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섬광 - 김은주 미스터리 소설
김은주 지음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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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소년이 한 병원의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 소년의 이름은 고윤이다. 그 소년이 병원에 오면 늘 만나고 가는 소녀가 한 명 있다. 코마 상태에 있는 그녀의 이름은 수인이다. 소년이 옥상에서 뛰어내린 후 수인은 깨어난다. 이 엇갈린 시간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복수를 하고자 하는 소녀가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그리고 이 소년과 소녀를 둘러싸고 어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형사 무원과 간호사 희정과 정신과 의사 승렬 등이다. 이들의 삶과 의지 등이 현실의 무게와 엮이면서 아주 잔혹하고 추악한 과거가 밝혀진다.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조금 무겁다. 병원이란 공간을 무대로 아픈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형사 무원도 마찬가지다. 열다섯 소년이 자살했는데 그 이유가 의문스럽다. 사라진 핸드폰은 또 어디에 있을까? 간호사의 힘든 일을 묵묵히 처리하는 희정에게 한 소년의 죽음과 한 소녀의 깨어남 사이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 둘의 연결고리로 그녀가 선택되었고, 윤이가 죽기 전 그녀에게 핸드폰을 보냈다. 정신과의사 승렬은 절친을 돕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남극으로 가고 싶지만 신체검사 등에서 탈락했다. 욕구와 의지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결과다.

 

코마에서 깨어난 수인은 코마 상태에서 주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고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열거하지 않지만 그 아이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알고 있다. 정확한 증거를 원한다. 희정에게 전달된 핸드폰 속에 담겨 있지만 그녀는 선뜻 전달하지 못한다. 힘든 간호사 업무를 수행하지만 현재까지 잘 해내고 있다. 갑자기 수간호사 미영이 이달의 미소 간호사로 꼽을 정도다. 이런 그녀지만 초보 시절에는 실수도 있었다. 그 시기를 거친 후 자신의 몫을 묵묵히 잘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한 소년의 자살과 한 소녀의 깨어남은 또 다른 문제다. 수인의 행동과 반응이 그녀에게 낯설다.

 

메디컬 스릴러에서 형사 무원은 진실을 파헤치려는 유일한 어른이다. 납득할 수 없는 소년의 죽음과 그 소년의 과거를 하나씩 따라간다. 하지만 5년 전 소아중환자실에 있던 여섯 아이들의 집단 죽음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자료도 정보도 부족하다. 당시 생존자가 두 명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고윤과 수인이다. 고윤은 매주 병원을 방문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코마 상태인 수인에게 한다. 이 기억을 가지고 있던 수인이 깨어났을 때 고윤은 죽었다. 그녀가 고윤의 시체를 보기 위해 간 것은 자신들만의 기억과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한 하나의 의식과 같다. 수인은 정보를 찾고 얻기 위해 조금씩 나아간다.

 

병원에 가면 우리가 항상 만나는 인물들은 바로 간호사다. 입원하면 가장 가까운 인물도 간호사다. 크게 빛나지 않지만 그들이 없다면 병원 생활은 더 힘들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비밀을 아는 것도 역시 그들이다. 희정에게 고윤의 핸드폰이 전달된 것은 바로 그녀가 평소 보여준 행동 때문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어른이었다. 이 어른들의 현실을 작가는 조금 무겁게 그려낸다. 생략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빠르게 소설을 읽게 하지만 풍성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간결하고 빠른 진행도 아니다. 단단한 문장과 진행에 비해 구성이 조금 허술한 느낌이다.

 

