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알베르토 망겔의 책을 읽었다. 이렇게 적으면 그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지만 두 번째다. 첫 번째 책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이다. 서구 문화의 근원을 파헤친 이 책을 아주 힘들게 읽었는데 잠시 그 기억을 잃고 다시 선택했다. 서재를 떠나보낸다는 말에 혹했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망겔에 대해 잘 몰랐을 때 그의 책을 반값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놓쳤다. 그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겨우 240 여 쪽에 이르는 이 책을 천천히 힘들게 읽었다. 흥미롭고 재밌는 대목들도 많았지만 압축적으로 쓴 내용들을 따라가기에는 나의 지식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소개글에 3만5천여 권의 책을 70여 개의 박스에 포장한다는 글을 읽고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당연히 3만5천 여 권의 책 때문이고, 그 다음은 겨우 70여 개의 박스에 그 책을 모두 담을 수 있나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은 그의 서재를 떠올리느라고 바빴다. 일반적인 도서관과 다른 배열과 서가의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와 더불어 서재를 정리하는 그의 마음 중 일부를 이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와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책을 가지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책장을 어떻게 정리해야 이사 갈 때 큰 부담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목과 목차만 놓고 보면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알베르토 망겔이다. 독서의 폭과 깊이에서 이미 어느 단계를 넘어섰다. 가벼운 일상을 풀어내면서도 서양 고전을 인용하고 엮으면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고, 그와 비슷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주석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이 주석도 서양 철학이나 문학을 잘 모른다면 천천히 숙독해야 한다. 숙독했다고 단번에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유명해서 내용은 알지만 읽지 않은 작품들을 말할 때는 그 두껍고 어려운 책을 다시 도전해야 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많은 작가와 작품이 글 속에 나오지만 머릿속에 가장 강하게 남는 작품은 두 편이다. 하나는 단테의 <신곡>이고, 다른 하나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다. <신곡>은 대학 때 도전했다가 몇 쪽 읽지 않고 포기했고, <돈키호테>는 책만 사놓고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나이니 다른 작가들의 글에서 얻은 간접 정보 밖에 없다. 이런 때 얻는 정보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플라톤 식으로 말하면 실체는 보지 못하고 그림자만, 그 중에서도 일부만 본 것이다. <돈키호테>를 읽은 독자 백 명이 각각 다른 돈키호테를 만들었다는 글을 보면서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느꼈다. 영화나 연극이나 다른 글들을 보고 나만의 돈키호테를 그려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책과 도서관에 대한 깊은 통찰이 압축적으로 담긴 책이다. 그러다 보니 주석을 보지 않으면 놓치는 부분이 더 늘어난다. 언어와 이야기, 재현을 둘러싼 신과 인간의 관계, 꿈과 현실, 읽기와 쓰기, 책과 도서관의 관계 등으로 분류하는데 늘 그렇듯이 나의 지식이 부족해서 많은 부분을 놓쳤다. 앞에 몇 자 적은 것들은 나의 몇 가지 경험과 연결된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나의 독서는 아주 편협한 시선 아래 놓여 있었을 것이다. 뭐 지금도 독서의 편중 현상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망겔의 깊고 넓은 독서는 그의 글을 읽을수록 부러움의 대상이다. 현대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조차 읽지 않은 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독서나 서재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사고 싶은 책이 늘어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책들은 책장을 잘 찾아보면 이미 있는 책들이 많다. 다만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다. 그렇다고 금방 읽을 수 있거나 읽을 책들이란 의미는 아니다. 단지 나의 허영을 채워줄 수 있다는 의미다. 어느 순간 읽는 것보다 소장에 더 정성을 들이다 보니 권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래서 <서재를 떠나보내며>란 제목에 더 혹했다. 읽은 책들이야 떠나보내면 되지만 언젠가 읽겠지 하고 샀다가 그 언제에도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책장 정리의 필요성을 느낀다. 망겔이 발터 벤야민에 느낀 감정의 일부이지만 나도 망겔의 서재 정리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적지 않다. 읽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렵다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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