행을 위한 멋진 가이드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몇 년 전 도쿄 오다이바의 실물 크기의 건담 모형을 보고 좋아했다. 개인적으로 건담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내가 본 몇 편의 건담 애니 때문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출퇴근길에 늘 건담 매장을 지나가면서 대충 보고 지나가던 나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취향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빠르게 변한 일본 매니아 시장의 모습도 확인했다. 2000년도 무렵까지 넘쳐나던 매장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직접 볼 수 있는 키덜트 문화의 위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라고 한다. 이 가이드북은 그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겨우 며칠 동안 머문 도쿄 여행 일정에 이 매장들을 둘러볼 생각을 못했다. 아니 몇 년 전에는 이 분야에 대한 관심도 정보도 부족했다. 아키하바라는 단순히 전자 매장으로 생각했고, 이케부쿠로는 드라마 때문에 웨스트게이트파크만 떠올랐다. 오다이바도 관광지 때문에 갔다가 겨우 건담을 찾았다. 아마 이 가이드북에서 유일한 답사였을 것이다. 물론 매장은 대충 봤다. 도쿄 타워는 그때 원피스와 결합하기 전이었다. 실제 본 타워는 올라가볼 생각을 못할 정도로 매력이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 도쿄 타워 이미지와 너무 달랐다고 해야 하나. 그때 원피스가 보였다면 생각이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덕후의 세계는 넓고 깊다. 그 모든 것을 섭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분야별로 나눠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저자가 발로 정말 많이 뛰어다녔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몇 가지 분야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분야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애니와 만화와 게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인기작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추억의 작품들이 나오는 것은 반갑다. 예전 일본 마니아 문화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차이가 있는데 시대의 변화가 보였다. 도쿄 나카노와 오사카의 덴덴타운 같은 곳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낯설다. 그리고 교토 국제 문화 박물관은 우리집 근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요즘 뜸하다고 하지만 만화에 대한 열정까지 식은 것은 아니니까.

 

기본적으로 덕후들의 가이드북으로 잘 짜여 있다. 실제 덕후들이라면 이보다 더 깊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분야가 다른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다. 덕후가 아니라면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쯤 일본 애니나 만화나 게임에 빠진 사람이라면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는 일본 여행에 이곳을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메이드 카페에 대한 환상이 일본 드라마를 보고 깨졌지만 수많은 만화책들과 피규어로 가득한 매장이라면 나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을 것 같다. 언제 혼자 일본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이 책이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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