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낯익은 작가 이름에 비해 작품은 낯설다. 에로티슴의 거장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비채의 모던앤클래식 시리즈에 에로티슴이라니 뭐지? 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화려한 혹자의 이야기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는 바타유의 전복적 사고 없이 탄생할 수 없었고,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바타유의 과잉의 탐구 없이 완성될 수 없었으며,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는 바타유의 소비에 대한 사유 없이 성립될 수 없었다.” 가 나온다. 이것이 에로티슴과 무슨 관계지? 프랑스 68혁명 이후 현대 지성사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에 다시 의문을 품게 된다.

 

예전에 한 권으로 출간되었던 책을 비채에서 두 권으로 나누었다. <눈 이야기>와 <하늘의 푸른빛>이다. 실제 <눈 이야기>의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수전 손택의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이란 에세이마저 없었다면 솔직히 한 권으로 나올 분량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에세이가 쉽지만은 않았다. 포르노라고 단정한 몇 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예상을 뛰어넘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그냥 단순하게 야한 영화라고 생각한 <O의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해석할 수 있다니 놀랐다. 그리고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 책을 읽을 때 보통의 포르노그래피 혹은 야설과 너무 달랐던 것들이 떠올랐다.

 

에로티슴의 거장이라고 할 때 야한 것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아니다. 이 소설에서 야한 부분은 거의 없다. 불편한 부분은 아주 많다. 에로틱하고 아름다운 성교를 예상하고 읽는다면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점점 더 읽을수록 예전에 본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이 떠올랐다. 원작인 사드의 소설은 읽은 적이 없는데 사드의 이 작품을 발굴한 사서가 바타유라고 한다. 이 둘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읽기 불편한 것은 바로 야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고 아주 과격하게 극단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하드코어 포르노의 한 장면 같다고 해야 하나. 뭐 이런 취향인 사람에게는 아주 야할 수도 있겠다.

 

처음 눈 이야기라고 했을 때 이 눈을 눈(目)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雪)으로 생각했다. 제목만 놓고 보면 전혀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성적인 것에 불안감을 느끼던 열여섯 소년 ‘나’가 소녀 ‘시몬’을 만나 외설적인 행위 속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내는데 어지간한 소설이나 영화로 어느 정도 단련되었다고 생각한 나에게도 아주 충격적인 장면들이 나온다. 앞에서 말한 <살로 소돔의 120일>의 개인 버전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눈은 달걀로, 소 불알로, 다시 눈알로 변화가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이 두 소년소녀의 삶과 행동에 심한 변화가 있다. 쾌락은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그 뒤에 오는 공허함은 더 강한 쾌락을 원한다. 이 채워지지 않는 욕구는 점점 강해진다. 자기절제가 불가능하다. 마지막에는 광기의 지배를 받는 것 같다.

 

출판사 리뷰가 전문가의 시선을 빌려 이야기를 설명하는데 어느 정도 공감한다. 투우사 그라네로의 죽음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군가의 비극인 순간에 어떤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투우를 예술로 스포츠로 극찬한 작가들이 많았다. 이들에게 소를 죽인다는 행위와 소에게 죽는다는 행위는 어쩌면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소를 가장 우아하고 가깝게 움직이며 죽이는 행위에 환호를 지르는데 이 위험성이 쾌감으로 다가온다. 그냥 소를 피해 달아나면 코미디가 될 것이다.

 

1부가 성적 충동이 어떻게 극단으로 나아가는지 보여준다면 2부 일치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전적 이야기다. 1부에서 마르셀의 존재가 이성과 본능의 균형을 생각하게 한다면 2부의 작가는 이 놀라운 이야기를 어디에서 떠오르게 되었는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그 추억이라는 것이 이미 오래전에 온갖 감정적 특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추억들이 언뜻 알아보기 힘들게 변형될 때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추억은 그렇게 변형되면서 가장 음란한 의미를 띠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작가가 만들어낸 1부의 광기와 음란함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전 손택이 이 소설을 그녀가 읽은 ‘모든 포르노그래픽 소설 가운데 가장 예술적 성취를 거둔 작품’이라고 한 부분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뭐 이런 종류의 읽은 책이 거의 없으니 당연한 것인지 모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