사실 중반도 가기 전에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를 알게 되었다. 물론 이것을 안다고 해도 상황과 전개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긴장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상황이 많지만 미영이 찾아간 간호사가 보여준 행동과 그 이면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 잔혹한 행동까지 할 정도였을까 하는 것도. 아쉬운 부분들을 가려줄 한 방도 이 소설에는 보이지 않는다. 잘 짠 구성의 힘으로 이야기를 엮은 것도 아니라 문장이 지닌 힘이 오히려 묻힌다. 아쉽다. 그렇게 잔혹하고 대담한 범죄를 저지른 인물들이 그렇게 허술하게 상황을 만들고 이어간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납득하지 못하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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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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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알베르토 망겔의 책을 읽었다. 이렇게 적으면 그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지만 두 번째다. 첫 번째 책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이다. 서구 문화의 근원을 파헤친 이 책을 아주 힘들게 읽었는데 잠시 그 기억을 잃고 다시 선택했다. 서재를 떠나보낸다는 말에 혹했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망겔에 대해 잘 몰랐을 때 그의 책을 반값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놓쳤다. 그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겨우 240 여 쪽에 이르는 이 책을 천천히 힘들게 읽었다. 흥미롭고 재밌는 대목들도 많았지만 압축적으로 쓴 내용들을 따라가기에는 나의 지식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소개글에 3만5천여 권의 책을 70여 개의 박스에 포장한다는 글을 읽고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당연히 3만5천 여 권의 책 때문이고, 그 다음은 겨우 70여 개의 박스에 그 책을 모두 담을 수 있나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은 그의 서재를 떠올리느라고 바빴다. 일반적인 도서관과 다른 배열과 서가의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와 더불어 서재를 정리하는 그의 마음 중 일부를 이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와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책을 가지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책장을 어떻게 정리해야 이사 갈 때 큰 부담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목과 목차만 놓고 보면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알베르토 망겔이다. 독서의 폭과 깊이에서 이미 어느 단계를 넘어섰다. 가벼운 일상을 풀어내면서도 서양 고전을 인용하고 엮으면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고, 그와 비슷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주석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이 주석도 서양 철학이나 문학을 잘 모른다면 천천히 숙독해야 한다. 숙독했다고 단번에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유명해서 내용은 알지만 읽지 않은 작품들을 말할 때는 그 두껍고 어려운 책을 다시 도전해야 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많은 작가와 작품이 글 속에 나오지만 머릿속에 가장 강하게 남는 작품은 두 편이다. 하나는 단테의 <신곡>이고, 다른 하나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다. <신곡>은 대학 때 도전했다가 몇 쪽 읽지 않고 포기했고, <돈키호테>는 책만 사놓고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나이니 다른 작가들의 글에서 얻은 간접 정보 밖에 없다. 이런 때 얻는 정보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플라톤 식으로 말하면 실체는 보지 못하고 그림자만, 그 중에서도 일부만 본 것이다. <돈키호테>를 읽은 독자 백 명이 각각 다른 돈키호테를 만들었다는 글을 보면서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느꼈다. 영화나 연극이나 다른 글들을 보고 나만의 돈키호테를 그려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책과 도서관에 대한 깊은 통찰이 압축적으로 담긴 책이다. 그러다 보니 주석을 보지 않으면 놓치는 부분이 더 늘어난다. 언어와 이야기, 재현을 둘러싼 신과 인간의 관계, 꿈과 현실, 읽기와 쓰기, 책과 도서관의 관계 등으로 분류하는데 늘 그렇듯이 나의 지식이 부족해서 많은 부분을 놓쳤다. 앞에 몇 자 적은 것들은 나의 몇 가지 경험과 연결된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나의 독서는 아주 편협한 시선 아래 놓여 있었을 것이다. 뭐 지금도 독서의 편중 현상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망겔의 깊고 넓은 독서는 그의 글을 읽을수록 부러움의 대상이다. 현대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조차 읽지 않은 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독서나 서재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사고 싶은 책이 늘어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책들은 책장을 잘 찾아보면 이미 있는 책들이 많다. 다만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다. 그렇다고 금방 읽을 수 있거나 읽을 책들이란 의미는 아니다. 단지 나의 허영을 채워줄 수 있다는 의미다. 어느 순간 읽는 것보다 소장에 더 정성을 들이다 보니 권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래서 <서재를 떠나보내며>란 제목에 더 혹했다. 읽은 책들이야 떠나보내면 되지만 언젠가 읽겠지 하고 샀다가 그 언제에도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책장 정리의 필요성을 느낀다. 망겔이 발터 벤야민에 느낀 감정의 일부이지만 나도 망겔의 서재 정리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적지 않다. 읽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렵다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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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하루 - 생활 모험가 부부가 담아낸 소소한 계절의 조각들
블리 지음, 빅초이 사진 / 소로소로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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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모험가 부부와 숲이란 단어에 혹했다. 포토 에세이란 소개에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 생각대로 책을 끝까지 읽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 사진으로 채워져 있고, 짧은 글이 작은 감상으로 달려 있다. 덕분에 생활 모험가 부부의 숲에서의 일상을 조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여유가 묻어나고,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물론 몇 가지 사진에서는 장르 소설 애호가의 상상력이 끼어들고, 괜한 산불 걱정을 했다. 읽는 동안 여유를 가졌고, 그 짧은 글에서 공감하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를 다룬다. 이 아름다운 풍경과 사진들을 보면서 어딜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이 책의 편집자는 그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가을의 산 모양을 보고 제주도인가? 하고 의문을 품었는데 일본 후지산이다. 눈이 쌓여 있지 않는 후지산은 괜히 낯설다. 그리고 그 후지산을 트레킹한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나무와 그늘이 없어 산행하는 동안 힘들었다고. 이후 이어지는 사진들을 보면서 그곳도 후지산인지 궁금했다. 내가 생각한 풍경과 달랐기 때문이다. 장소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는 것은 아쉽다.

