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보다 따뜻한
와일리 캐시 지음, 홍지로 옮김 / 네버모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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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에는 기대했던 가독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의 산만함이 한 역할을 한 것도 있지만 조금은 밋밋한 전개가 이것을 부채질했다. 화자가 세 명인데 처음에는 이것을 몰랐다. 아홉 살 소년이 화자라는 착각을 한 탓이다. 이런 착각이 몇 개의 문장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고, 바뀌는 화자는 조금 더 적응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솔직히 처음부터 강한 충격을 주는 소설이 아니다. 인물과 관계에 대한 두터운 바탕을 쌓아올린 뒤 순식간에 파국으로 이끌어간다. 이 과정을 보면서 그들에 닥칠 비극을 알게 되고, 운명 같은 삶의 관계가 엮이면서 이어진다.

 

애들라이드 라일은 노부인이다. 챔블리스의 교회에 다니다가 한 신도가 방울뱀에 물려 죽는 것을 보고 발길을 끊었다. 그 죽음은 은폐되었고, 목사는 라일을 위협한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산파로 아이들을 받아온 그녀는 이제는 교회 밖에서 아이들을 돌본다. 혹시 교회에서 일어날 사건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교회 밖 관찰자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녀는 스텀프의 죽음을 보고, 숨겨진 사실을 알지만 그 어떤 진실을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독자들은 그녀의 속내와 감정의 표현과 과거사만 볼 수 있다. 이 과거사에서 또 다른 사실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제스 홀은 아홉 살 소년이고, 스텀프의 동생이다. 이 소년은 또 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보여준다. 스텀프에게 있었던 사건과 그 후에 벌어지는 몇 가지 비극의 현장에 있음으로써 산증인이 된다. 처음 형에게 가해진 폭력에서 그가 내뱉은 한 마디는 광신의 무리에게는 기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것만 믿고 보는 이들에게 사실의 무게는 아주 가볍다. 그리고 그가 본 불륜의 현장은 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다. 아직 어리고 겁이 많은 소년이 사실을 제때, 제대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안관 클렘 베이필드는 노년이다. 그의 과거사 또한 결코 순탄하지 않다. 이 집안의 비극은 홀 집안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보안관이고, 스텀프의 죽음을 제대로 알고 싶어한다. 부검은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듣고 싶어한다. 그는 챔블리스의 과거도 알고 있다. 라일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할 뿐이다. 스텀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역할은 제스의 목격과 부검 결과가 맡는다. 신의 권능을 외치는 무리에게 인간의 법이 다가간다. 광신과 맹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그에게 진실을 말해주려는 의지조차 없다.

 

