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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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낯익은 작가 이름에 비해 작품은 낯설다. 에로티슴의 거장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비채의 모던앤클래식 시리즈에 에로티슴이라니 뭐지? 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화려한 혹자의 이야기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바타유의 전복적 사고 없이 탄생할 수 없었고,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바타유의 과잉의 탐구 없이 완성될 수 없었으며,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는 바타유의 소비에 대한 사유 없이 성립될 수 없었다.” 가 나온다. 이것이 에로티슴과 무슨 관계지? 프랑스 68혁명 이후 현대 지성사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에 다시 의문을 품게 된다.

 

예전에 한 권으로 출간되었던 책을 비채에서 두 권으로 나누었다. <눈 이야기>와 <하늘의 푸른빛>이다. 실제 <눈 이야기>의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수전 손택의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이란 에세이마저 없었다면 솔직히 한 권으로 나올 분량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에세이가 쉽지만은 않았다. 포르노라고 단정한 몇 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예상을 뛰어넘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그냥 단순하게 야한 영화라고 생각한 <O의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해석할 수 있다니 놀랐다. 그리고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 책을 읽을 때 보통의 포르노그래피 혹은 야설과 너무 달랐던 것들이 떠올랐다.

 

에로티슴의 거장이라고 할 때 야한 것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아니다. 이 소설에서 야한 부분은 거의 없다. 불편한 부분은 아주 많다. 에로틱하고 아름다운 성교를 예상하고 읽는다면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점점 더 읽을수록 예전에 본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이 떠올랐다. 원작인 사드의 소설은 읽은 적이 없는데 사드의 이 작품을 발굴한 사서가 바타유라고 한다. 이 둘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읽기 불편한 것은 바로 야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고 아주 과격하게 극단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하드코어 포르노의 한 장면 같다고 해야 하나. 뭐 이런 취향인 사람에게는 아주 야할 수도 있겠다.

 

처음 눈 이야기라고 했을 때 이 눈을 눈(目)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雪)으로 생각했다. 제목만 놓고 보면 전혀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성적인 것에 불안감을 느끼던 열여섯 소년 ‘나’가 소녀 ‘시몬’을 만나 외설적인 행위 속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내는데 어지간한 소설이나 영화로 어느 정도 단련되었다고 생각한 나에게도 아주 충격적인 장면들이 나온다. 앞에서 말한 <살로 소돔의 120일>의 개인 버전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눈은 달걀로, 소 불알로, 다시 눈알로 변화가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이 두 소년소녀의 삶과 행동에 심한 변화가 있다. 쾌락은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그 뒤에 오는 공허함은 더 강한 쾌락을 원한다. 이 채워지지 않는 욕구는 점점 강해진다. 자기절제가 불가능하다. 마지막에는 광기의 지배를 받는 것 같다.

 

출판사 리뷰가 전문가의 시선을 빌려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어느 정도 공감한다. 투우사 그라네로의 죽음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군가의 비극인 순간에 어떤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투우를 예술로 스포츠로 극찬한 작가들이 많았다. 이들에게 소를 죽인다는 행위와 소에게 죽는다는 행위는 어쩌면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소를 가장 우아하고 가깝게 움직이며 죽이는 행위에 환호를 지르는데 이 위험성이 쾌감으로 다가온다. 그냥 소를 피해 달아나면 코미디가 될 것이다.

 

1부가 성적 충동이 어떻게 극단으로 나아가는지 보여준다면 2부 일치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전적 이야기다. 1부에서 마르셀의 존재가 이성과 본능의 균형을 생각하게 한다면 2부의 작가는 이 놀라운 이야기를 어디에서 떠오르게 되었는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그 추억이라는 것이 이미 오래전에 온갖 감정적 특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추억들이 언뜻 알아보기 힘들게 변형될 때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추억은 그렇게 변형되면서 가장 음란한 의미를 띠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작가가 만들어낸 1부의 광기와 음란함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전 손택이 이 소설을 그녀가 읽은 ‘모든 포르노그래픽 소설 가운데 가장 예술적 성취를 거둔 작품’이라고 한 부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뭐 이런 종류의 읽은 책이 거의 없으니 당연한 것인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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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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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고백부터 시작하자. 사실 나는 이 책이 만화인 줄 알았다. 표지와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이란 말이 그런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만화라면 가볍게 철학을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한 것이다. 물론 집에 철학을 만화로 표현한 책들을 그냥 묵혀두고만 있는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다. 그리고 철학배틀이란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총 열다섯 개의 주제를 두고 동서고금의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논쟁을 한다니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여기에 저자가 입시학원 인기 강사라고 하니 핵심만 잘 보여줄 것이란 기대도 한몫했다. 이 기대는 언제나처럼 반은 맞았다.