 

빅 초이의 사진을 보면 화려하지 않다. 풍경과 사물과 사람이 어우러져 있다. 숲의 풍경과 사물이 같이 놓여 있는 사진도 있고, 사람이 중심인 사진도 있다. 전문가의 손길에 의해 연출된 장면과 잘 찍은 사진 한 컷은 잠시 동안 호흡을 멈추고 쉴 시간을 준다. 각 계절마다 달린 조금 긴 감상보다 더 시간을 들여서 보게 되는 사진도 있다. 캠핑을 하지 않기에 그들이 가진 장비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지만 괜히 관심을 두고 오랫동안 쳐다본다. 그러고 보니 숲이나 계곡에서 하루를 보낸 것이 정말 오래되었다. 도시의 시간 속에서 나의 시간을 잠시 잃은 것 같다.

 

일상을 모험으로 채운다면 어떨까? 그 모험이 꼭 위험하고 화려할 필요는 없다. 어릴 때 나의 모험은 조금 먼 동네였는데 이제는 먼 도시나 다른 나라로 바뀌었다. 작은 여행의 즐거움을 잃었다. 반복되는 일상에 묻혔다. “모험은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라고 할 때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서 작은 변화들을 더 많이 거부한다. 동네의 새로운 길이나 식당을 찾지 않고, 해외여행에서도 낯선 길을 멀리한다. 육체가 늙는 것보다 어쩌면 마음이 더 빨리 늙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움직일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늘어났지만 나의 심리적 공간은 왠지 더 좁아졌다.

 

숲의 사계절을 담고 있다보니 그들의 옷과 장비와 풍경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봄의 옷을 보면서 두툼하다고 생각했지만 초봄의 숲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서늘하다. 그들이 친 텐트와 다른 장비를 보면서 얼마나 빨리 장소 세팅을 끝낼까 하는 궁금함이 생긴다. 오래 전 멍청한 다섯 남자가 아주 힘들게 오랫동안 텐트를 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의 소박함에 머무는 하루’란 표현이 있지만 다른 생각할 틈 없이 하루의 일과에 집중하게 되는 숲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 같다. 대부분 이 부부만 사진에 등장하는데 가끔 다른 사람들도 보인다. 함께 하는 즐거움이 사진과 짧은 글에서 느껴진다. 캠핑이 계속되면서 술보다는 커피와 차를 더 마신다는 말에 그들의 모험을 새롭게 들여다본다. 숲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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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파서블 포트리스
제이슨 르쿨락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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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컴퓨터는 지금 기준에서 보면 고대 유물처럼 보인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휴대폰을 볼 때보다 더 심하다. 얼마 전 옆집에서 준 뽀로로 컴퓨터의 그래픽을 보면서 80년대 오락실 그래픽이 떠올랐다. 최근에 나오는 3D가 아닌 도트로 표시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80년대 컴퓨터보다 훨씬 성능이 좋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빌리가 만든 그래픽을 보고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 기억을 더듬으면 결코 이것보다 더 좋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컴퓨터의 가격을 보고 놀란다. 1987년인데, 메모리가 겨우 20메카인데 수천 불이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열네 살 소년들이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를 원한다. 그 이유는 바나 화이트의 누드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최고 인기 퀴즈쇼 ‘휠 오브 포춘’의 진행자다. 자신들의 여신이 엉덩이를 드러낸 표지를 보고 그냥 넘어간다면 그들은 결코 평범한 소년들이 아니다. 이들은 이 잡지를 얻기 위한 작전을 짠다. 길 가는 어른에게 잡지 가격보다 더 주고 잡지를 받는 계획도 세운다. 쉽지 않다. 이런 소년들의 열망이 가득 담긴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빌리의 관심사와 사랑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 시간 속에 소년들은 조금씩 성장한다. 작가는 1987년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을 지난 독자들은 몇몇 익숙한 이름에 잠시나마 향수에 빠진다.

