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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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읽기의 혁명’이란 거창한 부제가 붙어있다. 이 말에 솔직히 혹했다. 김대식이란 저자가 얼마나 대단한 학자인지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프롤로그에 나온 몇 개의 문장에는 크게 공감했다. “인간이라면 진저리가 난다고”할 때 나의 한때가 절로 떠올랐다. 부패와 거짓과 대충으로 가득한 주변이 너무나도 진저리가 났었다. 그때 나의 선택은 영화였다. 책은 그 후 한참 지나서였다. 그리고 그가 사람보다 더 사랑했던 책들 중 몇 권을 소개한다고 했을 때 나의 경험 일부 어디와 맞을까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 기대는 책을 펴고 읽기 시작하면서 상당히 많이 사라졌다.

 

누군가 이 책을 서평집이라고 말했는데 동의한다. 이 책에서 소개한 책들 중 상당수는 아직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책들이다. 원서를 읽을 정도의 유창한 영어 실력도 없고, 그 실력이 있다고 해도 다른 책을 읽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이런 책들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가 말한 읽을 수 없는 책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가 여러 번 언급한 책 중 난해하기로 소문난 <피네간의 경야>도 한글로 번역되어 이해는 못해도 읽을 수는 있으니 말이다. 뭐 이해하지 못한다면 원서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인가. 그래도 그의 소개 때문에 호기심이 충만해지지는 않았지 않은가.

 

최근 십 몇 년 동안 책 좀 읽다 보니 아주 편식하는 내가 읽었던 책들이 몇 권 보인다. 괜히 반갑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의 경우는 그의 글을 읽고 난 후 예전에 쓴 나의 감상문을 찾아 읽어봤다. 비슷한 생각을 한 것에 놀란다. 그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보면서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론마저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감상이 비슷하다고 세부적인 곳까지 같지는 않다. 다른 책들은 나의 생각과 다른 곳도 많았다. 오래 전 읽은 책은 세부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다시 읽기를 생각나게 만든다. 뭐 실제 읽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테지만.

 

6부로 나누었는데 같은 저자의 같은 책이 자주 나온다. 같은 에피소드가 반복된다. 좋게 보면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말이 되겠지만 나쁘게 보면 이 적은 분량에서 반복이 심하다는 의미도 된다. 대표적인 것으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가 있다. 개인적으로 초판을 미친 듯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 때문에 에코의 책들을 줄줄이 샀다. 이해도 못하면서 말이다. 영화도 봤지만 원작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인용은 거의 대부분 에코의 책이나 이 작품을 언급하는 책을 만날 때만 한다. 저자에게도 이런 경우였을까? 그의 두툼한 <중세> 시리즈는 읽기 힘든 분량이지만 그의 이름만으로도 나를 유혹한다.

 

분량에 비해 내용이 그렇게 많지 않다. 화려한 편집으로 부족한 지면을 보충했다. 각 장에 짧은 인용을 덧붙이는데 피터 게이의 <모더니즘>이 유난히 많이 눈에 들어온다. 읽지 않은 책이라 간단한 평도 내릴 수 없지만 많이 들은 제목이다. 그리고 많은 그림들이 나온다. 이 그림들의 출처 표기가 없다. 아쉬운 대목이다. 아는 그림의 일부분이 나온 경우도 있다. 오래된 그림이라 그런 것일까? 32장으로 나누었지만 각 책에 대한 감상은 그렇게 길지 않다. 더 많은 책들을 다루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런 아쉬움은 그가 책을 통해 보여주는 감상들이 유혹적이기 때문이다. 사놓고 묵혀만 두고 있는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대한 평가는 특히 그렇다. <개의 심장>을 힘들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책들이 많은데 더 많은 분량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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