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유작 1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적지 않은 분량에 조금은 힘겹게 읽었다. 나의 지식이 저자의 풍부한 지식을 도저히 따라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다루고 있는 부분들이 나의 관심사 밖에 있는 것들이거나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한 것들이라 더욱 그랬다. 대제국 미국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관심사가 그의 글로 통해 나올 때 나의 단편적인 지식은 너무 쉽게 힘을 잃었다. 특히 3부의 경우는 심했다. 아직 중동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뭐 북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지만.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도 그의 선집을 두 권으로 나눈 것 중 첫 번째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대로 표현하면 다음 책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분량보다 내용과 문장 때문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냉철한 논리로, 칼처럼 벼려낸 예리한 문장’이었는데 사실 이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나의 집중력이 많이 깨어지고 정확한 지식이 없었던 탓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읽는 속도가 떨어지고 집중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의 이해 정도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그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그것은 그 당시 지식이 부족하거나 저자의 성향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시작한 부분도 있다. 특히 3부가 그렇다. 정밀하게 읽지 않은 탓인지 파키스탄에 대한 글들에서는 그들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여기에 미국 영화나 소설에서 얻은 인상 몇 가지가 곁들여지면서 더 심해졌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으나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평가는 균형 감각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이미 다른 책이나 지식을 통해 머릿속 한 켠에 자리를 잡은 상황이라 더욱더.

 

1부가 서평을 주로 다루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맞았다. 대부분이 미국과 그 인물을 다루는데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인물들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받은 교육이나 매체를 통해 얻은 지식과 정보가 미국 편향적이다 보니 더 그런 모양이다. 사실 우리에게 제퍼슨의 사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노예제도를 두고 나온 두 사람, 존 브라운과 에이브러햄 링컨은 기존 상식을 뒤집어 주기 충분하다. 우리의 지식이 너무 링컨에 집중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리고 JFK에 대한 평은 새롭고 과장 과대 포장된 인물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산산조각내준다. 아마 수십 년이 흐른다면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그런 인물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이 점점 기독교 근본주의에 접근해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은 약간 섬뜩했다. 강요되는 종교의 문제는 이슬람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문제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3부인데 그 중 고문에 대한 이야기는 니체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주 무서운 일이다. 저자가 직접 겪은 고문은 한때 한국에서 자행되었던 수많은 고문을 연상시켰다. 또 미군에 의해 고문당한 사람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그 당시 온몸으로 배운 것을 그대로 실현한다는 내용을 읽을 때는 왜 고문이 문제가 되는지 그래도 알려준다. 악순환의 고리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그의 글에서 일관성 있게 보이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음모론에 대한 반대다. 특히 미국 유대인에 대한 음모론에 대한 반론을 펼칠 때 얕은 나의 지식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엄청난 지식으로 파고든 수많은 글들을 생각할 때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음모론은 가슴 한 곳에 의문을 살짝 남겨 놓는다. 아마 그의 출생에 대한 의심 혹은 음모론에 대한 호기심 탓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존 업다이크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스티크 라르손을 이야기할 때 낯섦과 반가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누렸다. 뭐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때는 의욕을 꺽는 경우도 있었지만.

 

읽으면서 몇 쪽을 접어놓았다. 군대 기독교화와 반기문이 나오는 부분과 쇼아에 홀로코스트의 주석을 붙인 부분이다. 군대 이야기는 앞에서 했고, 반기문이 눈에 들어온 것은 그에 대한 비평 때문이다. 인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논지의 글인데 앞의 글을 읽게 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반가운 이름에 반갑지 않은 글이었다. 홀로코스트와 쇼아를 같은 것이라고 주석을 간단히 단 것은 왜 요즘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 대신 쇼아를 쓰는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결과다. 같은 사건을 말하지만 그 의미가 다를 때 여기에 대한 주석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몇 번 말했지만 쉽게 읽지 못했다. 그의 논조가 혼란을 가져온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서평을 쓰면서 읽은 역자의 글은 그 의문 중 하나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가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했기 때문이다. 가끔 보였던 몇몇 글들이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것과 상관없이 사실을 직시하는 글들은 언론인이 할 일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요즘 같이 한국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사족처럼 붙인다면 like에 대한 글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아직 영어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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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14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