 

9학년 남자 세 명이 성인잡지를 구할 방법은 무엇일까? 오래전 세운상가에서 포르노 태입을 구입한 친구의 이야기가 순간 떠오른다. 비밀리 접속하고, 고액을 전달했지만 내용물은 동물의 왕국 혹은 전원일기였다는 그 도시 전설 말이다. 이 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성과 여자의 몸에 관심이 있지만 나이라는 제한 때문에 당당하게 구할 수 없다. 자신들을 위해 잡지를 사줄 것 같은 성인에게 돈을 주면서 사달라고 하는데 이 남자가 놀라운 제안을 한다. 더 많이 사서 학생들에게 빌려주거나 웃돈을 받고 파는 사업이다. 이 매력적인 제안에 빠져 가진 돈 모두를 준다. 그리고 그 남자는 돈을 가지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이들에게 남는다.

 

바나 화이트에 대한 열망을 넘어선 집착은 그 잡지를 구해줄 수 있다는 불량소년 타일러와 연결된다. 그가 들어가서 잡지를 사서 전달해주면 될 것 같은데 그는 밤에 몰래 들어가 돈을 놓아둔 후 잡지만 가지고 나오면 된다고 말한다. 대략적인 방법과 함께 아주 중요한 보안장치 해제 번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아주 잘 생긴 하지만 손에 문제가 있는 클라크가 젤린스키 상점의 딸 메리를 유혹하면 금방 비밀번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뚱녀란 이미지를 가진 그녀를 유혹할 마음이 클라크에게는 없다. 하지만 성인으로 분장해 잡지를 구하러 갔을 때 메리의 프로그램 실력에 반한 빌리가 자발적으로 나선다. 그의 목적은 비밀번호가 아닌 자신이 프로그램한 게임 <임파서블 포트리스>을 완성하는 것이다.

 

클라크와 알프가 젤린스키 상점으로 침입하기 위한 루트를 짤 때 빌리는 메리와 새로운 프로그램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게임을 완성해간다. 이때 빌리의 머릿속에는 바나 화이트보다 자신의 우상인 플레처 멀리건을 만나는 게 우선이다. 둘의 협력 작업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여간다. 둘의 사이도 점점 가까워진다. 그런데 알프가 바나 화이트 사진을 예약 판매한다. 반드시 구해야만 한다. 하지만 빌리는 메리와 알콩달콩 사랑을 키우면서 자신의 게임을 완성한다. 그러다 알프가 돈을 잃는다. 이제 그 잡지를 구하지 않으면 돈을 낸 친구와 선배들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작가는 10대 소년들의 말도 되지 않는 대결과 대화를 곳곳에 녹여내면서 웃게 만든다. 추억의 가수들과 배우들 이름이 등장해 향수에 빠진다. 사실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이 80년대 문화와 풍경들이다. 여기에 열네 살 소년의 첫사랑을 집어넣어 사랑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멋지게 그려내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으로 꼽고 싶은 것은 빌리가 경찰서에서 돌아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엄마에게 말하고, 엄마가 그 이야기를 진시하게 듣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있기에 빌리는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친한 친구 둘이 있다.

