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차려주는 식탁 - 어른이 되어서도 너를 지켜줄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기억
김진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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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들이 첫손으로 꼽는 정직하고 진실한 식재료 전문가란 이름보다 딸에게 밥을 차려준다는 것에 더 눈길이 갔다. 현실에서 이런 아빠가 과연 얼마나 될까? 엄마가 없다면 고개를 쉽게 끄덕이겠지만 엄마도 있다. 뭐 밥을 엄마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친구 중에서도 자주 아이들의 밥을 차려주는 아빠 역할을 하는 경우를 보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최소한 이 책의 저자처럼 늘 차려주지는 않는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저자의 딸을 위한 식탁은 대단하다. 그처럼 군 취사병이었던 후배도 집에서 밥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식품공학 전공에 군 취사병 출신의 식품 MD가 저자 김진영이다. 좋은 식재료를 발굴하고 기획하는 것이 그의 일이지만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지나가듯이 나온 것 외에는 없다. 물론 자신이 딸에게 차려주는 음식을 말하면서 자신이 개발한 식재료에 대해 말하지만 그 자세한 내막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성공한 몇 가지 식재료만 나오지 실패한 것들은 아예 말조차 하지 않는다. 실패한 게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야기 문맥 상 필요 없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식재료에 대한 분명한 철학은 글 속에 아주 잘 녹아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 몰랐던 몇 가지 사실을 새롭게 배웠다. 아마 실생활에서 몇 가지는 그대로 응용할 것 같다.

 

취사병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는 전문 요리사가 아니다. 하지만 딸바보 아빠는 그 어떤 전문 요리사보다 열정적으로 요리한다. 옛 기억을 가지고 만든 식빵이 실패해도, 머랭쿠키가 엉망이 되어도, 자신이 원하는 식재료를 음식에 넣지 못해도 딸 윤희가 맛있게 먹으면 흐뭇한 아빠 미소가 생긴다. 그런데 이 딸의 미각이 아주 특별하다. 비싼 투뿔 소고기는 질기다고 하고, 돼지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엄청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돼지고기도 양념돼지갈비가 최고다. 외식할 때 식비가 확 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집의 기본 식재료들이 결코 싼 것이 아니란 점이다. 유능한 식품 MD는 가장 좋은 쌀과 비싼 방사 토종닭과 자염 등으로 음식을 하면서 기본 금액을 높여놓았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딸에게 차려주는 식탁 이야기다. 네 파트로 나누고, 각 파트 속에 하나의 음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그럼 된 거다’이다. 딸의 음식 투정이나 정성과 높은 비용이 담긴 음식에 대한 반응이 나올 때면 이 말이 꼭 나온다. 아빠의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사랑은 자신의 경험과 추억이 엮이면서 다양하게 풀려나온다. 실수도 하고, 성공도 하는 와중에 아주 멋진 요리법을 발견한다. 그 중 몇 가지는 나도 도전하고 싶을 정도다. 뭐 내가 주방에 들어간 지가 언제인가를 생각하면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딸바보 아빠의 사랑이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윤희의 미각이다. 생김치는 먹지 않지만 김치찌개와 볶은 김치는 먹고, 시장에 파는 일반 닭과 방사 토종닭의 맛을 구분하고, 어패류는 거의 먹지 않고, 야채도 싫어한다. 버섯이나 야채를 갈아넣으면 먹지만 작은 조각이라도 씹게 되면 한 소리한다. 이런 딸의 미각을 아는 유명 셰프가 시식을 요청할 정도다. 씹히는 고기 두께와 작은 멸치의 크기 차이를 알아챈다. 이런 딸이니 얼마나 아빠의 요리에 까탈스럽겠는가. 하지만 아빠는 힘들어도 딸의 입속에 들어가는 음식에 정성을 다한다. 물론 힘들고 피곤해서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이때 귀신 같이 딸은 그 차이를 알아채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 딸 바보의 사랑이 대단하고 대단했다. 딸의 시크한 반응도 보기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으로 오면서 “아빠, 나 몰라.”란 단어가 나올 때 왠지 기분이 상했다. 그의 노력과 정성을 몰라준다는 것도 있지만 괜히 나의 감정이 이입된 것이다. 앞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지금 먹지 않은 음식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나도 하나 더 배운다. 나중에 그 맛을 알게 될 때가 있을 것이란 기대는 나의 경험과도 일치한다. 아빠의 사랑 가득한 식탁을 보면서 나의 식탐이 먼저 떠올랐다. 부끄럽고 부럽지만 그는 그고 나는 나다. 저자의 표현대로 그럼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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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 재건축 열풍에서 아파트 민주주의까지, 인류학자의 아파트 탐사기
정헌목 지음 / 반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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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되었다. 운 좋게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십 년 이상 되었다. 더 운이 좋은 것은 이사를 한 번만 했다는 것이다. 운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내가 전세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동생 부부만 해도 2년이 지나면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매번 생겼다. 이 운이 나로 하여금 집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만들었다. 좋게 표현하면 운이지만 다른 방향에서 보면 집을 사지 않게 되면서 재산 증식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내가 집을 살 능력이 되는지 하는 것을 별도의 문제다.

