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터 - 뼈와 기계의 전쟁 본 트릴로지 Bone Trilogy 2
피아더르 오 길린 지음, 이원경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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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본 트릴로지>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전편은 원시적 환경에서 잔혹하고 본능적이면서 투쟁적이었다. 이번에는 무대가 바뀌어 과학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루프에서 모든 사건이 일어난다. 바뀐 무대는 기본적인 이야기 방식도 변하게 한다. 창을 들고 생존을 위해 고기를 얻으려는 투쟁을 펼치는 스톱마우스와 그의 부족들의 활약이 사라진다. 대신 엄청난 과학을 지닌 루프의 삶을 통해 미래의 세계를 살짝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이미지 형성에 힘들었던 것도 바로 루프의 세계다.

 

전편의 부제가 ‘뼈와 돌의 전쟁’이었던 반면에 이번 작품은 ‘뼈와 기계의 전쟁’이다. 점차 자신의 영토로 다가오는 디거로 부터 자기 부족을 살리고 인드라니의 사랑도 찾으려는 욕망이 그를 루프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다. 사실 이 부분은 이 소설에서 도입부다. 실제 모든 사건은 루프에서 일어난다. 무대가 바뀐만큼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 중심인물이 히레시다. 그는 부모가 종교인이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엘리트가 되기 위한 수습으로 들어간 소년이다. 육체 능력은 부족하지만 약점을 파악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리고 스톱마우스의 팬이다.

 

이번 이야기에서 모든 사건의 핵심은 인드라니다. 그녀가 지닌 정보가 루프의 고위층에게 필요하다. 사실 왜 그녀의 정보가 필요한지 인드라니와 스톱마우스 등은 모른다. 하지만 고위층은 한때 격추했던 그녀를 되찾아와야 할 정도로 다급해졌다. 이 비밀을 찾고 이것을 이용해 루프를 탈출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물론 이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인드라니를 찾아가야만 한다. 이 과정에 현재 루프가 처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엄청난 과학에도 불구하고 점점 파괴되어 가는 루프의 현실이 밝혀진다.

 

루프로 무대가 바뀌면서 스톱마우스의 야성은 많이 사그라진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불만이다. 전편이 보여준 강렬한 본능과 투쟁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음모가 차지한다. 전편도 음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더 심하다. 문명화된 세계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언론을 조작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겹쳐졌지만 그것이 강하게 부각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거대한 루프 속 모험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가끔 SF를 읽을 때 그 상상력의 거대함에 압도되어 충분히 그 형상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루프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아마 영화로 만들어지면 그 장면들에 감탄할 가능성이 높다.

 

전편에서도 스톱마우스의 지능이 발전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속도가 더 빠르다. 바뀐 환경 속에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는 모습이나 인드라니의 아이에 대한 감정 변화는 점점 그가 발전하는 모습을 나타내준다. 이 발전이 꼭 고무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그런 장면이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을 모두 고기로 보고 죽은 사람을 먹지 않는 것을 식량의 낭비로 보는 것은 현실에 대한 강한 적응이자 비판이다. 이 장면이 나올 때면 전편에서 생존을 위해 그들이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는 바로 이런 원색적인 생존 본능이 많이 퇴색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전편에 비해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 이미지를 충분히 형상화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 장면들이 왠지 부정확한 느낌이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잘못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만들어 놓은 세계 속으로 내가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프의 파멸을 둘러싼 진실과 그 탈출 방법을 둘러싼 이야기는 신선함이 조금 부족하다. 거기에 히레시의 비중이 갑자기 줄어든 것은 많이 아쉽다. 초반에 스톱마우스와 함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권에서 전편의 강렬함과 미래 세계의 과학이 어느 선에서 결합할지 기대된다. 이 디스토피아가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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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나의 불행 너에게 덜어 줄게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4
마르탱 파주 지음, 배형은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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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나의 불행을 남에게 덜어주면 과연 행복할까?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그 불행으로 힘겨워하고 좌절하는 것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변하는 것이 무작위로 일어나는 현실에 괴로워할 것 같다. 왜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불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에르완이 만든 불행을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기계가 바로 그런 것들을 보여준다. 물론 말도 되지 않는 발명품이지만.