 

저자는 “철학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생각하거나 가치를 판단하고 음미하는 작업”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그리고 이 논쟁의 중재자로 소크라테스를 내세웠다.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논쟁이 끝날 때 요약해주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 논쟁의 방식이 대화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소크라테스가 심판 역할을 맡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실제 각 라운드에 소크라테스는 논쟁에 개입하지 않고, 새로운 인물의 말을 소개하고 너무 대화가 산으로 가는 것을 바로 잡는 역할을 한다. 출생연도만 놓고 보아도 거의 최연장자다. 연장자를 이렇게 언급하는 것은 각 라운드에 등장하는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존대와 평대를 출생연도에 따라 사용하기 때문이다.

 

열다섯 라운드의 주제들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빈부격차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삶까지 폭넓게 다룬다. 그중에서 첫 라운드가 빈부격차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솔직히 이 논쟁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각 토론자들이 내세우는 빈부격차가 현재 우리 사회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빈부격차를 인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애덤 스미스가 과연 마르크스와 롤스의 대척점에 서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약간 밋밋한 시작이었는데 다음 라운드에 가면서 나의 머리는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살인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살인도 나쁜 것이라는 공감대는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상황을 주면서 이 살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두 진영의 논리에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다.

 

소년 범죄는 최근 일본 소설에서 자주 다루는 주제다. 이것은 다음 라운드의 성선설과 성악설과도 연관성이 있다. 특히 점점 범죄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통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십대의 범죄율이 그렇게 늘어나지 않았다는 짧은 인용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소년범죄를 극단적으로 다루면서 반감을 고조시키는 부분이 있는데 좀더 냉정하게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미성년자 범죄에 대한 교화 혹은 처벌 연령 하락 부분도 성선설 등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흥미롭다. 싸이코패스에 대한 공포가 대중에게 인식된 요즘 시대에 이런 논쟁이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전쟁과 역사, 구조주의와 실존주의, 쾌락과 행복, 자유, 선험적 지식, 이원론적 세계관, 신의 존재, 진리, 삶의 의미 등에 대한 논쟁들은 나의 기존 철학 지식 바탕 위에서 아주 흥미롭게 이어졌다. 이전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생겼고, <소피의 세계>를 읽으면서 감탄했던 것에는 살짝 미치지 못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서양 철학을 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이 논쟁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요약만 한 것은 조금 아쉽지만 37인의 철학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기존에 하나의 철학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철학 이론이 나왔다고 배웠는데 이런 식으로 대화를 진행하지 않아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의 철학 이론이 나왔다고 전 시대의 철학 이론이 완전히 배제되고 무시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철학의 초보자에게 가벼운 입문서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더 즐겁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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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남들보다 더디더라도 이 세계를 걷는 나만의 방식
한수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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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의 개정증보판이다. 보통의 개정증보판이라면 이야기 한두 가지 정도가 책에 덧붙여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그냥 얼마나 추가되었는가 알라보려고 했다가 완전히 편집과 제목이 바뀐 것을 보고 놀랐다. 이번 책에는 보이지 않는 그림이 이전 판본에서는 많이 나온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달라진 개정판을 거의 본적이 없다. 그것도 2015년에 나온 책을 말이다. 출판사 이름만 놓고 보면 비슷한 회사 같은데 구판이 없다보니 정확하게 비교할 수가 없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한 후 살짝 보니 자료 사진이나 그림 등이 보인다. 아마 구판이 이 부분에서는 더 시각적이다.

 

이번 책에서는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담담할 것, 씩씩할 것, 우아할 것 등이다. 이전 판본은 목차만 보면 어떤 책이나 영화를 말할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제목만 놓고 본다면 이번 책이 훨씬 좋다. 더 세련되어 보인다. 이전 책의 각 제목은 왠지 자기계발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작품을 같이 나열한 이전 편집이 더 마음에 든다. 물론 이것은 개인 취향이다. 그리고 약력에 빠진 대학교 이름이 본문 속에 힌트로 숨겨져 있다. 너무 노골적 힌트라 왠지 빠르게 검색해야지 하는 열정이 불타지 않는다.