 

재산 증식의 기회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2000년대 이후 급격하게 상승한 아파트의 가격을 떠올리고, 이 시기에 집값 상승으로 손쉽게 부동산 이익을 챙긴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 다시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서 또 한 번 이익을 본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이 부동산에 무관심하고 현재의 집값이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한다. 하지만 이 기회에 올라탔는데도 여러 가지 외부 요인으로 가격이 올라가지 않았다면 어떨까? 주변의 아파트에 비해 우리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르지 못했다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몇 가지 생각들이다.

 

인류학자가 아파트 단지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그 속내를 낱낱이 들여다 본 책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착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아파트 단지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는 대목이다. 나의 경우 이 부분을 읽고 그가 이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서 2년 동안 산 것으로 착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서 2년여 동안 현장연구를 한 것이다. 입주민을 만나고, 입주자대표회의와 각종 자생단체의 활동과 사건 사고 등을 관찰하고, 온라인 입주민 카페에 축적된 수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입주민들의 상호작용을 분석했다. 어떤 대목은 하나의 사건 보고서 같고, 어떤 글은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예상한 것보다 흥미로웠다.

 

아파트에 살지만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여유가 되면 단독주택에 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전세로 살기에 자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책 제목이기도 한 가치 있는 아파트란 결국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의미한다. 재건축의 결정과 실행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대목은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었지만 입주 이후 조합원과 분양자들 사이의 대립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재건축을 진행하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한 것도 처음 알았다. 관심이 많지 않아 잘 몰랐던 것들을 이번 기회에 많이 알게 되었다.

 