 

원제는 ‘부적응자 클럽’이다. 4명의 중학생이 주인공이다. 나, 바카리, 프레드, 에르완. 이들은 언제나 함께 몰려다닌다. 바카리는 수학과 물리에 미쳐 있고, 프레드는 전자 기타를 치고 노래를 만들고, 에르완은 뭐든지 기가 막히게 만들어낸다. 그럼 나는?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가장 능동적으로 사건에 대처하고 친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아이다. 연애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나’도 결코 평범한 학생은 분명 아니다.

 

민감한 사춘기의 소년들에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대단한 일이다. 그 일들이 부적응자 클럽의 가족들에게 일어난다면 더욱. 그것도 불행이라면. 나의 아버지는 엄마의 죽음 후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이후 인터넷 미팅 사이트 만남 후 조금 벗어난 듯하지만 일반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에르완은 갑자기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한다. 이 때문에 불행을 평등하게 나눠주는 기계를 발명한다. 바카리네 아빠는 일자리를 잃는다. 이런 불행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누구나 생각이 좋지 않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다.

 

학교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필요하고 원한다고 모두가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과 다르다고 공격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좋은 친구를 만나 멋진 추억과 기억을 가지고 자신의 성장을 돕는 역할도 한다. 이런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지만 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많은 기억과 추억이 퇴색하고 왜곡된다. 가끔은 몇몇 에피소드만 강하게 남을 때도 있다. 먼 훗날 그 당시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면 이 후일담이 어떤지 쉽게 알 수 있다. 그 사이 우리가 그만큼 성장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거나.

 

많지 않은 분량이라 단숨에 읽을 수 있다. 프랑스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조금은 낯설다. 학교 폭력과 왕따가 없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 안타까움을 느낀다. 술에 취한 수학 선생을 두고 일어나는 상황을 주인공처럼 나는 보지 못한다. 주인공처럼 볼 수 없는 나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이미 보수적 기성세대로 변한 것 같아 씁쓸하다. 에르완의 기계를 통해 그들이 성장할 때는 그 나이 또래의 나를 떠올려본다. 과연 나는 그 정도였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무심코 지나갔는데 다시 생각할 때 많은 것을 떠올려주는 문장이 있다. 아빠와 나의 대화에서 아빠가 한 말이다. “행복과 불행을 평등하게 나누어 주는 게 딱 하나 있구나. 바로 시간이지. 두고 보면 알게 될 거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십 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른이 되는 것 아니거든. 정말 재미있는 걸 만들어 내는 애들은 제일 괴짜인 녀석들이지. 물론 시간이 걸릴 테고 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결국엔 그렇게 되더라고.”(103~104쪽)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그냥 무시해서는 안 된다. 아직 살아가는 중인 경우라면.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생각보다 뒤에 남는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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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유작 1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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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분량에 조금은 힘겹게 읽었다. 나의 지식이 저자의 풍부한 지식을 도저히 따라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다루고 있는 부분들이 나의 관심사 밖에 있는 것들이거나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한 것들이라 더욱 그랬다. 대제국 미국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관심사가 그의 글로 통해 나올 때 나의 단편적인 지식은 너무 쉽게 힘을 잃었다. 특히 3부의 경우는 심했다. 아직 중동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뭐 북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지만.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도 그의 선집을 두 권으로 나눈 것 중 첫 번째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대로 표현하면 다음 책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분량보다 내용과 문장 때문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냉철한 논리로, 칼처럼 벼려낸 예리한 문장’이었는데 사실 이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집중력이 많이 깨어지고 정확한 지식이 없었던 탓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읽는 속도가 떨어지고 집중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의 이해 정도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그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그것은 그 당시 지식이 부족하거나 저자의 성향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시작한 부분도 있다. 특히 3부가 그렇다. 정밀하게 읽지 않은 탓인지 파키스탄에 대한 글들에서는 그들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여기에 미국 영화나 소설에서 얻은 인상 몇 가지가 곁들여지면서 더 심해졌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으나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평가는 균형 감각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이미 다른 책이나 지식을 통해 머릿속 한 켠에 자리를 잡은 상황이라 더욱더.