 

이제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된 아줌마의 자기 인생 이야기다. 덧붙여진 책과 영화는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잡지에 실린 것을 감안하면 책과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풀어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대부분 자신의 경험담에서 시작하여 영화나 책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형식의 글을 좋아한다. 한 이야기에 한 작품만 담고 있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 대립과 갈등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살짝 아쉽지만 이야기가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좋다. 남자인 나도 대부분 공감할 수 있어 더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의 두 편을 읽으면서 나의 경험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여행의 고통과 괴로움이나 어지간한 거리 걷기 등은 자주 경험한 것들이다. 저자 자신이 수많은 경험을 한 탓인지, 아니면 비슷한 생각을 한 부분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꽤 자주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년이 된지 꽤 된 나에게 중년의 각오나 노년의 걱정 등은 남의 문제가 더 이상 아니다. 한 가지 자신의 목에 대한 걱정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아직 중년이고 남자이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이런 외모적인 부분을 빼면 행동과 생각은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책 속에 나온 책들은 읽은 책들이 상당히 있다. 그런데 영화는 거의 본적이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영화를 본 적이 손에 꼽히다 보니 더 그렇다. 한때 영화에 빠져 허덕일 때를 생각하면 참 빨리 변했다. 그리고 이런 무지가 아직은 조금 낯설다. 읽으면서 공감을 많이 했다고 하지만 책의 내용은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냥 하나의 이야기고 예시일 뿐이다. 현재까지 내 삶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이랬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들도 많은데,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되는데 말이다. 예전보다 여유가 더 없어진 것은 나의 욕심이 그 시간만큼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읽다가 글을 쓰면서 살짝 깨닫게 된 사실이다.

 

가볍고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반만 맞았다. 예상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너무나도 진솔한 과거사는 언제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일기장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낡은 생각이 들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읽고 싶은 것은 언제나 작가들의 진짜 속내다. 돈 쓰는 법을 잘 모른다고 했을 때 나도 마찬가지였고, 이십 대에 인도를 두 달 다녀왔다는 말에 부러움을 느꼈다. 그녀가 재밌게 본 영화 중 나도 공감한 것은 딱 한 편이다. <카모메 식당>. 원작을 읽고 영화로 보면서 그 감동을 다시 되살렸던 기억이 났다. 글을 읽다가 그녀의 이십 대를 지배하고 있는 이미지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연 듯 떠올랐다. 이제 그녀는 나선으로 걸으면서 자신과 주변을 더 잘 보는 것 같다.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한 나의 삶이 보인다. 점점 더 편리함을 쫓아가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나의 삶을 돌아보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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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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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읽기의 혁명’이란 거창한 부제가 붙어있다. 이 말에 솔직히 혹했다. 김대식이란 저자가 얼마나 대단한 학자인지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프롤로그에 나온 몇 개의 문장에는 크게 공감했다. “인간이라면 진저리가 난다고”할 때 나의 한때가 절로 떠올랐다. 부패와 거짓과 대충으로 가득한 주변이 너무나도 진저리가 났었다. 그때 나의 선택은 영화였다. 책은 그 후 한참 지나서였다. 그리고 그가 사람보다 더 사랑했던 책들 중 몇 권을 소개한다고 했을 때 나의 경험 일부 어디와 맞을까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 기대는 책을 펴고 읽기 시작하면서 상당히 많이 사라졌다.

 

누군가 이 책을 서평집이라고 말했는데 동의한다. 이 책에서 소개한 책들 중 상당수는 아직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책들이다. 원서를 읽을 정도의 유창한 영어 실력도 없고, 그 실력이 있다고 해도 다른 책을 읽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이런 책들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가 말한 읽을 수 없는 책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가 여러 번 언급한 책 중 난해하기로 소문난 <피네간의 경야>도 한글로 번역되어 이해는 못해도 읽을 수는 있으니 말이다. 뭐 이해하지 못한다면 원서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인가. 그래도 그의 소개 때문에 호기심이 충만해지지는 않았지 않은가.

 

최근 십 몇 년 동안 책 좀 읽다 보니 아주 편식하는 내가 읽었던 책들이 몇 권 보인다. 괜히 반갑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의 경우는 그의 글을 읽고 난 후 예전에 쓴 나의 감상문을 찾아 읽어봤다. 비슷한 생각을 한 것에 놀란다. 그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보면서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론마저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감상이 비슷하다고 세부적인 곳까지 같지는 않다. 다른 책들은 나의 생각과 다른 곳도 많았다. 오래 전 읽은 책은 세부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다시 읽기를 생각나게 만든다. 뭐 실제 읽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테지만.

 

6부로 나누었는데 같은 저자의 같은 책이 자주 나온다. 같은 에피소드가 반복된다. 좋게 보면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말이 되겠지만 나쁘게 보면 이 적은 분량에서 반복이 심하다는 의미도 된다. 대표적인 것으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가 있다. 개인적으로 초판을 미친 듯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 때문에 에코의 책들을 줄줄이 샀다. 이해도 못하면서 말이다. 영화도 봤지만 원작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인용은 거의 대부분 에코의 책이나 이 작품을 언급하는 책을 만날 때만 한다. 저자에게도 이런 경우였을까? 그의 두툼한 <중세> 시리즈는 읽기 힘든 분량이지만 그의 이름만으로도 나를 유혹한다.