현실에서 존재하지만 실제 자신이 현장 연구한 아파트의 이름을 저자는 가명으로 처리했다. 열심히 검색한다면 실제 아파트 이름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이 현장 연구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재건축 조합 아파트와 브랜드 아파트다.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 둘의 결합 혹은 단독 진행은 아파트의 필수적인 진행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둘의 결합을 다루면서 아파트 문제 등을 더 폭 넓고 깊이 있게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도권이란 지역의 특성까지 덧붙여지면서 다른 특성까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다섯 장으로 나눈 이야기에서 1장과 2장은 아파트 단지에 대한 일반적인 인류학자의 시각을 다룬다. 아파트 단지의 여러 현상을 보여주는데 재미난 부분은 서구와 달리 한국의 아파트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주택으로 자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의 과거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다. 전철을 타고 다닐 때 왜 저런 밀집된 아파트에서 살까? 하는 의구심과 브랜드 아파트가 뭐 대단하다고 하는 판단 착오 등이 대부분이다. 합리적 판단과 이성보다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거대한 동력인지 미쳐 깨닫지 못한 나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가치 있는 아파트는 가격이 많이 오른 아파트를 말한다. 이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입주자대표회의나 부녀회 등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인류학자는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든 이유와 그 이면을 엿본다. 그리고 한국만의 특징인 전세입자와 자가 거주자의 비율과 아파트 현안에 대한 입주자들의 무관심 등도 같이 보여주면서 이 대단지의 현실을 알려준다. 집단 이기가 충돌하는 현장에서도 무관심한 입주자들이 대다수란 현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안전한 단지라는 믿음이 깨어진 단지 내 어린이 사망 사건을 둘러싼 보고는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자율방법대의 활동이 이타심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그 깊은 속내에는 아파트 가격 상승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는 지적은 결국 아파트에 전 재산을 올인하고 있는 한국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단순한 이분법이나 피상적인 관찰만으로 이 문제를 보여줄 수는 없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불거진 몇 가지 사안들은 실제 한 아파트에 오래 살면서 자주 본 것이라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부분들이 아파트 소유자들의 입장에서 쓴 것들이 대부분인데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세자들의 입장을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 물론 평균 거주 기간이 5년 정도에 머문 것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고, 가치 있는 아파트에 목을 매는 사람들도 소유자들이란 부분에서 공감한다. 부인할 수 없는 아파트 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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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랑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1
윤이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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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만난 윤이형의 소설이다. 내가 읽었다고 기억하는 작가의 작품은 단 한 권이다. 바로 <개인적 기억>이다. 이 작품에 대한 좋은 기억이 이 소설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늑대인간과 인간의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늑대인간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아니 현실 속에 늑대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이 판타지를 깨트리는 것은 이 늑대인간의 존재보다 작가가 이 가상의 존재를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서른네 살의 작가 한서영. 그녀는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의 꿈을 꾼다. 현실에서 그녀가 늑대인간으로 변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꿈속에서 그녀는 연인을 잡아먹는다. 이 살육이 그녀로 하여금 아주 멋진 작품을 쓰게 만든다.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그 사랑은 가볍게 깨어진다. 그녀가 쓴 소설은 소위 대박은 아니지만 꾸준히 발간되고 사랑을 받고 있다. 서영은 이 상황이 결코 반갑지도 즐겁지도 않다. 꿈 속 살육이 그 당사자도 몰랐던 깊이를 드러나게 한다고 하지만 헤어짐의 아픔과 살육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알파벳 순서로 출간한 열두 권을 이전 연인들의 유골함이라고 부른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한다는 것이 행복한 상상이자 즐거움이어야 하지만 그녀는 아니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고 인연은 이어진다. 이때 온 한 통의 메일은 그녀를 새로운 연인으로 이끈다. 신인작가 최소운이 참여한 무크지 <흔>의 인터뷰는 그녀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최소운의 존재다. 소운의 소설 <하줄라프>의 팬이기도 한 서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소운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이 사랑과 별도로 경계의 소설인 <하줄라프>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웠다. 실제 작품으로 나온다면 판타지 팬들의 사랑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둘은 서로의 감정을 쉽게 풀어낸다.

 

처음 두 여성이 연인이 된다고 했을 때 판타지 소설처럼 양성애자들의 세계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는 현실을 떠나지 않는다. 서영은 양성애자로, 소운은 동성애자로 설정했다. 이 설정은 서영의 과거 연인 문제를 가볍게 넘어가게 만든다. 둘의 두 번째 만남은 서로에 대한 탐색이다. 이 부분에서 나의 관심사는 작가가 풀어놓은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평가와 선호도다. 아는 작가가 거의 대부분이지만 낯선 이름이 몇 명 보인다. 사놓고 묵혀두고 읽지 않은 작품에 대한 감탄은 언제나 이번에는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둘을 더욱 밀착하게 만든다. 서영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작가는 성소수자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냄과 동시에 작가와 글쓰기 등도 같이 놓아둔다. 소운이 자신 속에서 풀려나오길 바라는 이야기를 써 소설을 만드는 것과 별개로 서영에 대한 감정이 이 모든 길을 막는다. 사랑의 초기 단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소운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뱉어내고, 이것을 서영이 받아들인 후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보통의 연인과 별다를 게 없다. 어릴 때 엇나간 시선으로 본 성소수자의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이런 연인의 삶 속에 한 인물의 성공은 서로 공유할 시간을 뺏어간다. 그리고 소운을 잡아먹음으로써 헤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늘 같이 한다. 늑대인간의 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소운과의 관계는 서영이 언제부터 이 꿈을 꾸게 되었는지,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작가는 연인을 먹은 꿈과 서영이 연인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그녀가 쓴 소설들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소운과의 관계는 꿈의 설정과 전개도 변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연인을 잡아먹어야만 쓸 수 있던 글을 자신이 싸워가면서 이루어야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 그녀는 연인을 잡아먹는 늑대에서 이야기를 쓰는 늑대로 변했다. 소설 제목 <설랑>이 뜻하는 바다. 로맨스가 작가의 글쓰기로 살짝 변한다. 그리고 이 소설 속 두 인물의 감정을 격렬하게 풀어낸 묘사와 소설 속 다른 소설은 아주 매혹적이다. 소설 분량과 상관없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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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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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전생이란 소재를 아주 잘 버무려 놓았다. 한 여자의 전생을 기본으로 놓고, 이 전생과 관련된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낸다. 차분하다고 하지만 그 속에는 강한 열정과 집착으로 가득하다. 한 여자의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삶이 그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구성과 전개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관심을 자연적으로 생기게 만든다. 아주 촘촘하게 잘 짠 구성이다. 시간을 이렇게 멋지게 연결시킨 작품을 오랜만에 만났다.