 

1부가 서평을 주로 다루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맞았다. 대부분이 미국과 그 인물을 다루는데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인물들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받은 교육이나 매체를 통해 얻은 지식과 정보가 미국 편향적이다 보니 더 그런 모양이다. 사실 우리에게 제퍼슨의 사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노예제도를 두고 나온 두 사람, 존 브라운과 에이브러햄 링컨은 기존 상식을 뒤집어 주기 충분하다. 우리의 지식이 너무 링컨에 집중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리고 JFK에 대한 평은 새롭고 과장 과대 포장된 인물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산산조각내준다. 아마 수십 년이 흐른다면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그런 인물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이 점점 기독교 근본주의에 접근해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은 약간 섬뜩했다. 강요되는 종교의 문제는 이슬람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문제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3부인데 그 중 고문에 대한 이야기는 니체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주 무서운 일이다. 저자가 직접 겪은 고문은 한때 한국에서 자행되었던 수많은 고문을 연상시켰다. 또 미군에 의해 고문당한 사람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그 당시 온몸으로 배운 것을 그대로 실현한다는 내용을 읽을 때는 왜 고문이 문제가 되는지 그래도 알려준다. 악순환의 고리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그의 글에서 일관성 있게 보이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음모론에 대한 반대다. 특히 미국 유대인에 대한 음모론에 대한 반론을 펼칠 때 얕은 나의 지식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엄청난 지식으로 파고든 수많은 글들을 생각할 때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음모론은 가슴 한 곳에 의문을 살짝 남겨 놓는다. 아마 그의 출생에 대한 의심 혹은 음모론에 대한 호기심 탓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존 업다이크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스티크 라르손을 이야기할 때 낯섦과 반가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누렸다. 뭐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때는 의욕을 꺽는 경우도 있었지만.

 

읽으면서 몇 쪽을 접어놓았다. 군대 기독교화와 반기문이 나오는 부분과 쇼아에 홀로코스트의 주석을 붙인 부분이다. 군대 이야기는 앞에서 했고, 반기문이 눈에 들어온 것은 그에 대한 비평 때문이다. 인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논지의 글인데 앞의 글을 읽게 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반가운 이름에 반갑지 않은 글이었다. 홀로코스트와 쇼아를 같은 것이라고 주석을 간단히 단 것은 왜 요즘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 대신 쇼아를 쓰는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결과다. 같은 사건을 말하지만 그 의미가 다를 때 여기에 대한 주석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몇 번 말했지만 쉽게 읽지 못했다. 그의 논조가 혼란을 가져온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서평을 쓰면서 읽은 역자의 글은 그 의문 중 하나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가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했기 때문이다. 가끔 보였던 몇몇 글들이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것과 상관없이 사실을 직시하는 글들은 언론인이 할 일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요즘 같이 한국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사족처럼 붙인다면 like에 대한 글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아직 영어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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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14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S라인 한정판 上.中.下 세트 - 전3권
꼬마비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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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ㅇ난감>으로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꼬마비의 죽음 3부작 시리즈 중 2번째 작품이다. 변함없이 4컷과 2등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4컷 만화로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즈망가 대왕>이 떠오른다. 하지만 2등신 만화는 어떤 작품도 떠오르지 않는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작가의 구성과 표현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냥 4컷만 읽는다면 뭐지 하는 마음이 들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읽게 되면 아! 하고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필요한 순간에 집어넣은 한 장 한 컷은 앞에 나온 혹은 나올 이야기를 극대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S라인이라? 요즘 이 단어를 생각하면 멋진 여자의 몸매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 S라인은 SEX LINE이다. 성관계를 맺은 사람 수에 따라 머리 위에 빨간 선들이 나타난다. 만약 처녀 총각이라면 한 줄도 없다. 그러나 그 횟수가 많다면 그 선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거의 붉은 실선 숫자를 넘어 거의 꽃으로 표현된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이 붉는 선이 자신의 치부를 표현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성 상대 수가 몇 명인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 붉은 선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헬멧을 쓴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S라인의 개수는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 중 하나를 알려준다. 이야기의 첫 시작으로 부부를 등장시킨 것은 바로 가장 작은 사회 단위고 가장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출산의 진통을 겪고 예쁜 아이를 낳는 그 순간 S라인이 나타난다. 아무 이유도 원인도 모른다. 그냥 나타났다. 이 선이 부분 사이를 이어준다. 하지만 숫자가 하나가 아니다. 남자의 머리 위에서 열 몇 개가, 여자의 머리 위에는 다섯 개가 있다. 이 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가장 힘든 순간으로 바뀐다.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머리 위에 있는 붉은 선의 개수가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가고 남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결국 다시 서로를 인정하고 재결합하지만 집을 나오는 남편의 가슴 한 곳에 집 떠난 사이에 S라인 하나가 더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자란다.

