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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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았을 때 육식동물 사자가 샐러드를 좋아하게 되려면 자신의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간이 자신의 본능을 교육이나 깨달음 등으로 벗어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런 조금은 깊은 생각을 하면서 목차를 둘러봤다. 무라카미 라디오 에세이 중 한 편이라고 미리 짐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제목이 보이지 않는다. 뭐지? 하는 당혹감이 먼저 생긴다. 하지만 첫 에세이에서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나의 짐작이 너무 많이 나갔다는 것을 바로 보여준다. 이런 표현이 하루키를 좋아하게 만들지만.

 

세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다. 가장 최근까지 <앙앙>에 실린 글들이다.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하루키를 좋아한 것은 오래되었지만 그의 에세이를 좋아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아마 그 당시는 소설의 시대였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하루키의 재미를 알려면 짧은 단편이나 에세이를 읽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발을 했던 시기였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삶이 좀더 각박해지고 첫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게 되면서 이 짧은 글들이 사랑스러워졌다. 부담 없는 내용과 분량이 기발하고 독특한 시각과 어울리면서 꽤 많은 재미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하루키의 글들에 공감하는 내용이 좀더 많아진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가슴을 탁 치는 재미가 있기보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얼마 전 다녀온 여행에서 십년을 사용한 후 더 이상 사용할 마음이 없어진 조그만 가방을 버리고 왔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지퍼가 떨어진 가방이었다. 이렇게 여행을 가서 버리고 오는 것이 가끔 있다. 배낭여행을 가서 낡은 옷이나 신발 등을 버리고 오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행동을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작가들의 글을 통해서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하루키는 여행을 갈 때 각각 다른 가방을 사용하는 모양이다. 나의 경우는 거의 하나인데. 그리고 그렇게 비싼 가방도 아닌 듯하다. 그가 벌어들이는 수익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할 때 뭘 줄까 묻는 편이다. 가끔 누군가 주는 선물을 받을 때 내게 필요하지 않는 것이 오는 경우가 많다. 여자들은 정성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들이 주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말 좋은 선물은 어렵다. <그랜 토리노>란 영화에서 그냥 무심코 본 맥주를 자신의 글 속에 녹여낸 것을 보면서 남다른 관찰력에 고개를 끄덕인다. 뭐 나의 경우 상표에 무관심한 것도 있지만.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을 약간 다른 시각에서 풀어낼 때 나도 모르게 수긍하게 된다. 그의 문제 제기가 와 닿았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를 통해 가장 많이 얻게 되는 것은 역시 하루키의 정보다. 그의 일상과 관심사와 두려움이나 약간 특이한 행동들이다. 개인적으로 신호대기 중의 양치질은 괜찮다는 생각과 함께 칫솔질 후 이물질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이 뒤섞이며 하나의 영상이 훅하고 지나갔다. 결코 깨끗한 장면은 아니다. 그의 감각적 문체와 더불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이런 상상을 계속하게 만든다. 아마 개인의 경험에 따라 각각 다르겠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가 비행기 타고 여행을 다닌다는 사실에 이 둘은 관계가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평소 무심코 바라보던 것을 조금은 다르게 보면서 재미난 상상을 하게 된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첫 무라카미 라디오가 나온 후 다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뭔 훗날 4권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말 할 수 있겠는가. 그림을 그린 요하시 아유미의 후기를 보면 한 달 분량을 한꺼번에 전달해줬다고 하는데 언젠가 일 년 치를 한번에 줄지 어찌 알겠는가. 이런 상상을 하는 것도 하루키의 영향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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