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진짜 인생은
오시마 마스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예상한 뻔한 전개와 결말이 아니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 너무 뻔한 전개와 결말로 힘이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완전히 나의 예상을 벗어났다. 물론 나의 예상이 나의 바람과 이전까지의 독서 경험이 합쳐진 것이지만. 그리고 세 명의 여인이자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와 삶에 대한 이야기는 ‘당신의 진짜 인생은’이란 질문과 맞물려 계속해서 나온다. 그 중심에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모리와키 홀 리가 있다.

 

‘비단 배’ 시리즈의 작가인 그녀는 이제 거의 절필 상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 글을 쓰지 않았다. 가끔 내놓는 수필의 경우도 그녀의 비서인 우시로 게이코가 쓴 것이다. 물론 이것은 대외적인 비밀이다. 이 비밀이 구니사키 마미가 홀리의 제자 겸 가정부로 오면서 드러난다. 비단 배의 후속편은 쓰지 못하지만 홀리가 살고 있는 집 안팎을 도맡아하는 그녀에게 소소한 일상을 적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다. 이 일도 그녀가 혼자 결정해서 한 것은 아니다. 홀리의 검사를 받아 내놓았다. 여기서 대필 작가와 문장에 진짜와 가짜가 어디 있냐는 문장론이 나온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소설가로 데뷔한 후 제대로 된 작품을 쓰지 못하는 마미가 홀로의 집으로 들어오면서 시작한다. 그녀를 처음 본 홀리는 비단 배의 고양이 처칠이라고 부른다. 졸지에 마미는 고양이가 된다. 자신이 우상으로 삼았던 작가의 제자가 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에게 이런 상황은 쉽게 적응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몰래 나간다. 이 사실은 안 홀리가 그녀를 데리고 오라고 편집자와 비서에게 말한다. 다시 돌아온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주 맛있는 고로케를 튀기는 일이다. 이 고로케는 마법을 부려 침체되어 있던 집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비단 배를 기다리는 많은 독자가 있지만 작가는 그 이야기의 꼬리를 잡지 못한다. 이제는 몸이 좋지 않아 글을 쓸 수도 없다. 왕성하게 집필할 당시 그녀가 번 돈으로 남편과 담당 편집자가 도박으로 상당한 돈을 탕진한다. 남편과 이혼을 하는데 돈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삶을 소모하던 남편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머릿속은 세속적인 감정만 들끓었다. 보통 사람의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에 일어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이 돈과 연결되어 있고, 이것이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런 사건의 중심에는 처칠의 마법 고로케가 있다.

 

소설은 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1년의 시간이 지나간다. 이 흐름을 조용히 따라가면 그 앞에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명의 화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나이와 성격과 삶의 경험에 따라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이 차이가 이야기의 분위기를 극단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주의하지 않고 있다 보면 누가 화자인지 잠시 깜박한다. 문체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화자의 변경이라는 작은 변화가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다가올 때 새로운 가능성과 기대의 문을 연다. 나의 바람이 예상으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당신의 진짜 인생은’이란 물음에 특히 집착하는 인물은 우시로다. 특이한 이력과 대필 작가란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진짜 인생은 하나의 화두다. 반면에 마미는 이것에 그렇게 억매이지 않는다. 이 차이는 두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재미난 장면이 하나 있다. 한 집에서 세 명의 여인이 각자 숨어서 글을 써는 것이다. 한 면은 베스트셀러 작가고, 한 명은 대필 작가고, 다른 한 명은 데뷔 후 바로 슬럼프에 빠진 작가다. 이후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읽으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필 작가였던 우시로다. 그녀에게 새로운 삶이 열린 것이다. 이 변화가 오롯이 자신만의 역량으로 일군 것은 아니지만.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탓에 이전에 본 소설이나 드라마 속 작가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마감에 시달리는 그들의 모습이 특히. 홀리의 전성기를 말할 때 이 장면들이 떠오른 것은 당연하다. 고로케의 마법이 가장 멋지게 발휘되는 장면도 이 과거의 회상 부분이다. 이야기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몇 가지 장면들이 있는데 이것이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 어떤 기대와 바람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내 예상이 다 깨어진 것도 이 부분들 때문이다. 느슨한 듯하면서 면면이 이어지는 이 소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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