이 세 명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삶과 현실의 사건을 바라본다. 스텀프의 죽음은 신의 권능을 빌려 자행된 살인이다. 자폐에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소년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미 이런 살인을 저질러온 그이기에, 모성보다는 신의 권능 아래 살기를 바라는 엄마 때문에 이 비극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비극을 설명하기 위해 그 지역의 맹신적인 종교애를 앞에 풀어놓고, 이성이 얼마나 허약한 실체인지 보여준다. 예정된 파국과 과거의 비극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 이 마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물론 늘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소설에서 종교에 대한 맹신과 광신에 가려진 이야기 하나가 있다. 벤과 줄리의 부부관계다. 어쩌면 이 모든 비극은 이 둘의 불안한 관계에서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가 교회에 가서 맹신적인 믿음을 보여줄 때도, 불륜을 저지를 때도, 아내와의 유대와 사랑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줄리의 과거 속에 맹신의 씨앗이 있었다고 해도 그가 좀더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인 운명 탓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관계를 만든 것은 그 두 사람이다. 비극의 현장에서 줄리가 보여준 행동은 부부라는 관계가 얼마나 허울적인지, 광신이 얼마나 모성애보다 강한지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작가의 후기들이다. 보통의 후기와 달리 그가 이 소설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어떤 작가의 영향을 받았는지, 제목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등이 알려준다. 그의 후기를 읽다가 발견한 한 작가의 작품이 한국에 딱 한 권 번역되었고, 그것도 절판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중고 거래 가격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고, 부디 요즘 아주 가끔 가는 헌책방에서 이 책을 봤을 때 그 제목을 기억하기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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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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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핫한 한국 소설이다. 인터넷과 언론에서 <82년 생 김지영>에 대한 언급을 너무 많이 들어 꼭 읽어야 하는 소설처럼 다가왔다. 보통 이런 소설에 관심은 두지만 잘 읽지 않는데 이번에는 읽었다. 소설보다 르포 같다는 누군가의 평과 “우리 모두 김지영이다.”라는 말 때문이다. 책을 받고 처음 에는 생각보다 얇다는 느낌이 들었고, 목차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저자 약력을 읽고 낯익은 제목이 있어 찾아보니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어떤 내용이길래 이렇게 수많은 호평을 받는지 궁금해 하면서 펼친 첫 장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김지영. 82년 생. 여자. 할머니, 엄마, 아빠, 언니, 남동생. 이렇게 여섯 명이 같이 살았다. 아버지는 공무원이다. 지금도 많지 않지만 그때는 더 적은 월급을 받던 직업이 공무원이다. 물론 뒷돈을 잘 받는 사람은 다르지만. 할머니는 아들 손자를 원했고, 딸만 둘을 낳은 엄마는 임신 중 딸이란 소식에 낙태를 한다. 다행이 막내는 남동생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손자 사랑은 아주 극진해서 같은 자식이란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만든다. 밥을 퍼는 순서가 아빠, 아들, 할머니 순이란 것만으로 충분히 설명가능하다. 이런 가정에서 딸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김지영 엄마의 과거에서 잘 드러난다. 지영의 엄마는 이것이 한 맺혀 딸들의 삶이 주체적이길 바란다.

 

언니의 대학 선택을 둘러싼 갈등에서 기성세대의 시선이 드러나지만 엄마는 자신의 실수를 금방 깨닫는다. 사실 이 부분을 보면서 김지영은 아주 좋은 엄마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수많은 여자 선후배 및 친구들 이야기는 이것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97년 IMF사태는 삶의 기반을 뒤흔들었다. 철밥통이었던 공무원을 퇴직해야 했고, 친구들의 허황된 감언이설을 엄마가 막아 집의 몰락을 저지했다. 이 시절 수많은 집들이 무리한 사업과 주식 투자 등으로 몰락했었다. 자신의 현실과 과거를 혼동하고, 너무 쉽게 사회를 마주한 탓이다.

 

이런 가정사 속에서 지영은 보통의 여자 아이들처럼 자란다. 그녀를 좋아하는 듯한 짝꿍의 놀림과 다툼을 겪고, 여성 차별이 보편화된 중고등학교를 거친다. 대학에서도 그녀는 성차별의 높은 벽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순간도 많다. 등산동아리에서 일어난 몇 가지 에피소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첫 사랑을 군대에 보내고, 헤어지고, 새로운 남자 친구를 사귀는 과정은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 에피소드에서 한 선배가 내뱉은 말은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내가 들어도 충격적이다. 이것은 남성의 문제라기보다 그 남자 개인의 문제인데 문맥 상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어렵게 취업한 그녀에게 놓인 현실은 일 잘 하니 더 열심히 일을 시켜야겠다는 것이 아니다. 언제 그만 둘지 모르니 남자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사장이 있다. 여자 팀장이 아이와 가정보다 더 일에 집중해 인정을 받지만 그녀의 이런 행동은 다른 여직원들의 귀감보다는 장애물이 된다. 사장의 입장에서는 귀감일지 모르지만. 팀장의 한탄은 밖에서 보는 직장 여성의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거래처 부장과의 회식 자리는 몇 년 전 한 국회의원이 골프장에서 손녀 같아서 그랬다고 한 성추행이 떠올랐다. 자신의 딸은 지극정성으로 돌보려 하면서 다른 직장의 여사원은 왜 그렇게 대하는지.

