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 이덕무 청언소품
정민 지음 / 열림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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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나왔던 책의 개정판이다. 구판 절판이었는데 새롭게 서문을 달고 나왔다. 최근 정민의 책 신간보다 개정판이 한 권씩 나오고 있다. 덕분에 그를 늦게 안 나는 새로운 느낌으로 읽게 된다. 그의 고문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선인의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에는 간서치 이덕무의 청언소품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실제 이덕무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66편 전부와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일부(163)편을 우리말로 옮기고 자신의 해설을 덧붙여 엮은 글이다. 한문에 약한 사람에게 이런 책들은 선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간서치로 먼저 다가온 이덕무를 알게 된 것은 <책만 보는 바보>란 책이었다. 앞부분을 재밌게 읽다가 다른 일로 책을 놓고는 아직까지 완독하지 못하고 있다. 가끔 이런 책들이 있는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덕무를 떠올리면 정조 시대의 수많은 문인들을 떼놓을 수 없다. 실학의 시기에 이름을 알린 수많은 유학자들이 있지 않은가. 그 중에서도 간서치로 알려진 그는 어느 순간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알려진 것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지 그의 글은 아니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글을 처음으로 진득하게 만났다.

 

매미와 귤의 맑고 깨끗함을 사랑하여 ‘선귤당’이란 당호를 지었다고 한다. 그는 호가 많다고 하는데 자신의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방법인 듯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적은 책이란 <이목구심서>는 그 유명한 연암 박지원도 여러 번 빌렸다고 한다. 이 책들은 풍경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과 옛사람의 향기로운 삶이 조화를 이루고, 이덕무의 해박한 독서와 지적 편력, 사물에 대한 투철한 관심을 담고 있다. 읽으면서 어떤 대목을 보고는 자기계발서가 아닌가 하는 부분도 있고, 또 어떤 대목은 실학자다운 관점이 보인다. 하지만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역시 ‘간서치’이다.

 

나도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덕무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가 잡기로 치부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보니 그가 주장하는 독서와는 사뭇 다르다. 그가 경계한 책 쌓아두기를 아주 많이 하고 있고, 열심히 집중해서 읽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주로 흥미위주의 장르소설을 좋아하다보니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바른 자세는 이미 거북목이라 변명할 거리가 아니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경우는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배 부른 것보다 빈 배로 책을 읽을 때 더 좋은 소리와 집중을 한다는 대목에서는 공감한다. 부른 배는 바르지 않은 자세와 나태함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런 글들은 가끔 그 시대의 한계를 알려준다. 친구를 위하는 지극한 마음이 아내의 노동으로 이어지는 대목은 살짝 눈에 거슬린다. 시대에 맞게 해석해야 할 부분도 많다. 역자가 덧붙인 해석이 개인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좋은 글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점점 정보가 많아지고, 알아야 하는 것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그 선인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시대와 맞지 않다. 그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현실에 맞는 해석과 행동이 필요하다. 후인들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역자와 편집자들이 편집한 한문들은 현실의 필요에 의해 편집되었다. 한문에 띄어쓰기가 없어 해석의 어려움이 있지 않은가.

 

옛 기억을 더듬으면 한 글자의 어원을 찾는 과정이 나온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지나간 그 한 글자가 그 사람의 학식과 공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그가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고 삶과 행동을 엮어서 풀어낸 공부와 더불어 나의 독서를 깊이 반성하게 만든다. 속도와 권수에 집착했던 과거와 현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추위에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을 만들어야 했지만 독서만은 막을 수 없었던 그의 삶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현대인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다. 올바른 삶의 자세를 바로 잡는데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도 될 것 같다. 선인들의 피와 땀이 아로새겨진 책들을 죄다 읽고 싶다는 무모한 욕심과 바보라는 단어가 왠지 가슴에 강한 울림을 준다. 그리고 문장의 길이와 그 글을 해석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저자는 잘 보여준다. 짧은 글이 더 긴 해석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 간결함 속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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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 From Paris 피에스 프롬 파리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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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 모으다보면 잘 읽지 않는데 계속 사는 작가가 있다. 그 중 한 명이 마르크 레비다. 그의 출간 목록을 한 권씩 보면서 꽤 많은 제목이 낯익다. 할인행사에 산 책도 있고, 헌책방에서 산 책도 있고, 궁금해서 사놓은 책도 보인다. 그런데 이 책들 읽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읽지 않은 것이 확실한 책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에 확실하게 읽은 책 한 권이 생겼다. 바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이다. 흥행하는 작가의 작품답게 가독성이 굉장히 좋다. 결과는 뻔한데 그 과정이 재밌다. 아마 연속적으로 읽으면 질리겠지만 가끔 한 권씩 이런 책을 읽는다면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간단한 설정이다. 첫 작품이 성공한 미국 소설가 폴과 영화배우 미아의 로맨틱 코미디다. 미아의 남편은 유명 배우이지만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고, 그 남편을 사랑하지만 배신감을 이기지 못해 파리로 온다. 이곳에서 절친한 친구 다이지가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 건축사였던 폴은 첫 작품이 대박나면서 전업 작가로 나선다. 그 다음 책들은 그렇게 썩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계속 작품을 내고 있다. 이들 각자의 일상을 먼저 보여준 후 한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연결된다. 원래 이 만남은 이들이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폴은 경이라는 한국 번역가 여자 친구가 있다. 여자 친구라고 하지만 1년에 한두 번 오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녀를 좋아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이런 그에게 첫 작품 <저스트 라이크 헤븐>의 주인공인 아서와 로렌이 등장해 작은 변화가 생긴다. 그 첫 작업이 폴 몰래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에 가입하고 소개글을 올린 것이다. 로렌이 가입했다면 아서는 더 적극적으로 폴에게 어울릴 듯한 여자를 찾아 메모를 보낸다. 이런 시도가 조금은 평온했던 폴의 일상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낸다. 미아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했다.

