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 재건축 열풍에서 아파트 민주주의까지, 인류학자의 아파트 탐사기
정헌목 지음 / 반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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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되었다. 운 좋게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십 년 이상 되었다. 더 운이 좋은 것은 이사를 한 번만 했다는 것이다. 운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내가 전세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동생 부부만 해도 2년이 지나면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매번 생겼다. 이 운이 나로 하여금 집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만들었다. 좋게 표현하면 운이지만 다른 방향에서 보면 집을 사지 않게 되면서 재산 증식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내가 집을 살 능력이 되는지 하는 것을 별도의 문제다.

 

재산 증식의 기회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2000년대 이후 급격하게 상승한 아파트의 가격을 떠올리고, 이 시기에 집값 상승으로 손쉽게 부동산 이익을 챙긴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 다시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서 또 한 번 이익을 본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이 부동산에 무관심하고 현재의 집값이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한다. 하지만 이 기회에 올라탔는데도 여러 가지 외부 요인으로 가격이 올라가지 않았다면 어떨까? 주변의 아파트에 비해 우리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르지 못했다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몇 가지 생각들이다.

 

인류학자가 아파트 단지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그 속내를 낱낱이 들여다 본 책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착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아파트 단지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는 대목이다. 나의 경우 이 부분을 읽고 그가 이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서 2년 동안 산 것으로 착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서 2년여 동안 현장연구를 한 것이다. 입주민을 만나고, 입주자대표회의와 각종 자생단체의 활동과 사건 사고 등을 관찰하고, 온라인 입주민 카페에 축적된 수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입주민들의 상호작용을 분석했다. 어떤 대목은 하나의 사건 보고서 같고, 어떤 글은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예상한 것보다 흥미로웠다.

 

아파트에 살지만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여유가 되면 단독주택에 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전세로 살기에 자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책 제목이기도 한 가치 있는 아파트란 결국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의미한다. 재건축의 결정과 실행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대목은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었지만 입주 이후 조합원과 분양자들 사이의 대립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재건축을 진행하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한 것도 처음 알았다. 관심이 많지 않아 잘 몰랐던 것들을 이번 기회에 많이 알게 되었다.

 

현실에서 존재하지만 실제 자신이 현장 연구한 아파트의 이름을 저자는 가명으로 처리했다. 열심히 검색한다면 실제 아파트 이름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이 현장 연구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재건축 조합 아파트와 브랜드 아파트다.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 둘의 결합 혹은 단독 진행은 아파트의 필수적인 진행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둘의 결합을 다루면서 아파트 문제 등을 더 폭 넓고 깊이 있게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도권이란 지역의 특성까지 덧붙여지면서 다른 특성까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다섯 장으로 나눈 이야기에서 1장과 2장은 아파트 단지에 대한 일반적인 인류학자의 시각을 다룬다. 아파트 단지의 여러 현상을 보여주는데 재미난 부분은 서구와 달리 한국의 아파트가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주택으로 자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의 과거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다. 전철을 타고 다닐 때 왜 저런 밀집된 아파트에서 살까? 하는 의구심과 브랜드 아파트가 뭐 대단하다고 하는 판단 착오 등이 대부분이다. 합리적 판단과 이성보다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거대한 동력인지 미쳐 깨닫지 못한 나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가치 있는 아파트는 가격이 많이 오른 아파트를 말한다. 이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입주자대표회의나 부녀회 등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인류학자는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든 이유와 그 이면을 엿본다. 그리고 한국만의 특징인 전세입자와 자가 거주자의 비율과 아파트 현안에 대한 입주자들의 무관심 등도 같이 보여주면서 이 대단지의 현실을 알려준다. 집단 이기가 충돌하는 현장에서도 무관심한 입주자들이 대다수란 현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안전한 단지라는 믿음이 깨어진 단지 내 어린이 사망 사건을 둘러싼 보고는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자율방법대의 활동이 이타심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그 깊은 속내에는 아파트 가격 상승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는 지적은 결국 아파트에 전 재산을 올인하고 있는 한국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단순한 이분법이나 피상적인 관찰만으로 이 문제를 보여줄 수는 없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불거진 몇 가지 사안들은 실제 한 아파트에 오래 살면서 자주 본 것이라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부분들이 아파트 소유자들의 입장에서 쓴 것들이 대부분인데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세자들의 입장을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 아쉽다. 물론 평균 거주 기간이 5년 정도에 머문 것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고, 가치 있는 아파트에 목을 매는 사람들도 소유자들이란 부분에서 공감한다. 부인할 수 없는 아파트 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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