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 이덕무 청언소품
정민 지음 / 열림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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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나왔던 책의 개정판이다. 구판 절판이었는데 새롭게 서문을 달고 나왔다. 최근 정민의 책 신간보다 개정판이 한 권씩 나오고 있다. 덕분에 그를 늦게 안 나는 새로운 느낌으로 읽게 된다. 그의 고문에 대한 해석을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선인의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에는 간서치 이덕무의 청언소품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실제 이덕무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66편 전부와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일부(163)편을 우리말로 옮기고 자신의 해설을 덧붙여 엮은 글이다. 한문에 약한 사람에게 이런 책들은 선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간서치로 먼저 다가온 이덕무를 알게 된 것은 <책만 보는 바보>란 책이었다. 앞부분을 재밌게 읽다가 다른 일로 책을 놓고는 아직까지 완독하지 못하고 있다. 가끔 이런 책들이 있는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덕무를 떠올리면 정조 시대의 수많은 문인들을 떼놓을 수 없다. 실학의 시기에 이름을 알린 수많은 유학자들이 있지 않은가. 그 중에서도 간서치로 알려진 그는 어느 순간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알려진 것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지 그의 글은 아니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글을 처음으로 진득하게 만났다.

 

매미와 귤의 맑고 깨끗함을 사랑하여 ‘선귤당’이란 당호를 지었다고 한다. 그는 호가 많다고 하는데 자신의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방법인 듯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적은 책이란 <이목구심서>는 그 유명한 연암 박지원도 여러 번 빌렸다고 한다. 이 책들은 풍경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과 옛사람의 향기로운 삶이 조화를 이루고, 이덕무의 해박한 독서와 지적 편력, 사물에 대한 투철한 관심을 담고 있다. 읽으면서 어떤 대목을 보고는 자기계발서가 아닌가 하는 부분도 있고, 또 어떤 대목은 실학자다운 관점이 보인다. 하지만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역시 ‘간서치’이다.

 

나도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덕무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가 잡기로 치부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보니 그가 주장하는 독서와는 사뭇 다르다. 그가 경계한 책 쌓아두기를 아주 많이 하고 있고, 열심히 집중해서 읽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주로 흥미위주의 장르소설을 좋아하다보니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바른 자세는 이미 거북목이라 변명할 거리가 아니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경우는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 배 부른 것보다 빈 배로 책을 읽을 때 더 좋은 소리와 집중을 한다는 대목에서는 공감한다. 부른 배는 바르지 않은 자세와 나태함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런 글들은 가끔 그 시대의 한계를 알려준다. 친구를 위하는 지극한 마음이 아내의 노동으로 이어지는 대목은 살짝 눈에 거슬린다. 시대에 맞게 해석해야 할 부분도 많다. 역자가 덧붙인 해석이 개인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좋은 글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점점 정보가 많아지고, 알아야 하는 것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그 선인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시대와 맞지 않다. 그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현실에 맞는 해석과 행동이 필요하다. 후인들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역자와 편집자들이 편집한 한문들은 현실의 필요에 의해 편집되었다. 한문에 띄어쓰기가 없어 해석의 어려움이 있지 않은가.

 

옛 기억을 더듬으면 한 글자의 어원을 찾는 과정이 나온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지나간 그 한 글자가 그 사람의 학식과 공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그가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고 삶과 행동을 엮어서 풀어낸 공부와 더불어 나의 독서를 깊이 반성하게 만든다. 속도와 권수에 집착했던 과거와 현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추위에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을 만들어야 했지만 독서만은 막을 수 없었던 그의 삶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현대인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다. 올바른 삶의 자세를 바로 잡는데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도 될 것 같다. 선인들의 피와 땀이 아로새겨진 책들을 죄다 읽고 싶다는 무모한 욕심과 바보라는 단어가 왠지 가슴에 강한 울림을 준다. 그리고 문장의 길이와 그 글을 해석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저자는 잘 보여준다. 짧은 글이 더 긴 해석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 간결함 속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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