 

미라, 영국 여배우인 멜리사 바로우가 본명이다. 남편의 외도 때문에 친구 집에 피난 왔지만 마음속으로는 남편이 잘못을 빌기를 바란다. 그녀가 친구 다이지를 위해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를 검색한다. 그러다 폴의 정보를 본다. 어느 로맨틱코미디처럼 처음에는 친구를 위한 의도였다. 아직 자신은 남편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여배우이지만 머리 모양을 바꾼 후 그녀를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파리에서 지내는데 별 무리가 없다. 웨이트리스로 다이지를 도와주면서 자신의 삶과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폴과의 만남은 이 연장선에서 벌어진 일이다.

 

첫 만남은 아서의 장난(?)이었다. 네 명이 함께 식사하는 것처럼 폴에게 말해 놓고 이 부부만 다른 곳으로 간다. 미아의 존재조차 몰랐다. 미아는 폴이 보여주는 몇 가지 반응이 이상하다. 미친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주방장이라고 속인 책 어색한 만남을 이어간다. 서로에게 첫인상은 그렇게 좋지 않다. 하지만 운명은 왠지 모를 이유로 미아의 가방 속으로 폴의 핸드폰을 넣어둔다. 둘은 다시 만나고, 친구라는 선을 긋는다. 서로에게는 경과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자신들의 연인을 찾기 위한 만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로맨틱코미디 공식대로 흘러간다. 엮이고, 꼬이고, 서로의 감정을 알게 되는 시간들이 이어진다. 그 사이에 폴의 비행공포 문제점 하나와 한국에서 대박난 일 때문에 한국국제도서전에 오는 일이 생긴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런 일이 현실에서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원서를 읽을 수 있는 수많은 독자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특히. 재밌는 부분은 프랑스 문학상을 하나도 수상한 적이 없는 작가가 소설 속에서 상을 하나 받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경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문학상이 추구하는 바와 작가가 추구하는 바가 다름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시간 나면 작가의 다른 작품도 한 권씩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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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
박형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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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다시 한 번 나의 저질 기억력을 탓했다. 책은 받은 다음 이전에 본 소개글을 완전히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고령 사회가 된 한국 사회와 노인 세대와 청년 새대 간의 갈등 심화를 다루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처음 몇 부분을 읽고는 여러 노인들의 노후, 특히 죽음과 그 사연을 단편적으로 알리는 소설이구나 하고 착각했다. 그러다 장길도가 전직장에 전화를 하고, 아내 한수련의 죽음을 저지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보고 이전에 본 소개글이 살짝 떠올랐다. 그리고 이야기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세대 간의 갈등은 이미 현실화되었다. 이것을 가까운 미래에는 더 극단적으로 바뀐다. 젊은 세대가 초고령화된 사회에서 부양자로 바뀌면서 자신들의 현재를 누리지 못한다. 지하철의 노인 전용칸이 8량이나 되고, 청년들은 돈이 없어 지하철을 탈 수 없다. 한 노령의 노인을 부양하기 위해 3명의 청년 월급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사회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이 노령문제를 조금은 해소하기 위한 조직으로 국민연금의 외곽공무원들이 활약한다. 이들이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보여주는 것이 내가 착각한 노인들의 자살 등 이야기였다.

 

장길도는 외곽공무원이었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고, 팀장이었다. 아내에게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말라고 했는데 미래가 불안하다고 몰래 가입했다. 이것이 문제다. 연금을 수급하는 그녀는 100% 수급 축하 전문과 꽃을 받는다. 병원에서 이 연금을 꼬박 모은 통장을 남편에게 전해준다. 처음에는 이 노부부를 보면서 대단하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장길도가 아내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작점이다. 전 직장에 전화하고, 내부자의 도움을 얻어 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바꾸려고 죽을 힘을 다한다. 이 활약은 한 편의 액션 스릴러로 부족함이 없다.