 

오사나이 쓰요시는 약속 시간에 맞춰 급하게 움직인다. 그곳에서 한 유명 여배우와 아이를 만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 만남 속에서 회상을 통해 대부분 이루어진다. 그 중심은 두 사람이다. 한 명은 오사나이고, 다른 한 명은 소녀인 루리다. 오사나이의 회상은 과거 자동차 사고로 죽은 아내와 그 딸에게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다. 어느 날 딸이 강한 열병을 앓은 후 이상해졌다는 아내의 말과 아이의 알 수 없는 가출 등이 나온다. 그리고 이 딸이 태어나기 전 그와 아내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연애를 했는지,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아내의 놀람에 대한 그의 반응은 어떤지 등을 통해 다음 이야기의 밑밥을 던진다. 동시에 그 죽음에 대한 의문도 살짝 생긴다.

 

루리의 전생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전생과 조금 다르다. 이 새로 태어나는 일들이 그녀에게는 달이 차서 기울고 다시 차는 것과 같다. 영휴라는 단어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일정 나이가 된 그녀는 열병 같은 경험을 한 후 이전 생을 기억을 회복한다. 작가는 이 전생의 원인이나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참고 자료에서 이런 전생을 하는 아이들이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이 놀라운 현상에 대한 비이성적인 논리 전개 대신 이 전생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영리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전생을 하는 인물은 루리지만 이 전생에 영향을 강하게 받는 인물들은 바로 부모와 그 전생의 원인인 전 연인이다. 오사나이의 딸이 가출해서 찾아간 곳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도 바로 그 연인인 미스미 아키히코와 관계 있다. 이야기는 이제 아키히코의 과거로 넘어간다. 그 과거 속에서 마주한 루리는 성인이고 유부녀다. 대학생 아키히코의 알바 장소에서 만났고, 어느 순간 둘은 불탄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녀의 정체가 일부 드러나지만 몇 가지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의문이 풀리는 것은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 속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하나의 의문을 풀어내는 동시에 몇 가지 의문을 깔아놓는다. 이 구성 속에서 루리와 관련된 세 남자의 각각 다른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한 여자의 강한 열망과 집착이 빚어낸 전생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꼈다. 아름답다거나 숭고하다거나 감탄을 자아내기보다는 그 전생 속에 사라진 소녀들과 그 부모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한 작은 설정을 두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그 불편함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독자성과 인격체 때문이다. 소설 속 부모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이 전생이 하나의 희망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마지막에 가서 특히 이 부분이 부각된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몇 가지 징후를 통해 설명한다.

 

오사나이의 존재는 이야기의 분량과 상관없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루리의 첫 전생에서 아버지였다는 사실도 있지만 그가 다시 전생한 루리와 만나게 된 이유와 전체 이야기의 독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가능성을 암시할 때 또 하나의 밑밥 역할을 한다. 여기에 루리 전생의 모든 비밀이 알게 모르게 그와 이어져 있다. 어떤 대목은 반전 같은 역할을 한다. 딸과 아내를 사고로 잃은 후 삶이 산산조각 났지만 이름처럼 굳건히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이후 그를 찾아온 사람들이 내놓은 몇 가지 사실들이 그의 일상을 흔든다. 전생을 한 루리의 조급증은 또 다른 삶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책 속에 드러난 마지막 장면과 오사나이의 새롭게 펼쳐질 삶은 묘하게 갈등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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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아파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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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기욤 뮈소의 소설을 읽었다. 변함없이 잘 읽혔다.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와 빠른 장면 전환은 여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릴러에 도전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만족스럽지 않다. 너무 작위적이고 너무 쉽고 빠르게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 며칠 동안 행운이 깃들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비약은 견고한 연결성을 결코 보여주지 못한다. 한 편의 소설이 주는 재미와 가독성은 분명하게 있지만 장르 소설의 완성도는 낮다. 본격 스릴러라는 광고는 조금 많이 과장되어 있다.