 

10대들의 유쾌한 행동들은 흥미롭고 재밌다. 하지만 가끔 그들의 모험 끝에서 만나는 현실은 너무 잔인하다. 작가는 이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소년들을 보여준다. 얼마나 활기차고 쾌활한가. 빠르게 넘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졌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겠지만 이 소년들이 누리는 문화들이 너무 미국적이란 것이다. 게임에 문외한이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여자 누드가 나온다고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열여덟 번이나 빌려본 이들을 보면서 지금은 너무 쉽고 흔한 일이 된 여자의 누드가 떠오른다. 바나 화이트의 <플레이보이> 표지가 책소개에 나온 것을 보면 세월의 변화를 더 많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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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워줄게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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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최근 나무의철학 출판사에서 매년 연속으로 내고 있는데 언제나 관심만 두고 있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많다 보니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다. 개인적으로 심리 스릴러를 찾아서 즐겨 읽지 않지만 좋은 작품은 늘 챙긴다. 그런데 문제는 심리 스릴러들의 경우 책 중반까지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심리 묘사나 상황 등이 나와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1부가 끝날 때까지 좀처럼 이야기 속에 몰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2부와 3부를 보면서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자살일까? 다시 생각해봐.” 엄마의 기일에 전달된 한 장의 카드는 애나의 일상의 뒤흔든다. 19개월 전 아버지 탐이 절벽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고, 그 7개월 후에 엄마 캐럴라인마저 그 절벽에서 자살했다. 부모 두 분이 모두 같은 곳에서 자살한 일은 애나에게 엄청난 충격이다. 경찰은 신고 전화와 다른 조건들을 검토한 후 자살로 처리했다. 그 후 애나는 심리 상담사 마크를 만났고, 딸 엘라를 낳는다. 출산 후 겨우 일상으로 복귀하는 듯했는데 이 카드 한 장이 그 동안 억눌렀던 그녀의 감정을 뒤흔든다. 부모님이 타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확신을 가지고 경찰의 재수사를 요구하려고 한다. 그곳에서 은퇴 후 경찰서 민간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머리를 만난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진행된다. 애나와 머리의 삶과 애나의 부모인 듯한 사람의 이야기다. 애나가 재수사를 접수했지만 이 신청은 정식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머리가 위에 정식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문의 카드를 제외하면 애나 부모의 자살을 타살로 규정할 어떤 증거 자료도 없다. 규정대로라면 위에 보고해야 했겠지만 그는 자신의 일로 처리한다. 그리고 그의 불안한 일상이 드러난다. 바로 아내 세라의 정신병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해와 자실을 시도한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매일 그녀를 면회 간다. 그가 현직 형사였을 때 그녀가 그를 많이 도와준 적이 있다. 이 사건이 다시 둘의 힘을 합치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머리다.

 

일반적으로 자살로 끝난 사건을 타살이라고 말하면서 재수사를 요구하면 어떤 반응이 올까? 아마 대부분은 그녀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것이다.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산후우울증을 의심할 수도 있다. 마크가 그 카드를 보고도 꿈쩍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살인사건으로 확신한 그녀에게는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머리에게 계속 연락을 한다. 그녀의 이 의지가 사건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녀 가족의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진다. 이 과정을 작가는 교묘한 서술로 살짝 독자의 눈을 가린다. 뒤에 이어지는 반전들은 이 영향력과 나의 선입견이 같이 작용한 탓이다.

 

비극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일어난다. 하지만 그 씨앗은 오랜 시간을 거친 후 부화하기도 한다. 이 가족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족 내부의 문제가 하나씩 드러난다. 흔한 스릴러의 공식에 따라 간다면 삼촌 빌리나 엘라의 아버지인 마크 등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처음 시선이 간 인물도 바로 이들이다. 이들에게는 애나의 부모를 죽일 이유가 충분히 있다. 바로 돈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이 전면으로 나서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바뀐다. 이 등장인물이 반전의 연속을 만든다.

 

소설 속에서 애나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끝없이 맞이한다면 머리는 자료를 모으고 조사를 하면서 이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그가 한 발 나아갈 때면 사건도 같이 한 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차이는 점점 좁혀진다. 그의 수사 방법은 발로 뛰는 전통적인 방식과 인터넷을 통한 조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날카로운 관찰과 통찰력이다. 어느 정도는 이 부분이 불만스럽다. 독자에게 같이 전달되는 자료가 너무 없기 때문이다. 고전 미스터리에서 자주 사용하던 설정이다. 마지막 애나의 에필로그도 살짝 아쉽다. 너무 많이 나간 느낌이다. 머리와 세라의 첫 만남 장면이 의미하는 바도 놓인 위치를 생각하면 애매하다. 개인적으로 머리를 계속 등장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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