 

다음 이야기는 종교다. 목사의 비리가 드러나고 교회는 깨어진다. 믿음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불신과 의심이 차지한다. 하지만 시간은 또 다른 믿음을 만든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믿고자 하는 대상이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분야에서는 당연한 듯이 일어난다. 아이돌의 경우에는 잘못된 엄마의 모성 때문에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그 이유는 상대가 죽으면 그 S라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살인을 청부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생긴다. 인간이 지닌 잔혹함이 이런 일들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 S라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 S라인은 포토샵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지우고 저장하면 다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에서 선택한 것 중 하나가 사람이 아닌 실물 크기의 사진판을 세워놓고 토론하는 것이다. 그 어떤 차별도 보여주지 못하는 인물들이 다른 듯이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숨기려는 사람들이 지도층인 듯 행동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반면에 이 S라인 때문에 비극적인 일도 생긴다. 바로 아동 성폭력이다.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주변은 모두 알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한 줄의 이 선은 행복을 무참하게 짓밟는다. 아름다워야 할 청춘의 사랑은 과거의 흔적으로 큰 고통으로 변한다. 다행이라면 그 곁에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것 정도랄까.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 머리 위의 S라인 숫자에 눈길이 간다. 그 사람의 삶을 몰래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언론에 의해 아름답게 포장된 늙은 노부부의 사연이나 S라인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를 찾고자 하는 사람과 이것을 이용해 언론의 특종을 잡으려는 기자까지. 갑자기 사라진 자신의 S라인 하나를 보고 과거의 상대가 궁금해지는 남자의 사연은 어쩌면 남자들의 일반적인 감상일 것이다. 그것이 비록 감정의 찌꺼기 일지라도. 그러나 이런 세상일지라도 진솔한 사랑은 자란다. 그것을 희망이라고 불러야 할까?

 

