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두툼하다. 처음 책을 받고 든 생각은 언제 다 읽지, 였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기우였다. 분량과 시간 탓에 며칠이 걸렸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읽었다. 당연히 재미있었다. 전작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읽으려고 하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읽지 못했는데 이 작품을 읽은 지금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이 샘솟는다. 뭐 이런 마음이 현실적으로 실현된 적이 거의 없지만 한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데 아주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이번 작품이 세 번째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 작가 타고났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캐릭터의 힘 등은 아주 놀랍다. 물론 뒤로 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숨겨져 있던 갈등이 드러나는 부분까지 오는 와중에 조금 과한 설정과 진행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설정을 위해 앞에 엄청난 가족사를 풀어놓았다. 아마 이 가족구성원과 그들의 추억과 기억이 없었다면 마지막 5부를 전혀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 하나는 그 두툼한 가족 이야기를 아주 멋지고 재밌게 풀어내어 마지막까지 정신없이 달리게 한 것이다.

 

마커스 골드먼은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해 마이애미로 왔다. 이곳에서 그는 첫사랑 알렉산드라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둘은 오해와 자존심과 두려움 때문에 헤어졌던 과거가 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간직한 그는 새롭게 시작하고 싶지만 이미 유명해진 둘은 파파라치의 먹이가 된다. 다시 시작할 기회를 놓친 마커스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추억하고 소설로 쓴다. 이렇게 이 소설은 현재를 이어가면서, 과거의 기록과 기억을 되살린다. 그 중심은 언제나 그의 사촌과 함께 한 <골드먼 갱단>이다.

 

이 갱단은 마커스와 사촌 힐렐과 우디가 뭉쳐 만든 모임이다. 갱단이라고 하지만 10대 소년의 치기어린 열정이 만든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아주 돈독하다. 힐렐이 큰아버지 사울의 친자식이라면 우디는 입양은 아니지만 성장기를 함께 한 형제다. 우디와 힐렐의 인생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장면들은 볼티모어 골드먼 가의 화려한 시대를 아주 잘 대변해준다. 그리고 마커스가 볼 때 아주 대단한 존재였던 큰아버지는 현실 교육의 벽 앞에서 그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지 못한다. 불행은 언제나 아주 사소한 오해와 불신이 쌓여 만들어진다. 물론 당사자들은 이 비극이 벌어지기 전까지 결코 알지 못한다.

 

골드먼 가를 볼티모어와 몬트클레어로 나눠 부르는데 이것은 두 지역을 구분하는 동시에 부의 차이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이 작품에서 비극은 볼티모어 골드먼 가에서 벌어진다. 마커스가 사랑에 빠진 부분을 제외하면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들 대부분이 볼티모어 골드먼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힐렐과 우디 이야기다. 그들이 가진 능력과 재능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 또 어떤 현실 앞에 무너져 내렸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지닌 육체적 정신적 능력은 중간중간 나오듯이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미래 가정은 현실 앞에 산산조각난다. 그 미래가 더 밝고 크고 아름다울수록 더 아프게.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진행된다. 이 작품에서 시간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시간이, 아니 시기가 골드먼 가의 영광과 몰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정의 마커스가 성공한 변호사인 큰 아버지 사울을 존경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 시절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와 다른 부모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부모가 아이들을 비교하듯이. 하지만 이 동경은 왜곡된 시선에서 비롯한 것이다. 진짜 모습은 자신의 감정에 의해 가려졌거나 무시되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완벽하게 화목했던 가족의 모습은 아이들의 성장과 학교 등이 엮이면서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긴다. 비극이 발생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한 집안의 몰락이 단순히 하나의 이유만으로 진행될 리가 없다. 하지만 시작은 아주 작은 것부터다. 부모의 사랑, 첫사랑, 가장의 지위, 재능과 현실의 괴리, 연인관계 등이 엮이고 이어지면서 그 바탕부터 부식시킨다. 여기에 타고난 성격도 한몫한다. 오해가 더해지면서 파국의 수레는 더 빠르게 굴러가고, 죄책감은 이 부피를 더욱 키운다.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 다른 오해가 생긴다. 이 오해를 벗겨내는 작업이 마커스의 소설이다. 자신의 삶을 살면서 그 아픔과 고통을 이겨낸 마커스만 살아남아 골드먼 갱단을 추억하고 기록한다. 이제 소설은 현실과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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