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랑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11
윤이형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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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만난 윤이형의 소설이다. 내가 읽었다고 기억하는 작가의 작품은 단 한 권이다. 바로 <개인적 기억>이다. 이 작품에 대한 좋은 기억이 이 소설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늑대인간과 인간의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늑대인간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아니 현실 속에 늑대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이 판타지를 깨트리는 것은 이 늑대인간의 존재보다 작가가 이 가상의 존재를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서른네 살의 작가 한서영. 그녀는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의 꿈을 꾼다. 현실에서 그녀가 늑대인간으로 변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꿈속에서 그녀는 연인을 잡아먹는다. 이 살육이 그녀로 하여금 아주 멋진 작품을 쓰게 만든다.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그 사랑은 가볍게 깨어진다. 그녀가 쓴 소설은 소위 대박은 아니지만 꾸준히 발간되고 사랑을 받고 있다. 서영은 이 상황이 결코 반갑지도 즐겁지도 않다. 꿈 속 살육이 그 당사자도 몰랐던 깊이를 드러나게 한다고 하지만 헤어짐의 아픔과 살육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알파벳 순서로 출간한 열두 권을 이전 연인들의 유골함이라고 부른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한다는 것이 행복한 상상이자 즐거움이어야 하지만 그녀는 아니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고 인연은 이어진다. 이때 온 한 통의 메일은 그녀를 새로운 연인으로 이끈다. 신인작가 최소운이 참여한 무크지 <흔>의 인터뷰는 그녀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최소운의 존재다. 소운의 소설 <하줄라프>의 팬이기도 한 서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소운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이 사랑과 별도로 경계의 소설인 <하줄라프>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웠다. 실제 작품으로 나온다면 판타지 팬들의 사랑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둘은 서로의 감정을 쉽게 풀어낸다.

 

처음 두 여성이 연인이 된다고 했을 때 판타지 소설처럼 양성애자들의 세계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는 현실을 떠나지 않는다. 서영은 양성애자로, 소운은 동성애자로 설정했다. 이 설정은 서영의 과거 연인 문제를 가볍게 넘어가게 만든다. 둘의 두 번째 만남은 서로에 대한 탐색이다. 이 부분에서 나의 관심사는 작가가 풀어놓은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평가와 선호도다. 아는 작가가 거의 대부분이지만 낯선 이름이 몇 명 보인다. 사놓고 묵혀두고 읽지 않은 작품에 대한 감탄은 언제나 이번에는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둘을 더욱 밀착하게 만든다. 서영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작가는 성소수자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냄과 동시에 작가와 글쓰기 등도 같이 놓아둔다. 소운이 자신 속에서 풀려나오길 바라는 이야기를 써 소설을 만드는 것과 별개로 서영에 대한 감정이 이 모든 길을 막는다. 사랑의 초기 단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소운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뱉어내고, 이것을 서영이 받아들인 후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보통의 연인과 별다를 게 없다. 어릴 때 엇나간 시선으로 본 성소수자의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 이런 연인의 삶 속에 한 인물의 성공은 서로 공유할 시간을 뺏어간다. 그리고 소운을 잡아먹음으로써 헤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늘 같이 한다. 늑대인간의 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소운과의 관계는 서영이 언제부터 이 꿈을 꾸게 되었는지, 왜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작가는 연인을 먹은 꿈과 서영이 연인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그녀가 쓴 소설들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소운과의 관계는 꿈의 설정과 전개도 변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연인을 잡아먹어야만 쓸 수 있던 글을 자신이 싸워가면서 이루어야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 그녀는 연인을 잡아먹는 늑대에서 이야기를 쓰는 늑대로 변했다. 소설 제목 <설랑>이 뜻하는 바다. 로맨스가 작가의 글쓰기로 살짝 변한다. 그리고 이 소설 속 두 인물의 감정을 격렬하게 풀어낸 묘사와 소설 속 다른 소설은 아주 매혹적이다. 소설 분량과 상관없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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