 

외곽공무원들이 하는 일은 연금수급 100%가 넘은 노인들을 죽이는 일이다. 대부분은 자살로 처리한다. 책 사이사이에 나오는 한 노인의 불행한 삶의 기록과 죽음은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자료다. 실제는 외곽공무원이 죽인다. 사회는 이 짧은 사연을 보고, 그 죽음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초고령 사회에서 노인의 죽음은 오히려 환영받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재밌는 단편 정보들이 나오는데 새로운 대통령의 나이가 40대다. 노인들이 훨씬 많은데 선거는 늘 젊은이들이 이긴다. 청년은 전철이나 병원에서 보이지 않고 노인들만 가득하다. 방송에 나오는 코미디언도 80대다. 지독하게 극단으로 몰고 간 암울한 미래상이다.

 

장길도의 이 처절한 활약은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젊을 때 파란 사과 두 알을 위해 40킬로미터를 뛰었다고 한다. 이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사랑은 언제나 비현실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는가. 아내의 웃음과 그녀의 말 한 마디에 반해 아홉 살 연상인 그녀를 쫓아다니고 결혼까지 한다.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행복은 남편의 살인 업무로 이어져온 것이다. 결코 대외적으로 알릴 수 없는 업무 말이다. 그가 이 일을 애국심으로 표현할 때, 그의 아내는 이 사실을 알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았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 그녀는 몰랐기에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장길도의 사랑은 이제 실제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가 성공하길 바란다. 조직과 개인의 대결 결과는 언제나 변함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내에게 국민연금 가입을 권하고, 더 많은 돈을 납입하라고 말한 나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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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이브스 2 - 화이트스카이
닐 스티븐슨 지음, 성귀수.송경아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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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2권이 빨리 나왔다. 2권을 다 읽은 지금은 마지막 3권은 더 빨리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1권이 인류의 전멸로 이어지는 초기 과정을 다루었다면 2권은 이 책의 제목처럼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 과정을 건조하게 보여주면서 이 엄청난 충격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막지만 이 거대한 사고 실험이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너무나도 거대한 재앙이라 한 개인의 문제로, 감정으로 끌고 나가지 않으면서 무엇이 최상의 선택인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이상을 향한 노력은 균형을 맞춰간다.

 

1권에서 하나의 가상 미래였던 하이트스카이와 하드레인은 현실이 된다. 인류는 각자의 방식으로 종말에 대비한다. 이 장면에 작가는 큰 공을 들이지 않는다. 아크에 남은 몇 명의 통신 등을 나름의 대비와 현실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강한 절망과 고통에 파고들지 않았는데 의도적인 연출인 것 같다. 만약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주연급으로 내세운다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너무나도 무력하게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억제된 감정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거대하고 강대한 재앙에 이성이 충분히 반응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클라우드아크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인류의 도전이 계속된다.

 

소설은 잔인하다.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쪽으로 움직이면서 끝없이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한다. 그 중 하나가 ‘이미르’ 장이다. 인류의 생존과 우주선의 운행에 필수적인 요소인 물을 구하기 위한 인간들의 도전은 불굴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압도적인 현실 앞에 역시 감정이 억제될 수밖에 없다. 그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하기에는 지구에서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 70억이란 숫자가 일반적인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아주 피상적이다. 그 중 몇 명만이 겨우 기억될 뿐이다. 예상이 현실화되는 과정은 언제나 변수를 만들 수밖에 없고, 그 과정과 결과를 우리는 본다. 이 거대한 sf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2권에서는 인류의 협정을 깨트린 미 대통령 줄리아가 등장한다. 강력한 권력자에서 일반 선원으로 떨어진 그녀는 자신의 정치력을 이용해 분쟁을 일으킨다. 화성 이주를 쟁점으로 자신의 조직을 만든다. 생존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아키들이 이제 서로의 선택에 의해 갈라진다. 이것은 더 높은 생존율을 위해 이미르로 선장격인 마쿠스가 떠난 사이에 벌어진다. 이때 나의 감정은 가장 많이 움직인다. 그 감정은 분노다. 정치인의 자신의 권력을 위해 편가르기를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화성 이주선에 타서 떠났다면 이 분노는 조금 수그러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비교적 안전한 곳에 머문다. 이 선택은 마지막에 충격적인 상황으로 이어진다.