가정, 학교, 종교, 개인들을 다루고 있지만 일반 회사는 빠져있다. 회사원으로 왜 빠졌을까 궁금하다. 사내 연애나 불륜이 분명 하나의 이야기가 될 텐데. 뭐 이와 비슷한 것은 대학 MT를 통해 보여줬다. 그러나 좀 부족한 느낌이 있다. 그 이후 일어난 이야기가 생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인터뷰를 통해 S라인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풀어낸다. 각자 겪은 경험에 의해 그 답은 다양하게 나온다. 뭐 여기서도 숨기려는 마음이 곳곳에 드러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우리 사회가 숨기고 있는 혹은 속이고 있는 사실과 감정들을 하나씩 밝혀낸다. 그것이 불편하고 잔혹하고 참혹하다 할지라도 조그만 희망을 남겨놓았다. 사랑이다. 그리고 이 엄청난 사건을 일상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엄청난 적응 과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읽는 나로 하여금 감탄하게 만든다. 이 감탄은 작가의 통찰력과 분석력과 표현력에 대한 것이다. 이미 <살인자ㅇ난감>에서 한 번 겪었지만 이번에는 그 규모를 더 키웠다. 마지막 <미결>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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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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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았을 때 육식동물 사자가 샐러드를 좋아하게 되려면 자신의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간이 자신의 본능을 교육이나 깨달음 등으로 벗어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런 조금은 깊은 생각을 하면서 목차를 둘러봤다. 무라카미 라디오 에세이 중 한 편이라고 미리 짐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제목이 보이지 않는다. 뭐지? 하는 당혹감이 먼저 생긴다. 하지만 첫 에세이에서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나의 짐작이 너무 많이 나갔다는 것을 바로 보여준다. 이런 표현이 하루키를 좋아하게 만들지만.

 

세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다. 가장 최근까지 <앙앙>에 실린 글들이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하루키를 좋아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그의 에세이를 좋아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아마 그 당시는 소설의 시대였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하루키의 재미를 알려면 짧은 단편이나 에세이를 읽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발을 했던 시기였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삶이 좀더 각박해지고 첫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게 되면서 이 짧은 글들이 사랑스러워졌다. 부담 없는 내용과 분량이 기발하고 독특한 시각과 어울리면서 꽤 많은 재미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하루키의 글들에 공감하는 내용이 좀더 많아진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가슴을 탁 치는 재미가 있기보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얼마 전 다녀온 여행에서 십년을 사용한 후 더 이상 사용할 마음이 없어진 조그만 가방을 버리고 왔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지퍼가 떨어진 가방이었다. 이렇게 여행을 가서 버리고 오는 것이 가끔 있다. 배낭여행을 가서 낡은 옷이나 신발 등을 버리고 오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행동을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작가들의 글을 통해서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하루키는 여행을 갈 때 각각 다른 가방을 사용하는 모양이다. 나의 경우는 거의 하나인데. 그리고 그렇게 비싼 가방도 아닌 듯하다. 그가 벌어들이는 수익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할 때 뭘 줄까 묻는 편이다. 가끔 누군가 주는 선물을 받을 때 내게 필요하지 않는 것이 오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은 정성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들이 주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말 좋은 선물은 어렵다. <그랜 토리노>란 영화에서 그냥 무심코 본 맥주를 자신의 글 속에 녹여낸 것을 보면서 남다른 관찰력에 고개를 끄덕인다. 뭐 나의 경우 상표에 무관심한 것도 있지만.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을 약간 다른 시각에서 풀어낼 때 나도 모르게 수긍하게 된다. 그의 문제 제기가 와 닿았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를 통해 가장 많이 얻게 되는 것은 역시 하루키의 정보다. 그의 일상과 관심사와 두려움이나 약간 특이한 행동들이다. 개인적으로 신호대기 중의 양치질은 괜찮다는 생각과 함께 칫솔질 후 이물질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이 뒤섞이며 하나의 영상이 훅하고 지나갔다. 결코 깨끗한 장면은 아니다. 그의 감각적 문체와 더불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이런 상상을 계속하게 만든다. 아마 개인의 경험에 따라 각각 다르겠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가 비행기 타고 여행을 다닌다는 사실에 이 둘은 관계가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평소 무심코 바라보던 것을 조금은 다르게 보면서 재미난 상상을 하게 된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첫 무라카미 라디오가 나온 후 다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뭔 훗날 4권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말 할 수 있겠는가. 그림을 그린 요하시 아유미의 후기를 보면 한 달 분량을 한꺼번에 전달해줬다고 하는데 언젠가 일 년 치를 한번에 줄지 어찌 알겠는가. 이런 상상을 하는 것도 하루키의 영향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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