 

결혼과 동시에 여성을 힘들게 하는 일 중 하나가 출산과 육아다. 출산도 쉽지 않지만 육아는 더 힘들다. 그녀가 가족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더 나서 설레발을 친다. 약을 해줘야 한다느니. 언제 나을거냐니 등. 이때 한 마디 쏘아붙이면 시원할 텐데 입을 다물고 웃고 만다. “어처구니없고 부당한 상황에서 거의 대부분 입을 닫아 버린다. 그때마다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우리 사회가 여성 혐오 사회이고, 이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행위가, 존재 자체가 얼마나 숱한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고 주장한다. 공감하는 대목이다.

 

육아에서 흔히 남성들이 하는 실수 중 가장 큰 것은 아마 아내를 돕는다고 하는 말일 것이다. 같이 하는 일이 아니라 돕는 일이란 표현은 내 일이 아니라 내 시간을 쪼개 도와준다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여직원과의 대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서로 주고받는다. 집에서 얼마나 도와줘요? 라는 말로. 나도 이 말을 했다가 김지영처럼 아내에게 큰 구박을 여러 번 들었다. 첫 장 2015년 가을 김지영이 다른 사람들 흉내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과 2016년 그녀를 진찰한 의사의 속내는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현실을 비춰주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간결하고 건조한 이야기지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30대 이상의 여성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내용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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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스페셜 에디션)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 지음 / 그책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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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이야기 산문집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이번 스페셜 에디션에는 미발표 에필로그가 부록으로 붙어있다. 이전 판본을 읽은 사람들이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번 책은 개인적으로 산문집이란 부분보다 이야기에 더 방점을 두고 싶다. 한 편의 소설이라고 해도 결코 어색하지 않은 구성과 전개이기 때문이다. 의문으로 시작해 만남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사랑과 헤어짐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소설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소재나 주제를 다루지 않고, 자신의 삶과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과연 소설인가?, 아니면 산문집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위에서 말한 전개 때문이다. 한 여자와 자신에 대한 집요한 기록은 결코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과연 이 기록들이 얼마나 정확한 것이고, 사실에 충실한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의 성격, 삶의 방식, 성적 취향 등이 자연스럽게 나오지만 이것 또한 사실과 거짓으로 충분히 꾸밀 수 있다. 이런 의심들을 뒤로 하고 이야기에 집중하면 아주 흥미로운 감정의 변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에 중간에 삽입한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남자 이야기는 재밌는 단편 소설로 읽힌다.

 

이석원의 전작을 읽고, 음악을 찾아들으면서 생각한 이미지가 이번에 많이 깨어졌다. 하지만 섬세하고 예민하고 욱하는 성질 등은 이전 산문집을 잠시 떠올려준다. 결코 밝지 않았던 그 산문집은 이번 책을 읽기 전에 약간의 걱정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주 어둡고 무거운 내용들로 가득하지 않을까 하고. 물론 이 걱정은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한 남자의 심리 상태와 감정 변화를 따라가면서 사라졌다. 그리고 끝까지 한 여자와 자신의 글쓰기 등으로 채워나가는 것을 보고 산문집을 빙자한 소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더 깊어졌다.

 

몇 개의 음반과 한 권의 책만으로 이석원을 파악하는 것은 무리다. 그가 보여준 그의 성격이 실제 그대로라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있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것은 그가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니 자신의 약점을 부각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뺀 탓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랫동안 밴드 생활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욱하면서 정신을 놓는 모습은 내성적인 성격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뭐 억눌린 감정들이 한순간에 폭발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란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사랑해’였다. 나의 섣부른 판단이자 착각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자 김정희가 그에게 보내는 문자 ‘뭐해요?’가 그 말이다. 아마 처음에 이렇게 적었다면 공감하지 못했겠지만 끝부분에 이 부분을 쓰면서 충분히 공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말은 그가 가장 기다리는 말이기도 하다. 김정희와 만남은 언제나 이 말을 적은 문자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어쩔 수 없는 엇갈림’이라는 이석원의 연애선생 나리의 말은 가슴 한 곳에 조용히 똬리를 튼다.

