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아파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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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기욤 뮈소의 소설을 읽었다. 변함없이 잘 읽혔다.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와 빠른 장면 전환은 여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릴러에 도전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만족스럽지 않다. 너무 작위적이고 너무 쉽고 빠르게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 며칠 동안 행운이 깃들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비약은 견고한 연결성을 결코 보여주지 못한다. 한 편의 소설이 주는 재미와 가독성은 분명하게 있지만 장르 소설의 완성도는 낮다. 본격 스릴러라는 광고는 조금 많이 과장되어 있다.

 

소설의 도입은 한 여자가 자신을 버린 남자가 아이와 함께 노는 것을 보고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 여자의 처절하고 잔혹한 복수가 나올 것 같지만 뮈소는 이것을 하나의 장치로 사용한다. 그리고 두 남녀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여자는 전직 형사였던 매들린이고, 남자는 은둔형 극작가 가스파르다. 이 둘은 기본적으로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둘이 극적으로 만나는 곳은 바로 파리의 아파트다. 옛날에 자주 나왔던 우연이 이들에게 생긴 것이다. 이중 계약 말이다. 문제는 이 아파트를 둘 다 마음에 들어 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 아파트의 전 주인인 화가 숀 로렌츠가 살았다는 것을 알고, 이 천재화가의 불행했던 과거를 조사하면서 시작한다. 가스파르는 일 년에 한 번 한 곳에 머물면서 한 편의 희곡을 쓰는 작가고, 매들린은 한때 미제였던 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는 형사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지만 로렌츠의 그림에 매혹되고, 그의 사연에 가슴 아파한다. 인간의 환경 파괴 등을 싫어하는 가스파르가 세상에 나오는 것은 한 편의 희곡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는데 이것이 그의 성장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냉소적인 성격이 약간 알코올 중독의 성향과 만나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다. 그 대상은 바로 매들린이다.

 

전직 형사였던 것을 제외하면 그녀가 바라는 것은 아이다. 기증된 정자를 통해 아이를 갖고 싶어한다. 그녀가 파리로 온 것도 쉬면서 인공수정 등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그녀가 일반적으로 금지된 행동을 한다. 바로 흡연이다. 그녀는 담배를 결코 적지 않게 피운다. 과배란을 위한 활동 중에도, 숀의 사건 수사를 하는 중에도. 뮈소가 소설 속에서 구현한 매들린의 행동들은 실제 한국에서는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들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파리에서 뉴욕까지 비행이나 하루 종일 운전하는 등의 일 말이다. 소설의 다른 부분들과 달리 계속해서 눈에 거슬리는 장면들인데 다른 나라의 문제라 사실 여부를 잘 모르겠다.

 

소설은 두 가지 미스터리를 다룬다. 하나는 혹시 숀 로첸츠가 마지막으로 그렸을지 모르는 그림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숀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아들 줄리안을 찾는 것이다. 그것도 겨우 육 일만에. 그리고 작가는 이 짧은 시간 속에 처음에는 서로 티격태격했던 두 남녀의 과거를 집어넣어 그들의 현재를 이해하게 만들고, 숀을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도 개성을 부여한다. 분명히 이 작업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한 인물에 대해서는 너무 비약적이고, 별도의 부연 설명까지 들어가야만 했다. 이 설명이 나온 후 다시 그 인물이 평가가 바뀌는데 뭔가 개연성이 부족한 느낌이다. 이런 부분들이 본격 스릴러라고 말한 부분에 개인적 반감을 가지게 만든다.

 

한때 뮈소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이번에도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연속적으로 읽다가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아마 내가 잠시 뮈소의 책을 멀리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이 나오면 언제나 위시리스트에 올린다. 가독성과 재미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작가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읽지 못하고 있는 책들도 늘어난다. 가볍게 끊어야하는데 미련이 남은 탓이다. 그러다 아주 가끔 멋진 작품이 나와 이 미련을 더 길게 만든다. 이 작품만 놓고 보면 글쎄다. 그렇지만 버리지 못한다. 다만 우선순위가 바뀔 뿐이다. 살 책이 너무 많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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