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파서블 포트리스
제이슨 르쿨락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80년대 컴퓨터는 지금 기준에서 보면 고대 유물처럼 보인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휴대폰을 볼 때보다 더 심하다. 얼마 전 옆집에서 준 뽀로로 컴퓨터의 그래픽을 보면서 80년대 오락실 그래픽이 떠올랐다. 최근에 나오는 3D가 아닌 도트로 표시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80년대 컴퓨터보다 훨씬 성능이 좋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빌리가 만든 그래픽을 보고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 기억을 더듬으면 결코 이것보다 더 좋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컴퓨터의 가격을 보고 놀란다. 1987년인데, 메모리가 겨우 20메카인데 수천 불이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열네 살 소년들이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를 원한다. 그 이유는 바나 화이트의 누드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최고 인기 퀴즈쇼 ‘휠 오브 포춘’의 진행자다. 자신들의 여신이 엉덩이를 드러낸 표지를 보고 그냥 넘어간다면 그들은 결코 평범한 소년들이 아니다. 이들은 이 잡지를 얻기 위한 작전을 짠다. 길 가는 어른에게 잡지 가격보다 더 주고 잡지를 받는 계획도 세운다. 쉽지 않다. 이런 소년들의 열망이 가득 담긴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빌리의 관심사와 사랑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 시간 속에 소년들은 조금씩 성장한다. 작가는 1987년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 시절을 지난 독자들은 몇몇 익숙한 이름에 잠시나마 향수에 빠진다.

 

9학년 남자 세 명이 성인잡지를 구할 방법은 무엇일까? 오래전 세운상가에서 포르노 태입을 구입한 친구의 이야기가 순간 떠오른다. 비밀리 접속하고, 고액을 전달했지만 내용물은 동물의 왕국 혹은 전원일기였다는 그 도시 전설 말이다. 이 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성과 여자의 몸에 관심이 있지만 나이라는 제한 때문에 당당하게 구할 수 없다. 자신들을 위해 잡지를 사줄 것 같은 성인에게 돈을 주면서 사달라고 하는데 이 남자가 놀라운 제안을 한다. 더 많이 사서 학생들에게 빌려주거나 웃돈을 받고 파는 사업이다. 이 매력적인 제안에 빠져 가진 돈 모두를 준다. 그리고 그 남자는 돈을 가지고 사라진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이들에게 남는다.

 

바나 화이트에 대한 열망을 넘어선 집착은 그 잡지를 구해줄 수 있다는 불량소년 타일러와 연결된다. 그가 들어가서 잡지를 사서 전달해주면 될 것 같은데 그는 밤에 몰래 들어가 돈을 놓아둔 후 잡지만 가지고 나오면 된다고 말한다. 대략적인 방법과 함께 아주 중요한 보안장치 해제 번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아주 잘 생긴 하지만 손에 문제가 있는 클라크가 젤린스키 상점의 딸 메리를 유혹하면 금방 비밀번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뚱녀란 이미지를 가진 그녀를 유혹할 마음이 클라크에게는 없다. 하지만 성인으로 분장해 잡지를 구하러 갔을 때 메리의 프로그램 실력에 반한 빌리가 자발적으로 나선다. 그의 목적은 비밀번호가 아닌 자신이 프로그램한 게임 <임파서블 포트리스>을 완성하는 것이다.

 

클라크와 알프가 젤린스키 상점으로 침입하기 위한 루트를 짤 때 빌리는 메리와 새로운 프로그램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게임을 완성해간다. 이때 빌리의 머릿속에는 바나 화이트보다 자신의 우상인 플레처 멀리건을 만나는 게 우선이다. 둘의 협력 작업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여간다. 둘의 사이도 점점 가까워진다. 그런데 알프가 바나 화이트 사진을 예약 판매한다. 반드시 구해야만 한다. 하지만 빌리는 메리와 알콩달콩 사랑을 키우면서 자신의 게임을 완성한다. 그러다 알프가 돈을 잃는다. 이제 그 잡지를 구하지 않으면 돈을 낸 친구와 선배들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작가는 10대 소년들의 말도 되지 않는 대결과 대화를 곳곳에 녹여내면서 웃게 만든다. 추억의 가수들과 배우들 이름이 등장해 향수에 빠진다. 사실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이 80년대 문화와 풍경들이다. 여기에 열네 살 소년의 첫사랑을 집어넣어 사랑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멋지게 그려내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으로 꼽고 싶은 것은 빌리가 경찰서에서 돌아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엄마에게 말하고, 엄마가 그 이야기를 진시하게 듣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있기에 빌리는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친한 친구 둘이 있다.

 

10대들의 유쾌한 행동들은 흥미롭고 재밌다. 하지만 가끔 그들의 모험 끝에서 만나는 현실은 너무 잔인하다. 작가는 이 현실을 보여주지만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소년들을 보여준다. 얼마나 활기차고 쾌활한가. 빠르게 넘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졌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겠지만 이 소년들이 누리는 문화들이 너무 미국적이란 것이다. 게임에 문외한이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여자 누드가 나온다고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열여덟 번이나 빌려본 이들을 보면서 지금은 너무 쉽고 흔한 일이 된 여자의 누드가 떠오른다. 바나 화이트의 <플레이보이> 표지가 책소개에 나온 것을 보면 세월의 변화를 더 많이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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