 

사랑 이야기 외에 눈길을 끄는 이야기는 당연히 글쓰기다. 방점 하나 때문에 정신없이 담당에게 욕을 했다는 부분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섬세하다면, 이런 부분에 예민하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비상적이고 미성숙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이 일이 한없이 정체되어 있던 그의 글쓰기에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한다. 한 노 작가의 전기 덕분이다. 이때 나오는 이야기는 오히려 평범하고 교훈적이라 심심하다. 늘 작은 메모를 하고, 짧은 글 등을 블로그 등에 기록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재미있었고, 흥미진진했다. 그가 쓴 유일한 장편 소설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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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연습 창비시선 413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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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책상 옆에 둔 이 책 제목을 본 동료 직원이 한 마디 한다. 책 제목처럼 웃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최근 얼마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인상을 쓴 채 살았는지 깨닫는 순간이다. 깨닫는다고 그것이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마는 그래도 인상을 조금 덜 쓰는 것 같다. 아니 노력하고 있다. 사실 웃지 않는 것은 원래 그런 놈이니까, 하고 지나갈 수 있지만 인상을 쓰는 것은 최근 몇 년 동안 열심히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를 자주 보면서 생긴 나쁜 버릇이다. 노안에 시력까지 약해진 현실을 감안하면 줄여야 하는데 말이다. 물론 이 글도 컴퓨터로 쓰고 있다.

 

첫 시를 읽었을 때 뭐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커진 입이 나를 뛰게 했다.”는 <개구리>의 전문이다. 다음 시도 짧은 문장 하나다. 이렇게 네 편이 지난 후 마주한 시도 그렇게 길지 않았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섣부른 예측은 다른 시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지워졌다. 그리고 시인이 시로 표현한 것과 나의 생각이 다른 부분들도 하나씩 나왔다. 관찰과 생각으로 이루어진 시어들 중 겨우 몇 개지만 왠지 눈길에 거슬렸다. 그러다 일상을 포착한 시들을 읽으면서 흥겨워졌다. 소설이라면 길게 주절주절 풀어야 할 이야기가 간단하고 아주 멋지게 표현된 것이다.

 

이 시집에 나오는 시들은 비교적 쉽게 읽힌다.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고, 일상을 시어로 담아내었기 때문이다. 어떤 시들은 이게 시인가? 싶기도 하다. 어떤 시를 읽을 때는 동시를 읽는 느낌을 받았고, 그가 경험한 동네 주민들의 일상은 잊고 있던 시골 인심이란 것을 떠올려주었다. 물론 이 관계가 시인의 일방적인 받기만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받은 후에는 작은 보답이라도 한다. 이것이 관계의 선순환을 만드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마음이 훈훈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단순히 아는 사람에서 성님으로 변하는 순간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점이다.

 

단순히 시골 생활만 다루지는 않는다. 어머니의 살가운 반응이나 세월호의 아픔도 잊지 않고 있다. 촛불집회를 간략하게 요약한 시 <수첩에는 수첩>은 그 중의적 표현이 좋았다. 역사의 순간을 이렇게 개인의 역사와 간단히 연결해서 풀어내었다는 점에서 더욱. 어머니의 삶을 그려낸 <왕언니>는 시작하자마자 누구를 가리키는 줄 알았고, 그 삶에 가슴이 순간 먹먹해졌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이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시는 일상과 역사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그 비중에서 시골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오지만.

 

우화나 잠언 같은 시도 몇 편 있다. <솔잎이 우리에게>는 “봤지? 눈발을 받아내는 건 떡갈나무 이파리같이 넓은 잎이 아니라 바늘 같은 것들이 모여 결국엔 거대한 분발도 받아내는 거지.”(전문)로 끝난다. <중요한 일>은 “딸, 뭐 해?/응, 파도 발자국 만져보는 거야!” 같이 아이의 독특하고 신선한 시각을 담은 시도 있다. 이런 저런 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 시집은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왜 지금에야 이 시인을 알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뭐 그 전에 알았어도 제때 읽지 않았을 텐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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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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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하다. 처음 책을 받고 든 생각은 언제 다 읽지, 였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기우였다. 분량과 시간 탓에 며칠이 걸렸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읽었다. 당연히 재미있었다. 전작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읽으려고 하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읽지 못했는데 이 작품을 읽은 지금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이 샘솟는다. 뭐 이런 마음이 현실적으로 실현된 적이 거의 없지만 한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데 아주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이번 작품이 세 번째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 작가 타고났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캐릭터의 힘 등은 아주 놀랍다. 물론 뒤로 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숨겨져 있던 갈등이 드러나는 부분까지 오는 와중에 조금 과한 설정과 진행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설정을 위해 앞에 엄청난 가족사를 풀어놓았다. 아마 이 가족구성원과 그들의 추억과 기억이 없었다면 마지막 5부를 전혀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 하나는 그 두툼한 가족 이야기를 아주 멋지고 재밌게 풀어내어 마지막까지 정신없이 달리게 한 것이다.

