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섬광 - 김은주 미스터리 소설
김은주 지음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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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소년이 한 병원의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 소년의 이름은 고윤이다. 그 소년이 병원에 오면 늘 만나고 가는 소녀가 한 명 있다. 코마 상태에 있는 그녀의 이름은 수인이다. 소년이 옥상에서 뛰어내린 후 수인은 깨어난다. 이 엇갈린 시간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복수를 하고자 하는 소녀가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그리고 이 소년과 소녀를 둘러싸고 어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형사 무원과 간호사 희정과 정신과 의사 승렬 등이다. 이들의 삶과 의지 등이 현실의 무게와 엮이면서 아주 잔혹하고 추악한 과거가 밝혀진다.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조금 무겁다. 병원이란 공간을 무대로 아픈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형사 무원도 마찬가지다. 열다섯 소년이 자살했는데 그 이유가 의문스럽다. 사라진 핸드폰은 또 어디에 있을까? 간호사의 힘든 일을 묵묵히 처리하는 희정에게 한 소년의 죽음과 한 소녀의 깨어남 사이에 자신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 둘의 연결고리로 그녀가 선택되었고, 윤이가 죽기 전 그녀에게 핸드폰을 보냈다. 정신과의사 승렬은 절친을 돕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남극으로 가고 싶지만 신체검사 등에서 탈락했다. 욕구와 의지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결과다.

 

코마에서 깨어난 수인은 코마 상태에서 주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고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열거하지 않지만 그 아이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알고 있다. 정확한 증거를 원한다. 희정에게 전달된 핸드폰 속에 담겨 있지만 그녀는 선뜻 전달하지 못한다. 힘든 간호사 업무를 수행하지만 현재까지 잘 해내고 있다. 갑자기 수간호사 미영이 이달의 미소 간호사로 꼽을 정도다. 이런 그녀지만 초보 시절에는 실수도 있었다. 그 시기를 거친 후 자신의 몫을 묵묵히 잘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한 소년의 자살과 한 소녀의 깨어남은 또 다른 문제다. 수인의 행동과 반응이 그녀에게 낯설다.

 

메디컬 스릴러에서 형사 무원은 진실을 파헤치려는 유일한 어른이다. 납득할 수 없는 소년의 죽음과 그 소년의 과거를 하나씩 따라간다. 하지만 5년 전 소아중환자실에 있던 여섯 아이들의 집단 죽음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자료도 정보도 부족하다. 당시 생존자가 두 명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고윤과 수인이다. 고윤은 매주 병원을 방문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코마 상태인 수인에게 한다. 이 기억을 가지고 있던 수인이 깨어났을 때 고윤은 죽었다. 그녀가 고윤의 시체를 보기 위해 간 것은 자신들만의 기억과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한 하나의 의식과 같다. 수인은 정보를 찾고 얻기 위해 조금씩 나아간다.

 

병원에 가면 우리가 항상 만나는 인물들은 바로 간호사다. 입원하면 가장 가까운 인물도 간호사다. 크게 빛나지 않지만 그들이 없다면 병원 생활은 더 힘들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비밀을 아는 것도 역시 그들이다. 희정에게 고윤의 핸드폰이 전달된 것은 바로 그녀가 평소 보여준 행동 때문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어른이었다. 이 어른들의 현실을 작가는 조금 무겁게 그려낸다. 생략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빠르게 소설을 읽게 하지만 풍성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간결하고 빠른 진행도 아니다. 단단한 문장과 진행에 비해 구성이 조금 허술한 느낌이다.

 

사실 중반도 가기 전에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미스터리를 알게 되었다. 물론 이것을 안다고 해도 상황과 전개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긴장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상황이 많지만 미영이 찾아간 간호사가 보여준 행동과 그 이면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 잔혹한 행동까지 할 정도였을까 하는 것도. 아쉬운 부분들을 가려줄 한 방도 이 소설에는 보이지 않는다. 잘 짠 구성의 힘으로 이야기를 엮은 것도 아니라 문장이 지닌 힘이 오히려 묻힌다. 아쉽다. 그렇게 잔혹하고 대담한 범죄를 저지른 인물들이 그렇게 허술하게 상황을 만들고 이어간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납득하지 못하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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