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보다 따뜻한
와일리 캐시 지음, 홍지로 옮김 / 네버모어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처음에는 기대했던 가독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의 산만함이 한 역할을 한 것도 있지만 조금은 밋밋한 전개가 이것을 부채질했다. 화자가 세 명인데 처음에는 이것을 몰랐다. 아홉 살 소년이 화자라는 착각을 한 탓이다. 이런 착각이 몇 개의 문장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고, 바뀌는 화자는 조금 더 적응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솔직히 처음부터 강한 충격을 주는 소설이 아니다. 인물과 관계에 대한 두터운 바탕을 쌓아올린 뒤 순식간에 파국으로 이끌어간다. 이 과정을 보면서 그들에 닥칠 비극을 알게 되고, 운명 같은 삶의 관계가 엮이면서 이어진다.

 

애들라이드 라일은 노부인이다. 챔블리스의 교회에 다니다가 한 신도가 방울뱀에 물려 죽는 것을 보고 발길을 끊었다. 그 죽음은 은폐되었고, 목사는 라일을 위협한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산파로 아이들을 받아온 그녀는 이제는 교회 밖에서 아이들을 돌본다. 혹시 교회에서 일어날 사건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교회 밖 관찰자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녀는 스텀프의 죽음을 보고, 숨겨진 사실을 알지만 그 어떤 진실을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독자들은 그녀의 속내와 감정의 표현과 과거사만 볼 수 있다. 이 과거사에서 또 다른 사실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제스 홀은 아홉 살 소년이고, 스텀프의 동생이다. 이 소년은 또 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보여준다. 스텀프에게 있었던 사건과 그 후에 벌어지는 몇 가지 비극의 현장에 있음으로써 산증인이 된다. 처음 형에게 가해진 폭력에서 그가 내뱉은 한 마디는 광신의 무리에게는 기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것만 믿고 보는 이들에게 사실의 무게는 아주 가볍다. 그리고 그가 본 불륜의 현장은 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다. 아직 어리고 겁이 많은 소년이 사실을 제때, 제대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안관 클렘 베이필드는 노년이다. 그의 과거사 또한 결코 순탄하지 않다. 이 집안의 비극은 홀 집안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보안관이고, 스텀프의 죽음을 제대로 알고 싶어한다. 부검은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듣고 싶어한다. 그는 챔블리스의 과거도 알고 있다. 라일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할 뿐이다. 스텀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역할은 제스의 목격과 부검 결과가 맡는다. 신의 권능을 외치는 무리에게 인간의 법이 다가간다. 광신과 맹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그에게 진실을 말해주려는 의지조차 없다.

 

이 세 명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삶과 현실의 사건을 바라본다. 스텀프의 죽음은 신의 권능을 빌려 자행된 살인이다. 자폐에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소년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미 이런 살인을 저질러온 그이기에, 모성보다는 신의 권능 아래 살기를 바라는 엄마 때문에 이 비극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비극을 설명하기 위해 그 지역의 맹신적인 종교애를 앞에 풀어놓고, 이성이 얼마나 허약한 실체인지 보여준다. 예정된 파국과 과거의 비극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 이 마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 물론 늘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소설에서 종교에 대한 맹신과 광신에 가려진 이야기 하나가 있다. 벤과 줄리의 부부관계다. 어쩌면 이 모든 비극은 이 둘의 불안한 관계에서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가 교회에 가서 맹신적인 믿음을 보여줄 때도, 불륜을 저지를 때도, 아내와의 유대와 사랑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줄리의 과거 속에 맹신의 씨앗이 있었다고 해도 그가 좀더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인 운명 탓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관계를 만든 것은 그 두 사람이다. 비극의 현장에서 줄리가 보여준 행동은 부부라는 관계가 얼마나 허울적인지, 광신이 얼마나 모성애보다 강한지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작가의 후기들이다. 보통의 후기와 달리 그가 이 소설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어떤 작가의 영향을 받았는지, 제목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등이 알려준다. 그의 후기를 읽다가 발견한 한 작가의 작품이 한국에 딱 한 권 번역되었고, 그것도 절판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중고 거래 가격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고, 부디 요즘 아주 가끔 가는 헌책방에서 이 책을 봤을 때 그 제목을 기억하기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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