 

마커스 골드먼은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해 마이애미로 왔다. 이곳에서 그는 첫사랑 알렉산드라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둘은 오해와 자존심과 두려움 때문에 헤어졌던 과거가 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간직한 그는 새롭게 시작하고 싶지만 이미 유명해진 둘은 파파라치의 먹이가 된다. 다시 시작할 기회를 놓친 마커스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추억하고 소설로 쓴다. 이렇게 이 소설은 현재를 이어가면서, 과거의 기록과 기억을 되살린다. 그 중심은 언제나 그의 사촌과 함께 한 <골드먼 갱단>이다.

 

이 갱단은 마커스와 사촌 힐렐과 우디가 뭉쳐 만든 모임이다. 갱단이라고 하지만 10대 소년의 치기어린 열정이 만든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아주 돈독하다. 힐렐이 큰아버지 사울의 친자식이라면 우디는 입양은 아니지만 성장기를 함께 한 형제다. 우디와 힐렐의 인생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은 볼티모어 골드먼 가의 화려한 시대를 아주 잘 대변해준다. 그리고 마커스가 볼 때 아주 대단한 존재였던 큰아버지는 현실 교육의 벽 앞에서 그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지 못한다. 불행은 언제나 아주 사소한 오해와 불신이 쌓여 만들어진다. 물론 당사자들은 이 비극이 벌어지기 전까지 결코 알지 못한다.

 

골드먼 가를 볼티모어와 몬트클레어로 나눠 부르는데 이것은 두 지역을 구분하는 동시에 부의 차이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이 작품에서 비극은 볼티모어 골드먼 가에서 벌어진다. 마커스가 사랑에 빠진 부분을 제외하면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들 대부분이 볼티모어 골드먼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힐렐과 우디 이야기다. 그들이 가진 능력과 재능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 또 어떤 현실 앞에 무너져 내렸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지닌 육체적 정신적 능력은 중간중간 나오듯이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미래 가정은 현실 앞에 산산조각난다. 그 미래가 더 밝고 크고 아름다울수록 더 아프게.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진행된다. 이 작품에서 시간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시간이, 아니 시기가 골드먼 가의 영광과 몰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정의 마커스가 성공한 변호사인 큰 아버지 사울을 존경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 시절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와 다른 부모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부모가 아이들을 비교하듯이. 하지만 이 동경은 왜곡된 시선에서 비롯한 것이다. 진짜 모습은 자신의 감정에 의해 가려졌거나 무시되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완벽하게 화목했던 가족의 모습은 아이들의 성장과 학교 등이 엮이면서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긴다. 비극이 발생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한 집안의 몰락이 단순히 하나의 이유만으로 진행될 리가 없다. 하지만 시작은 아주 작은 것부터다. 부모의 사랑, 첫사랑, 가장의 지위, 재능과 현실의 괴리, 연인관계 등이 엮이고 이어지면서 그 바탕부터 부식시킨다. 여기에 타고난 성격도 한몫한다. 오해가 더해지면서 파국의 수레는 더 빠르게 굴러가고, 죄책감은 이 부피를 더욱 키운다.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 다른 오해가 생긴다. 이 오해를 벗겨내는 작업이 마커스의 소설이다. 자신의 삶을 살면서 그 아픔과 고통을 이겨낸 마커스만 살아남아 골드먼 갱단을 추억하고 기록한다. 이제 소설은 현실과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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