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섬니악 시티 - 뉴욕, 올리버 색스 그리고 나
빌 헤이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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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올리버 색스, 게이. 이 셋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올리버 색스가 동성애자란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마이클 잭슨이 누군지 몰랐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뇌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그가 1980년대 이후 미국 팝의 아이콘이었던 그를 몰랐다는 것을 정말 그의 직업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첨단 기계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나의 일반적인 인식이 엇나갔다. 이렇게 나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바로 올리버 색스의 이야기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뉴욕의 풍경과 사람들이었다.

 

빌의 나이는 50대다. 불면의 밤을 보내던 그의 곁에서 연인이 심장마비로 죽었다. 평소처럼 불면 상태였다면 빠른 응급처치가 가능했겠지만 그날은 약으로 잠이 든 상태였다. 연인을 잃은 슬픔은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 책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 상실과 이것을 잊거나 이겨내려는 몇 가지 노력을 다룬다. 하지만 이 상실감은 시간이 지나고, 올리브 색스와 연인이 되었을 때조차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이 상실감을 책 속에서 계속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삶은 언제나 계속 되고, 새로운 인연은 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뉴욕에 온 그가 처음으로 흥미로워했던 것은 지하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미국 영화 속 지하철 풍경과 다른 모습에 놀랐다. 저자 자신도 그렇게 말한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지하철 이동들이 떠올랐다. 그가 다른 것인지, 아니면 내가 다른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가판대 알리 이야기나 택시 기사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그의 이야기 범위가 넓어진다. 책 곳곳에 실린 사진들은 그가 만나고 그 대상들에게 동의를 구한 후 찍었다. 출소 첫날이란 제목이 달린 사진을 보면서 어떻게 만났고, 그 사연은 어떻게 들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이야기들의 자세한 후기나 결말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관찰자로 기록자로 남을 뿐이다. 이것이 여운으로 남아 머릿속에 가끔 맴돌기도 한다.

 

동성애자의 기록이다 보니 사랑의 표현들이 나올 때 약간의 거부감을 느낀다. 아직 나의 이성과 감성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불결하다는 느낌보다 어색하고, 나의 이미지가 투영되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리화나를 피우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마약으로 분류된 이 식물의 논쟁이 떠올랐다. 올리버 색스가 암으로 고생할 때 이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불법 마약 남용 죄책감이 마리화나 합법화로 사라졌다는 대목은 암 등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한국의 환자들을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다시 한 번 더 논의 대상이 되어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뉴욕의 이미지가 나도 모르는 사이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에 의해 뒤틀리고 왜곡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느낀다. 이 도시의 야경을 사랑하고, 자동차와 신호등의 붉은 물결을 보려는 노력 등은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책을 읽으며 도시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느꼈고, 다른 시각에서 뉴욕을 볼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올리버 색스가 빌을 만나기 전까지 오랫동안 성교를 하지 않았다고 했을 때 이 세계적인 뇌신경학자가 얼마나 동성애 혐오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의 실명보다 O라는 단어로 표시된 것이 단순히 간단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그의 성 정체성을 밝혔다는 대목에서 그 용기와 행동에 박수를 보냈다.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이 최근에 번역되었지만 아직 읽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연인이었던 빌의 기록은 다른 시각 속에서 그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옥스퍼드 사전을 찾는 모습이나 고전음악에 심취했다거나 포도주를 마시는 장면 등은 그의 문화적 취향이 잘 드러난다. 샴페인을 처음 따는 장면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이런 기록들은 O의 권유로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란 그의 고백에 동의하게 만든다. 실제 이 책의 꽤 많은 분량이 그의 일기다. 어떤 때는 한 줄이고, 어느 날은 몇 쪽에 달한다. 이런 기록들은 저자의 사랑과 인생과 일과 관심 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기율표 사진을 보면서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다시 느꼈고, 올리버 색스의 책에 다시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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