 

인류의 종말이란 거대한 재앙 앞에 각 개인의 선택은 다양하다. 누구는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고, 누구는 자신의 할 일을 한 후 자살한다. 누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갈취한다. 인간의 고귀함은 어느 순간 무너지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런 모습을 아주 하드한 과학 지식들 속에 조금씩 풀어놓는다. 1권보다 2권이 더 재밌고 빠르게 읽힌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갈등과 모순 등이 곳곳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인류의 일곱 이브들이 누군지,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상상하게 만든다. 거의 900쪽에 육박하는 원서의 분량을 생각하면 이제 인류의 거대한 기원은 이제 막 시작한 샘이다. 다시 한 번 더 마지막 권의 빠른 출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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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 가객 김창완.주객 명욱과 함께 떠나는 우리 술 이야기
명욱 지음 / 박하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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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대충 보면 괴테의 그 유명한 작품으로 오해하기 딱 좋다. 실제로 나 자신도 괴테의 소설로 착각했다. 다시 볼 때는 오타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 정보를 본 후 우리 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술 이야기와 좋은 술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기에 눈에 확 들어왔다. 책 정보에 의하면 저자의 이력도 특이하다. 거대한 체구에 비해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고 한다. 그가 출연한 방송도 나에겐 낯설다. 라디오는 잘 듣지 않고, 그가 출연한 팟캐스트와 방송은 잘 보지 않는다. 그래도 흔하지 않은 우리 술 이야기이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이전에 자주 간 백화점 코너 한 곳에 우리 술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가격에 깜짝 놀랐다. 단순히 몇 만 원이었다면 그렇지 하고 넘어갈 텐데 그 이상이었다. 이 부분은 저자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우리 술을 낮게 보고, 잘 알지 못하면서 생긴 문제다. 아마도 다시 그 술병을 본다면 나의 시선은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살짝 욕심이 생길 것이다. 잘 마시지 못하면서 좋은 술에 대한 탐욕이 내 속에 늘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탐욕을 가득 채워주는 책이 바로 이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이다. 오랜만에 검색하면서 책을 읽었다.

 

4부분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일반적인 술에 대한 설명과 전통주와 한국 와이너리와 우리 술과 외국 술의 차이 등을 다룬다. 술이란 말의 기원을 수불에서 찾는데 괜히 근처 식당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발효주에서 세상의 모든 술이 출발했다는 단순한 지식에서 시작해 발효주와 증류주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리고 재료에 따라 위스키와 브랜디와 사케 등의 외국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알려준다. 여러 매체를 통해 피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정보들이 이 책을 통해 하나씩 정리되었다. 물론 이 지식이 나의 머릿속에 계속, 오랫동안 남는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백화점에서 보고 놀랐던 가격의 술들은 이강주, 감홍로, 죽력고 등이다. 이 술들은 마셔보지 못해 그 맛을 알지 못한다. 한때 유행했던 문배주는 그 독한 맛에도 나의 몸과 잘 맞고, 안동소주는 왠지 모르게 숙취로 고생하게 만든다. 평소 맥주 한 캔 정도 마시는 주량이다 보니 이 술들을 산다고 해도 바로 먹을 가능성이 없다.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마시지 않는다면 아마 먹을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몇 년 전에 산 싱글몰트위스키도 그렇게 묵혀지고 있으니까. 이런 기억들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올랐다. 당연히 저자가 풀어낸 이야기와 맛은 한두 잔 정도만이라도 맛보고 싶다는 욕심을 품게 했다.

 

검색을 하면서 읽다보니 유명한 술들의 가격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비싸지 않다는 부분에서 한 번 주문하고 싶었지만 앞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주저한다. 그리고 가양주 이야기를 보면서 어릴 때 동네 막걸리를 사서 어른들에게 가져다 준 일이 떠올랐다. 그 막걸리와 공장 제조 막걸리를 먹고 그 차이에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났다.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은 최근에 다녀온 곳들에 유명한 양조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제주에 오메기떡으로 만드는 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한두 병 정도는 사왔을 텐데. 여행에서 그 지역 막걸리를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경험은 좋은 일인 것 같다. 그 맛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가 나에게 있어 문제지만.

 

포도주를 한국에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기후 조건 때문이다. 그런데 설탕을 조금 가미해서 좋은 와인을 만드는 곳이 대부도에 있다니 흥미롭다. 술을 아주 많이 즐긴다면 가까운 곳부터 돌면서 한 잔씩 맛을 보겠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최남선이 말한 삼대 명주에 관심이 있지만 그 가격이 결코 적지 않아 부담된다. 오히려 만찬주에 더 관심이 간다. 그렇게 높지 않는 도수라 마시기도 덜 부담스럽다.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방송하다 보니 그 지역과 유명 관광지 등을 같이 알려주는데 조금은 도식적이고 과장되어 있다. 술과 우리 술의 입문서로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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