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차려주는 식탁 - 어른이 되어서도 너를 지켜줄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기억
김진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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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들이 첫손으로 꼽는 정직하고 진실한 식재료 전문가란 이름보다 딸에게 밥을 차려준다는 것에 더 눈길이 갔다. 현실에서 이런 아빠가 과연 얼마나 될까? 엄마가 없다면 고개를 쉽게 끄덕이겠지만 엄마도 있다. 뭐 밥을 엄마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친구 중에서도 자주 아이들의 밥을 차려주는 아빠 역할을 하는 경우를 보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최소한 이 책의 저자처럼 늘 차려주지는 않는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저자의 딸을 위한 식탁은 대단하다. 그처럼 군 취사병이었던 후배도 집에서 밥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식품공학 전공에 군 취사병 출신의 식품 MD가 저자 김진영이다. 좋은 식재료를 발굴하고 기획하는 것이 그의 일이지만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지나가듯이 나온 것 외에는 없다. 물론 자신이 딸에게 차려주는 음식을 말하면서 자신이 개발한 식재료에 대해 말하지만 그 자세한 내막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성공한 몇 가지 식재료만 나오지 실패한 것들은 아예 말조차 하지 않는다. 실패한 게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야기 문맥 상 필요 없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식재료에 대한 분명한 철학은 글 속에 아주 잘 녹아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 몰랐던 몇 가지 사실을 새롭게 배웠다. 아마 실생활에서 몇 가지는 그대로 응용할 것 같다.

 

취사병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는 전문 요리사가 아니다. 하지만 딸바보 아빠는 그 어떤 전문 요리사보다 열정적으로 요리한다. 옛 기억을 가지고 만든 식빵이 실패해도, 머랭쿠키가 엉망이 되어도, 자신이 원하는 식재료를 음식에 넣지 못해도 딸 윤희가 맛있게 먹으면 흐뭇한 아빠 미소가 생긴다. 그런데 이 딸의 미각이 아주 특별하다. 비싼 투뿔 소고기는 질기다고 하고, 돼지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엄청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돼지고기도 양념돼지갈비가 최고다. 외식할 때 식비가 확 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집의 기본 식재료들이 결코 싼 것이 아니란 점이다. 유능한 식품 MD는 가장 좋은 쌀과 비싼 방사 토종닭과 자염 등으로 음식을 하면서 기본 금액을 높여놓았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딸에게 차려주는 식탁 이야기다. 네 파트로 나누고, 각 파트 속에 하나의 음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이야기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그럼 된 거다’이다. 딸의 음식 투정이나 정성과 높은 비용이 담긴 음식에 대한 반응이 나올 때면 이 말이 꼭 나온다. 아빠의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사랑은 자신의 경험과 추억이 엮이면서 다양하게 풀려나온다. 실수도 하고, 성공도 하는 와중에 아주 멋진 요리법을 발견한다. 그 중 몇 가지는 나도 도전하고 싶을 정도다. 뭐 내가 주방에 들어간 지가 언제인가를 생각하면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딸바보 아빠의 사랑이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윤희의 미각이다. 생김치는 먹지 않지만 김치찌개와 볶은 김치는 먹고, 시장에 파는 일반 닭과 방사 토종닭의 맛을 구분하고, 어패류는 거의 먹지 않고, 야채도 싫어한다. 버섯이나 야채를 갈아넣으면 먹지만 작은 조각이라도 씹게 되면 한 소리한다. 이런 딸의 미각을 아는 유명 셰프가 시식을 요청할 정도다. 씹히는 고기 두께와 작은 멸치의 크기 차이를 알아챈다. 이런 딸이니 얼마나 아빠의 요리에 까탈스럽겠는가. 하지만 아빠는 힘들어도 딸의 입속에 들어가는 음식에 정성을 다한다. 물론 힘들고 피곤해서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이때 귀신 같이 딸은 그 차이를 알아채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 딸 바보의 사랑이 대단하고 대단했다. 딸의 시크한 반응도 보기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으로 오면서 “아빠, 나 몰라.”란 단어가 나올 때 왠지 기분이 상했다. 그의 노력과 정성을 몰라준다는 것도 있지만 괜히 나의 감정이 이입된 것이다. 앞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지금 먹지 않은 음식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나도 하나 더 배운다. 나중에 그 맛을 알게 될 때가 있을 것이란 기대는 나의 경험과도 일치한다. 아빠의 사랑 가득한 식탁을 보면서 나의 식탐이 먼저 떠올랐다. 부끄럽고 부럽지만 그는 그고 나는 나다. 저자의 표현대로 그럼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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