 

분량에 비해 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다. 화려한 편집으로 부족한 지면을 보충했다. 각 장에 짧은 인용을 덧붙이는데 피터 게이의 <모더니즘>이 유난히 많이 눈에 들어온다. 읽지 않은 책이라 간단한 평도 내릴 수 없지만 많이 들은 제목이다. 그리고 많은 그림들이 나온다. 이 그림들의 출처 표기가 없다. 아쉬운 대목이다. 아는 그림의 일부분이 나온 경우도 있다. 오래된 그림이라 그런 것일까? 32장으로 나누었지만 각 책에 대한 감상은 그렇게 길지 않다. 더 많은 책들을 다루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아쉬움은 그가 책을 통해 보여주는 감상들이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사놓고 묵혀만 두고 있는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대한 평가는 특히 그렇다. <개의 심장>을 힘들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책들이 많은데 더 많은 분량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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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토리노를 달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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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자주 에세이를 내는 것에 비해 히가시노 게이고는 역시 빈도수가 적다. 소설만 놓고 보면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압도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많다. 물론 완성도는 별개로 하고 말이다. 얼마 전 하루키의 시드니 올림픽 에세이가 출간되었는데 이번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토니노 동계올림픽 에세이가 나왔다. 이 책을 읽고서야 게이고가 동계 스포츠 마니아란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가 동계 스포츠를 배경으로 쓴 소설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한 번 더 놀란다. 그의 동계 스포츠에 대한 풍부한 지식 앞에서.

 

하루키가 정공법을 사용하여 시드니 올림픽 관람기를 적었던 것과 달리 게이고는 살짝 방법을 달리 한다. 자신이 기르는 듯한 고양이를 인간으로 변신시켜 화자로 등장시킨 것이다. 이 고양이 유메키치를 통해 일본의 동계 스포츠 현황을 되짚어보고, 동계 스포츠에 대한 정보를 차분하게(?) 전달한다. 보통의 경우 올림픽 현장으로 바로 가서 그곳의 정보를 최대한 담으려고 하는데 이 책은 일본의 동계 스포츠 현실에 꽤 많은 비중을 둔다. 덕분에 동계 스포츠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많이 얻는다. 고수가 아니면 쉽게 알 수 없는 내용들이다.

 

동계 스포츠 마니아이기에 그가 보여주는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풍경은 더욱 풍성하다. 문외한이 보기에 같아 보이는 경기를 유메키치를 통해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개인적으로 스키 점프의 규칙 변천사를 보면서 한국 양궁이 떠올랐다. 한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 얼마나 많이 경기 규칙을 바꾸었던가. 예전에는 거리별 경기도 있었다. 당연히 토너먼트도 아니었다. 스키 점프가 키 크기, 몸무게 등과 스키의 길이를 연관시켜 발전했다는 부분은 정말 관심이 없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시에 세대교체 혹은 올림픽 메달로까지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주 잘 전달되었다.

 

이 에세이의 가장 놀라운 점은 역시 유메키치다. 유메키치를 통해 자신의 속내를 능청스럽게 표출한다. 그리고 자신을 희화화한다. 처음 읽을 때는 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지 하는 마음이었다면 어는 순간부터는 그 자신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구나 하고 바뀐다. 자신을 한 명의 관중으로 놓고 그 현장에 참여하는 순간 좀더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인식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마음인지, 아니면 자신의 눈으로 표현하는 것이 껄끄러워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괜히 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왜냐고? 경기를 보는 순간 그의 열정과 팬심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 좀 되었다. 보통 읽고 바로 서평을 쓰는데 가끔 타이밍을 놓치거나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은 고민하다 타이밍을 놓쳤다. 그 당시 회사일이 바빠 잠시 미룬다고 한 것이 뒤로 한참 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동시에 분명하게 인상이 남는 이야기도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스키 점프가 대표적이다. 지난 동계 올림픽을 거의 보지 않은 나지만 어쩌다 자주 본 것이 컬링이다. 당시 중계에서 규칙이나 선수 구성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정보를 얻었다. 어떻게 보면 재미를 동반한 초보자용 동계 스포츠 안내서라고 해야 할까.

 

한국의 동계 올림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김연아다. 그리고 쇼트트랙이다. 이 당시에는 아직 김연아가 이름을 알리기 전이었다. 쇼트트랙에서만 금메달을 따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이 부분을 지적할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올림픽인 벤쿠버에서는 김연아와 스피드스케이팅의 남녀 메달리스트가 나타났다. 이것을 본 그의 반응이 궁금해진 것은 나의 고약한 심보 탓일까? 마지막에 덧붙여진 단편 2056년 쿨림픽은 지구온난화가 동계 스포츠에 미치는 영향을 아주 유쾌하게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스크린골프와 야구가 떠오른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에 처음 번역된 게이고의 첫 에세이라고 하는데 다른 에세이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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