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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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고백부터 시작하자. 사실 나는 이 책이 만화인 줄 알았다. 표지와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이란 말이 그런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만화라면 가볍게 철학을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한 것이다. 물론 집에 철학을 만화로 표현한 책들을 그냥 묵혀두고만 있는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다. 그리고 철학배틀이란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총 열다섯 개의 주제를 두고 동서고금의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논쟁을 한다니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여기에 저자가 입시학원 인기 강사라고 하니 핵심만 잘 보여줄 것이란 기대도 한몫했다. 이 기대는 언제나처럼 반은 맞았다.

 

저자는 “철학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를 생각하거나 가치를 판단하고 음미하는 작업”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그리고 이 논쟁의 중재자로 소크라테스를 내세웠다.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논쟁이 끝날 때 요약해주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 논쟁의 방식이 대화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소크라테스가 심판 역할을 맡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실제 각 라운드에 소크라테스는 논쟁에 개입하지 않고, 새로운 인물의 말을 소개하고 너무 대화가 산으로 가는 것을 바로 잡는 역할을 한다. 출생연도만 놓고 보아도 거의 최연장자다. 연장자를 이렇게 언급하는 것은 각 라운드에 등장하는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존대와 평대를 출생연도에 따라 사용하기 때문이다.

 

열다섯 라운드의 주제들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빈부격차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삶까지 폭넓게 다룬다. 그중에서 첫 라운드가 빈부격차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솔직히 이 논쟁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각 토론자들이 내세우는 빈부격차가 현재 우리 사회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빈부격차를 인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애덤 스미스가 과연 마르크스와 롤스의 대척점에 서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약간 밋밋한 시작이었는데 다음 라운드에 가면서 나의 머리는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살인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살인도 나쁜 것이라는 공감대는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상황을 주면서 이 살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두 진영의 논리에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다.

 

소년 범죄는 최근 일본 소설에서 자주 다루는 주제다. 이것은 다음 라운드의 성선설과 성악설과도 연관성이 있다. 특히 점점 범죄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통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십대의 범죄율이 그렇게 늘어나지 않았다는 짧은 인용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소년범죄를 극단적으로 다루면서 반감을 고조시키는 부분이 있는데 좀더 냉정하게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미성년자 범죄에 대한 교화 혹은 처벌 연령 하락 부분도 성선설 등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흥미롭다. 싸이코패스에 대한 공포가 대중에게 인식된 요즘 시대에 이런 논쟁이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전쟁과 역사, 구조주의와 실존주의, 쾌락과 행복, 자유, 선험적 지식, 이원론적 세계관, 신의 존재, 진리, 삶의 의미 등에 대한 논쟁들은 나의 기존 철학 지식 바탕 위에서 아주 흥미롭게 이어졌다. 이전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생겼고, <소피의 세계>를 읽으면서 감탄했던 것에는 살짝 미치지 못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서양 철학을 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이 논쟁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요약만 한 것은 조금 아쉽지만 37인의 철학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기존에 하나의 철학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철학 이론이 나왔다고 배웠는데 이런 식으로 대화를 진행하지 않아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의 철학 이론이 나왔다고 전 시대의 철학 이론이 완전히 배제되고 무시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철학의 초보자에게 가벼운 입문서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더 즐겁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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