 

소설의 도입은 한 여자가 자신을 버린 남자가 아이와 함께 노는 것을 보고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 여자의 처절하고 잔혹한 복수가 나올 것 같지만 뮈소는 이것을 하나의 장치로 사용한다. 그리고 두 남녀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여자는 전직 형사였던 매들린이고, 남자는 은둔형 극작가 가스파르다. 이 둘은 기본적으로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둘이 극적으로 만나는 곳은 바로 파리의 아파트다. 옛날에 자주 나왔던 우연이 이들에게 생긴 것이다. 이중 계약 말이다. 문제는 이 아파트를 둘 다 마음에 들어 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 아파트의 전 주인인 화가 숀 로렌츠가 살았다는 것을 알고, 이 천재화가의 불행했던 과거를 조사하면서 시작한다. 가스파르는 일 년에 한 번 한 곳에 머물면서 한 편의 희곡을 쓰는 작가고, 매들린은 한때 미제였던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는 형사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지만 로렌츠의 그림에 매혹되고, 그의 사연에 가슴 아파한다. 인간의 환경 파괴 등을 싫어하는 가스파르가 세상에 나오는 것은 한 편의 희곡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는데 이것이 그의 성장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냉소적인 성격이 약간 알코올 중독의 성향과 만나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다. 그 대상은 바로 매들린이다.

 

전직 형사였던 것을 제외하면 그녀가 바라는 것은 아이다. 기증된 정자를 통해 아이를 갖고 싶어한다. 그녀가 파리로 온 것도 쉬면서 인공수정 등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그녀가 일반적으로 금지된 행동을 한다. 바로 흡연이다. 그녀는 담배를 결코 적지 않게 피운다. 과배란을 위한 활동 중에도, 숀의 사건 수사를 하는 중에도. 뮈소가 소설 속에서 구현한 매들린의 행동들은 실제 한국에서는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들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파리에서 뉴욕까지 비행이나 하루 종일 운전하는 등의 일 말이다. 소설의 다른 부분들과 달리 계속해서 눈에 거슬리는 장면들인데 다른 나라의 문제라 사실 여부를 잘 모르겠다.

 

소설은 두 가지 미스터리를 다룬다. 하나는 혹시 숀 로첸츠가 마지막으로 그렸을지 모르는 그림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숀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아들 줄리안을 찾는 것이다. 그것도 겨우 육 일만에. 그리고 작가는 이 짧은 시간 속에 처음에는 서로 티격태격했던 두 남녀의 과거를 집어넣어 그들의 현재를 이해하게 만들고, 숀을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도 개성을 부여한다. 분명히 이 작업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한 인물에 대해서는 너무 비약적이고, 별도의 부연 설명까지 들어가야만 했다. 이 설명이 나온 후 다시 그 인물이 평가가 바뀌는데 뭔가 개연성이 부족한 느낌이다. 이런 부분들이 본격 스릴러라고 말한 부분에 개인적 반감을 가지게 만든다.

 

한때 뮈소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이번에도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연속적으로 읽다가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아마 내가 잠시 뮈소의 책을 멀리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이 나오면 언제나 위시리스트에 올린다. 가독성과 재미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작가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읽지 못하고 있는 책들도 늘어난다. 가볍게 끊어야하는데 미련이 남은 탓이다. 그러다 아주 가끔 멋진 작품이 나와 이 미련을 더 길게 만든다. 이 작품만 놓고 보면 글쎄다. 그렇지만 버리지 못한다. 다만 우선순위가 바뀔 뿐이다. 살 책이 너무 많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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